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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계 상황 속에서 희망을 잡은 여인 (막 5: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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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했습니다. 점령군이 된 독일군은 유태인을 색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온통 거리는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입니다.
  어느 날 아침 시장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좌판을 깔았습니다. 그 좌판 위에는 아무것도 없이 오직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종이 위에는 “소망을 팝니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그 노인을 보고 실성한 노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소망을 잃어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바로 소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소망입니다. 내일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비록 오늘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우린 그것을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소망은 능력입니다. 소망은 역경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은 우리의 삶에 공기와 물 만큼 중요하다고 릭 워렌 목사는 말합니다. 삶의 역경을 극복해나가는데 소망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릭 워렌의 저서 “목적이 이끄는 삶”에는 버니 시걸 박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암 전문의로 암 환자들을 치료하고 돕습니다. 그는 암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당신은 100세까지 살고 싶으십니까?” 그 답변을 들어보면 누가 과연 병마를 이기고 회복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치료의 소망을 가지고 자신 있게 네 라고 답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생존가능성이 그만큼 높다고 얘기합니다. 투병하는 환자에게도 사업하는 사업가에게도, 직장인에게도 소망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어제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암을 극복한 사람들이 나와서 간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암 투병의 고통을 딛고 승리한 사람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투병기를 말하는데 자기와 동일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격려하고 소망을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의 제목이 “사랑의 리퀘스트”였습니다. 사회자가 출연한 사람들에게 “당신과 같은 백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한결같이 하는 말이 “완쾌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십시오. 반드시 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역시 내 병이 치료받는다는 소망,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환자에게 중요한 회복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어떤 질병의 문제, 고통의 문제, 역경 앞에 있을지라도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소망을 가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절망적인 환경에 빠졌던 한 여인의 이야기를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너무나 절박해서 한계 상황에 다다른 모습니다.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절망의 끝까지 간 상황, 더 이상 절망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갔던 여인이 바로 오늘 본문의 혈루병을 앓은 여인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예수 앞에 나오고 예수님의 치료를 통해서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 25절, 26절 말씀을 읽습니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아멘.
  이 여인은 12년을 혈루병을 앓았습니다. 한 달 두 달 병으로 앓아누워도 보통 일이 아닌데 일 년이 아닌 12년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적어도 12년 동안 투병했다면 참 얼마나 고통이 지극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아마도 이 여인은 희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1년 후면 낫겠지, 3년 후면 낫겠지... 그러다 10년, 1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마도 마음은 낙심되었을 것이고, 절망의 나락, 자포자기의 상태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이 앓던 병의 종류가 하필이면 혈루증입니다. 가볍게 말하면 생리불순정도이고, 심하게 말하면 자궁암과 같은 것입니다. 끊임없이 피를 쏟아내는 그런 중병에 걸렸다면 이 여인의 고통이 어떠했을까요? 레위기 15장 25절에 보니, 여인이 하혈하는 자궁유출병을 가리켜 부정한 병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정한 병에 걸리면 사람들을 접촉해선 안됩니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할 수 없습니다. 가족들과도 함께 지낼 수 없습니다. 결국 가족에게 버림받거나 가정이 해체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여인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이 여인은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10년 동안 병을 앓았으니 안 써 본 약이 없고, 안 찾아간 의사가 없었을 것입니다. 별 약을 다 썼을 것입니다.

