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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재건의 열정 (왕상 18: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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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의 열정
열왕기상 18:30~40

1. 붕 괴

몇년 전인 2001년 가을 어느 날 우리는 온 세상을 경악케 했던 무너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 뉴욕 중심부에 우뚝 솟아있던 국제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지는 소리 말입니다. 무너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너졌기에 그 충격의 강도는 우리를 더욱 놀라게 했습니다.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 비단 이것뿐이겠습니까?  야간에도 기계를 돌려야하리만큼 잘 돌아갔던 기업이 어느 한 순간 부도를 맞아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사람들, 잘 키워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중병으로 이 세상을 떠나야 된다는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부모들, 잉꼬들도 부러워 했던 부부들이 남남으로 돌아서 가정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자녀들!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믿었던 것들이 무너짐으로 인해 절망해 있는 분이 계십니까? 어떤 무너짐의 현장을 바라보며 눈물짓고 계신가요?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무너짐의 소리를 듣고 몸부림치고 있는 한 사람 엘리야를 발견하게 됩니다. 무엇이 무너졌기에 그는 그토록 절규하고 있는 것인가요?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이라는 30절 하반절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제단이 무너져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것은 뉴욕 무역센터의 붕괴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여호와의 제단이라고 하는 것은 삶의 기반이요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 아합과 이세벨 그리고 엘리야

  이러한 처참한 무너짐 사건의 발단은 엘리야 선지자 당시 이스라엘 왕이었던 아합에게서 시작됩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혁명으로 시작한 오므리 왕조의 뿌리를 견고하게 하려고 여러 가지를 궁리했습니다. 아합왕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주변 국가와 결혼 동맹을 맺는 것을 선택했습니다(11:1). 이 일로 인해 아합이 아내로 맞아들인 여인이 바로 ‘이세벨’이었습니다. 바알 신앙이라는 악세서리로 치장된 이세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 우상 숭배를 강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이 허물어지게 된 것입니다(19:10). 더욱 서글픈 사실은 무너져 버린 하나님의 제단을 누구하나 재건하려는 열정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제단이 무너져 가는 소리를 들으셔야만 했던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무너져 방치되어 있는 당신의 제단을 바라보고 계신 하나님의 눈가에 맺혀진 눈물이 보이시나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영적인 깊은 감수성으로 함께 느꼈던  사람이 바로 엘리야였습니다. 엘리야는 이 마음을 출발점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무너진 제단을 재건하고자 하는 열정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바알 종교의 수장 450명과 한 판 전쟁을 치르기 위해 갈멜산에 홀로 서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먼저 돌 열두 개를 취해서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고쳐 쌓았습니다. 돌 열두 개가 의미하는 것은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른 것이라고 31절 전반부에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31절 후반부에서 각주 형태의 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이 구절이 품고있는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변화되었던 얍복 나루터의 현장을 회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 야곱이 이스라엘로

  지금 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고 있는 야곱을 보십시오. 그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고통스러운 상황속에서도 그가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엄청난 열정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의 이 열정은 무엇을 향한 것이었을까요? 그의 삶은 야곱이라는 이름이 암시해 주고 있는 것처럼 도적질과 사기로 얼룩진 삶이었습니다. 그는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진 언약 백성이었습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

  그러나 야곱의 삶은 어긋난 그의 환도뼈처럼 하나님을 향한 제단이 무너진 것 같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얍복강의 브니엘 체험이후 그가 했던 고백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창 35:3)”

  이처럼 무너진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을 자신의 삶 속에서 재건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몸부림쳤던 야곱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축복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깊은 의미가 무엇일까요? 지난주 추수감사 주일 시온 찬양대와 함께 마지막 올려드렸던 헨델의 메시야 중 ‘할렐루야’가 그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또 주가 친히 다스리시리. 영원히. 왕의 왕, 주의 주, 할렐루야!”

