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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성소의 언약궤 (출 2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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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성소를 짓고 거기서 하나님께 제사하는 예배 행위는 그 백성이 하나님께 대한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비록 기약 없는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도 성소를 지었고, 그 안에 예배를 위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본문 말씀에는 성소의 기구들 중 가장 중요한 언약궤에 대한 규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십계명의 돌비를 담을 언약궤를 만들어 지성소에 안치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신령한 축복과 특권의 상징으로 주신 언약궤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I.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만든 성소는 훗날 솔로몬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의 모형입니다. 또한 이 성전은 신약시대의 곧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은 성도의 집단을 의미합니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였습니다(엡 1:23). 지성소에 안치된 언약궤는 성소의 가장 중심이 되는 기구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1) 그리스도의 인성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10절에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는다고 하였습니다. 조각목은 히브리 원어에 쉬팀(שׁטימ)이라고 하는데 영어에는 아카시아(Acacia)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행을 하던 시내광야 지역은 물이 없는 사막이거나 나무와 숲을 찾아볼 수 없는 황무지였습니다. 그런 메마른 지역에서 서식하는 유일한 나무가 쉬팀이라고 하는데 예레미야 17:6에 보면 「사막의 떨기나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처음 호렙산의 불꽃을 보았을 때 이를 「떨기나무 불꽃」이라고 하였습니다(출 3:2). 이를 스데반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이라고 하였습니다(행 7:30). 지성소에 안치될 언약궤가 이처럼 볼품없는 조각목으로 만들어 지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는 세상에 오실 예수님을 예언하면서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고 하였습니다(사 53:2). 사막의 메마른 땅에서 자라난 쉬팀 나무처럼 죄인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찾아오신 예수님의 겸손하신 인간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신성을 뜻합니다.

본문 말씀 11절에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라고 하였습니다. 곧 조각목 널판으로 만들어진 궤는 안과 밖 그리고 모서리까지 모두 정금으로 완전히 싸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궤는 화려한 정금의 모습으로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두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요 1:14).

(3) 생명의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의 돌비와 함께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담아 두었습니다(히 9:4). 여기 보관된 내장 물들은 모두 다 생명의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물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새겨 주신 십계명의 돌비는 말씀의 본체가 되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하고 예수님이 말씀(λογος)의 본체이심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었던 하늘의 양식 만나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 6:48). 또한 죽은 나무막대기에 싹이 나고 꽃이 피게 된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민 17:10). 예수님 자신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1:25).

Ⅱ. 구속 받은 성도들의 모형입니다.

언약궤 안에 담긴 내장 물들이 하나 같이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 언약궤야말로 그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들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 범죄한 인간의 불완전성을 의미합니다.

식물학자들에 의하면 쉬팀나무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아카시아와는 달리 가시가 앙상하며 나무의 결이 세고 뒤틀어져 목수가 다루기에 매우 불편한 나무라고 합니다. 이처럼 재목으로써 가치가 없는 나무를 가지고 언약궤를 만들게 하신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옛날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는 잣나무를 재료로 쓰게 하였고(창 6:14),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때는 질 좋은 백향목으로 건축하게 하였으나(왕상 6:9-10), 성전의 심장부에 안치할 언약궤는 가장 볼품없는 조각목으로 만들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언약궤의 재료가 되는 조각목을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때 하나님의 심오한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범죄한 인간은 그 본성이 조각목처럼 뒤틀리고 결이 세고 부드럽지 못하여 어디에도 쓰임 받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시켜 천사가 부러워할 만큼 존귀한 신분으로 높여주었습니다. 참으로 미련한 자를 세워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세워서 강한 자를 능가하게 하신 것입니다(고전 1:27-29).

(2)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모습입니다.

11절에 정금으로 안팎을 싸고 모서리에는 테를 두른다고 하였습니다. 궤 아래로 네 귀퉁이에다 금으로 만든 고리를 달고 거기에 조각목의 긴 채를 꿰어서 이동할 때 메고 다니게 하였습니다. 여기 길게 만든 채도 금으로 싸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궤를 만든 판자의 안과 밖을 금으로 싼 것뿐만 아니라 고리와 채까지 모두 완전한 금을 입혀 누가 봐도 거창한 황금 궤짝이 되게 하였습니다. 속을 들여다보면 분명 가치 없는 조각목인데 겉으로는 찬란한 정금으로 단장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 정금을 가장 존귀한 보배로 표현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하기 때문입니다(마 13:44).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금 곧 정금”이라고 하였습니다(시 19:10). 베드로는 모든 시험을 이기고 승리한 믿음을 정금으로 표현하였습니다(벧전 1:7). 그 외에도 정금은 성령의 은사 또는 존귀한 직분으로도 비유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였습니다(고후 5:17). 본래는 육신의 사람으로 음행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술 취함과 방탕함으로 온갖 더러움에 가득한 우리들인데(갈 5:19-21),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화되어 예수님으로 옷 입은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3) 거룩한 신분을 지닌 것입니다.