  몇 년 전 제 아내가 위장이 안 좋다고 했더니 시골에 계신 분이 구데기 말린 것이 몸에 좋다고 가져오신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별 희한한 약이 다 있는데, 고대 중동에는 흰 암 나귀의 똥 속에서 발견된 보리알,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효과가 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고도 합니다. 별 약이 다 있습니다.
  그녀도 이것저것 다 먹어 보았을 것입니다. 우리 교인들도 보면 한 10년 쯤 앓은 분들 보면 벽장에 가면 온갖 약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안 먹어 본 약이 없습니다. 좋은 약 소문 듣고 누가 갖다 주기도 하고, 구입하기도 하니 먹다보니 합병증이 생기고, 부적응하니 그냥 두고두고 해서 약병으로 꽉 찼습니다. 시효가 지난 약들까지 합쳐서 그 많은 약병들을 보면 얼마나 힘든 고통의 과정이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의사들은 환자를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간혹 어떤 의사 중에 보면 환자를 힘들게 하는 의사도 있습니다. 차갑게 대하고, 약간의 멸시감을 갖고 보기도 합니다. 또 환자 한 사람을 돈으로 보기도 합니다. 인격으로 보지 않고 돈다발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5, 6년 전에 허리 디스크 수술을 좀 성급하게 했습니다. 아주 용하다는 병원의 의사가 말리지 않고 수술하면 다 되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물론 제가 잘 관리를 못해서 그렇겠지만 재발할 때 마다 고통을 당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사는 대번에 MRI 찍어오라고 합니다. 제대로 묻지도 듣지도 않고 그거부터 찍어오라고 합니다. 그 거 찍으려면 열흘 이상 기다려야 하고, 몇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또 의사는 쉽게 얘기하지만 그거 한번 찍으려면 70-80만원이 들어갑니다. 누가 소개를 해 주어 가까운 독립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그 의사는 엠알아이 아니고 엑스레이만 찍어도 잘 치료해주더라구요. 정말 필요하다면 찍어야 하겠지만 물어보지도 않고 그거 찍어오라는게 인사니... 이런 병에도 그 정도라면 성서속의 그 여인이 12년 동안 많은 의원에게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당했을까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있던 것도 다 허비했을 것입니다. 10년 이상 병치레하면 집에 남아나는 게 없기 마련입니다. 다 갖다 팔아서 약값으로 댔을 것입니다.

  어제 보았던 사랑의 리퀘스트 프로그램에 지현이라고 하는 청소년이 백혈병을 앓다가 투병에 승리해서 텔레비전에 나왔는데 사회자가 묻습니다. 아이가 투병생활을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겠는데 어떻게 이겨냈느냐고 물었더니, 우리 지현이가 백혈병과 싸워서 이긴 결과 많은 빚이 남겨졌고, 30만원짜리 지하 월세방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투병하느라고 집이고 다 날아가 버리고 빚더미에 올라 앉아 지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이 여인이 12년을 투병했으면 무엇이 남았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하고도 병이 낫는다면 그나마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모습을 보면 아무 효험도 없이 오히려 병만 중하여졌더라고 했으니 이 얼마나 절망적이겠습니까? 한계적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여인의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것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므로 치료를 받고 소망의 삶을 살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여인에게 새로운 광명이 비추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상상하지 못했던 축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보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늘 아름다운 소망을 준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절망도 끝입니다. 곧 새로운 소망의 시작인 것입니다.

  오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놀라운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소망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 여인이 가졌던 소망을 우리도 어떻게 하면 소유할 수 있을까요?

  첫째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소망의 말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미래를 줍니다. 어떤 절망적인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용기가 샘솟게 됩니다. 오늘 27절에 보니, “예수의 소문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무리 가운데 섞여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어떤 소문을 들었을까요? 갈릴리에서 온 30대 청년 예수가 있는데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앉은뱅이를 일이키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했다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서 2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정복하기 전에 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라합이라는 여리고의 기생이 두 명을 숨겨주었습니다. 숨겨주는 이유가 있는데, 내가 이미 하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소문을 통해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대단한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분은 홍해를 마른 땅 같이 건너게 하시고 대적들과 싸워 이기게 하신 분, 내가 그 소문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겼고 이 정탐꾼들을 숨겨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소문을 들은 것은 말씀을 들은 것이요, 말씀은 우리에게 능력이 됩니다. 요한복음 2장 25절에 보니,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했습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힘을 가집니다. 말씀을 들을 때 살아납니다. 절망하고 죽었던 영혼들이 말씀을 들을 때 소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말씀 듣는 기회를 많이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새신자도 예배당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뭔가 새로운 희망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소망의 삶을 살려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여인은 절망 가운데 있었지만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12년 동안 많은 돈을 낭비했지만 많은 의원을 찾았지만 내 병을 고치지 못했어.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 내 병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성경 28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아멘. 확신이 생겨났습니다. 믿음이 생겼습니다. 놀랍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예수께서 어떤 병자를 고치셨다고 할 때, 바로 나도 주님으로부터 병을 고침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셨다면 예수님이 오늘 내 문제도 해결하실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늘 여인은 이 믿음을 가졌습니다. 만약 성경에 일어난 모든 사건이 내게 일어날 수 없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에 일어난 기적과 기사가 오늘 내 삶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가난한 자가 부요하게 되었다, 사르밧 과부집의 기름병에 기름이 넘치는 축복을 입었다, 밀가루통에 가루가 넘치는 축복을 입었다, 그 축복이 오늘 내게도 임할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은 사르밧 과부의 얘기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누가 위험에서 구출 받았다고 했을 때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남을 믿는 것입니다. 소망을 믿는 사람은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오늘 이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아갔지만 많은 사람들로 인해 가까이 접근 할 수 없었습니다. 부끄러워 자기 병을 고백할 순 없었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았습니다.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는 말은 원어로 보면 붙잡았다는 뜻입니다. 무엇입니까? 희망을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았고 그 순간 자기 혈루의 근원이 마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34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능력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곧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하인스 워드 라는 미국 미식축구 선수를 잘 알압니다. 그는 슈퍼볼 최우수 선수로 뽑혔고, 아버지는 주한미군 흑인, 어머니는 한국인인 혼혈아입니다. 그는 그 설움을 딛고 당당히 MVP로 서서 대통령도 만나고 복지사업도 펼칩니다. 그를 보는 많은 혼혈아들은 희망을 갖습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성공할 수 있다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일어난 놀라운 기적이 오늘 나의 삶에도 일어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일들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어떤 특정한 장소에 있던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경험될 수 있는 일입니다.

