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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 (요일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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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하인츠 프레히터>라고 하는 독일계 미국인이 있습니다.
그는 접시닦이 출신으로서 억만장자가 된 사람입니다.
그는 원래 전기와 수도도 없는 독일의 시골벽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기 때문에,
그는 겨우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하루 14시간씩 일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정비소를 개업했는데,
그 때에 자동차 천장에 여닫을 수 있는 ‘선 루프’를 개발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36개나 되는 회사를 소유하는 거부가 된 것입니다.
그는 22개의 언론사도 소유하고 있었으며,
여러 개의 호텔까지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섬 하나를 통째로 사서 초호화 저택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처럼, 부러울 것이 하나 없는 그가 자살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그 이유란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하게 된다 할지라도,
참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아무리 좋은 집에서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으며,
또한 아무리 많은 쾌락을 즐기게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만으로 체울 수 있는 마음의 공허는 메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인츠 프레히터>가
‘인생이 허무하다’는 말 한마디만 남겨놓고 자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즉 이 말은 세상에서 웰빙의 삶을 찾았지만 찾지 못하여
이 세상과 이별한다는 것이지요/

사도 요한이 지금 이 서신을 쓴 목적이
1:4절에서 말하듯이 [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
이 기쁨은 진정한 웰빙,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우리의 진정한 웰빙의 삶
즉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삶은
하나님과 교제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빛 가운데 거하는 삶에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의 특징은 2가지로 나타납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의 삶의 특징은
빛 가운데 거하는 깨끗한 삶과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삶에 이런 증거가 없다면
자신의 신앙의 삶을 점검을 해 보아야 합니다.
진리의 영은 우리를 빛 가운데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미혹의 영은 우리를 세상으로 인도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진리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삶인지
아니면 미혹의 영에 속하지 아니했는지,
나의 신앙의 삶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사도 요한이 요1서에서 가장 강조하는 말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의 특징 즉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실천을 말하려고 하면서
왜? 영을 다 믿지 말라고 합니까?
1. 사도 요한은 왜 영을 다 믿지 말라고 합니까?(1절)
신앙생활과 또는 목회에 어려운 점 가운데 하나가
은혜와 진리가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1:14절에 보면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고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에는 은혜와 진리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이게 잘 되지를 않습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7절 이하 말씀에서 보듯이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 즉 사랑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강조하다 보면 진리 면이 약해질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진리를 강조하다 보면 사랑이 약해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 장로교는 진리와 전통을 강조하다 보니 사랑의 실천이 약합니다.
사도 요한이 2:18절에서
[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 사랑을 강조합니다.
그러다 보니 진리가 약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바로 세우고 사랑을 강조하기 위하여
[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 고 합니다.
이것은 에베소 지역 교회가
사도 요한의 경계에 따라 이단의 침투를 막다 보니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계2:2-4절에서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에베소 교회가 이단들의 침투를 막은 것은 잘한 일인데
그러나 보니 사랑이 식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그 반대로 사랑을 강조하기 전에 <3>
거짓 영들을 잘 분별해야 할 것을 먼저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사랑과 진리가 균형을 이뤄야 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으로 우리가 영들을 시험하느냐? 하면
2. 내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무엇으로 확신할 수 있습니까?(2절)
내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을 먼저 확신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확신합니까?
무엇으로? 내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증거가 뭡니까?
2절에 [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
즉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심을 믿는 자는
바로 하나님께 속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요한은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의 인성을 믿지 않고
가현설 - 즉 눈에 보이는 예수님은 영체이지 육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가현설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반박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첫째로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태어나시기 이전에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신 사실을 인정하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선재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거의 대개의 경우,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영들은 그리스도의 선재를 부인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의 존재에 있어서,
있었느냐 아니냐는 문제는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심으로 존재하신 분이라면
그 분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죄인이 죄인의 죄를 대속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신성을 말하는 것으로
그가 곧 하나님으로 존재하신 분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인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만약 이런 사실이, 사실이 아니라면 진리는 설자리가 없어지며
우리의 구원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된 영, 사탄의 역사는
이같이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을 극력 부인하는 것으로 일관하는 것입니다. 모든 이단의 교리는 이 비진리의 토대 위에 세워집니다. <4>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구주이심을 믿습니까?
그럼 나는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합니다.
그럼 우리를 미혹하는 영을 어떻게 시험해 볼 수 있는가?
