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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눅 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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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조 말이었던 1899년 함경북도 종성 땅에 살던 문씨 김씨 등 4개 문중에서 142명의 가솔을 이끌고 북간도로 건너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과 방불합니다. 이분들은 당시 사회에서 한다는 유학자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조상전래의 고향땅을 떠나 간도로 간 데는 크게 3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그 땅이 예로부터 우리 영토였기 때문에 그 땅에 들어가 살아야 나중에라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요, 둘째, 넓은 간도 땅을 개간해서 이상촌을 건설해 보자는 것이요, 셋째는 당시 우리나라 국운이 나날이 추락해 가는 것을 보면서 장래를 위하여 인재를 기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땅에 가자말자 서당을 차려 자녀들의 교육에 힘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능한 선생님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25세 된 정병태라는 분이 선생으로 오게 되었는데 이분이 유명한 신학자 정대위 목사님의 부친이셨습니다. 그런데 정 선생님은 부임하기 전에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면서 이 조건이 허락되면 선생으로 부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조건은 자기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함께 예배드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한학의 대가들이었던 간도 이주민들에게는 매우 난감한 문제였습니다. 허락하자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조상 제사를 안 지낸다고 하니 이것이 보통 문제가 아니오, 거절하자니 유능한 선생을 놓치게 되겠으니 이것 역시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며칠을 두고 회의를 거듭한 끝에 용단을 내렸습니다. 어른들은 기독교와 함께 들어오는 신문명에 민족의 앞날을 걸어보자는 결단이었습니다. 이래서 정 선생님은 성경 찬송을 구해서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처음으로 학교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학생들로서는 예배라는 것이 생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기도 끝에 “아멘”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던 학생들은 “음메”라고 하고서는 킥킥 웃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만주 땅에서 학교와 함께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저 유명한 간도의 명동학교와 명동교회의 출발이었습니다. 이 학교와 교회를 중심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훌륭한 기독교 인재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문익환 문동환 목사, 김재준 강원용 목사, 시인 윤동주 등등 그 수를 일일이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나라 현대사에 끼친 영향 또한 한 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정병태라는 한 독실한 그리스도인 교사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나중에는 그 정 선생님이 “학생들만 예배에 참석하고 선생님들이 참석하지 않으니 나는 더 이상 여기 머물 수 없다”고 하여 결국 선생들도 다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습니다.

그 이주민 어른들 가운데 김하균이라는 분은 한학이 깊을 뿐만 아니라 성질 또한 꼿꼿하여 누가 예수 믿으라고 권할 수도 없었거니와 누가 권한다고 해서 믿을 분도 아니었습니다. 그 어른이 가만히 생각하니 자기는 주역 맹자 장자는 물론이고 불경까지 읽었는데 기독교 경전인 성경도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3, 4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밤에 신구약 성경을 3번이나 통독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진해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모두 놀랐습니다. 그 어른이 말하기를 “내가 성경을 읽고 또 읽어보니 기독교가 유교보다 높더라. 유교에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길이 없다(獲罪於天無所禱也)’고 했는데 기독교에는 속죄의 길이 있더라. 그래서 예수를 믿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이 분이 문익환 목사 외조부). 이런 모양으로 간도 이주민들은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결과는 한 그리스도인 교사 정병태 선생의 확고한 신앙적 소신을 통해서 이루어진  놀라운 역사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2.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를 살피면서 민족의 지도자인 왕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민족의 흥망성쇠가 좌우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를 읽으면서 계속 듣는 말씀이 “왕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나라가 흥하였다” 또는 반대로 “왕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므로 나라에 재난이 오게 되었다”는 류의 말씀들입니다. 여기 대표로 등장하게 되는 사람이 초대 왕 사울과 그 다음 왕이 될 다윗입니다.

