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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인은 어떤 그릇을 쓰는가? (딤후 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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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쓸만한 사람은?>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램프의 요정 지니(Genie)가 있습니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유명한 요정이지요.
어떤 여자가 마법의 램프를 주워서 문질렀더니 지니가 나타났습니다.
깜짝 놀란 여자가 자기가 원하는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지니가 하는 말이, "세 가지 소원은 동화책에나 나오는 이야기고
나는 딱 한 가지 소원만 들어줄 수 있습니다. 한 가지만 말해보세요."

여자는 주저하지 않고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저는요, 중동 지역의 평화를 원해요.
여기 이 지도 좀 보세요.
유대인들과 아랍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싸우고 있습니까!
제발 이 지역에 화해와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세요."

지니는 중동 지역의 지도를 한참 바라보더니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이봐요. 아가씨.
좀 될만한 소원을 말하세요. 
여기 이 나라들은 장장 수천 년 동안 서로 피 튀기게 전쟁을 해온 나라들입니다.
저는 램프 속에 갇혀 있은 지가 500년이 넘어 모양이 엉망이 되었답니다.
제 능력으로는 도저히 아가씨의 소원을 이루어드릴 수가 없군요.
제발 실현 가능한 다른 소원을 말해주세요."

이 여자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만 다른 소원을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저에게 꼭 맞는 신랑감을 찾으려 했으나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이제 이런 남자가 있으면 만나게 해주세요.
사려가 깊으면서도 유머가 넘치고 요리도 잘하고
집안 청소며 옷 세탁까지 도맡아 할 수 있는 남자면 아주 좋지요. 
친정 식구들에게도 잘해주고 휴일에는 집안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TV의 스포츠 중계
보지 않고 저를 재미있는 곳으로 데려가 줄 수 있는 그런 남자 좀 찾아주세요!"

여자의 말을 들은 지니는 한숨을 깊이 쉬더니만
"지도 좀 다시 봅시다.
아무래도 중동 지역의 평화를 이루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 같군요."

이 세상에 청춘남녀들이 그렇게도 많은데 막상 결혼 상대자를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완벽하고 이상적인 배우자를 만나려고 할 때 그것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집안이 좋으면 외모가 조금 불만족스럽고,
또 외모는 괜찮은데 성격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습니다.
직장에서 일꾼을 뽑으려고 해도 지원자는 많은데 적절한 사람을 뽑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에는 어떨까요?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일꾼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일은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현대나 삼성 같은 기업체 사장의 눈에 들어서 크게 쓰임을 받는 사원은 자랑스럽습니다.
장관이나 대통령의 눈에 들어서 정부의 요직을 맡게 될 때에는 더더욱 영광스럽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거룩한 일을 위해 쓰임을 받는다면
그것은 세상일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하는 우리가 가장 염원해야 할 소원은
"하나님 제발 저를 써주시옵소서!" 하는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처럼, 모세나 여호수아처럼, 기드온이나 다윗처럼,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베드로나 바울이나 디모데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쓰임을 받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좋을까요?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쓰실 수 있는 일꾼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큰집에서 주인이 쓰는 그릇들>
여러분, 오늘 봉독한 본문 20-21절 말씀을 보세요.
우리 다같이 큰 목소리로 읽어볼까요?
"큰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오늘 이 말씀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을 하나의 그릇으로서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도량을 평가할 때도 그릇이 크다 혹은 작다라고 말하듯이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도 큰집의 주인이 사용하는 그릇으로서 비유를 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큰집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은 어떤 그릇일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중요한 전제를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 보면 사도 바울은 큰집에는 다양한 그릇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시는 집의 찬장을 열어보면 얼마나 다양한 그릇들이 많습니까?
금그릇, 은그릇, 놋그릇, 플라스틱 그릇, 질그릇, 옹기 그릇, 사기그릇,
스텐 그릇, 알루미늄 그릇, 유리 그릇, 뚝배기, 바가지, 등등.
살림살이를 하지 않는 제가 아는 그릇의 종류만 해도 이 정도입니다. 
그러니 대형 호텔과 같은 큰집에는 그릇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여기에서 큰집은 넓게는 이 세상 우주 전체를,
좁게는 '하나님의 집'(oikos theou), 즉 교회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삽니까?
피부 색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성격과 취미, 재능도 각각 다릅니다.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금그릇 은그릇과 같이 지체 높은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그릇과 질그릇 같이 세상적으로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와 같이 큰집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그릇들이 있듯이 교회 안에도 신분과 배경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취미와 재능도 각기 다른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종류의 그릇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구의 손에 사로잡혀 어떻게 쓰임을 받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각해보세요.
금그릇 은그릇은 직접 쓰이는 경우보다 대개 장식용으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대개는 주인이 금그릇 은그릇을 존귀하게 여겨 아주 특별하게 사용하지요.
그리하여 주인의 손에 바로 사로잡히기만 하면
금그릇 은그릇도 분명히 아주 특별하고 귀하게 쓰여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나무 그릇과 질그릇은 금그릇 은그릇에 비하면 외적으로는 빈약하지만
내용적으로는 훨씬 더 요긴하게 쓰여질 때가 많습니다.
주인은 금그릇 은그릇을 자주 쓰지 않고 주로 장식용으로 쓰는데 반하여,
나무 그릇 질그릇은 음식을 담고 먹는데 거의 매일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는 금그릇 은그릇보다 훨씬 더 쓸모 있고 요긴하게 사용됩니다!