3.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하는 첫 번째 시험은 무엇입니까?(3절)
3절 [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요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
적그리스도의 영은 예수를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아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변화 받고 나면 우리는 자칫 영적 주관화 경향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것이라고 하면 다 믿으려고 하고
그것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그렇지 않는지도 살펴보지도 않고
무조건 수용하여 잘못된 신앙적 모습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는 영적인 기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이 땅에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항상 말씀이 세운 기준을 중심으로
자신의 영적인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에 아무리 기적을 일으키고 놀라운 일을 눈을 보게 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확인해야 하는 것은
그 모든 일이 예수님을 시인함으로 일어나는 일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분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귀도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결코 영적 감상주의에 빠져서 기적이나 신비를
모든 영적인 기준으로 삼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 자신들도 영적인 일을 말할 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며
그분으로 인하여 행하는 것인지를 분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교리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히 민감합니다만
생활 속에 파고들어오는 마귀의 유혹은 잘 물리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가 잘못되어지면 신앙의 삶이 삐뚤어지지만
삶이 잘못되어도 교리가 변질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어느 여집사가 쇼핑하러 갔다가 멋진 옷을 보았는데 가격이 엄청나게 비쌉니다.<5>
사고 싶은 욕망을 도저히 꺾을 수 없어서
카드로 그 드레스를 사서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저녁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그 멋진 드레스를 보여 주었습니다. 남편은 드레스 값이 얼마라는 것을 듣고는 질려서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 당신, 도데체 이렇게 비싼 옷을 어떻게 살 수 있냐? ]
[ 마귀가 나를 유혹하는데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어요. ]
[ 그러면 당신이 그처럼 열심히 읽는 성경 말씀대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는 하지? ]
[ 내가 왜 그렇게 하지 않았겠어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쳤더니
내 뒤에서 다시 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겠어요?
'뒤에서 보아도 그 옷을 입고 있는 당신은 너무나 아름답소!' ]
우리는 교회 안에서는 또는 성경을 놓고는 아멘!도 잘하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뒤에서 들려오는 마귀의 말에 더 솔깃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나중에는 자신을 합리화 시키고
그리고 하나님 말씀마저 자기에게 맞추어 버립니다.

사단이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을 죄짓게 만들 때,
예수 믿는 사람을 유혹할 때에 쓰는 방법이 네 가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바로 다윗 이미지를 가지고 나옵니다.
다윗 왕을 봐라,
그렇게 범죄했지만 회개한 다음에 훌륭한 왕이 되지 않았느냐,
그러니 지금 죄 짓다가 때가 되면 회개하면 된다고 유혹한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모세의 이미지입니다.
모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그에게도 혈기가 있었다.
모세를 보아라,
그는 사람을 쳐 죽이기도 했고, 십계명을 깨뜨리기도 했고,
사람들 앞에서 반석을 땅땅 내리치기도 했던 혈기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위대한 사람이었지 않느냐,
네가 혈기 좀 부렸기로서니 그것 가지고 뭘, 괜찮다고 유혹을 하는 것입니다.
세째는, 베드로의 이미지를 가지고 나옵니다.
베드로를 보아라,
그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만 잤다,
예수님을 세번이나 모른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성령 받은 다음에 큰 일을 하지 않았느냐,
지금을 잘 때이니 푹 쉬어라.
나중에 기도해서 성령받으면 된다- 이래가면서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무서운 유혹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바울 이미지입니다.
바울의 메시지를 들어보라, <6>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행위는 상관이 없다, 마음대로 살아라, 이미 구원을 받아놓은 것이다,
나는 구원받기로 이미 예정된 사람이니까
거꾸로 가건 말건 천당 가기로 정해졌다. 걱정 말아라 - 이렇게 유혹을 합니다. 이런 유혹을 통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타락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가지고 자기변명으로 미혹하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을 실천적 무신론자라고 합니다.
신앙고백은 하지만 삶에는 하나님도 없고 예수님의 말씀도 없는 교인
바로 실천적 무신론자들입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지 아니하는 적그리스도의 영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우리를 미혹하고 있다는 것 꼭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더군다나 우리를 실천적 무신론자로 몰고 가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미혹의 영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습니까?
4. 하나님께 속한 자의 신앙의 승리는 어디로부터 옵니까?(4절)
하나님께 속한 영적 성도의 특징은
그들의 삶이 세상에 매이지 않고 세상을 이깁니다.
4절 [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신 주님을 의지할 때 이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보다 크신 분 - 어떤 분이십니까?
공중 권세를 잡고 세상을 좌우하는 사탄의 권세를 깨뜨려 놓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이 세상 부귀와 명예보다 크신 예수님이십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귀담아 들어시기 바랍니다.
