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전심갑주를 입으라 (엡 6:10-13)

  • 잡초 잡초
  • 466
  • 0

첨부 1


  독일에서 축구의 축제인 월드컵이 개막되었습니다. 월드컵의 열기가 세계 곳곳을 달구고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각 언론들은 아마도 올해 6월은 잠 못 이루는 달이 될 것 같다고 예측하며 보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본래 축구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는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이루고 돌아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응원하며 ‘오 필승 코리아!’와 ‘대한민국’에 박자를 맞추어 소리 높여 외쳐 부릅니다.

우리 대표팀이 현지로 떠나가기 전 인천공항에서 이영무 기술위원장이 전화로 우리 대표팀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 왔습니다. 그 분은 본래 국가대표 선수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애썼습니다. 축구선수가 골을 집어넣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세레모니는 아마도 이영무 선수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분은 후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신학을 공부하면서 목사가 되어 충성스럽게 일하면서 자신의 삶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월드컵 축구 대표팀 23명 중에 12명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12명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팀 전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열심히 뛰어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해 달라고, 그리고 국민 모두가 이번 기회를 통해 화합하는 평화의 축제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무엇보다 한국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월드컵 선수들의 목표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마음속에 16강, 8강, 4강, 우승까지도 기대합니다. 경기에서 이렇게 ‘16강’, ‘8강’ 하면 마음속에 목표가 정해지고 전의가 불타오르게 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표팀을 향해 ‘태극전사다.’,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단 하나의 투사와 같다.’라는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이 일을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수고와 땀을 흘렸습니까? 때로는 절제하고 때로는 자기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축구 경기를 통해서 자신들의 명예와 나라의 명예를 살릴 것인가? 투쟁적인 마음으로 모든 일을 감당한 것을 우리가 옆에서 지켜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축구 선수들과 같은 모습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삶을 보면서 ‘전쟁터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우리는 놀이터에 왔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믿는 이들의 삶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쟁터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이 두 가지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놀이터’라고 생각하기에는 우리 삶의 실존이 처절하고 생존을 위한 전투의 경쟁적 상황이 너무나 치열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쉽지 않습니다. 직장에 나가면 직장에서 수고하고 승진을 위해서 애쓰는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깝게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결코 세상이란 만만한 곳이 아니기에 놀이터라고 하기보다는 치열한 전쟁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꾸로 ‘전쟁터’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삶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쉼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연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나누고 섬기며 봉사하는 삶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꼭 전쟁터라고 보기보다는 평안한 놀이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분명히 온 우주와 땅을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놀이터로 만드신 것은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가운데는 즐기는 재미도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도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먹고 마실 과일도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로 풍성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수고하는 복, 노동의 복, 땀 흘리는 복도 이미 주신 축복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하여금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만들어 나가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하나님과 함께 더불어 대화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좋은 놀이터입니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우리의 삶의 현장은 놀이터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놀이터가 전쟁터로 바뀌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놀이터에 침입하여 난장판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사랑을 나누는 인간 사회 속에 들어오면서 놀이터를 휘젓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전쟁터로 바뀌어져 인간들 안에는 근심과 걱정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죄를 짓게 되었고,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세계가 고통 받는 삶의 현장으로 바뀐 사실이 창세기 3장부터 시작해서 계시록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의 현장이 놀이터입니까? 아니면 전쟁터입니까? 놀이터라고만 생각하게 되면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째, 삶의 현장이 전쟁터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점을 상실하게 됩니다. 사탄이 끊임없이 유혹하는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위해서 인생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놀이터라고만 생각하게 되면 인생의 모든 목표는 즐거움과 재미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눈과 귀로 보는 즐거움과 돈을 많이 쌓는 풍요로움이 인생의 목표가 됩니다. 세상에서 지위가 높아지고 명예를 얻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됩니다. 그러나 결코 그것만이 참다운 인생의 목표가 아닙니다.
때로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신앙 생활하는 것을 삶의 놀이터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재미있게 드려야 좋다, 찬송도 재미있는 찬송을 많이 불러야 좋다, 설교들 들어도 재미있는 것을 많이 들어야 좋다.’라고 평가하며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예배입니다. 찬송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는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삶의 현실을 너무 놀이터로만 인정하게 되면 때로는 처절한 생존경쟁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첫 번째로 삼아야 되는 부분을 놓칠 수 있습니다.
 
