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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가 되라! (엡 2: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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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방황하고 있는 것은 결코 환경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가만히 보면 의외로 환경보다 부정적인 잘못된 자기 형성이 주는 고난이 훨씬 많습니다.  외적인 환경이 주는 고난보다 상처받은 자기 이미지가 주는 고난이 훨씬 큽니다.  그래서 우리들 주변에서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상대적인 비교 의식을 가지고 삽니다.  소외감이니 열등의식이니 피해의식이니 하는 이런 적대감들은 다 비교의식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무언가 되고 있다는 창조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인생에서 완전은 결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해야 한다는 자기 자아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그 강박 관념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자신과 상대방에게 완전함을 요구하는 잘못된 생각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인간에게 완전함을 요구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단지 우리는 완전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결코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우리는 계속 다듬어지고 만들어져 가고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부족한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만 역사 하면 무언가 될 사람입니다.  지금 내 남편, 내 아내는 푼수처럼 모자라고 부족하겠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 하면 반드시 위대하게 쓰임을 받게 될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더 크신 은혜를 사모하면서 나오는 것입니다.

♬"나는 비록 약하나 주의 능력 강하다-
나를 위로하시는-- 주님 앞에 가까이 가려네"♬

사랑하는 여러분, 소중한 나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붙잡으십시오.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당신을 신뢰하는 자에게 절대적으로 만나주십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신뢰하는 자에게는 상대적으로 상대하십니다.

보십시오.  애굽을 떠난 사람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을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으로 하나님의 비밀한 역사를 본 사람은 절대적인 신앙을 가진 두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절대적인 신뢰라는 말은 불평과 원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불평과 원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절대로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망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의 존재됨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내 믿음을 흔들지 말아야 합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좋으신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 진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셔야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좋은 기회를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 생애에 꿈같은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짧은 시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큰 발자취를 남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도 역사에 어떤 자취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사에 자취를 남기기는 고사하고 자신의 몸조차도 가누기 힘들어합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예수를 믿었으면서도 복음을 누리고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예수를 믿었으면서도 어린아이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누가 하나님을 더 가까이 흠모했느냐의 차이입니다.  누가 더 사모함이 충만했느냐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붙드십시오.  아무리 절망적인 생명이라도 그 속에 믿음만 들어가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세상 것을 다 잃었다고 할지라도 믿음만 붙들면 다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이 변하면 환경도 변합니다.  환경이 변해서 믿음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변해야 환경도 변합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절망을 버리고 믿음을 붙드십시오.  내 믿음에 변화만 오면 우리의 환경에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선이 끊어지지 않고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은 반드시 꿈같은 기적을 일으킬 줄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갈급한 영혼을 가지고 주 앞에 나왔습니다.  이 시간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오늘도 부족한 종의 입술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그 말씀 한 마디를 곤고한 내 영혼의 깊은 곳에 붙들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오늘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 한 마디를 붙들고 기도하는 영혼마다 모든 삶의 결박이 풀려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심령을 짓누르고 있는 모든 곤고함과 낙심과 어둠의 영들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중요한 삶의 본질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에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중요한 첫째 이유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기쁨의 존재가 되도록 디자인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드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적인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어떤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과 줄을 연결하고자 애를 씁니다.  정치권에서도 줄이 안 끊어지려고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하나님과 더 긴밀한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기 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다 보면 결국에는 육신을 좇아 세상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신경을 쓰다보면 결국에는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게 하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십시오.  하나님과 더 긴밀한 관계를 갖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더 큰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 아름답게 디자인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가족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셨고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가장 먼저 가정을 허락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를 예정하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자기의 아들들'이라는 말은 다른 번역에서는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 대신 죽게 하신 이유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떤 청년이 잠을 자는데 모기가 윙윙거리며 맴돌더니 얼굴에 달라붙어서는 피를 빨아먹기 시작했습니다.  모기 때문에 잠을 깬 청년이 자신의 단 잠을 깨운 모기를 찾으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이 모기가 얼마나 피를 빨아먹었던지 몸이 무거워서 날아가지를 못하고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화가 난 이 청년이 모기를 죽이려고 아주 험악한 표정으로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때 모기가 아주 다급한 소리로 외쳤습니다.
"잠깐!"
말하는 모기에 깜짝 놀란 이 청년이 물었습니다.
"뭐야?"
그랬더니 이 모기가 빙긋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내겐 당신의 피가 흐르고 있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제 안에도, 여러분 안에도 주님의 보혈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안에서 예수의 생명으로 하나가 된 한 가족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가족들의 모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가정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가족은 서로 멀리 떨어져 살수도 있습니다.  늙고 죽으면 영원한 이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가 된 영적인 가족은 영원합니다.  영적인 가족은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가장 값진 일은 육적인 가족이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영원히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강조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가 된 영원한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한다면 외인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외인은 외계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어쩌면 외계인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전혀 딴 세상에 온 것처럼 그렇게 낯선 나그네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손님처럼 살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구경꾼처럼 살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왜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가 된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가족이기 때문에 절대로 구경꾼으로 무관심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5절에서 우리 믿음의 공동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손이 내 몸의 한 부분이듯이, 위장이 내 몸의 소중한 한 부분이듯이 나는 하나님의 가족의 소중한 한 지체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혼자서 존재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신앙생활은 절대로 혼자서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를 떠나면 그 날로 우리의 신앙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모닥불을 보십시오.  모닥불을 하나 둘씩 모아 놓을 때에 서로 불을 나눠주고 점점 크게 잘 타오릅니다.  그러나 잘 타던 모닥불에 나뭇가지들을 하나씩 둘씩 떼어놓으면 점점 불이 약해지고 결국에는 마지막 남은 불씨도 꺼지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부족해 보이지만 하나씩 둘씩 모여서 서로가 격려하고 서로를 세워주고 붙들어 줄 때에 큰 신앙의 불꽃으로 타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신앙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에 내 신앙의 불은 꺼져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인 내 교회, 언양 영신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더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몸은 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세포들이 서로가 서로를 돕습니다.  세포 가운데 하나가 병들면 다른 세포들이 일제히 달려가서 그 세포를 도와줍니다.  영양분을 나눠줍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혼자 노는 세포가 생겨납니다.  다른 세포들로부터 도움도 받지 않습니다.  도움을 줄 줄도 모릅니다.  오히려 영양분을 빼앗아 갑니다.  이것이 바로 소위 암세포입니다.  이것들이 하나가 되고 둘이 되면 악성 종양을 만들어서 생명을 빼앗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노는 세포는 위험합니다.  성도들과 더불어 셀그룹 안에서 사랑을 나누고 상처를 나눕니다.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합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용납하면서 서로를 세워줍니다.  그러면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간혹 보면 시끄러운 것이 싫어서 셀과의 교제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 시험에 들고, 상처받기 때문에 그래서 혼자서 조용히 예배만 드리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구호가 있습니다.

