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집념의 신앙인 야곱 시리즈(4) - 무엇을 연애하는가? (창 29:20~30)..

  • 잡초 잡초
  • 650
  • 0

첨부 1


연애, 그 가슴 떨리는 말

아마 197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초등학생이었던 이하준 군이 흥얼거리던 유행가가 있는데 한번 불러볼까요? "♫왜 그런지 가슴이 두근거려요. 그녀만 보면 그이만 보면. 설레이는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짝사랑하고 있나 봐요󰁗" 이 정도만 하지요. 이 노래 아세요? 바블껌이라는 듀엣이 부른 '짝사랑'이라는 노래입니다. 이 듀엣 인기 참 좋았습니다. 그 시절 소풍 가면 늘 부르던 노래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하는 '연가'도 이 사람들이 불렀고, 또 '아빠는 엄마를 좋아해'라는 노래도 불렀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30대까지는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이고, 40대 이상은 눈이 반짝반짝 합니다. 그런데 설교하다 난데없이 웬 짝사랑 타령이냐? 저는 지금도 이 '짝사랑'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왜냐? 결혼한 지 17년 된 제가 아직도 짝사랑이나 연애를 생각하면 가슴이 뛰나 궁금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아직도 '사랑'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연애'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뜁니까? 역시 30대 이하나 처녀 총각들은 고개를 끄덕이는데, 40대 이상은 "이 나이에 뛰긴 뭘 뛰어?" 하는 것 같네요. 이런 분들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나이가 먹어 가면서 그 아스라한 느낌은 점점 사라지지만 연애라는 말은 여전히 우리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낱말입니다. 오늘 설교는 연애 얘기입니다. 그 옛날 연애하던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오늘 설교를 들으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는 본디 29~31장까지 다 읽어야 하는데 밧단아람 하란의 외삼촌 라반 집으로 도망한 야곱이 가정을 이루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아주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나옵니다. 우선 야곱이 나오고 그의 외삼촌 라반, 그리고 야곱의 아내가 된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이 나옵니다. 또한 야곱의 첩이 된 레아와 라헬의 여종 실바와 빌하가 나오고, 이 네 여인이 야곱에게서 낳은 12남 1녀가 나옵니다. 참 많이 등장하지요? 그런데 저는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이 다양한 등장인물이 모두 어떤 낱말과 연관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연애'(戀愛=히브리말로 아헤브, 즉 사랑)라는 낱말입니다. 이 낱말은 물론 야곱이 라헬을 연애했다는 구절에만 나오지만 사실은 오늘 이야기 전체를 꿰뚫는 키워드와 같은 낱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도 '무엇을 연애하는가?'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대표적 등장인물인 야곱과 그의 두 처 레아와 라헬, 그리고 야곱의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을 통해 이들은 과연 무엇을 연애한 사람들이었는가 살펴보고자 합니다.

야곱이 연애한 것 : 아내(라헬), 가족, 재산

먼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야곱은 무엇을 연애했을까요? 물론 야곱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 내용처럼 장자권을 연애했습니다. 그래서 그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얻기 위해 형과 아버지를 속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장자권에 대한 연애 때문에 지금 야곱은 이 먼 하란 땅까지 도망해 온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야곱은 이 쫓겨 온 먼 땅에서도 한 번 연애한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국 얻고야 마는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그러면 오늘 이 하란 땅에서 야곱이 연애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야곱이 연애한 것은 첫째, 라헬이라는 여인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연애한 이유는 라헬이 예뻤기 때문입니다. 우리 남성들 솔직히 말해보자고요. 남자들이 말로는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지 여자지"(남진의 노래 가사)라고 말하지만 이거 사실이 아닙니다. 솔직히 남자들 여자 볼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이 외모 아닙니까? 그래서 야곱도 어쩔 수 없는 남자라 라헬을 더 좋아한 것입니다. 29:17에 보면 언니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동생 라헬은 곱고 아리따웠다고 합니다. 안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시력이 나쁘거나 총기가 없다는 뜻입니다. 당시에는 시력이 나쁜 자체도 여성에게는 점수가 깎이는 요소지만 요즈음에야 눈 나쁜 여성들도 안경을 쓰거나 특히 콘택트렌즈를 끼면 도무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것들이 없었으니 눈 나쁜 분들은 알겠지만 안경 벗으면 자연스레 얼굴을 찌푸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말 자체가 외모가 안 좋다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언니에 비해 라헬은 곱고 아리따웠다고 하는데 원어에는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고 나와 있습니다. 얼마나 야곱 보기에 예뻤으면 이렇게 말했을까요?