둘째, 신앙생활을 하기 전에 즐겨했던 가치관과 습관을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내 삶의 습관대로, 세상적인 방법대로 살고 싶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죄책감을 느꼈으면 주일에 와서 보혈의 능력으로 용서받고 다시 또 세상 속에서 즐거움으로 사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삶의 태도는 성공 지향적이 됩니다. 복 받는 것이 신앙의 목표가 되어 축복받는 설교만이 듣기 좋고, 즐거움의 설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에 성공사례를 많이 이야기해야 기분이 좋은 것이 되고 맙니다.
세상에서 돈을 잘 벌고 기업을 잘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탁월한 능력을 나타내는 전문가들이 교인들 가운데에서 많이 생겨나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지위를 갖추어 세상의 지도자가 되고 자신의 주어진 모든 일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사람들이 교인들 가운데 나오는 것처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성공보다, 복을 많이 받는 것보다는 내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위해서 내 삶을 드리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예배드릴 때만 잠깐 필요하고, 주일에 잠깐 만나고, 힘들고 어려워 잠깐 기도할 때만 만나고, 나머지 모든 날은 내 즐거움과 인생의 목표를 위해서만 살아가는 가끔 필요한 하나님이 된다면 그것은 신앙의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성공적인 그리스도인보다 거룩한 그리스도인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인기 있는 그리스도인보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을 원하시고 찾으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의 현장을 놀이터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세상에 있는 사탄의 권세와 악의 세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죄는 싸워야 되는 것이고, 사탄은 부딪쳐야 되고 대적해야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죄와 타협하고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물리치기 보다는 중간선에서 타협하려고 합니다.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에 엄청난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소식을 롯을 통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지역을 떠나야 했으나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집에 쌓아둔 보물, 지금까지 익숙해져있던 삶의 습관들과 즐거웠던 쾌락들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이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미련이 남아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즐기려고 합니다. 적당히 신앙생활하고 적당히 위로받으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안 나타나는 이유는 내가 갖고 있는 재미와 즐거움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의 우선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최고의 우선이 되어야 축복과 능력울 받을 수 있는데 지금도 한 발은 세상을 향해서, 한 발은 교회 안에 두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귀와 대적해야 하는 삶의 현장 속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인생은 아주 치열한 영적인 전쟁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부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라. 투쟁해라.”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여러분, 마귀가 무엇입니까? 사탄이 무엇입니까? 21세기에는 사탄이 없는 것입니까? 그것은 옛날 2000년 전에나 있었던 것입니까?
아닙니다! 지금도 사탄이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다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사탄은 비인격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사탄은 인격적이고 초자연적 존재로서 믿음의 사람들을 넘어뜨리려고 치밀한 작전을 세우고, 계획적인 속임수로 사람을 속여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합니다. 사탄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미워하게 합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예수님은 ‘사탄은 거짓의 아비’라고 명명합니다. 사탄은 거짓말쟁이로 교묘하게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고, 사악한 생각을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서 인간을 자극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게 하고 인간을 서로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이 있다고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귀는 이상하게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사랑하는 관계를 떼어놓으려 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지 훼방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존재가 무엇일까요? 바로 인간인 믿음의 성도님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영적인 전쟁터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마귀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흔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으라. 그리고 사탄을 대적하라.”
사탄이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특별히 지도자들부터 유혹합니다. 본문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대적할 적대자들은 통치자들, 권세자들,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이라고 합니다.

어떤 주석자는 이것은 마귀의 권력구조와도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탄은 이 세상에 힘 있는 사람들을 붙잡고 휘젓기 시작합니다. 지도자들을 유혹하여 넘어뜨리고 그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무너지도록 합니다.
왜냐하면 지도자 한 사람만 무너뜨리면 그에 속한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홀로 있는 사람이 범죄를 하면 그것은 그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족이 있는 사람이 범죄를 하면 그 가족 전체가 고통을 받습니다. 모든 가족들이 그것 때문에 신음하게 됩니다.

따라서 사회의 단체장이 범죄를 하면 그 단체가 영향을 받아 사회전체가 불신이 생기고 분파가 생겨지는 것입니다. 국가 지도자가 죄를 범하게 되면 국가가 기울어지고 백성들이 피폐해지고 백성들 속에 원망과 불평이 생겨집니다. 세계 지도자가 범죄를 하게 되면 세계 속에 분쟁과 갈등, 테러와 전쟁의 위협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히틀러가 나치당을 만들어서 악을 행했을 때 유럽전체가 공포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수천만의 희생자가 생겨 600만이라는 유대인이 죽어갔습니다. 김일성이 죄를 범했을 때 이 민족 속에 동족상잔의 전쟁이 발생했습니다. 처참한 전쟁이 일어났고 수 백 만 명의 희생자가 생겼습니다. 지금도 북한의 백성들이 고통과 억압과 가난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만일 기독교 지도자가 죄를 범하게 되면 교회 공동체가 위기에 봉착하게 되어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지게 됩니다.
 
마귀의 목적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다 깨뜨려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계략과 음모를 알고 그것에 도전하고 극복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사탄의 특색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고 사람을 억압합니다. 사람 속에 악을 행하고 미움을 갖도록 하고, 하나님을 적대하고 사람과 사람이 평화를 누리는 것을 깨뜨려 버리는 것이 사탄의 역사입니다.
이 악을 극복하며 선한 싸움을 싸우는 하나님의 사람들,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다운 진리의 역사를 심어나가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레는 하나님 앞에서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죄 외에는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 100명을 나에게 주십시오. 그들만으로도 지옥의 문을 진동시키고 이 땅에 하늘나라를 세우겠습니다.”
 
이 시대에도 100명의 사람이 없어서 고통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죄만을 두려워하고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100명만 있으면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지옥의 문을 파괴시키겠다고 요한 웨슬레는 외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주변의 삶은 결코 낙관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파괴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진리의 역사를 무너뜨리는 어둠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유혹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의 가정이 변화되고, 우리의 직장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교회가 더 성숙되어야 합니다. 이 땅에 민족의 지도자들, 사회의 지도자들, 기업의 지도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를 향해서 기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예!’라고 할 줄 알고, 마귀를 향해서 ‘아니오!’라고 할 줄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승리의 역사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을 때 하나님께서 승리의 역사를 이룩해 주실 것입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때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마귀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리고 어둠과 미움, 부정적인 것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로부터 떠나가려는 잘못된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와 대적하여 승리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김지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