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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6.25기념] 동족상잔의 비극, 6월이 오면 (삼상 17: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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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6일은 제 51회 현충일이었습니다. "주인 잃은 국민훈장 9만 여개 노병을 찾습니다."라는 모 일간지 헤드라인이 눈길을 끌고 있는 가운데 남북 제 12차 경제 협력 추진위원회 회의가 닷새 만에 극적 합의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선 육로를 통한 북한 방문, 후 경공업 원자재 제공이라는 해법이 또 최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북 대화는 항상 본질적인 논의는 뒷전이고 이면적인 경제지원이 없이는 일보의 진척도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이 중대한 싸움에서 성경의 기록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것이 성경의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전쟁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 왕 여호사밧과 모압과의 싸움에서 야하시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계시 역시 전쟁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역대하 20장 15절에서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68편 30절에도 {갈밭의 들짐승과 수소의 무리와 만민의 송아지를 꾸짖으시고 은 조각을 발 아래 밟으소서 저가 전쟁을 즐기는 백성을 흩으셨도다}라고 했습니다.
동족상잔의 6ㆍ25는 이 땅에 있었던 수많은 전쟁가운데서도 최악의 수식어를 몰고 다니기에 충분합니다. 그것은 바로 동족상잔이라는 것이 그 첫째 이유입니다. 둘째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대립이었습니다. 셋째가 막스와 레닌의 사상을 신봉하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Ⅰ. 전쟁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에서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로마서 11장 36절에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 자신의 역사(work)라는 말입니다. 첫째 하나님 자신의 의지의 자유를 말합니다. 둘째 하나님 자신의 의지적용의 자유를 말합니다. 셋째 하나님 자신의 의지적용의 결과 성취의 자유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소유주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창조한 만물을 통치하시고 섭리하시고 보존하십니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심판하시기도 하시며 그 만물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물을 자신의 목적을 두고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주권의 범위는 피조세계 전 영역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토기장이의 비유에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18장 2-4절에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내 말을 네게 들리리라 하시기로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9장 19-21절에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신앙에 도전하여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불신한다면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요즘 방송을 타고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할 동량(棟梁)들에게 이른바 저명한 교수가 공공연하게 무신론을 강의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결코 목적론적이 아니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는 노자의 天地不 사상을 청소년들에게 강의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싸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 철학을 강의 하면서 동서양의 무신론주의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그는 내세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목적론적 창조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의 영향을 받아 중세 종교가 모든 사람을 억압하고 강금시켰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목적론적 사상을 주입하는 것은 중세적 강압과 탄압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철학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사상을 공공연하게 대중매체를 통해서 주장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세상의 모든 피조세계를 자신의 선하신 목적대로 창조하시고 진행하시고 통치하시고 마지막에 심판하십니다.

Ⅱ. 6ㆍ25 전쟁은 회개를 촉구하는 하 나님의 징계입니다.

1) 마땅히 회개할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1938년 9월 1일에 평양 서문의 예배당에 모인 조선 예수교 장로회 27회 총회는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의 압제에 굴복하여 신사참배를 가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총회장 홍택기 목사는 소하 13년 9월 10일에 신사참배를 가결하는 죄악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아등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 기독교 진리에 위반하지 않은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또 이어 신사참배를 솔선이해하고 따라서 국민정신 총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 하에 총후 황국신민으로서 적성을 다하기로 함…"이라고 가결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크나큰 죄악이자 범죄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은 1945년 8월 15일에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을 주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은 민족사적인 차원에서나 교회사적인 차원에서나 그 어느 편으로 보더라도 일대 역사적인 전환기였습니다.

해방과 더불어 한국교회는 적어도 두 가지 과제가 불가피했습니다. 먼저는 일제 통치하에서의 기독교 탄압 특히 신사참배 강요로 말미암은 한국교회의 공죄를 청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이 교회재건운동을 통한 갱신운동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교회에 신학적 기초를 확립하는 일이었습니다. 해방을 맞이한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신사참배의 과오 앞에 온갖 괴설로 자신의 입장들을 정당화 시키는데 바빴습니다.
하나님은 환난 날에 연약하여 넘어졌던 일로 인하여 회개할 기회를 여러 모양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기회를 오히려 악용하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투옥되었던 출옥 성도들을 중심하고 한국교회 재건을 위하여 기본 원칙을 정하였습니다.
① 교회의 목사 장로들은 모두 신사참배 하였으므로 권징의 길을 취하여 통회정화한 후 교역에 나올 것
② 권징은 자책 혹은 자숙의 방법으로 하되 목사는 최소한 2개월간 강단에서지 말고 휴직하고 통회자복 할 것
③ 목사와 장로 휴직기간에는 집사가 예배 인도 할 것
④ 위와 같은 교회 재건의 기본원칙을 전 한국교회에 전달하여 일제히 시행할 것
⑤ 교역자 양성기관과 신학교를 복구 재건할 것

