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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뜻은? (잠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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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6일 주일 낮예배 설교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제가 중국 사역을 하다 보니 북경의 만리장성을 여러 번 가보게 됩니다. 만리장성은 실제 길이는 6,500Km로 약 16,000리가 넘는 대단한 성입니다. 성을 건축한지 약 1800년이 지났는데도 그 성은 지금도 건재하게 서있습니다. 저는 만리장성을 볼 때마다 몇 가지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

첫째는, 어떻게 저 엄청난 성을 쌓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중국이니까 가능하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여행 가이드가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 성에는 중국 백성들의 피와 땀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일정한 길이와 기간을 한 지역 주민에게 맡기고 그날까지 다 세우지 않으면 그 동네 모든 주민을 몰살시키는 정책을 사용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 명령을 지키지 못한 지방 수령은 지역주민 수만 명과 함께 죽었답니다. 그러기에 죽기 살기로 성을 쌓아야 했습니다.

둘째는, 그들은 땅이 크다보니 생각이 크다는 것입니다.
중국을 우리 조상들은 때국놈들이라 합니다. 그 때국이 대국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정말 땅도 크고 사람도 많습니다.
만리장성도 6500KM로 우리나라 서울 부산을 15번 왕복할 거리입니다. 천안문의 고궁을 들어가 보신 분은 아시지만 아마도 우리나라 경북궁의 10배는 될 것 같습니다. 다리가 아파서 더 이상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들은 땅이 크다보니 생각도 크고 급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반도 기질로 급하고 소심합니다. 그러나 그네들은 급하지 않습니다. 만만디입니다.

