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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록된 말씀으로 이기자 (마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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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 말씀으로 이기자 (마 4:1-11)

이 시간 [기록된 말씀으로 이기자!]라는 제목입니다. 우리 주님은 사단의 시험을 기록된 말씀 성경으로 다 이기셨습니다. 우리에게 힘도 능력도 없고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고 우리의 상황 암담할 때 우리에게 영원불변의 능력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성경입니다.

이야기 하나 해보겠습니다. 암소와 당나귀가 한 집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암소가 아픈 척하고 일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소가 아픈 줄 알고 맛있는 것을 갖다 주었습니다. 이것에 맛들인 암소는 계속 아픈 척을 하였습니다. 그날도 혼자 일을 하고 돌아온 당나귀에게 암소는 주인이 무슨 말 안하더냐고 물었습니다. 당나귀는 “글쎄 아무 말 없었는데 아까 보니 주인이 푸줏간 아저씨와 무슨 얘기를 했어”라고 하였습니다. 결론은 여러분이 짐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의 우화이긴 하지만 시험에 드는 것은 푸줏간에 끌려갈 암소와 같은 신세가 되고 말 것이라는 비유입니다. 여러분, 시험에서 이기시겠습니까? 아니면 좌절하시겠습니까?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우리 인류의 대표자 아담은 이 사탄의 시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님은 우리를 대표해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했지만 예수님은 기록된 말씀에 굳게 서서 나가셨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도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시시각각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너무나도 합리적이고 분명한 사실을 가지고 우리의 생각을 믿음에서 떠나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타락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이 때 사단이 주는 생각들은 너무나 사실적이고 현실적이기에 사람이 생각하면 할수록 그 시험에 설득 당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나 기록된 말씀에서 볼 때 이것은 100% 거짓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를 바라보고 성경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현실보다 성경이 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40일 금식 하시고 가장 연약하실 때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십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께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면서 다가오는 현실문제로 그토록 시험했지만 주님은 번번이 기록하였으되 하시는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즉 성경으로 이기셨습니다.

여러분, 먹는 문제 얼마나 현실적입니까? 지금 배고파 견딜 수 없습니다. 또 구주로 오셨는데 백성들이 예수님을 추종하는 것 또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그리고 천하만국과 그 모든 권세와 영광 얼마나 귀합니까? 가능하다면 십자가를 지지 않으셔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사단은 꼼짝할 수 없는 절박한 현실 문제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욥이 그랬던 것처럼 꿈이라도 꾸면 좋으련만 조그마한 하나님의 음성마저도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오직 기록된 말씀에 의존하라는 하나님의 사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심히 어두울지라도 말씀에 서서 그 말씀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 먼저, 죄악 속에서 넘어지고 방황하십니까?

마귀는 “너는 죄인이다. 너는 여기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도 너는 실패했고 또 실패하고 넘어지고 있지 않느냐? 네 속에는 온갖 죄악과 부패로 가득하다.” 한다 해도 우리는 그 틀림없고 그럴듯한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롬8:30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예수 안에서 이미 거룩하고 영화로운 백성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백성 성도라,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 예수님의 황후라, 그 뿐 아니라 우리 성도들은 지금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절대로 사람을 육체로만 보지 마세요. 바울도 사울일 때 그리스도를 육체로 보고 박해했지만 이제 아무 사람도 육체로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어떤 부패하고 넘어지는 상황에서도 기록된 말씀에 서서 우리를 이미 예수 안에서 의롭게 하시고 예수 안에서 영화롭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마치 갈릴레오 갈길레이처럼 넘어질지라도 “그래도 나는 믿는다. 그래도 나는 의인이다. 그래도 나는 새 사람이다.” 하면서 새롭게 입혀주신 예수 안의 자화상을 확신하는 말씀에 서는 훈련, 복음의 훈련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세상 종교와 기독교가 다른 것은 세상 종교는 인간과 현실을 바라보고 분석하여 스스로 길을 모색해 나가지만, 기독교는 나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것을 받아들여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말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현실적이고 이치적이어도 거기 매료 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세상 철학은 해답을 준 일이 없고 세상 종교 역시 자력으로서 뾰쪽한 길이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만이 예수님의 공로로 영광의 축복된 은총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방황하지 마시고 기록된 말씀에 서시기 바랍니다.

2. 그런가 하면 너무나 연약하고 도울 자 없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재의식은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시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이 임재의 축복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다 이길 수 있는 풍성한 평안입니다. 성경은 이 평안을 모든 지각에 뛰어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이 평안이 임하면 그 어떤 감정도 불안도 상처도 다 씻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이 행복의 조건인 하나님의 풍성한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이 임재의식만 충만하다면 죽더라도 두렵지 않을 텐데 아무리 돌아보아도 하나님도 보이지 않고 연약하고 도울 자가 없게 느껴질 때 약해지는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41:10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러므로 결코 느낌에 의존하지 마시고 기록된 말씀에 의지하세요.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세요. 어려울수록 주님이 더욱 함께 하시고, 더 굳세게 하시고, 강하신 오른 팔로 우리를 붙드시고 계심을 믿으세요. 체험이나 경험보다 기록된 말씀에 서세요. 원수가 첩첩산중처럼 나를 둘러싸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외치시기 바랍니다.

엘리사를 잡으려고 아람군대가 도단 성을 겹겹이 둘러쌌을 때 엘리사가 사환에게 무엇이라 말했나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6:16-17)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외치세요. 이것이 능력입니다. 이 사람을 그 어떤 세력도 손 댈 수 없습니다.

제가 목회 초기에 하나님께서는 어느 묘지 부근 온갖 악한 사귀들의 갖은 시험 속에서 저를 훈련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계셔서 위급할 때마다 항상 강한 팔로 도우심을 체험했습니다. 악한 마귀가 권투로서 나를 연타할 때 제가 “주께 맡기나이다.” 하는 순간 나와 함께 계신 능하신 분이 그 주먹을 막으시고 마루바닥이 떠나가는 소리가 나도록 원수를 박살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나와 함께 계신분의 옷자락 스치는 것이며 무섭고도 통쾌한 그 날의 추억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이처럼 영구불변의 기록된 승리의 말씀에 의지할 때 아무리 강한 원수라도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게 될 것입니다.

3. 저주와 고통도 주님께서 다 담당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벧전2:24-25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의사는 말합니다. “낫기 힘든 불치의 병입니다.” 혹은 전문가는 말합니다. “당신의 사업은 이제 절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록된 말씀에서 소망을 찾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사 내 병도 담당하셨다. 아프지만 그래도 주님은 나를 고치셨다.” 이 건강의 자화상으로 병과 싸우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이 내신 은사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유의 은사나 병원을 통해 내신 은사나 음식을 통해 얻는 유익이나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변할 수 없는 마음은 주님은 나를 고치셨다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사업 문제에서도 “나는 망하지 않았다. 예수 안에서 나는 형통한 자요, 복 받은 사람이다. 나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절대 긍정의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기록된 말씀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107:19-20에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그러므로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힘이요, 능력이요, 구원입니다. 우리 인간의 최후의 원수 죽음의 공포에서도 건져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처럼 기록된 말씀에 서서 기도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으로 현실과 싸우시기 바랍니다. 절대 긍정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활짝 열리게 될 줄 믿습니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놓는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어렵다고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현실이 나를 감쪽같이 속이려 한다할지라도 기록된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 주님처럼 기록된 말씀에 서서 사단의 헛된 생각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진리에 선 절대 긍정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역사하심이 여러분의 현실로 나타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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