사울은 그가 말로 할 수 없이 어렵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가 삼상에서 건너뛰고 넘어온 한 장이 있습니다. 사무엘 상 28:입니다. 여기에는 사울이 궁지에 몰렸을 때 엔돌의 한 무당을 찾아간 이야기가 나옵니다. 28:3에 보면 사울은 사무엘 사후에 유대 땅에서 이런 무당들을 다 추방했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이 궁지에 몰리니까 그 활로를 무당에게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떳떳하게 왕의 모습으로 찾아갈 수 없어서 변장을 하고 갔습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원하면 가지는 것이고 싫으면 버려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울을 보십시오. 그가 신앙을 버렸을 때 그 인생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벼랑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신하들이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다고 보고하니까 사울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고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삶이 타락할 때 그 믿음이 하루아침에 뚝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의 술법이 그렇게 무지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사소한 일에서부터 타협하도록 합니다. 그 다음은 그보다 조금 더 큰 것으로 도전하고, 이렇게 조금 씩 조금 씩 양보하다 나중에 뒤돌아보면 돌아오기 힘들만큼 이미 멀리 떠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번 이산가족 상봉 때 김영남 씨의 말을 들어보면 고깃배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나중에 깨어보니 벌써 바다 한 가운데 가있더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는 영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것쯤이야”하는 그것이 바로 사탄의 가장 큰 무기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평소에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고 보니 다급할 때 하나님을 찾아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연결 통로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귀신에게 찾아갑니다. 자기 운명을 귀신을 찾아가서 점치게 됩니다. 일국의 왕이 귀신 들린 여인 앞에 가서 자기 운명을 묻습니다.

저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를 보십시오. 그는 아버지의 사랑받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잘못된 결정이 그 운명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는 “허랑방탕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어려움이 닥치기 시작합니다.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친구가 다 떠나갔습니다. 호구지책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이 가장 경멸하는 돼지치기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허기진 배도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가 한 말이 무엇입니까? “이러다간 내가 영락없이 굶어죽겠구나!”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을 소홀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금보다 귀한 믿음”이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그것 보다 더 소중한 것,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신앙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에 승리하면 인생의 승리자 입니다. 다윗같이 한때 시련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결국은 높이 들어 쓰시게 됩니다.  그러나 사울은 온 나라의 권력을 한 손에 잡고 있었지만 신앙을 버리고 나니까 비참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울이 나중에 어떻게 그 생을 마감했는지 아십니까? 전쟁에 패하고 적군에게 포로 될 신세가 되니까 자기 칼에 엎드러져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첫 번째 자살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긴 가룟 유다의 종말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목을 매어 자살했는데 목을 맨 끈이 끊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왔다고 했습니다. 비참한 종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3. 이와 대조적으로 다윗은 어려울 때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이 블레셋 신하들로부터 거부당하여 자기 거점인 시글락에 돌아왔더니 그 사이에 아말렉 군인들이 시글락을 침략하여 사람과 물건을 모조리 다 약탈하여 가고, 그들의 거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물론이려니와 전쟁터에 나갔던 다윗의 모든 군인들은 망연자실 할 말을 잃고 주저 물러앉았습니다. 그러나 사태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엎친데 덮친다”고 이제까지 생사를 함께 하던 다윗의 군인들이 얼마나 낙심이 되었으면 다윗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무엘서 본문 6절 마지막에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 막다른 골목에서 그에게 확신과 용기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무엘서를 읽으면서 앞으로 우리가 접하게 될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니 다윗이 점점 강하여 졌더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하나님께서 거기서 여러분을 건져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약복음서에 보면 12살 먹은 딸이 죽어가고 있을 때 회당장인 그 아버지 야이로는 죽어 가는 딸을 눕혀 놓고 예수님께 달려갔습니다. 예수님은 그 아버지를 따라 갔습니다. 아이는 이미 죽었습니다. 모두들 울고불고 야단입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 말씀을 하시고 방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소녀의 손을 잡고 “소녀야 일어나라!”고 하시니까 그 소녀가 일어나 앉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찾아간 그 관리를 우리 주님은 부끄럽게 돌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 곁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주님, 사랑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우리는 정말 아무 염려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빌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이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다윗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현실대로라면 물불가릴 것 없이 아말렉을 당장 추격해야 합니다. 나발(Nabal)이 푸대접했다고 당장 군대를 동원해서 불같이 달려갔던 다윗 아닙니까? 온통 자신들의 근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아말렉, 그 결과로 다윗의 군인들이 다윗에게 돌을 던져 죽이려고 까지 한 이 절박한 상황에서 앞뒤 돌아볼 여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성급하게 경솔하게 처신하지 않았습니다. 행동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 잡겠나이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동안 다윗은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핑계로 상당히 방만한 처신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큰 위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이런 경지에 이르면 “에라 모르겠다”하면서 막나가게 됩니다. 이것은 사탄의 술책입니다. 사탄은 틈만 있으면 어떤 명분을 걸고서라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려울 때 오히려 신앙을 찾게 됩니다. 탕자가 곤경에 처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아버지 집을 생각하고 돌아온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탕자는 용서받고 구원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사울이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과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이 말씀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로 하여금 승리하게 해주겠다”는 응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보다 더 큰 보장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는 기도가 얼마나 절실합니까? 다윗처럼 어려워도 신앙, 절망 중에도 하나님,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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