4. 엘리야의 기도

  지금 열두 돌로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있는 엘리야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에 담겨있는 이 소중한 의미를 회상하며 그렇게 부르짖지 않았겠습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친히 다스려 주옵소서! 영원히 다스려 주옵소서! 하나님만 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며 엘리야는 무너졌던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을 고쳐 쌓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기도의 형식으로 선포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3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울부짖어 기도하는 엘리야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눈을 들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엘리야의 눈 속에 담겨 있는 절대적인 신뢰가 보이십니까?

  우리는 이러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면서 무너짐의 현장에서 우리들이 먼저 올려드려야 할 기도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내 뜻대로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으니 내 계획대로 이루어 달라고 때 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과 내가 주의 종된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이것이 무너진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을 재건하는 열정의 심장부인 것입니다.

(1)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그렇다면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 본래의 자리를 돌려 드리고 그에 마땅한 영광을 올려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옵소서”
  “let it be known today that you are God in Isreal"

  여러분의 하루하루 인생 계획서에서 하나님께 돌려 드리고 있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 삶의 스케쥴에서 어느 정도의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인생 계획서가 성취하려는 최종 목표는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하나님을 하나님되시게 못하도록 만든 중요한 단어를 열왕기상 18장 18절은 ‘아자브’라는 히브리어를 통해 표현해 주었습니다. ‘아자브’는 내부에 있던 것을 외부로 내어놓아 격리시키는 행동을 뜻합니다. 아울러 이 단어는 ‘수치스런 부분을 드러내며 타인에게 버림을 받은 채 홀로 남아 있다’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아합왕을 필두로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격리시켰다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을 왕따시켰다’는 것입니다.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자브’한 모습속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심장에 모셔야 될 하나님, 산소보다도 더 소중히 여겨야 될 하나님, 호흡처럼 친밀하게 우리 곁에 모셔야 될 하나님을 격리시키고 왕따시키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말입니다. 어리석게도 위장한 바알에게 마음 빼앗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현주소를 말입니다.

  1990년대 후반에 상영되었던 ‘세인트(Saint)'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산업 스파이이자 정보 도둑으로 활약하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그는 러시아 특전대원, 기자, 신비로운 시인, 나긋나긋한 사무원 등 가지각색의 인물로 변장하는 ‘변장의 귀재’였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제목처럼 언제나 이름만큼은 성자들의 이름을 도용합니다. 그의 변장술은 너무 정교하고 완벽해서 그를 쫓는 사람들은 물론 그와 친한 사람들까지도 꼼짝없이 속고 맙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그를 몇 년동안 집요하게 추적해 온 사람 바로 옆자리에 앉습니다. 그리고는 추적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도 추적자는 자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우리들도 많은 순간에 가까이에 있는 바알들의 정체를 알지 못해 그것에 속아 무릎꿇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못하도록 우리들을 옥죄고 있는 변형된 이 시대의 바알들인 것입니다. 이시간 그러한 바알들의 정체를 밝힐 수 있도록 영적 분별력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엘리야가 바알의 잔재들을 과감히 제거하였던 것처럼 여러분 삶 속에 숨어 있는 바알의 잔재들을 과감히 제거하십시오.

  이러한 일을 위해서 우리는 믿음의 도전을 감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너진 제단을 재건한 엘리야가 했던 믿음의 도전들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는 제물 위에 물을 갖다 붓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4통의 물을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삼 세 번 도합 12통의 물을 부었습니다. 그래서 물이 제물뿐 아니라 제단 주위에 넘쳐흐를 만큼 부었습니다. 이러한 엘리야의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바알의 거짓됨과 구별해서 주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확실하게 선포하려는 믿음의 모험이었습니다. 열렬함으로 번역된 마크 부캐년의 명저 “Your God is too safe"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의미를 직역하자면 ”당신은 너무 안전한 하나님만 믿고 있군요“라는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책이었습니다.

  부캐년은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이 안 하셔도 될 일만 하고 사는 우리들의 안전한 믿음에 대한 신랄한 도전장을 던져주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달랐습니다. 그는 지금 안전한 하나님을 뛰어넘어 믿음의 모험을 촉구하시는 하나님을 직면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향해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 주는 행동을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베드로가 물위를 걷는 이적을 경험하게 된 것도 이 믿음의 모험을 감행했을 때 라는 것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을 하나님되시도록 도전하고 있는 믿음의 모험은 무엇인가요?

