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갈등은 성숙을 위한 디딤돌 (행 15:36-41)

  • 잡초 잡초
  • 396
  • 0

첨부 1


내 안의 갈등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갈등이나 다툼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 갈등입니다. 인간관계는 어느 누구도 갈등을 통과하지 않고 성숙한 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문명으로 새로운 사회가 된 것 같은데 신세대 시어머니와 신세대 며느리가 생겼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갈등이라고 합니다. 건강에 야채가 좋다고 해도 시금치는 먹지 않는 젊은이 그리고 그렇게 믿음이 좋아서 성경을 많이 읽어도 시편은 읽지 않는 이유는 시어머니 시누이 시아버지 시자에 질려서 그런다는 말도 있을 정도입니다. 오늘의 사회도 문제는 갈등입니다. 부부간의 갈등, 부모와 자녀와의 갈등, 형제친척간의 갈등, 고부갈등, 사제관계에서의 갈등, 동서간의 갈등, 구세대와 신대 간의 갈등, 이념적인 갈등, 성직자와 교인들과의 갈등, 심지어는 자기 자신과의 갈등 등, 모든 인간관계의 과정에 갈등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보통 한 사람 안에 하나의 생각이 있는 게 아니고 두 갈래의 생각들이 나를 조정하려 하고 그 둘이 내 안에서 싸웁니다. 갈등은 누구에게나 있는데 그럴 때 현명한 사람은 밖의 누군가와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나와 다투는 사람입니다. 타인과 다투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면 소모전이 되지만, 자신과 다투고 자신을 극복하는 데 힘을 쏟으면 생산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쨌거나 타인과 갈등하며 지낼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공동체 내에서 갈등을 극복하려면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하고 다르다고 배척하고 배타적으로 문을 닫으면 갈등은 더욱 심해질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참 훌륭한 목회자였던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누굽니까?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 라고 말한 사람인데, 그 바울이 다투는데 그것도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성경은 다퉈서 피차 갈라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가 겪게 되는 갈등이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

우선 이들의 갈등의 원인을 보면 마가라는 사람이 그 원인제공자입니다. 마가복음을 쓴 마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하는 그 마가입니다. 바나바와는 조카 삼촌 사이입니다. 전에 마가가 바울을 따라 전도여행을 떠났는데, 전도여행 중에 그만 도중하차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다시 전도여행을 떠날 때에 바나바가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가자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다시 기회를 주고 싶었고, 마가의 입장을 변호해 주었지만, 바울은 그런 사람은 같이 일할 사람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마가를 데리고 가느냐 안 데리고 가느냐 둘이 의견이 달라서, 심히 다투다가 갈라서 버렸습니다.

대부분의 갈등의 원인은 다름 아닌 성격의 차이에서 발생합니다. 성격이란, 환경에 대하여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특징입니다. 거기에는 사고, 행동, 감정들을 포함하는데 이런 성격들은 각자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에 따라 다 다르며 독특하게 나타납니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갈등이 발생합니다. 개와 고양이는 만나기만 하면 싸웁니다. 개는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면 고양이는 공격용 사인으로 받아들입니다. 고양이가 반가워서 꼬리를 내리면 개는 위험을 느꼈을 때 취하는 행동으로 여깁니다. 이 차이를 알게 되면 상대방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있으며 도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질과 성격의 차이에서 오늘 갈등이 너무나 많습니다.

갈등 빈번한 부부

부부의 서로 다른 성격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는 행복한 결혼생활의 열쇠입니다. 보통 부부는 자신과 서로 다른 점에 호감을 갖고 결혼에 이르지만 결혼 후 서로 다른 것이 문제가 돼 갈등하는 부부도 상당수입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점을 어떻게 수용하고 조화시키느냐가 행복한 결혼생활의 관건입니다.

서울신대 김종환 교수는‘한국적 부부유형'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유형별 관계회복을 위한 방법을 제시하면서“부부는 함께 생활하면서 고유한 가치관과 생활습관에 의해 특정한 유형을 형성한다"고 밝히면서 유형별로 의시소통 방법이 다르고 배우자에 대한 기대감이 다르기 때문에 각 유형에 맞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시했습니다. 다음은 김 교수가 제시한 한국적 부부유형과 특징입니다.

