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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우리의 소망 (요 6: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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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국에 첫 메달을 안겨 준 선수는 귀여운 강초현 선수였습니다. 그 메달이 아쉽게도 은메달이었지만... 당시 18세 여고생이었던 강초현 선수는 예상 밖의 선전으로 결승전에서 거의 금메달을 딸 뻔 했습니다. 마지막 한 발을 7점 정도에 맞히기만 해도 금메달은 강초현 선수의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초현 선수는 너무 긴장해서 그랬는지 엉뚱하게 5점을 맞히고 말았습니다. 결국 강초현 선수의 몫이 될 뻔했던 금메달은 과녁의 중심에 좀 더 가까이 맞힌 다른 선수의 목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잘 준비된 사격 선수라 할지라도 총알이 과녁의 중심을 맞히지 못하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영광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중심을 벗어난 총알이나 화살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중심에 가까이 가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믿음의 내용이나 그 결과도 큰 차이가 있게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예수님을 찾아 다녔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찾아 다니는 사람들을 피해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거기까지 예수님을 찾으러 따라갔습니다. 그들의 열심은 가히 금메달감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제자들보다 훨씬 더 열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의식적으로 피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바다 건너까지 따라갔습니다. 그 때 그 사람들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서 예수님을 따르고 그 말씀에 집중했던 사람들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 사람들이 그토록 부지런히 예수님을 찾았던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것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정치적 독립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이스라엘 나라의 정치적 독립을 이루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토록 열심히 예수님을 찾았던 것도 바로 그 목적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분이라면 로마의 식민 통치를 종식시키고 이스라엘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동안 보여 주신 예수님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사람들은 확신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 나라의 왕으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서도 그 때 그 사람들처럼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늘 뜨겁게 기도하며 부지런히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주님과 주님의 몸된 교회, 그리고 이웃을 매우 헌신적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서 의외로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따르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믿고 따르는 것 자체가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을 믿고 교회에 출석하는 이유나 목적이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들은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주님을 믿고 따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을 사귀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들은 건전한 이성 교제를 위해서 교회를 찾기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각기 자기의 이해와 필요에 따라서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마치 그 때 그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 위에 오신 목적이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생명의 떡이다. 때문에 나를 먹는 자는 영생할 것이다. 그 옛날 출애굽한 히브리 노예들은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지만 죽었다. 그러나 생명의 떡인 나를 먹는 자는 결코 죽지 않고 영생할 것이다. 나는 정치적인 떡이 아니다. 나는 믿음으로 먹어야 하는 생명의 떡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믿되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에게 생명, 즉 영생을 주시는 분으로 믿고 그 예수님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가 그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믿는 우리가 어제나 오늘이나, 그리고 내일도 생명의 떡을 믿음으로 먹고 살아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밝혀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믿음의 중심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오직 예수님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셔야 하고 우리는 그 예수님만 믿고 따라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생명의 떡으로 이 땅 위에 오신 예수님을 잘 알고 섬길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이 병원에 입원해서 목사가 병원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그 때 그 사람이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표정으로 목사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목사 아들이라는 사실을 아셨습니까?” 심방을 갔던 목사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그 사람이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그 사람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리고 과거 그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목사는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심히 놀랐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목사 아들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전도가 어려운 지역만 골라서 교회를 개척하던 목사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헐벗고 굶주렸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가족 모두를 붙잡아 놓고 가정 예배를 드렸는데 그 결론은 항상 똑같았습니다. ‘예수님을 붙잡으면 다 붙잡는 것이고 예수님을 놓치면 다 놓치는 것이다.’ 나는 그 말 듣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아주 지겨웠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가출해서 고학을 했습니다. 어렵게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외무 고시에도 붙었습니다. 사람들이 독재 정권 아래에 있을 때에도 나는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외교관으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나의 꿈은 아버지가 나를 키운 것처럼 내 자식은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집과 옷, 음식, 교육 환경 등 최고의 것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지금 좋은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보셨지요? 나는 예수님 없이도 잘 해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내가 고치지 못할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불치병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분별력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얼마 후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이제 내가 눈을 감을 것 같으면 나는 천국에서 깨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아이들은 천국과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매일 반복해서 들려 주셨던 말을 나도 들려 주었습니다. ‘얘들아! 예수님을 붙잡으면 다 붙잡는 것이고 예수님을 놓치면 다 놓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아버지, 많이 약해지셨는가 보네요. 평소에 하시지 않던 말씀을 다 하시고요...’ 나는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난했던 아버지는 나에게 모든 것을 주셨지만 나는 내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옳았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옳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믿음의 중심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붙잡고 있는가, 그리고 그 예수님을 위해서 그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늘 확인해야 합니다. 믿음의 중심을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만약 중심에서 멀어졌을 것 같으면 가급적 빨리 예수님을 우리의 믿음의 중심으로 모셔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뒤늦게 후회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끝까지 예수님만 붙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무엇이 자리잡고 있습니까? 주님을 믿고 따르는 궁극적인 목적이 과연 무엇입니까? 혹시라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주님을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생 역전의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주님을 그토록 열심히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때 그 사람들도 주님을 따르는 열심에 있어서는 제자들보다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가히 금메달 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생명의 떡으로 오신 그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알았으면 생명을 구원하는 그 주님의 일에 기꺼히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어떤 값비싼 댓가를 치르더라도... 생명의 떡을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그 생명의 떡, 예수, 우리의 소망을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증거하는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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