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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로 살아야합니다 (마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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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은혜로 구원함을 입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커다란 고통을 겪으시며 우리를 위해 준비한 선물로서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그 은혜의 결과로 얻는 우리의 구원이라는 것도 너무나 귀하고 황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그 은혜를 값싼 어떤 것으로 전락시킨 면이 없지 않아 많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대하는 것을 보면 마치 싸구려 물건을 대하듯합니다. 비싼 물건과 싸구려 물건을 사보신적이 있습니까? 비싼 옷은 그 옷을 산 것 자체가 매우 좋습니다. 입지 않아도 배부릅니다. 내년이 되도 또 입고 싶습니다. 그런데 싸구려 옷을 사면 처음에는 필요에 의해 샀지만 다음해 가 되면 입고 십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그 옷에 대한 열정은 없습니다. 우리가 오늘 은혜로 살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은혜를 싸구려 취급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은혜로 살고 있습니까? 은혜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린 아이같이 살아야합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4절) 우리는 어린아이 예찬론처럼 들리는 이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어린아이 예찬론 그 이상입니다. 이 말씀은 어린아이의 한 속성을 들어 천국 백성된 우리가 갖아야 할 가장 중요한 한가지 교훈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어린아이처럼 의지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님을 의지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혼자 잘 있는 것을 보셨습니까? 어린아이는 조용하면 사고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자기 눈에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웁니다. 뭐하나 혼자 제대로 할 수 없는 약한 존재가 바로 어린아이입니다. 그런데 우리보고 바로 그 어린아이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연약해지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때달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기에 항상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어린아이 때문에 귀챦아 할 정도로 아이가 부모에게 의존적인 것처럼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항상 구해야합니다. 저는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저의 원칙이 그렇습니다. 목숨을 걸고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어느 정도 성숙합니다. 하나님과의 수없이 많은 체험도 있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깊이 하나님을 잘 알고 동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일을 행하고 있는 저의 행동과 말을 볼 때가 오히려 더 많습니다. 성숙하면 성숙할 수록 더 죄인인 것을 고백하는 이유는 전에는 알지 못하던 내 안의 죄를 깨닫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 원칙이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라도 행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래도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순간순간 기도해야 합니다. 입술을 벌려 기도해야 합니다. 어찌해야 할지 의지하며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 더 낳은 것을 봅니다.

은혜로 산다는 것은 어린아이 같이 사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같이 사는 것은 나의 연약함을 알고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는 삶입니다. 무엇을 할 때 내 멋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며 사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힘과 지혜를 달라며 그 힘을 받아 사는 것입니다. 

소자를 영접해야합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5절) 은혜로 사는 것은 은혜를 베풀며 사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 은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은혜를 베풀며 살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돈을 아는 사람이 돈을 땅에 버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아이가 돈을 알기 전에는 돈을 잘 버립니다. 그러나 그 돈을 가지고 가면 가게에서 과자를 살수 있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산다는 것을 알고 나면 결코 돈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은혜를 단어로만 아는 사람은 은혜를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만 은혜를 아는 사람은 이제 은혜 베푸는 거룩한 통로가 되고자 합니다.

은혜 갚은 까마귀, 은혜 갚은 호랑이, 은혜 갚은 두꺼비, 은혜 갚은 개미 등 우리는 수없이 많은 은혜 갚은 이야기들을 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은혜 갚는 것이 천륜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은혜 갚는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은혜를 행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보는 꼭 전도지로 써주세요” 어떤 아이가 한 말입니다. 왜 그런 말을 했는가 하면 주보에 자신이 그린 그림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그린 그림 하나도 자신이 그렸기 때문에 그렇게 정이 가고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 그림이 들어간 주보가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수고와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것인지 우리는 압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것에 대해 얼마나 사랑하시는 마음을 가지시겠는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 한사람 한사람에게 얼마나 큰 마음을 가지고 돌아보지 않겠습니까? 우리들 보기에는 우리 주변의 소자는 말 그대로 소자입니다. 작은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쏱지 않아도 나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잘해주면 도리어 나를 그 사람의 친구로 여겨 나도 그 사람처럼 소자가 될 수 있는 위험조차도 있습니다. 어리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소자들은 소자이기에 더욱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소자라는 것은 지금 도움이 가장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 누군가가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소자입니다. 누군가가 나의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 말이 필요하다면 그 사람은 바로 소자입니다. 우리가 그 소자를 영접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얼굴이 환해집니다. 하나님이 마음씨시고 계신 그 소자를 누구 하나도 거들더 보지 않아서 하나님의 마음이 더욱더 안타까웠는데 우리가 그 일을 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 땅의 소자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안다는 것은 우리가 진정 약자요 죄인이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는 우리 주위의 소자들에게 동질감을 가지고 깊은 마음에서 우러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사랑함으로 우리들의 삶은 참으로 귀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소자들을 영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로 사는 삶입니다.

간절하고도 진실한 마음으로 살아야합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8절) 이 말씀을 들으며 어떤 생각이 듭니까? 무시무시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또한 가장 합당한 진실이지 않습니까? 은혜로 산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착각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생각하면 대충대충 사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회의 석상에서 어떤 것을 처리할 때 “은혜로 합시다”라는 말을 “대충 처리합시다”라는 말처럼 사용합니다. 그러나 은혜로 사는 삶은 결코 대충사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법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이 당시 바리새인은 아주 철저히 말씀대로 살려고 했습니다. 혹 말씀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까봐 말씀보다 더 엄격하고도 많은 규례를 만들어 놓고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 바리새인들보다 더 낫지 못하면 은혜를 모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리새인 보다 더 낫습니까? 우리는 겉모습은 바리새인을 따라가려면 아주 멀었습니다. 그런데 꼭 바리새인을 이겨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음이요 사랑입니다.

드라마를 보면 능력 많은 나쁜 사람이 있고, 능력없는 착한 사람이 자주 나옵니다. 그 때 우리는 누가 더 사랑스럽습니까? 그렇습니다. 능력은 없어도 착한 사람이 사랑스러운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우리는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로 사는 삶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야 합니다. 온전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참으로 손과 발을 찍어 버리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한다 말하면서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행함이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 입바른 소리에 속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미음 중심을 드려야 합니다. 간정한 사랑을 드려야 합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잘할 수 있는 일이라 하여도 은혜로 하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힘과 생각대로 처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은혜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이 필요없어 보이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니 이렇게 쉬운 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많은 기도 들으시느라고 귀가 아프실거야 그러니 이런 일쯤은 나 혼자 처리할 수 있어”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귀챦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남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로 인해 이 세상은 파괴되어졌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파괴되어졌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혼자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대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것을 주신 분도, 우리에게 그것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기에 우리는 모든 것을 할 때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하는 모든 일이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인줄을 알고 고백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하루하루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깨달으며 은혜를 가슴에 품고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삶은 은혜”입니다. 은혜 앞에 겸손히 엎드리어 그 은혜를 붙잡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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