이와 같은 주장과는 달리 교권주의 자들의 입장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습니다. ① 옥중에서 고생한 사람이나 교회를 지키기 위해 고생한 사람이나 고생은 마찬가지였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교회를 섬기면서 일제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한 사람의 수고가 더 높이 평가 되어야 한다. ② 신사참배 회개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에서 체결될 성질의 것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참으로 불신자들이 들어도 부끄러운 억지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말할 수 없이 어지러웠습니다. 교회 재건운동은 고사하고 친일적 교권주의자들의 방해로 말미암아 영적 갱신 운동마저 힘들게 되었습니다.
1945년 6월 12일부터 4일간 서울 승동교회당에서 남부 총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서 27회 총회가 범한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신학원을 조선신학교로 개칭하여 남부총회 직영 신학교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신사참배 가결과 맞먹는 오류를 행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조선신학원은 평양신학교가 폐교된 후 서울에서 신사참배에 앞장선 자들에 의하여 세워진 신학교 입니다. 저들은 일본의 보호와 감독아래 성장해 온 학교를 남한 전역에서 유일한 목사 양성소로 인증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1945년 9월 20일 부산에서 명실공히 평양신학교 사상을 계승하는 고려신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초대학장에 박형룡 박사, 박윤선 박사로 이어지는 정통계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교권주의자들은 고려신학 운동을 분열주의자로 낙인을 찍어 결국 총회로부터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안고 고려파는 태동되었습니다. 고려신학교를 중심한 싸움은 교권적 야욕에서 출발한 분파운동이 아니라 진리를 위한 싸움이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고려파가 태동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원인은 한국교회의 신사참배에 대한 항거와 그리고 장로교 안에 자리잡은 신신학운동 즉 자유주의와 세속주의에 대한 투쟁이었습니다.
고려파 운동은 신앙양심에서 볼 때 회개운동이었습니다. 신학사상으로 볼 때는 개혁주의 신학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평신도까지 가담하는 저항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2) 회개하지 않을 때 오는 징벌이 여기 있습니다.
인간의 이데올로기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회개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그때마다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징벌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6ㆍ25전쟁으로 임했습니다.
6ㆍ25전쟁은 3백만 동족을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었습니다. 물적 자원, 인적 자원, 공간 자원은 말할 것도 없고 조국의 산하가 송두리째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보다 더한 것은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의 찢겨진 애통함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달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우리 민족의 아픔으로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우리 민족의 뼈아픈 통한의 역사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자손들에게까지 체험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전쟁 비용이 로마 제국당시 적군 한 사람을 죽이는데 75센트가 들었다고 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15,000달러가 들었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30,000달러가 들었다고 합니다.
6ㆍ25 동란에는 한사람 죽이는데 50,000달러가 들었다고 합니다. 베트남 전쟁 때는 800,000달러가 들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물적 자원을 허공에 날려 보내는 것이 현대 전쟁입니다.

Ⅲ. 실패한 역사는 복고되어야 합니다.

최근세사에서 볼 때 일제 강점기는 실패한 역사입니다. 이것은 마땅히 복고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일제 청산과 함께 뼈아픈 교훈으로 남아야 합니다.
6ㆍ25동족상잔의 비극 또한 실패한 역사이고 보면 이것 역시 복고 되어야 합니다. 실패한 역사를 만들지 않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습니까. 그러나 역사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6ㆍ25역사는 남북통일로 복고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통일의 과정과 결과입니다. 과정이야 어찌되던지 꿩 잡는 것이 매라고 하는 결과주의는 지양해야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의 주장대로 통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공한 역사를 만들기 위해 피 흘려 목숨 바친 자들은 결코 부끄러운 역사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들은 실패한 역사를 만들지 않기 위해 희생된 자들입니다. 마땅히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실패한 역사를 복고해야 합니다.