'화장실과 처갓집, 그리고 교회는 멀수록 좋다.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말아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사람들의 신앙이 과연 건강하고 바른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남녀가 나이가 들어서 결혼하면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실망을 주고받을 수도 있습니다.  갈등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아파할 수도 있습니다.  더 많이 애를 써야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해라. 그러나 한 집에 살지는 말아라. 함께 밥 먹고 함께 잠자고 아이 낳고 살면 큰일난다.'

이것이 건강한 가정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아름다운 결혼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건강한 가정을 만들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건강하다고 해서 그에게 질병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병균이 침투했을 때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 항생체가 강한 것을 보고 우리는 건강하다고 말합니다.

인생은 문제 투성이 입니다.  문제없는 인생이 건강한 인생이 아닙니다.  아픔과 어려움을 서로 함께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삶을 우리는 건강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행복한 가정은 요술이 아닙니다.  마술이 아닙니다.  내가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수고하지 않았는데도, 애쓰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우연히 파랑새처럼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았는데, 애쓰는 사람이 없는데, 수고하는 사람이 없는데 하나님이 원하는 건강한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는 없습니다.  함께 서로를 용납하면서 서로를 책임지려고 할 때에 건강한 하나님의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허물과 죄가 용납되고 덮여지는 곳이 가정이라고 한다면, 아픔과 상처가 치료되는 곳이 우리의 셀그룹이어야 합니다.  약점과 실수마저도 아름다워지는 곳이 우리의 교회이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가족은 가족이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만약에 그 사람이 멋이 있어서 사랑한다.  돈이 많이 있기 때문에 사랑한다.  그것은 가족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람난 제비족이요, 돈을 뜯으려는 꽃뱀입니다.