「성도」의 이름은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거룩」이라는 말의 의미는 구별된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거룩은 원래 하나님께 해당되는 용어인데 이 말이 하나님과 관련되는 모든 것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2).
언약궤는 그 자체가 정금으로 덮여 있어서 다른 어떤 기구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존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를 성소에서도 구별된 장소인 지성소에 안치하게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대제사장만 일 년 일차씩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히 9:7).
구별된 장소인 지성소, 거기 안치되어 있는 언약궤, 이는 세상과 구별된 성도의 신분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요 빛들로 나타나야 될 사명이 있는 자들입니다)빌 2:15).

Ⅲ. 그리스도인이 받는 축복의 상징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여호와의 이름 자체가 엄청난 축복입니다. 옛날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는 지나온 광야 길을 회고하면서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고 하였습니다(신 33:27).

(1) 임마누엘의 삶을 의미합니다.

민수기 10:33-34에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일 길을 행할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일 길에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그들이 행진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행진을 할 때 언약궤와 함께 움직이고 그들이 진을 칠 때는 언약궤를 중심으로 장막을 세웠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는 임재의 상징일 뿐 아니라 축복의 도구이기도 하였습니다. 언약궤가 진중에 건재할 때 백성은 안정되고 나라는 튼튼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약궤가 그들에게서 멀어지면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나라는 멸망하였습니다. 언약궤가 그들에게서 떠나가는 그 순간을 곧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는 「이가봇」현상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삼상 4:11).

(2) 형통케 되는 비결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행진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싸인을 주시는 대로 이루어졌습니다(민 9:15-17). 그 때는 언제나 언약궤를 멘 제사장이 행진의 선두에 서서 백성들의 걸음을 인도하였습니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언약궤를 멘 제사장의 발길이 물에 닿을 때 흐르던 강물이 멈추어 섰고(수 3:15-16),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도 역시 나팔을 든 제사장과 함께 언약궤가 백성들 앞에서 길을 이끌어 주었습니다.
이는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수종드는 하나님의 종들이 선두에 서고 백성들은 일사불란하게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그리스도인의 예배적 삶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임마누엘의 축복은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와 교통하는 삶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언약궤는 그 속에 하나님의 계명인 십계명의 돌비를 간직하고 있지만 또 한편 거기서 그 백성에게 주시는 계시의 말씀을 받게 됩니다. 22절에 보면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신약적인 의미에서 생각할 때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중보로 우리가 다 지성소로 나아가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며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계시를 받아 신령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6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Ⅳ.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조각목과 정금으로 만든 언약궤는 그것을 명하신 하나님의 선한 목적에 쓰임을  받게 됩니다. 곧 세상에서 구속받은 성도들의 사명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1) 말씀을 파수하는 일입니다.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을 새겨 놓은 돌비가 있습니다(16절). 이를 하나님의 율법이라고도 하고 또 언약의 말씀이라고 하여 그 궤를 “법궤” 또는 “언약궤”라고 부릅니다. 언약궤는 그 자체의 상징성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보관하고 있는 내용물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값비싼 정금으로 단장을 한 것이라도 그 안에 보관된 십계명의 돌비 곧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이 없으면 언약궤로서의 의미를 상실합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진리의 말씀을 파수해야 되는 사명이 있습니다. 어느 때나 귀중한 가치가 있는 것일수록 이를 노리며 빼앗으려는 세력이 많은 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도 소중하기 때문에 이를 빼앗거나 훼손하려는 무리가 많이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온갖 이단과 거짓 선생들이 성경의 진리를 훼손하려고 시도했으며 자유주의 신신학과 불건전한 신비주의자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건전한 성도들은 목숨을 걸고 바른 신앙과 진리를 파수하여야 됩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성경에는 언약궤를 가볍게 여기고 함부로 취급하다가 화를 당한 경우가 있습니다. 언약궤가 블레셋 땅에서 돌아왔을 때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를 들여다 본고로 하나님이 그들을 치셔서 오만 칠십 명이 죽었다고 했고(삼상 6:19), 또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오던 웃사가 궤에 손을 대므로 하나님이 치셔서 즉사한 일이 있습니다(삼 6:7). 이는 언약궤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존엄성과 권위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구속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신명을 걸어야 됩니다. 볼품없는 쉬팀 나무에 값비싼 정금을 입혀 찬란한 모습으로 빛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 받을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성결케 하시고,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부여하신 것은,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이름을 높이게 하려는 하나님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요 3:30).

(3) 헌신자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언약궤의 종말에 대하여 예언을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3:16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치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 지성소에 안치된 언약궤는 장차 세상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기구입니다. 영고성쇠(榮枯盛衰) 하는 이스라엘 역사와 함께 오랜 세월을 그들 속에 어렴풋이나마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각인 시켜주고 저는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역할과 사명이 끝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언약궤뿐 아니라 성전과 거기 있는 모든 기구들은 다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저희의 모습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것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만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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