그렇습니다.
금그릇과 은그릇은 모양은 그럴듯하나 그저 장식용으로만 쓰여질 뿐
아무 쓸모 없이 자리만 지키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적으로 아무리 금그릇 은그릇과 같이 외적인 것을 자랑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귀하고 특별하게 써주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적으로 아무리 나무그릇 질그릇과 같이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쓸모 있고 요긴하게 써주시면 그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그릇이냐 하는 그릇의 외적인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주인의 손에 사로잡혀 어떤 방도로 요긴하게 쓰여지는가 하는 내용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귀하고 거룩하고 요긴하고 온갖 좋은 일을 위해 준비된 그릇>
여러분, 본문 21절 말씀을 보세요.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이 말씀으로 보건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천하게 쓰시는 그릇이 되어서 안 됩니다.

둘째로, 우리는 거룩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 선생은 고전 6: 19에서 우리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고전 6: 11에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겨지고 거룩하고 의롭게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오늘 우리는 거룩한 그릇들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꼭 쓸모 있고 요긴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집안에 있는 그릇들을 보면 어떤 그릇은 찬장 안에 들어가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 전혀 쓸모 없는 그릇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그릇들은 그 그릇들이 없으면 생활하기 어려울 만큼
매일마다 아주 유용하고 요긴하게 쓰여지는 그릇들이 있습니다.   
오늘 내리교회에 나오시는 여러분 모두는 우리 하나님께서
요긴하게 쓰실 수 있는 그릇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은 '쓸모있는'(useful)이라는 뜻을 가졌지만
예수님 만나기 전 그의 인생은 아주 쓸모 없는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주인인 빌레몬을 배신하고 재산까지 훔쳐 달아난 무익한 노예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히게 되었을 때
아주 쓸모있는 일꾼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도 하나님께서 유익하게 쓰실 수 있는 그릇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넷째로, 온갖 좋은 일에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준비된 그릇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집안에서 쓰는 그릇들 중에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는 그릇들이 있습니다.
물을 마신다든지 음식을 먹는다든지 할 때 항상 가까이 준비된 그릇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온갖 선한 목적을 위해 여러분을 쓰시고자 할 때마다
항상 준비된 그릇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큰집의 주인이 쓰시는 그릇이 되려면?>
자, 그렇다면 이와 같이 귀하고 거룩하고 요긴하고 온갖 좋은 일을 위해
준비된 그릇으로서 사용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1절 전반부 말씀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여러분,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케 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어린 제자요 동역자인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어지럽히는 거짓 교사들을 조심할 것을 권면합니다.
이들의 정체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하는 자들(딤전 1: 4; 4: 7; 딤후 4: 4)로서 말다툼을 일삼으며(딤후 2: 14, 24),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일으키고(딤후 2: 23), 망령되고 헛된 말을 하며(딤후 2: 16),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딤후 3: 5)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영향으로부터 디모데가
자신을 영적 윤리적으로 깨끗케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집에서 쓰는 그릇도 그렇지 않습니까?
금그릇이든 은그릇이든 나무그릇이든 질그릇이든 더러운 그릇은 쓰지 못합니다.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을 때 먼지가 잔뜩 묻어 있는 더러운 그릇은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고 거룩하고 요긴하고 온갖 좋은 일을 위해
준비된 그릇으로서 쓰시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릇의 먼지와 때를 깨끗이 닦듯이 우리의 영혼과 마음의
먼지와 때를 깨끗이 닦고 순결해질 때 하나님께서 써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더러운 그릇은 쓰시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귀하고 거룩하고 요긴하고
온갖 좋은 일을 위해 준비된 그릇으로서 쓰시기를 원합니까?

