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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 8: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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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까요? 우리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흔히 교회와 성도들을 욕하는 이야기들을 듣게 됩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들의 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전혀 하나님의 사람답지 못한 그런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우리가 모든 사람들이 다 칭찬할 정도로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어떨까요?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하셨고 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을 썩지 않도록 하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고 또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면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를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5장에서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주님께 속해 있기 때문이요 세상이 먼저 주님을 미워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을 받고 난 다음 얼마나 눈부시게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까? 그런데도 돌아온 것은 큰 핍박과 환난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예수님을 믿을 필요도 없고 낙심천만해서 다 주저앉고 말았습니까?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비록 핍박을 피하여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지만 그들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들로 하여금 그냥 숨어 지내게 내버려 두시지 않았고 또 성도들 역시 그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 증거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 대표자로서 지난 시간 우리는 빌립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계속해서 우리는 그 빌립의 활약하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빌립이 초대 교회 역사의 큰 장을 열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빌립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습니다.
빌립이 스데반의 순교 이후 가라앉을 수도 있었을 복음 역사에 새롭게 불을 댕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언제든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주님의 천사가 빌립에게 말합니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나아가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거라. 그 길은 광야 길이다."

아니 사마리아 지방에서 큰 복음의 역사를 일으키고 있는 빌립을 왜 갑자기 일어나 나아가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는 것입니까? 더군다나 그 길은 광야 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그런 곳으로 가라고 한다면 아하 그곳에 가서 새롭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로구나 하고 납득도 되겠지마는 이건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 길이라니요. 그것도 구체적으로 그 광야 길의 어디로 가라든지 그 목적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여 주셨다면 몰라도 그냥 막연히 일어나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 길로 가라고만 하십니다. 어쩌면 참으로 막연한 명령입니다. 그냥 그 길로 가라고만 하셨지 무엇을 그곳에 가서 하라는 건지도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빌립은 즉시 길을 떠납니다.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가다가 마침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고관으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내시였는데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마차에 앉아서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빌립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마차에 바짝 다가서거라."
그래 빌립이 달려가서 그 사람이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게 되었을 때 비로소 왜 성령께서 자기를 이곳까지 오라고 하셨는지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 그는 주시는 감동을 따라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내시에게 다가가서 묻습니다.
"지금 읽으시는 것을 이해하십니까?"
그랬더니 그가 대답하기를 "나를 지도하여 주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올라와서 자기 곁에 앉기를 빌립에게 청하였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빌립은 이렇게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하여 하나님을 아는 이방사람을 만나 예수님을 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가 그 자리에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빌립에게 청하여 그 자리에서 세례까지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한 사람으로 인해 에티오피아에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까지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한 사람으로 인해 이 땅에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에 앞서서 아브람은 그 이름조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셨으며 그는 복의 근원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 평생 살아온 고향 땅을 막연한 부르심만 듣고 어찌 떠날 수가 있었단 말입니까? 그러나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오늘 그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고 우리가 그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귀한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우리의 삶은 과연 어떠합니까? 여러분들은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날마다 누리면서 살고 계십니까?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는 주님의 뜻을 따라 날마다 살아가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런 우리들에게 종종 감당하기 힘든 시험이 닥쳐올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는 결코 낙담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핍박당하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였던 초대 교회성도들처럼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우리가 핍박당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오히려 그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감사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누가 우리를 힘들게 한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참고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능력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내 힘으로가 아니라 주님의 주시는 능력과 사랑으로 우리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내 힘과 내 능력으로 하려고 하니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이 사랑이 우리를 자녀로 불러주시고 지금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시는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열매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또한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말씀하시며 또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곁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만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주님의 품을 떠나 숨으려고만 합니다. 그냥 포기하고 주저앉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결코 주님의 품을 떠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물러 있으면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주님의 품을 떠나고 모임에 불참하고 예배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더욱 주님 앞으로 나아와서 주님께 간구함으로 응답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참고 이길 수 있는 힘도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다 성령의 열매라고 했습니다. 이 열매는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 품에 안겨 있을 때 저절로 맺혀지는 열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주님 품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 주님 품안에 있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 마음에 주시는 성령의 감동하심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들에게 부르짖으라고 하시고 어떤 때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묵상하라고 하시고 어떤 때는 누구를 찾아 만나라 하시며 어떤 때는 어떤 일을 하라고 주님이 우리 마음을 감동하실 때 다시 말해서 우리 마음에 무엇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실 때 바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주님 앞에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알지 못하던 것들을 주님이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새 힘이 넘치게 하시고 은혜와 능력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내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조차도 다 감당할 수 잇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전서 10장 31절에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33절에서는 “나도 모든 일을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것은, 내가 내 이로움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이로움을 추구하여,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주시는 감동을 따라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 나가노라면 그리고 내 이로움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이로움을 추구하게 되면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4장 11절에서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만일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신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그러니까 모든 것이 내 힘 내 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는 주님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주시는 말씀을 따라 주님이 우리 마음에 주시는 감동을 따라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또 우리의 삶에는 새 생명을 구원케 되는 역사와 더불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놀라운 복을 앞서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

빌립을 보십시오.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난 다음 그는 주님의 영이 이끄시는 대로 그를 떠났습니다. 여기서 빌립은 결코 자기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보답으로 얻으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오직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만 따라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돌아다니면서 여러 성에 복음을 전하다가 마침내 가이샤라에 이르렀습니다. 이 빌립의 삶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내 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는 부족하고 나는 무능하오니 주님이 나를 붙잡으시고 나를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나는 오직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준행하겠나이다” 고백하게 될 때 이 놀라운 능력이 나를 사로잡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환난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귀한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성령의 사람, 순종의 사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빌립이 전한 복음이 무엇입니까?
빌립이 에티오피아 사람 내시의 청을 받고 그 마차에 오르니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것이었습니다.
"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어린 양이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것과 같이,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굴욕을 당하면서, 공평한 재판을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겼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이야기하랴?"
내시가 빌립에게 묻습니다. "예언자가 여기서 말한 것은 누구를 두고 한 말입니까? 자기를 두고 한 말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까?"

빌립은 이제 입을 열어서, 이 성경 말씀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깨달은 내시는 물이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에 자기에게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을 하였고 빌립은 곧바로 내시와 함께 물로 내려가서 그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여기 빌립은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전할 소식도 바로 이것입니다. 나를 택하시고 불러주시고 내 안에 주님의 말씀을 따라 믿을 수 있도록 믿는 마음까지 주신 주심이심을 기억하시고 이렇게 나를 불러주신 주님을 전하십시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전하고자 할 때 우리들에게 두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께서 우리들에게 전할 말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나는 입술이 둔한 자입니다. 나는 말도 잘 못합니다.” 하고 거듭 거듭해서 말할 때 내가 네 입에 내 말을 주리라고 하나님 말씀하셨고 그래도 못한다고 하니까 아론을 그 곁에 붙여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서 우리들의 입에 전할 말씀을 주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담대함을 가지고 나아가되 “나는 입술이 둔한 자요 무엇을 전할지 알지 못하오니 주님의 말씀을 내 입에 주시어 오직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고 나아갈 때 주님께서 나의 입술을 사로잡아서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한 믿음으로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하신 말씀을 따라 주님 앞에 기도하고 나아감으로 귀한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가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앞길을 무엇이 가로막고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만 의지하십시오.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십시오. 주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처럼 그렇게 섬기고 봉사하십시오. 그리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도록 하십시오.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함께 나누며 누리는 귀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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