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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리석은 자여 (눅 1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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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자가 보신을 잘하여 80세가 될 때까지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더 살고 싶은 마음에 하나님께 부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 돈이 많아요. 좀 더 살고 싶어요. 재산의 반을 떼어 드릴 테니 더 살게 해 주세요." 그 말을 들은 하나님은 반색을 하시며 "만일 네가 재산 전부를 주겠다면 2천년을 살게 해주었을 텐데, 재산 반을 떼어 주겠다고 하니 나도 반을 잘라 천년을 더 살게 해 주마." 이 말을 들은 부자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모아 천년을 더 살게 되었다며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심장 마비로 죽었습니다. 그의 아들이 이해할 수 없다며 하나님께 따집니다. "하나님도 거짓말하십니까? 약속을 지키셔야죠. 아버지께 천년을 약속해 놓고 하루만에 불러 가시다니 말이 됩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너는 성경도 못 보았느냐? 성경에 보면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씀이 있느니라."

우리에게 있는 재산이 이로울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돈이 많아 오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본문을 보니 예수께 한 사람이 나와 간청합니다.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재산분배의 문제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속에 탐욕이 가득함을 보시고 주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충고하시고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한 부자가 있었는데 풍년이 들어 창고에 쌓아둘 곳이 없게 되자 심중에 생각합니다. "창고를 더 크게 짓고 영혼에게 이르기를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때 하나님은 그를 향하여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고 경고하십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안타까운 인생을 보게 됩니다. 이 부자는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영혼과 나누는 대화의 내용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리석은 자가 된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영혼이 있음을 알면서 영혼과의 대화가 잘못되어 어리석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은 지혜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영혼과의 대화가 바로 되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의 삶이 되지 않으려면,


첫째로 물질만을 위해 살지 말아야 합니다

록펠로우는 가난한 행상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자신을 위하여 돈 버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살다 30대에 오하이오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40대에는 철도회사와 기업을 병합하여 미국 정유 능력의 90% 이상을 지배하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실업가로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무자비하게 상대방을 착취했습니다. 그러기에 성공해도 그를 존경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록펠로우 역시 남을 위해 희생하는 기쁨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50세가 넘어 심한 노이로제에 걸리게 됩니다. 전혀 식욕이 없게 되어 날마다 우유 한 잔, 크래커 몇 조각으로 연명하며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 밤을 저주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심한 고통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던 목표가 잘못된 길이었음을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제서야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 보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기가 사랑해야 될 사람들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토록 소중히 여기며 목숨을 걸었던 물질도 하나님의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 이후 자선 사업에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록펠로우 재단을 만들고 대학을 세우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물질만을 위해 살았던 삶이 실로 어리석은 삶이었음을 철저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도 이웃과 나눌 줄 모르고 자기만을 위해 물질을 쌓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물질로 인해 즐거움이 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이 자기 중심이었습니다. 17절부터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단어가 나옵니다. '나' 라는 일인칭 대명사입니다.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리석은 부자의 의식이 철저히 자기 중심인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사람이 자기를 위하는 것이 죄악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만 위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탐심에 빠져들기 시작하여 탐심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 치유하기 어려운 이기주의자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이웃을 향해 문을 닫아버립니다. 본문에 나타난 어리석은 부자의 독백을 보면 이웃이 고려된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네가 없는 나만의 세계입니다. 그는 작은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서 곡식만 가득히 채우려 했습니다. 물질만 있으면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물질은 있다가도 없어집니다. 물질로 즐겁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여 물질만을 위해 사는 영혼이 된다면 실로 어리석은 인생을 살고 있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죽기 전에 자신이 들어갈 관의 양쪽에 구멍을 파라고 유언했습니다. 그리고 양손을 관 바깥으로 내밀어 누구든지 보게 했습니다. 빈손으로 아무 것도 못 가지고 가는 인생임을 알게 한 것입니다. 죽는 사람이 두 주먹 불끈 쥐고 가는 법은 없습니다. 태어날 때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태어나지만 세상 떠나가는 날은 두 주먹을 펴고 갑니다.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온 세상을 정복하고 더 정복할 땅이 없어서 울었다는 알렉산더 역시 두 손을 펴고 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 주신 것에 불과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주인이자 소유권자이신 하나님을 망각하였습니다. 성경은 물질의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또 가난이 미덕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부나 물질을 창출하는 그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물질의 주인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소유권자를 알지 못하고 탐심의 노예가 되어 물질이 인생을 부리게 되면 죄악 속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탐심을 가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판단이 흐려지고 하나님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물질의 주인을 날마다 확인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20절에 하나님은 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조금 전까지 "내 곡식을 어찌 할꼬. 내가 곡간을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가득 쌓아두리라. 내가 내 영혼에게 심지어 목숨까지 자기 것" 이라고 외치는 부자의 독백을 들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유권의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평안으로, 하나님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가치로 살아가야 합니다. 인도의 테레사 수녀가 미국 순회 집회를 하는 도중에 큰 부자를 만납니다. 그는 테레사에게 "도와드릴 것이 없습니까?" 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What do you need the most?" 그때 테레사 수녀는 웃으며 대답합니다. "예수님만 필요합니다. 그분이면 족합니다. 모든 것은 그의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모든 것의 전부임을 믿으며 살아가는 영혼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포루투갈의 프란체스카 사비에르는 요한 3세 국왕의 위촉으로 인도, 중국, 일본까지 다니며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1552년 선교지에서 숨을 거두며 국왕에게 유서를 남겼습니다. "폐하도 어느 날인가 하나님 앞에 서야할 날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 날을 위하여 더욱 양심적인 국왕이 되십시오. 사람과 하나님 앞에 겸손한 왕이 되십시오. 그리고 부끄러움 없는 결산의 날을 위해 준비하십시오."

사람이 아무리 많이 배우고 높은 지위에 있다 해도 종말에 대한 생각 없이 산다면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됩니다. 즉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면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시편 90편 12절은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남은 날을 계수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일 죽는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삶에 대한 자세가 달라집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만일 내일 죽는다면 24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 는 질문앞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가치 있는 일로 보내고 싶다" 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죽음을 객관화합니다. 다른 사람은 죽어도 자신의 죽음은 전혀 생각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자는 말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는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여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라고 외칩니다. 더 많이 쌓아 두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20절에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부자는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쌓아놓은 재물이 자기 것이 될 수 없음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어리석은 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칼빈은 물질에 대한 두 가지의 모습을 말합니다. '거울 앞에 서는 사람' 과 '창문 앞에 서는 사람' 입니다. 거울 앞에 서면 자기 밖에 안 보입니다. 물질을 가지고 자신만을 치장하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씁니다. 하지만 창문 앞에 서면 창문 너머로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위해 물질을 쓰게 됩니다. 본문의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밖에 보지 못했던 거울 앞에 선 사람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남은바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입니까? 물질만을 위한 삶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영혼과 바른 대화를 하며 살다가 하나님 부르실 때에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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