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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보는 자의 행복 (마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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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선생이 어렸을 때 관상쟁이가 되는 것이 꿈인 적이 있었답니다. 출세 길은 과거에 급제하는 일뿐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하며 살았었는데 그 당시에도 부패해서 돈이 곧 급제를 결정하는 그런 시대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합격이라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게 생각되었습니다. 고민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농담 삼아서“관상쟁이를 하면 평생은 먹고 산단다.”하는 말에 솔깃해서 관상에 관한 책을 열심히 공부했답니다. 그런데 그 책의 내용을 따라서 시험 삼아 자기의 관상을 먼저 보았더니 천하에 불길하고 흉한 상이더랍니다. 그래서“내 관상이 이 모양인데 남의 관상을 보아서 무엇하리요.”하고는 이것도 저것도 다 포기하려고 책을 던졌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적힌 한 줄의 글이 그의 인생방향을 바꾸었습니다.“관상(觀相)은 신상(身相)만 못하고 신상은 심상(心相)만 못하다.”는 글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잘 생긴 얼굴은 튼튼한 몸보다 못하고 몸이 튼튼한 것보다는 마음이 순전한 것이 훨씬 낫다.”는 말입니다. 그때부터 김구 선생은“어떻게 좋은 심상을 가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공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하루 세 번 자신을 돌아봐라.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손이 더러우면 곧 씻을 줄 알면서 마음에 낀 때는 어찌하여 모르는가!”사람은 그 내면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잘 관리 했으면 좋겠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 믿는 우리들이 떳떳한 자격의 하나로 여겨야 할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시면서 보이지 않는 마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 특히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우리가 잘 이해를 해보면 예수님의 현명하심과 우리를 사랑하시는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행복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가능성입니다.

만약에 오늘 예수님께서 관상학적으로“얼굴이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이 복이 있나니”했더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관했을지 모릅니다. 혹은 신상에 의지해서“몸매가 날씬한 자가 복이 있나니”하셨더라도 큰일 날 뻔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말 다행히도 보이지는 않지만 누구나 얼마든지 가능성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인 마음의 청소, 즉 심상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제 주님의 말씀을 봅니다. 본문 8절입니다.“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먼저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논리학>에서는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대개 두 가지 스타일로 말합니다. 하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마음에 내켜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연역법적 삶의 방식>이라고 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든지 내 마음에 내켜야 합니다. 마음이 먼저가지 않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어떻게 할까를 마음으로 먼저 결정을 내리고 그 다음에 행위가 따라가는 사람들의 형태입니다. 흔히 말하는<신중론>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쪽에 가까운 편일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다른 하나는 먼저 행동이 따라가고 마음으로 정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귀납법적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조건 해놓고 보자는 식입니다. 행동으로 저질러 놓고 마음으로 수습하는 형태입니다. 일단 일을 시작하고 마음으로 하나씩 정리하며 논리적으로 합리화시켜 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어느 방식이 옳으냐를 논하자는 게 아닙니다. 둘 다 결국은 마음의 문제이고 보면 결국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하고 하나는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마음의 상태가 얼마나 큰 동기를 제공합니까? 그래서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마음을 다스린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누가 청결하고 싶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니까 더 몸부림치고 더 마음이 악해지거든요. 마음을 다스린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것임을 성경도 인정합니다. 잠언4:23에 보면 이 부분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그러니까 마음을 깨끗이 지켜 나가는 것, 이것이 청결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느 정도 청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분명한 것은 청결한 마음의 수준만큼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행위는 내적 마음의 동기로 이루어집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속마음이 먼저 불편 해지고 그 다음에는 욕이 나옵니다. 또 아무리 아름다운 선행과 옥구슬 같은 언어를 쏟아낸다 할지라도 속사람 즉, 근본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의 자기위선에 불과한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하나 더 생각해 봅니다. 청결이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청결의 의미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는 단어입니다. 첫째의미는 잘 세탁되어 깨끗한 옷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새것이 아닙니다. 더러워진 것을 깨끗하게 씻는 것을 청결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지켜서 그 더러워진 마음, 찌들어진 마음, 구부러진 마음, 변질된 마음이 다 씻어져서 깨끗한 마음이 될 때 이것을 청결이라고 발합니다. 본래 새것이란 없다고 했습니다. 다 더러워진 마음이지만 누가 빨리 깨끗이 씻어내느냐는 문제입니다. 청결의 의미 둘째는 농사지으면서 쭉정이는 바람에 날려 보내고 알곡만 남도록 키질을 하는 것을 청결이라고 합니다. 본래는 알곡과 쭉정이가 섞여 있습니다. 잘 분간이 안 되게 여기저기에 뭉쳐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키질을 해서 쭉정이는 밖으로 날려 보내고 알곡이 남도록 하는 것이 청결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청결이라는 의미는 혼잡 되지 아니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모습을 청결이라고 합니다. 가령 우유에 물을 섞으면 이건 우유가 아닙니다. 포도주에 물을 탔다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물은 물이어야 되고 우유는 우유여야 되고 포도주는 포도주여야만 하는 그 상태를 청결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가 자리 잡았다면 언제까지나 예수여야 합니다. 예수 더하기 세상은 혼잡입니다. 예수 더하기 내 욕심은 깨끗지 못합니다. 예수 더하기 내 장사,내 영업은 불결한 것만 가져올 뿐입니다. 하나님만으로 채워진 깨끗한 마음, 예수님만으로 가득 찬 순수한 마음, 올바른 신앙으로 채워진 청결한 마음이 없으면 교회는 나오고 믿는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평생가도 변화된 삶, 새로운 삶이란 기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게 불행입니다.