  배 밑바닥에 잠들어 있던 요나가 깨어 일어나 믿음의 모험을 향해 자신을 내어 던진 것처럼 우리도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삶 속에도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 한 밤중에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다시말해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사람에게 물위를 걷는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요?  우리와 베드로와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믿음의 차이입니다. 베드로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뜨고 순종함으로 그 모험을 감행하면 우리도 베드로처럼, 엘리야처럼 이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되시게 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계획이...우리들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사랑의 고백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주께서 내 삶 속에서도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옵소서.”
  “내 직장에서도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옵소서.”
  “내 가정과 이 민족 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옵소서.”
  “이를 위해 재건의 열정을 갖고 믿음의 모험을 감행케 하옵소서.”

  이것이 오늘 여러분의 동일한 기도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내가 하나님의 종인 것을

  무너진 제단을 재건하는 것과 관련된 엘리야의 기도가 보여주고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며칠 전 차안에서 들었던 방송의 내용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의 종말을 고했던 1945년 히로시마 상공에 피어 오른 원자폭탄의 검은 구름은 일본의 무너짐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20년안에 일본은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로 재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일본이 이토록 놀라운 재건을 이룩하게 된 출발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우리들이 어린 시절 재미있게 보았던 우주소년 아톰이라는 만화영화였습니다.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박사가 아들과 같은 로봇을 만드는데 그 로봇의 이름이 아톰입니다. 그러나 이 박사는 결코 자라지 않는 작은 로봇 아톰을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을 코주부 박사가 주워 다가 학교에 보냅니다. 학교에서도 작은 아톰은 왕따를 당합니다. 아톰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돈에 빠집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사람인가, 로봇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그런데 어느날 외계에서 쳐들어온 로봇으로 인해 위기에 빠진 친구들을 보고 아톰이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10만 마력의 힘으로 외계 악당 로봇을 물리치고 친구들을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이 때 아톰이 새로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작지만 강하고 아름답다.”

  “그래 서양 사람들이 우리들을 쪽바리라고 왜소하다고 비난하지만 우리는 작지만 강하고 아름다운 민족이야!” 소위 아톰으로부터 자신들의 새로운 정체성을 깨닫고 이것이 폭발적인 힘을 그들에게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를 만들어도 작지만 강하고 아름다운 자동차로 세계 시장을 정복해 갑니다. 소니 워크맨을 보십시오. 작지만 강하고 아름다움이 서양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랍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렇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바로 재건의 핵심 열쇠로구나! 하나님의 제단을 재건함에 있어서도 이것은 동일하게 중요한 열쇠라고 하는 사실을 엘리야는 선포해 주었습니다.

  “내가 주의 종인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새로운 정체성이야말로 재건의 열정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인 것입니다. 엘리야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엘리야가 처해 있었던 상황은 그의 정체성에 대한 도전의 시기였습니다. 열왕기상 18장 17절에 보면 이스라엘 최고의 통수권자인 아합이 엘리야의 정체성에 대해 붙여준 꼬리표가 등장합니다.

  “너 이스라엘의 말썽꾼아!” “the worst trouble-maker"

  다시말해 너는 이스라엘 민족에 해악을 끼치는 역적이라는 혹평이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아합 왕만의 평가는 아니었습니다. 바알 종교에 매여 있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따가운 눈초리였습니다. ‘나만 홀로 남았거늘’,‘나만 홀로 남았어요’라는 엘리야의 탄식은 이러한 상황을 암시해 주는 탄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아합이 붙여준 꼬리표를 과감히 떼어버리고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신 새로운 정체성을 선포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택받은 언약백성인 것을 하나님의 종이요 역사의 대행자인 것을 이 백성으로 알게 하옵소서”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합과 같은 사단이 붙여준 꼬리표를 보며 주늑들어 절망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요? “넌 안돼! 너 같은 게 뭘 할 수 있겠어!” 여러분의 삶 속에 붙어 있는 왜곡된 꼬리표를 과감히 떼어 던지는 결단을 감행하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사명의 푯대를 향해 나아가십시오.