영혼과 마음을 깨끗케 하십시오!
롬 12: 2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릇을 깨끗이 닦듯이 여러분의 심령을 새롭게 하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존귀하고 요긴하게 쓰실 것입니다!

<목숨 걸고 재판하는 판사 한기택>
한기택 판사는 목숨 걸고 재판하는 판사로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수많은 동료 법조인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는 판사였습니다.
그는 차관급에 해당되는 고등법원의 부장 판사가 되었지만 작년 7월에 온가족들과 함께
말레이시아에 여행을 하던 중 수영을 하다가 마흔 여섯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카톨릭 신자인 한기택 판사는 선배 동료 후배 판사들이 가장 존경했던 판사로서
법조계의 개혁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수많은 감동적인 일화를 남겼습니다.
한 판사의 어머니에 따르면 친척들의 법률에 관한 것을 상담해주거나
조언해주는 것도 법에 걸린다고 해서 잘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등법원의 부장판사로서 타고 다니던 관용차를 자기 아내나 자녀들이
타고 싶어했지만 단 1초도 단 1미터도 태워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그가 다니던 성당의 신부님이나 수녀님들, 동료 교우들은
세상을 떠난 다음에야 그가 판사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에게 엄정했던 한기택도 고교 시절에 부정을 저지른 적이 있었습니다.
영어 경시 대회에서 시험을 치른 뒤 자기가 쓴 답이 틀린 것을 확인한 다음,
선생님이 없는 교실에 들어가 자기의 답안지를 찾아 정답을 고쳐 썼던 것입니다.
평소에 그 누구보다도 이성적이고 정직하다고 자타가 자부했던 한기택은
너무나 쉽게 유혹에 굴복 당한 자신에 대해서 뼈를 깎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런 경험들이 평생 자기를 더욱 채찍질하는 법조인이 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크고 작은 죄를 저지르며 삽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은 비교적 큰 죄를 저지르고서도 전혀 죄책감이나
자기 성찰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아주 사소한 잘못에도
자기 성찰에 예민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일에 빠른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심령이 깨끗한 사람들을 귀하고 요긴하게 쓰셨던 것이지요!

제게는 비교적 넥타이가 많은 편입니다.
그러나 매일 어떤 넥타이를 골라서 매야 할지는 쉽지 않습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꼭 이런 경우를 두고 나온 말인 것 같습니다.
교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성도들은 많은데 막상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일꾼들을 찾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그릇을 쓰십니까?
금그릇도 쓰시고 은그릇도 쓰시고 나무그릇 질그릇 사기 그릇 귀한 그릇 천한 그릇
온전한 그릇 깨진 그릇 모조리 다 쓰시는데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쓰십니다.
보기 좋아도 쓰시고 보기 흉해도 쓰십니다.
귀한 그릇 천한 그릇 다 쓰십니다.
온전한 그릇 깨진 그릇 다 쓰십니다.
그러나 더러운 그릇은 쓰시지 않습니다.
오직 깨끗한 그릇,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담을만한 그릇을 골라 쓰십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 2: 1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오늘 여러분들이 그릇을 깨끗케 하여 이와 같은 일꾼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김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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