그런데 이렇게 예쁜 라헬이 9절에 보면 아버지의 양을 칩니다.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나중에 나옵니다만 라헬은 야곱 못지않게 복 받는 일에 적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예쁘고 성실하고 성격도 비슷한 여자, 정말 야곱이 반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야곱은 라헬을 연애하여 결혼하기 원했지만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삼촌 라반에게 속아서 7년이나 일하고도 언니 레아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기가 한번 연애한 것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야곱입니다. 7년이나 더 일해서 결국 라헬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20절에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고 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야곱이 연애한 것은 가족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내와 자녀입니다. 유난히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은 야곱은 가족에 무척 집착했던 것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어려서 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은 딸은 커서도 아버지와 비슷한 남편을 찾고 반대로 어머니 사랑을 많이 받은 아들은 자기 어머니 같은 부인을 찾는다고 합니다. 야곱도 물론 결혼할 나이가 차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기를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가 많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 리브가와 비슷한 여성을 찾지 않았을까요? 앞서 말한 대로 야곱은 라헬의 외모에도 반했지만 아마 어머니 리브가처럼 적극적인 성격을 보고 라헬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역만리 타향에 도망 온 신세니 얼마나 가족에 집착했겠습니까? 이북에서 월남한 분들 중에 두고 온 가족이 그리워 이남에서 빨리 결혼해서 자녀를 어떻게든 많이 두려고 하는 분들을 봅니다. 야곱도 레아와 라헬 두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것만으로 모자라서 두 아내의 여종인 실바와 빌하도 첩으로 삼습니다. 좀 더 많은 아내를 맞이하고 좀 더 많은 자녀를 낳아서 대가족을 이루려는 집착인 것이지요.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노력이요 집착입니다.

야곱이 연애한 마지막 세 번째 대상은 바로 재산입니다. 당시 가장 중요한 재산은 자손과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계속해서 많은 자손과 땅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족장들은 유목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 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양(羊)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얼마나 큰 재산가인가 하는 것은 양을 몇 마리나 가졌는가 하는 것으로 가늠했던 것입니다.

오늘 창세기 30:25부터 보면 삼촌이자 장인인 라반 집에서 계속 무보수로 일하던 야곱이 이제부터 품삯을 받게 되는데 그 품삯이라는 것이 참 묘합니다. 즉 야곱이 라반의 양떼를 먹이고 지키되 그 중에서 멀쩡한 것은 라반의 몫이요, 아롱지거나(얼룩빼기) 점 있는(점박이) 양은 야곱의 몫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얼룩빼기나 점박이 양은 제물로도 바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가치가 떨어집니다. 얼핏 보면 상당히 불공평한 계약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떻게 합니까? 30:37에 보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얼룩덜룩한 가지를 양떼가 와서 먹는 물구유에 세워 양들이 짝짓기를 할 때 보게 합니다. 이 내용은 상당히 주술적인 이야기인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도 임신하면 닭 껍질 못 먹게 하지 않습니까? 아이에게 닭살 피부가 생긴다고 말입니다. 똑같은 사고방식입니다. 구약시대 사람들도 사람이나 가축이 임신했을 때 눈으로 보는 것이 그 겉모습에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룩얼룩한 나무를 세워두고 임신한 양이 그것을 보면 얼룩빼기나 점박이가 나온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정말 얼룩빼기나 점박이 양이 엄청나게 많이 태어납니다. 하지만 이런 미신 때문에 얼룩빼기나 점박이 양이 많이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수를 써서 야곱은 드디어 큰 재산을 이루게 됩니다. 30:43에 보면 "이에 그 사람(야곱)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고 말씀합니다. 형에게 쫓겨 와 낯선 타향에서 빈털터리로 처가살이를 시작한 야곱이 드디어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대가족과 엄청난 재산까지 얻고 이제 당당하게 금의환향만 하면 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레아와 라헬이 연애한 것

지금까지 야곱이 연애한 것 세 가지(라헬, 가족, 재산)를 살펴보았는데, 이제 야곱의 두 아내인 레아와 라헬이 연애한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레아와 라헬이 그토록 열망하고 연애한 것은 남편의 사랑과 자식이었습니다. 물론 자식도 남편의 사랑을 받기 위한 수단이었으므로 남편의 사랑과 자식 욕심은 결국 같은 것이지요. 앞서 설명한 대로 야곱은 못생긴 언니 레아보다 예쁜 동생 라헬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비록 언니 동생 사이지만 이 두 여인 사이에 남편의 사랑을 차지하려는 암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가 아들을 낳으려는 치열한 경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 두 여인이 남편의 사랑을 받기 위해 벌인 치열한 경쟁은 이들이 낳은 아들들의 이름을 보면 잘 나타납니다. 언니 레아는 여섯 명의 아들을 낳는데 그 이름과 뜻이 창세기 29장과 30장에 나옵니다. 첫아들을 낳고 레아는 감격해서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29:32)라고 외치며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고 짓습니다. 둘째 아들은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다"(33절)면서 '시므온'이라고 짓고, 셋째 레위는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34절)라는 뜻이며, 넷째 유다는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35절), 다섯째 잇사갈은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30:18)는 뜻이며, 여섯 째 스불론은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거하리라"(30:20)는 뜻입니다. 참 애절하고 한 맺힌 이름들입니다. 동생 라헬에 비해 못생기고 남편의 사랑도 못 받은 언니 레아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아들을 여섯이나 낳는데 그 이름마다 남편 사랑 못 받은 한을 담아 지은 것입니다. 이젠 아들 낳았으니 남편이 나를 사랑하겠지, 이 정도로 많이 낳았으니 남편도 나와 함께 지내겠지 하는 한이 여섯 아들 이름에 구구절절 새겨져 있습니다.