  항해하던 배 한 척이 태풍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식수가 다 떨어지고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국에 통신을 보내어 우리가 먹을 물이 떨어졌으니 물 좀 급히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본국에서 표류하는 위치를 이야기하라고 해서 알려주었습니다. 본국에서 온 답신의 내용은 “당신들은 지금 아마존 강에 떠 있으니 그 강물을 그냥 퍼 마시라!”였답니다. 먹을 수 없는 바닷물 위에 떠다니는 줄 알았더니 먹을 수 있는 아마존 강에 표류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곳에 가야만, 특별한 예배를 드려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손을 뻗치면 잡을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믿음으로 희망을 붙잡을 때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소망의 삶을 살려면 입술로 선포해야 합니다.

  33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아멘.

  오늘 예수님은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옷자락을 잡는 것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냥 지나갈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여인에게 더 놀라운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묻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그냥 지나가도 괜찮을 일처럼 보입니다. 이 여자가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몰래 예수님의 은혜를 도둑질하다가 들킨 것 처럼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묻고 여인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아와서 다 고백했습니다. 이 여인이 자신을 다 고백할 때 예수님은 더 놀라운 축복을 이 여인에게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입술로 희망을 선포할 때, 그리고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들을 고백할 수 있을 때 더욱 견고한 소망가운데 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여인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찌어다.” 아멘.

  여러분, 구원은 세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우리 죄가 용서 받고,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 첫 번째 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 믿는 사람이 우리 생활 속에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영혼은 구원받았는데 생활은 아직 옛날과 같습니다. 불신자의 삶과 똑같습니다. 그러면 생활이 구원받지 못한것 입니다. 세 번째 구원은 육신적인 구원입니다. 영혼이 구원받고, 생활이 구원받았다면 우리는 병에서 놓여 건강을 얻어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야 영혼이 잘된 것처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여인이 그냥 돌아갔다면 육신의 구원은 얻을지언정 영혼의 구원은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여인을 찾을 때 여인은 예수님 앞에 자신을 다 고백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이 여인을 축복하시고 온전한 축복을 선포해주십니다. 여러분, 우리 입술의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입술로 희망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인은 28절에도 보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했습니다. 이 얘기는 자기 혼자의 내면적인 속삭임입니다. 자기 입술로 중얼거릴 때 ‘내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내가 구원을 얻을거야.’라는 확신을 가지고 스스로 고백하면서 예수님 앞에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긍정의 힘이라는 책을 저술한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책에 보면, 당신의 어머니가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가 한쪽이 짧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짧은 다리 때문에 한번도 불평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어머니가 암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한번도 그 암을 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늘 희망적인 말을 선포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내 병을 고쳐주실거야. 하나님이 이 병을 주신 이유가 있을거야. 난 감사해.” 늘 감사와 찬양의 삶이지 한번도 불평하거나 어두운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입술로 희망을 선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언 18장 21절에 보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십시오. 희망의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믿음의 언어를 말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소망의 삶을 사는 비결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의 문제를 가지고 내게 나아오라. 그것이 질병의 문제이든 육신의 문제이든 경제적인 문제이든 가지고 나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앞에 나오시면 여러분의 문제와 여러분의 질병이 다 해결 받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문제를 주님 앞에 내려 놓으십시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십시오. 믿음을 회복하십시오. 그리고 희망을 선포하십시오. 그 일을 통해서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변화와 기적을 체험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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