[ 마귀는 인간을 악마로 만드는데
돈보다 더 성능이 좋은 무기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돈은 그 성능 이 얼마나 뛰어난지 사람들 앞에 이것을 흔들기만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정신을 못 차리고 빠져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든지 다 통하는 전천후의 무기라서
한 번도 손질을 하거나 개량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이라는 무서 운 독약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죽음의 길로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
우리가 언제 신앙생활에 철이 들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느냐? 하면
마귀가 무기로 내 세우는 돈 보다 더 크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에 <7>
눈이 뜨여질 때입니다.
여기에 눈이 뜨여지지 못하면 마귀의 유혹에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어 살아갑니다.
하지만 거짓된 영에 사로잡힌 자들은
진리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이 듣기에 좋은 말을 쫓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영에 속한 바른 믿음의 성도가 되기 위하여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따라 행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창14: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돌아오니
멜기세덱 왕이 나와서 영접할 때에
아브라함이 전리품에서 십분의 일을 바치며 하는 말이
[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라 ] 합니다.
다윗이 성전건축 준비를 다 해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대상29:11-12절에
[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게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다.
부과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
모든 것이 주에 손에 있을 만큼 크신 분
바로 내가 믿는 하나님이요 나의 주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을 의지하여 세상에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무엇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까?
5.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의 분별은 무엇으로 할 수 있습니까?(5-6절)
하나님께 속한 자와 세상에 속한 자는 다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세상을 이깁니다.
그것은 그 안에 계신 주님이 세상에 있는 이(마귀) 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러한 승리의 확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사탄이 등장한 후로 미혹의 영이 나타났습니다.
사탄과 그의 사자들이 천국에서 쫓겨난 후,
이들은 인간이 거주하는 이 세상에 그들의 있을 자리를 펴고
인간을 대상으로 미혹하는 영으로 존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의 미혹의 첫 대상은 아담과 하와였습니다. <8>
그 후 미혹의 영은 인류의 역사 가운데서 계속적으로 인간들을 미혹해 왔으며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여 진리에서 떠나게 합니다.
미혹의 영은 사탄의 영으로 이 영을 유혹의 영,
혹은 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미혹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고
자기의 말을 따르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미혹이란 말은 그럴듯하게 속여서
가짜를 진짜처럼 속여 그것을 믿게 하는 일을 말합니다.
이 영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모습은 진리의 영 인양 자기 존재를 위장합니다. 혹은 천사 인양 외모로 가장합니다. 우리가 이 같은 미혹의 영의 역사에 대처하지 않으면
그들의 미혹을 받기 쉽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
1) 깨어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기도가 약해지면 마귀가 그 틈을 타는 것입니다. 마13장에 있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사람들이 잠 잘 때 악한 자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렸다고 하셨습니다.
잠잔다는 말은 기도하지 않는 생활을 말합니다.

2) 진리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 할 수 있는 방법을 6절에서
[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 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 고 합니다.
요한이 이곳에서 '우리의 말을 듣는다'는 말은
당시 교회에 보낸 사도들이 서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며
나아가 교회의 법을 말합니다.
근래에도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기도하는 종들이나 특별한 사명을 받은 종들에게 주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신비주의 신앙에 빠진 사람들로
이들의 결국을 살펴보면 이단으로 흐르거나 잘못된 신앙으로 빠져들어
결국 자기 영혼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것입니다.바울 사도는 갈1:8절에서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고 경고했습니다.
몇 해 전 이탈리아 한 수녀가 카메라로 예수님을 찍어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안나 알리라는 수녀가 <9>
자기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 내가 모습을 보이지 않음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내가 모습을 보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
이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확실한 것을 쥐어 주기 위해 예수님이
실물과 다름없는 사진을 찍어 증거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사진을 찍었다고 말하는 안나 알리 수녀는
무려 예수님을 이백 회 정도 만나 뵈옵고
또한 그때마다 예수님이 친히 주신 말씀을 받아 적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이 <성스러운 호소>라는 제목을 달고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이 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친히 예수님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 내 말은 인쇄되어지고 읽혀질 것이며 그
것을 읽는 이들에게 나는 ‘특별한 은총’을 내리겠다. ]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으로는 부족하다. 라고
감히 이 책이 선언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특별한 은총’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오히려 성경보다 더 가치가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이단들은
저들의 신비체험이나 기적체험을 성경보다 더 우선적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진리의 영은
성경이 우선이고 나아가 교회의 법도가 우선임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문제가 많았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는
교회의 질서를 아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상하지요.
미혹의 영에 미혹되면 성경 말씀도 교회의 권면도 듣지 아니하고
독선적인 신앙적 아집에서 나오지를 않습니다.
6절에 [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말을 듣고 ] 합니다.
성경과 교회의 지도를 받는 신앙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 맺는 말 >
영을 다 믿지 말라고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세상에서 승리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그리고 성경 말씀과 교회의 법도를 따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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