반면 라헬은 어떻습니까? 언니 레아가 남편 사랑 못 받은 한이 있는 것처럼 동생 라헬도 비록 남편 사랑은 한 몸에 받았지만 아들을 못 낳은 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라헬이 생각해낸 방법이 자기 여종인 빌하를 첩으로 들여보내 대신 아들을 낳게 하는 것입니다. 별별 수단방법을 다 써서라도 아들을 낳으려는 집념을 가진, 어찌 보면 시어머니 리브가나 남편 야곱과도 비슷한 성격을 가진 여인 아닙니까? 그래서 이 빌하가 낳은 두 아들의 이름에도 한이 서려있습니다. 단은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30:6)라는 뜻이고, 납달리는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30:8)는 뜻입니다. 그랬더니 이에 질세라 레아도 시녀 실바를 첩으로 들여보내 두 아들을 낳습니다. 그 이름은 갓, '행복'이라는 뜻이고(30:11), 또 하나는 아셀인데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는도다"(30:13)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라헬이 드디어 꿈에 그리던 아들을 낳습니다. 물론 막내 베냐민을 하나 더 낳기는 하지만 아주 나중 얘기고 본문에는 요셉 하나만 나옵니다. 이 요셉의 이름도 한 맺힌 이름입니다. 요셉이란 '더하다'는 뜻인데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30:24) 얼마나 아들에 한이 맺혔으면 "하나로 만족 못하니 아들 더 낳게 해달라."고 이름을 지었겠습니까?

이 두 자매 간의 치열한 쟁탈전이 드러난 사건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합환채 사건입니다. 30:14 이하에 보면 레아의 맏아들 르우벤이 들에 나가 합환채를 가지고 왔는데 라헬은 이 합환채를 얻기 위해 언니와 거래를 합니다. 정말 야곱하고 성격이 비슷하지요? 합환채란 영어로는 '맨드레이크'(mandrake)라고 하는 식물인데 상치와 비슷하게 생겼고 5월 초순에 열매가 열리는데 이 열매는 성적 욕구를 돋우는 일종의 최음제나 강장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라헬은 이 합환채를 이용해 아들을 낳아보려고 남편과 동침할 권리를 언니에게 주고 그것을 삽니다. 이런 일련의 모습들을 보며 우리는 레아와 라헬이 얼마나 남편의 사랑과 자녀욕심을 열렬히 연애했는가 잘 알 수 있습니다.