자 그런데 보세요. 자칫 오해하기 쉬운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청결이라고 하는 것이 무(無)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요, 공허함도 아니요, 빈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청결이란 단순한(Simple)것을 말합니다. 아무 것도 없이 마음을 싹 비운다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있어야 할 것만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 마음으로 집중하며 단순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복잡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혼잡하게 하는 말은 그 어떤 말이라도 신앙적인 것이 못 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면 하나님입니다. 천국이면 천국입니다. 은혜면 은혜입니다. 마음속에 그것만 있으면 됩니다. 그게 청결한 마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오는 처음 동기를 생각해 보면 순수하지 못할 때가 사실 상 참으로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많았지만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만큼 깨끗한 동기로 따랐던 것이 아닙니다. 정치적인 이유, 사회적인 욕구, 그리고 세속적인 욕구가 그 동기였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런 동기가 순수하게 된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야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참 놀란 사실이 있습니다. 나이가 드신 분들 중에 늦게 학교에 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이 것 저것 다하다가 망하고 나이는 들고 먹고 살 일이 막막해서 먹고 살 직업으로 목회의 길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언제쯤 동기가 순수해 지려는지 걱정입니다.

또 하나 복잡한 마음의 내용이 구약성경을 보면 나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몸으로나 물리적으로 확실히 출애굽을 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때 묻은 노예적 근성과 우상숭배로 인한 타락한 심령과 병든 의식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했고 하나님을 보지도 못하게 했음을 성경은 똑똑히 보여줍니다.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더 이상 과거에 매여 우왕좌왕하는 복잡한 마음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동기가 단순하고 깨끗할 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제목이 깨끗한 것이 청결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만나게 되는 시간이 기도시간입니다. 적어도 기도란 그 심령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이방 종교적이며 비성서적이고 또 그 태도가 하나님 앞에 바른 태도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을 우상화하는 죄를 기도 중에 혹은 예배 중에 범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의 제목이 자기 자신과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혀서 도저히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것들에 사로잡혀서 빗나가면서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매이고, 내 욕망에 매이고, 불확실한 것에 매여서 복잡한 마음이 되면 하나님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청결이란 마음을 아무것도 없이 비운다거나 무아지경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복잡한 마음을 단순화 하는 것이요, 땅으로 기우는 마음을 하늘을 향하게 하며, 허탈한 것을 좇는 마음을 순전한 방향으로 전환하고 자기중심적인 동기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그리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하십니까? 왜 그리 옛 일에 매여서 스스로 복잡하게 얽어매십니까? 불확실했던 과거는 벗어던지고 확실한 현재와 미래에 하나님 앞에 선 단순한 마음을 가지시기바랍니다. 하나님이면 됩니다. 그 분의 음성이면 됩니다. 더 이상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더 이상 무슨 복잡한 생각의 동기로 살아가려고 하십니까? 부질없는 짓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보는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신다면 단순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마음을 청결케 하시기 바랍니다. 이 마음이 예수 믿는 자의 자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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