못생겨도 사랑합니다.  없어도 사랑합니다.  모순 투성이어도 사랑합니다.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코이노니아라는 말은 교제라는 말로도 번역하지만, 아픔을 함께 나누는 '참여'라는 말로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너의 아픔에 내가 참여하는 것, 너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가정이요 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00년의 기독교 역사 가운데서 초기 300년 동안에 교회 건물이 전혀 없었던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들은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지하 동굴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2천년동안 가장 놀라운 영적 부흥이 일어났던 때가 바로 이때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본질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셀라이프, 이것은 악세사리가 아닙니다.  셀모임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에서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의 본질이요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가 된 하나님의 가족 관계를 깨뜨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의 영적 분위기를 흐리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가족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열심이라면, 사탄은 그 하나님의 가족을 파괴하기 위해 온갖 몸부림을 다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가족을 만들었고, 사탄은 그 가족을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가족 파괴 전략이 있습니다.  내 입을 통해 하나님의 가족을 비난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2장 10절에 보면, 사탄은 원래부터 우리의 형제를 고소하던 자였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교회, 우리의 공동체, 우리의 가족을 비판할 때 우리는 사탄에게 속아 그 일을 지금 대신해 주고 있는 꼴이 됩니다.

아십니까?  가족은 비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가족은 사랑의 대상이요 격려의 대상입니다.  가족은 부족하고 때로는 섭섭한 것이 있어도 가족이기 때문에 용납하고 사랑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교회, 우리의 셀을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아름답고 건강한 가족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사랑이 지체들 속으로 뜨겁게 나누어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어려운 지체들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셀을 재생산할 수 있을까요?

영적인 가족을 만들어 가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역사할 수 있도록 우리의 공동체를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힘을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주체는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의 셀이, 우리의 교회 공동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DNA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DNA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모임과 만남과 관계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 공동체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강같이 흐르게 해야만 합니다.  주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의 모임에 충만하게 역사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모임 속에서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이 경험되어져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흘러야 합니다.  보혈의 피, 십자가가 셀에 흐르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일 때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보혈의 피로 하나가 된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마지막 시대에 마지막 주자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가 될 때에 우리들 속에 있는 어둠의 견고한 진들이 무너지고, 우리 가운데 있는 쓴뿌리들이 뽑혀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임을 확신한다면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셀공동체에 들어가야 하나님은 그 셀을 축복하십니다.  우리 언양 영신교회 모든 성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너를 보고, 나를 보고, 공동체를 바라보고, 이웃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크게 쓰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내게 주신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경험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어야 합니다.  내 가정을 나누고 문제와 아픔을 나누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고,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라.  서로의 상처를 나누고도 상처로 돌아오지 않는 자리, 서로의 느낌을 소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자리, 내 약점이 서로에게 포용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가 된 영원한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인 우리 언양 영신교회입니다.

저는 이제 서울에서 안경점을 경영하는 어느 집사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어느 날 안경점 뒷골목에서 채소장사를 하는 박씨 아저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안경점에 들렀습니다.
"선생님, 제가 늙으신 장모님을 함께 모시고 삽니다.  장모님께서 노안이 심하셔서 안경을 맞추어 드려야 하는데 장모님은 가난한 살림에 폐가 될까봐 한사코 사양을 하십니다.  조금이라도 비싸다 싶으면 장모님은 아마 그냥 나가실 겁니다.  여기 5만원을 미리 준비해 왔습니다.  제 장모님이 안경을 고르시면 이 5만원을 빼고 값을 말씀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안경점의 이 집사님은 가슴이 찡해 오는 뭔가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배추 장사 박씨, 그의 부인, 애들이 다섯, 그리고 늙으신 장모님.  일개 소대가 안경점에 들어왔습니다.  그의 어머님이 고르신 안경은 10만원쯤 되는 상품이었습니다.
"예, 5만원입니다."
안경을 제 자리에 놓으시며 "내 눈 잘 보여, 안경 쓰면 귀찮기만 하지."
이 집사님은 당황한 나머지 말을 둘러댔습니다.
"어머님, 마침 경로우대 기간이라 1만원이면 됩니다."
다시 안경을 끼워보던 노모님이 "좋구먼.  이걸로 하지."

바로 그때 진열장 밑에서 고사리 같은 손 하나가 올라오더니 "아빠, 이거... 6천원... 할머니 안경 해 드리려고 동생이랑 용돈 모은 거야."

엄마, 아빠, 할머니의 눈에 이슬이 맺히고 있었고, 안경점이 이 집사님의 눈시울도 붉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가족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가 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디자인하신 셀교회입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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