라반이 연애한 것

마지막으로 야곱의 삼촌이자 장인인 라반 역시 무언가를 열렬히 연애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라반이 연애한 것은 자기 자신과 그 소유입니다. 라반은 둘째 딸 라헬과 결혼하기 원한 야곱을 이용해 큰딸도 시집보냅니다. 속된 말로 하면 큰딸을 '치운' 것입니다. 별로 안 예쁜 큰딸 시집가기 어려울 테니 작은 딸 시집갈 때 함께 치워버리자는 이 아버지의 속된 욕심이 사위도 속이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라반의 진짜 목적은 시집못간 큰딸 걱정이 아니라, 큰딸 몫으로 7년, 작은딸 몫으로 7년, 총 14년간 조카이자 사위인 야곱을 공짜로 부려먹으려는 속셈입니다. 어쩌면 딸을 시집보내려는 아비의 마음보다 딸 둘을 이용해 사위를 부려먹으려는 야비한 욕심이 더 앞섰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라반이 소유욕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는 증거는 30:35~36에도 나옵니다. 앞서 말한 대로 라반은 자기 양떼 중 얼룩빼기와 점박이만 사위에게 주기로 계약을 맺는데, 단 한 마리라도 어떻게든 사위에게 안 주려고 음흉한 농간을 부립니다. 즉 자기 양과 염소 중 얼룩빼기나 점박이는 다 골라내서 자기 아들에게 보내고 야곱에게는 흠과 점이 없는 양만 맡기는데 이는 유전적으로 흠 없는 양에게서는 당연히 흠 없는 양만 나올 가능성이 큰 것을 이용한 것이지요. 또 이것만으로도 모자라 아들들이 치는 양과 야곱이 치는 양은 사흘길이나 떨어지게 해서 절대 못 만나게 합니다. 라반은 한 마디로 재산과 소유를 위해서라면 딸도 팔고 사위도 속일 수 있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 라반과 딸 라헬이 함께 연애한 것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31:19에 나오는 드라빔입니다. 라반을 피해 가족과 재산을 거느리고 야곱이 야반도주할 때 라헬은 아버지의 드라빔을 몰래 훔쳐갑니다. 뒤늦게 이를 안 라반은 수백 킬로미터를 쫓아와 드디어 야곱 일행을 따라잡는데 말로는 "어떻게 내 딸과 손자들을 나도 모르게 데리고 도망하느냐"고 따지지만 정작 라반이 흥분한 것은 딸과 손자가 아니라 이 드라빔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라반과 라헬이 이렇게 소중히 여긴 드라빔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드라빔이란 한 마디로 각 가정에서 모시고 섬기는 작은 우상입니다. 하나님을 알았던 라반과 그 가족이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겼다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이 드라빔을 놓고 아버지와 딸이 벌이는 쟁탈전은 더 충격적입니다. 이 드라빔이라는 우상은 그 가정을 수호하는 신이며 이것을 가진 자는 상속권을 갖게 된다고 믿었으니 이렇게 부녀가 싸울 만도 합니다만 우리는 내 집안 잘 되는 일에만 집착하고 재산 상속권에만 매달리는 이들 부녀의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연애하는가?

정리해 봅시다. 오늘 이야기에 보면 야곱은 전에는 장자권을 연애했는데 이제는 부인과 자녀와 재산을 연애합니다. 레아와 라헬은 남편의 사랑과 자식을 연애합니다. 라반은 물질과 소유를 연애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등장인물들은 각자가 연애한 그것을 얻기 위해 정말 애를 많이 씁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창세기에 나오는 옛날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연애의 대상들은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연애의 대상입니다. 모든 남자들은 오늘도 끊임없이 결혼 잘 해서 예쁘고 성실한 부인(라헬처럼)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모든 부인들은 어떻게든지 남편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 원합니다. 또 모든 부모들은 자녀를 낳아서 어떻게든지 공부 잘 시키고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그뿐이 아니지요. 모든 사람들은 재산을 늘려 잘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애씁니다. 드라빔처럼 어떻게든 내 집만, 내 가족만 잘 되길 바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욕심이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좋은 부인 만나는 것, 남편의 사랑을 받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아내 욕심, 남편 욕심 필요합니다. 이런 욕심이 없으면 오히려 가정은 깨지고 맙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좋은 배우자 만나려고 노력하시고 내 남편과 아내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 자녀를 낳아 잘 키워보려는 욕심은 당연한 것입니다. 재산을 늘려가려는 욕심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전부면 곤란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아내와 남편, 자녀, 재산, 명예 이것만이 전부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들만 연애하다가, 이것들만 얻으려고 그 애를 쓰다가 간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29:31을 주목하게 됩니다.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레아가 남편의 총(寵), 즉 총애를 못 받으니 하나님이 대신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남편에게 못 받은 사랑을 하나님이 대신 보상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것들이 물론 중요합니다. 앞서 야곱이나 레아나 라헬이나 라반이 그토록 연애하고, 또 오늘 우리가 그토록 연애하는 가족과 재산, 명예 이 모든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것들이 결코 완전한 만족과 행복을 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이런 것에만 집착하다보니 이런 것들을 못 얻으면 인생이 완전히 실패한 줄 알고 절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만족과 행복은 결코 이런 것들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재산과 가족과 자녀와 명예와 건강, 우리가 추구하고 연애하는 모든 것을 다 받았을지라도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래서 야곱도 자기가 연애하던 모든 것을 얻었지만 이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여 축복을 얻어내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지금 우리가 열렬하게 연애하고 사모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연애를 하면 상대방에게 눈이 멉니다. 시간개념이 달라집니다. 야곱이 7년을 수일같이 느낀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아무리 오래 같이 있어도 눈 깜짝할 사이처럼 짧게 느껴져서 늘 아쉽기만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이 정도로 연애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께 눈멀어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늘 아쉬워본 적이 있습니까? 이 정도는 되어야 주님을 연애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설교 후 찬송가 511장을 부릅니다. 주님을 연애하고 사모하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이전엔 세상 낙 기뻤어도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 지금 내 소망은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오늘 이 고백이 바로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 바랍니다. (이하준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