  비밀의 화원이라는 영화에 보면 콜린이라는 꼬마가 등장하는데 자신을 병약한 환자라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는 태양과 신선한 공기가 자신의 폐를 오염시키고 결국 한순간에 목숨을 낚아챌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자신이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운명을 타고 났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그렇게 믿는 까닭은 단 하나 어른들이 그 아이에게 “너는 그런에야!”라고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는 어른들의 음모에 속아 그런 상태로 오랫동안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느날 콜린의 사촌 메리가 그것이 어른들의 음모였음을 알아 차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는 콜린을 휠체어에 태워 밖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그리고 콜린을 어르고 달래서 휠체어에서 일어나도록 만듭니다. 하는 수 없이 콜린은 ‘이제 난 죽었구나’ 비통한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일어납니다.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내딛습니다. 더 나아가 깡충깡충 뛰며 춤을 추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나요?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른 채 사단이 심어준 거짓된 음모에 휘말려 있지는 않으신가요? 사단의 음모라는 눈가리개에 덮여 절망의 음침한 늪에, 자기 연민이라는 헛간에, 곰팡이내 진동하는 자기 학대의 지하에 갇혀 초라하게 지내고 있으신가요?

  여러분이 누구인지 새로운 정체성을 깨닫게 하실 하나님을 향해 여러분의 마음을 여십시오. 오늘 엘리야가 쌓아 올렸던 열두 돌처럼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 지에 대해 확신을 갖으십시오. 신약성경 베드로 전서에 보면 우리들의 정체성과 관련된 두 보석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산 돌(2:5)이요 다른 하나는 왕같은 제사장(2:9) 입니다. 재건된 하나님의 제단앞에서 엘리야는 바로 산 돌이요 왕같은 제사장으로 우뚝 서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대행자로 쓰임받고 있는 것입니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깨진 돌이든, 작은 돌이든, 더러운 돌이든, 돌아오라 내가 너를 성전의 산 돌로 변화시켜 주리라. 이 시대를 재건하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영광스러운 열두 돌로 새롭게 하리라. 할렐루야!”

5. 결단 및 적용

  무너졌던 하나님의 제단이 재건되었을 때 나타났던 궁극적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불이 내렸습니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모두 증발시켜 버렸습니다(38절). 오늘 갈멜산 제단위 제물과 주변에 넘쳐 흘렀던 물처럼 현상적으로 여러분을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무너진 제단이 재건되면 하나님을 하나님되시도록 순종하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 모든 것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호렙산 모세에게 임하였던 하나님의 불이 임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실패자요 쓸모없는 자라는 잘못된 정체성을 모두 살라 주실 것입니다. 마가 다락방에 임하였던 성령의 불이 임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기력한 공동체라는 잘못된 정체성을 불살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타오르는 불꽃이 곳곳에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을 재건하는 원동력의 불꽃으로 우리들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하늘문이 열리고 큰 비가 내렸습니다(45절).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갈라져 있던 대지, 생명력을 잃고 깊이 신음하고 있던 산천 초목이 새로운 생명으로 온전한 회복의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삶의 어떤 부분에서 막혀 있으신가요? 메마른 여러분의 영혼을 무엇으로 온전케 하시렵니까? 상처난 여러분의 심령, 우리의 파편처럼 조각난 관계들을 무엇으로 아물게 하시렵니까? 먼저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을 재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친히 막힌 것들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친히 은혜의 단비, 권능의 소낙비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무너져 버린 제단을 바라보았던 엘리야처럼 억장이 무너져 주저않아 있는 분이 이 자리에 계십니까? 일어나십시오. “일어나라. 내가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께로 믿음의 손을 들고 나아오십시오. 하나님을 하나님되시게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깨달으십시오.

  그렇게 될 때에 이것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도다”,“the LORD alone is God" 하나님만이 진정 살아계신 참 신이라고 고백하며 우리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앞에 나아와 무릎꿇게 될 것입니다. 이 민족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심상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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