셋째는 성은 조상들이 쌓고 복은 후손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진시황제는 그 어마어마한 성을 건축하여 놓고 실제로 자신은 50세에 죽었습니다. 안 죽으려고 온 세상에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선남선녀들을 보내고 난리를 치고 발버둥을 쳤으나 그는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북쪽의 오랑캐를 막기 위해 쌓았으나 지금은 그 만리장성 때문에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성벽은 누구도 넘기 힘든 성벽이었으나 지금은 아무 소용이 없는 문화재에 불과합니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진시황제는 13세에 왕으로 등극하여 14세부터 자신이 죽을 때 들어갈 지하 궁전을 세웠답니다. 자그마치 38년 동안 720만 명을 동원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영생의 진리를 모르니 죽어서도 왕노릇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을 생매장했습니다. 그는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그는 그 영원한 세계를 들어가는 비법을 알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영적인 구원의 진리를 전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육의 세계는 보았지만 영의 세계는 볼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의 세계를 알지 못하면 아무리 세계를 주름잡단 인물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기에 하나님을 알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복중의 복이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목사인 제가 가장 가슴 아픈 성도는 신앙생활을 취미로 하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구원이 무엇인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재미삼아 교회 다니고 정신수양 삼아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안에 그런 성도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제일 고상한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런 사람은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르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바라기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온전히 예수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 되었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기초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분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능력을 믿으면 우리는 엄청난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을 수 없다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요4:24에 보면“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
그분은 영으로 존재하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나 우리와 같은 人格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끊임없이 우리와 인격적인 교류를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방법이 예배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기초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를 인정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보세요.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것을 몇 가지 알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인정해야 합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는 말씀 중에 뭘 인정하라는 것인가?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 있을지라도 함께 하십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속에 들어가면서도 믿었던 것이 그것입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찬송을 부를 수 있었던 것은 그것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라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전능하심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전능함이라는 말이 항상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 그 말이 곧 전능하다는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우리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전능자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줄기 세포 하나를 만들었는냐, 못 만들었느냐가지고 난리를 칩니다. 황우석 박사 파동이 그게 우리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무소부재하시며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고 그분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환경을 초월한 사랑이며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을 향한 사랑입니다. 일시적이거나 내 뜻대로 이루어진 사랑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랑은 위대한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임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내가” 인정해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까? “너는” “너는” 입니다. 그 너는 바로 나입니다.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인정하면 여러분의 삶속에 기적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남들이 하나님을 인정하느냐 안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느냐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당연하지요. 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내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습니까? 그분이 살아계셔서 나를 도우시고 나를 인도하심을 인정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 삶은 분명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고 물질을 바라보는 가치관도 다릅니다. 인생을 바라보는 인생관도 다릅니다.
다를 수밖에요.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이 믿지 않는 사람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다보면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당연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거의 30년 만에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한 세 시간 동안 식사하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지냈습니다. 아주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 그리고 공부의 선의의 경쟁을 했던 친구들, 아주 오랜만에 만나니 즐겁기는 했는데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왜요? 그들의 생각하는 것이 전부 현실이고 이세상의 부귀영화였습니다. 그들의 가치관이 나와 너무 차이가 났습니다. 어떤 친구는 자신의 부정한 성생활을 자랑합니다.
도저히 그들을 그대로 돌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할 기회를 엿보다가 동창회장이 제 눈치를 보더니 목사님 한 말씀 하시지요. 하기에 때는 이때다 싶어 전도를 했습니다. 한 5분정도 내가 지나온 이야기를 간증하면서 너희도 내가 믿는 예수님을 믿으라. 전했습니다. 일부는 진지하게 듣고 일부는 술이 취해 듣는지 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분명하게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인 시각을 가지시고 하나님이 여러분 인생에 개입하시고 주관하시고 도우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고, 그분이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고, 그 분에게 내 시간과 내 생명 전체를 드릴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살아계신 분이라고 믿어진다면, 그분이 우주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창조주라고 믿는다면 내 인생은 분명하게 달라져야 합니다. 이렇게 적당하게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분이 내 아버지이시고 나를 구원하신 분이시고 그분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나를 돕고 계시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그분을 내 하나님으로, 그분을 내 구주로 고백하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3. “범사에” 그를 인정해야 합니다.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여기 凡事란 “힘든 일, 즐거운 일, 괴로운 일, 기쁜 일 할 것 없이 모든 일 속에서 그분이 나를 주관하시고 나를 섭리하심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상관없습니다. 남들이 나를 미쳤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남들이 나를 뭐라 하던 나는 모든 일에 그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서 기적이 나타나고 거기서 능력이 나타납니다.
내가 그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신기한 능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실례를 들어볼까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명령이 아닙니까?
어찌 아비가 자식을 죽입니까? 그것도 하나님이 여러 차례 약속의 씨로 주신 자식입니다. 100세에 낳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어떻게요? 그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합시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그 아들과 함께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단을 쌓고 아들을 묶어 단위에 올려놓고 죽이려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미친 것입니까?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가 주인이고 그가 달라면 뜻이 있어서이다, 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만약 그때 아브라함이 그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의 명령을 불순종했다면 그는 아브라함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야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이 형을 피해 외삼촌 집으로 도망칠 때 그는 참으로 참담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복을 빌 때 무엇이라 축복했습니까? 창27장 27절~29 이하를 읽어보세요.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 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도망칩니다. 처량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인정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는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거기서 서원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는 외삼촌 집으로 가서 여러 번 외삼촌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20년 동안 이루 말로 표현키 고생을 하며 어려운 일을 겪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한 번도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를 거부가 되어 돌아오게 하고 자식이 12명, 딸까지 13명의 자식을 거느리게 하십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노예로 팔릴 때를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하나님이 그럴 수 있느냐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부인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애굽의 보디발 장군의 집 노예 신세 속에서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였고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노라고 간증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힘들고 괴롭고, 너무 고통스러워 죽을 것 같고, 인생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도 그때에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계신다고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범사에 그를 인정하는 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 혼자서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캄캄한 밤에 내려오다가 실족하는 바람에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용케 손을 뻗쳐 절벽 중간에 서 있는 소나무 가지를 움켜쥐었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사람은 절벽 위에 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 살려! 위에 아무도 없습니까?” 그러자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들아! 염려 말라 내가 여기에 있노라!” “누구십니까?”하고 물으니, "나는 네 하나님이다”라는 대답이 들렸습니다.

이 사람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 질렀습니다. "하나님, 저를 이 위험한 곳에서 구해 주시면 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나이다."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좋다.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그 나무를 놓아라.” "아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이걸 놓으면 저는 떨어져 죽습니다.” "아니다. 네 믿음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그 나무를 놓아라!”
그러자 이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잠시 침묵을 지켰습니다.
잠시 후 이 사람은 소리쳤다. "위에 누구 다른 분 안 계세요?”
새벽까지 그 나뭇가지를 놓치 못하고 매달려 있었습니다. 새벽에 날이 밝아오자 자기 발밑 1미터 밑이 땅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내가 생각한대로 안되면 하나님 뜻이 아니고 내 뜻대로 되면 하나님 뜻이라 믿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인도하심을 인정하시고 그 속에서 감사와 기쁨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인정하고 살면 어떤 결과가 주어질까요?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1)내 인생길을 인도하십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우리 삶을 인도하십니다.

2)내 생각을 인도하십니다. 
사55:8~9 
8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믿으십니까? 

내 생각대로 안 될지라도 순종하여야 합니다.
내 형편만 앞세우지 마세요. 내 능력만 바라보지 마세요. 하나님을 인정하시고 그분을 의지하시면 그분이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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