오늘날 공산주의가 인류에게 갖다 준 것은 계급의 증오, 살인, 약탈, 테러, 숙청 외에 과연 무엇이 있습니까? 그들이 말하는 노동자, 농민의 천국이 어디에 있습니까? 죽음의 노동, 절대 빈곤으로 떼거지 죽음, 바로 그와 같은 삶이 공산주의 세상이 아닙니까! 공산주의 이름으로 스탈린이 2,200만 명을, 모택동은 6700만 명을, 베트남은 100만 명을, 캄보디아에서는 450만 명을, 그리고 1956년 헝가리에서 수만 명, 한국동란에서 300만 명, 1918년 볼세비키 혁명 이래 68년 동안 무려 이 지구상에서 1억 5천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공산주의는 이 세계 면적의 39%, 세계인구의 42%를 적화시켰습니다. 오늘날 그 어떠한 나라도 공산주의 지배 하에서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그러한 공산주의에 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자유와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든 압제가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6ㆍ25 남침이 종식되고 휴전이 된 후 전란의 상처를 씻기도 전에 반공을 악용하여 참다운 민주 세력을 탄압했습니다.
이 땅에 참다운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세력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차원 높은 반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독재와 부정, 부패를 먹고 자라는 이상한 체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반민주 독재는 결과적으로 공산주의가 서식할 수 있는 온상을 제공하는 이적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나라는 경제 10대 강국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유, 민주, 인권, 경제, 지적 재산 면에서 아시아 최강국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세계에서 120여개 국가는 한국처럼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파키스탄, 미얀마, 캄보디아등의 국가사람들 특히 그 나라들의 청년들은 한국에 한번 가보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6ㆍ25 폐허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시 미국을 들어 한국을 구하기로 섭리하신 것입니다.
미군은 한국전쟁에 179만 명을 파병했습니다. 그 중에 4만여 명(실종 3,000여명 포함)이 목숨을 바쳤고 9만여 명이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현재 미군은 독일에 7만 명, 일본에 4만 3천명, 영국에 1만 명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는 전략적 요충지뿐만 아니라 강대국들이 대부분입니다. 미국의 주둔은 자유, 인권, 복지(시장경제)라는 미합중국의 기독교적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 일차적 목적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미군이 그 지역에 주둔한 결과 미국의 반식민지가 된다는 것은 미군의 주둔의도와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미군은 독일과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기고도 영토나 전리품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폐허가 된 그 나라에 성의를 다하여 경제성장을 도왔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한데 대해서 소위 민족주의자들은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김정일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한 말이지 북한의 우리 민족이 악의 축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 민족정신 함양지수가 22위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히 미국과 관계될 때는 민족주의 의식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6ㆍ25전쟁은 동족상잔이라는 참람한 수사, 그 이름처럼 비극입니다. 6ㆍ25전쟁이 통일전쟁이라고 한 K 교수의 말은 김정일 부자와 그 추종자들의 한결 같이 주장하는 말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6ㆍ25가 실패한 통일시도라고 해서 언론이 문제 삼은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이해할 문제가 아닙니다. 공산당의 상투적인 주장이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아무런 제제도 받지 않고 자유롭다는 것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북한 정권을 고무 찬양하는 행위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아직도 155마일 휴전선에는 우리의 아들들이 날씨에 따라 A형, B형, C형 근무를 초긴장 가운데 서고 있습니다. 단지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경계하기위해서 입니다. 일본을 경계하기 위해서는 독도에 수위대를 파견한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아직까지는 우리의 경계대상이 누구인가를 쉽게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6ㆍ25전쟁에 대한 체험세대는 자꾸 줄어만 가고 역사세대는 늘어나는 것은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직도 6ㆍ25의 체험세대가 살아 있다는 것이 다행 중의 다행입니다.

우리는 친북 좌경세력들을 막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친북좌경 세력들이 얼마나 되는 지 아무도 모릅니다. 성급하게 숫자를 말하는 것도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참고할 일은 있습니다. 독일이 통일되었을 때 동독에서 서독에 숨겨놓은 첩자가 3만 명에 이른다고 하는 사실을 감안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정부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잘 수종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고 했습니다.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리는 자이기 때문에 심판을 자초한다고 했습니다.

6월에 있는 월드컵은 한국전을 포함한 세계대전이라고들 합니다. 전쟁에 대한 단어 선택에 문제가 없다면 의미선택이라도 잘해야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5천 5백만을 죽인 세계 제 2차대전이나 300만을 죽인 6·25동족상잔의 비극과는 월드컵은 다른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토고 전을 앞두고 전국에서 200만의 거리 응원단이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 월드컵의 승리도 좋지만 우리 사회에 시급한 문제도 이렇게 힘을 모아 한 목소리로 나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참혹한 전쟁이 환희와 축제의 의미로 대신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세월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아 멘 -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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