불행한 부부유형: 부부 상호간에 신앙, 가치관, 사고방식, 의사소통 기술이 달라서 매사에 갈등을 유발하는 부부입니다. 집에 들어오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이런 부부는 습관적으로 싸우고 서로 비난하고 이미 지나간 과거를 들추어내며 서로 상처를 줍니다. 또 갈등이 있어도 회피하고 공유하는 것이 적으며 친밀감보다 거리감이 많습니다. 서로 정서적 표현이 서툴러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반면 겉보기에 자주 싸워도 관심과 애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의 갈등은 결혼생활의 자극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 유형은 결혼 초기의 애정과 기대가 퇴색돼 이혼할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고난은 성장을 가져오기도 한다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과도기적 부부유형: 불행한 부부가 전문가의 도움으로 행복한 부부가 되기까지 이 과도기를 거칩니다. 과도기는 친밀감은 없지만 자녀양육, 경제적 안정, 사회적 책임을 위해 인내하며 적응하려는 단계이입니다. 서로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는 않지만 우선 가정이라는 안락한 삶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노력하는 부부입니다. 과도기엔 자신의 관심사에 전념하면서 상대방에게 서로 깊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부부가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유형은 성숙한 다음 단계를 위해 대화를 유보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대화훈련을 받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대화법이 부부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경계선적 부부유형: 행복한 부부와 불행한 부부의 경계선에 있는 부부유형입니다. 어찌 보면 행복한 때도 있으나 불행한 유형으로도 보입니다. 부부관계의 만족보다는 자신의 성공, 가사, 사회적 성취, 종교 활동 등에 비중을 둡니다. 부부 사이의 친밀감에는 무관심해 남편은 살림을 잘하고 자녀를 잘 키우는 부인에게 만족하고 부인은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남편이면 족하다고 생각하고 각자의 생활에 집중합니다. 갈등도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러다 욕구불만이 겹치면 이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경계선적 과도기 유형은 불행과 행복의 반복되는 기복이 심한 유형이입니다. 갈등상황이 오래 지나지 않아 회복되는 관계입니다. 이들 부부는 기복이 심한 행복과 불행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결혼생활을 유지합니다.

행복한 부부유형: 이웃에게‘그리스도의 향기와 편지’가 되는 부부유형입니다. 행복한 부부의 특징은‘나’중심에서‘우리’중심의 삶을 삽니다.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일어나고 함께 자며 함께 일상생활을 하고 함께 여가를 즐기며 함께 이웃을 섬깁니다. 물론 행복한 부부에게도 갈등은 있지만 갈등이 발생했을 때 곧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에너지는 부부생활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부부는 서로 섬기며 성적으로 배려하고 서로의 자긍심을 강화하는 이상적인 관계가 됩니다.

반면 극소수의 부부들이지만 너무 친밀하고 행복한 나머지 자녀들에게 소외감을 줄 수도 있고 사회관계에 소홀하고 친구 이웃 친척 직장동료로부터 이탈되기도 하는데, 자신의 행복을 가족과 이웃과 나누는 이타적인 부부가 될 때 진정으로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습니다.

일 중심과 사람 중심의 차이

우리에게 있는 차이 중에 가장 큰 차이는 '일 중심의 사람이냐, 사람 중심의 사람이냐' 입니다. 일 중심의 사람과 사람 중심의 사람! 상당한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 중심의 사람은 모든 일에 있어서 결과를 중시합니다. 사람 중심은 과정을 중시합니다. 오늘 갈등을 겪고 다툰 두 사람 중에 바울은 일 중심이고, 바나바는 사람 중심의 사람입니다. 일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그러나 사람 중심은 일 보다는 일에 연결된 사람들이 더 중요합니다. 누가 관련되어 있느냐? 일 중심의 사람은 자기감정을 잘 안 나타내는 반면에 사람 중심의 사람은 자기감정을 잘 숨기질 못합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도중에 손님이 갑자기 나타나면, 일 중심은 금방 아닌 것처럼, 그러나 사람 중심은 싸운 것이 금방 표시 납니다. 일 중심은 원리와 원칙에 입각하여 판단하며, 사람 중심은 그때 당시의 상황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일 중심은 간단 명료 딱 잘라서 말합니다, 사람 중심은 길게 늘어지며 이 것 저 것 설명도 많고 정상 참작이 많이 됩니다. 일 중심은 '옳다, 그르다'가 중요하고, 사람 중심은 '좋다, 싫다'가 중요합니다. 등산을 하더라도 일 중심은 정상까지 가야 등산한 맛이 나고, 사람 중심은 가다가 즐거우면 아무데라도 앉아서 놀면 됩니다. 대개 일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 지도자 유형인 경우가 많습니다. 활동의 계획을 세우며, 일의 추진력이 있고, 능동적인 삶을 대부분 삽니다. 그리고 자기보다 덜 열성을 들이는 사람을 대개는 참지 못합니다. 그 사람들을 향해서 시간을 허비한다고 비난하기 쉽습니다. 일이 체계적이지 못하면 분노하기 쉽습니다. 요즘 사회가 요구하는 유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 중심의 사람이 갖는 핸디캡은 자칫 잘못하면 일중독이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일 중심의 사람과 사람 중심의 사람은 서로의 차이 때문에 좋아하기도 하고 서로 단점을 보완하기도 하지만, 충돌의 요소를 많이 안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간의 중심점이 충돌하는 것을 우리는 '갈등'이라고 하고, 서로 다른 취향, 성격, 의견 등으로 해서 생긴 심리적 불편감과 긴장, 불일치와 충돌, 분쟁으로 야기된 상황을 갈등이라 부릅니다.

갈등을 통해 생각해 보는 것

남과 다른 것이 갈등과 다툼의 원인이 된다

모든 관계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내포합니다. 어찌 보면 갈등은 관심의 표현입니다. 아무 관심도 없으면 굳이 다툴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노인이 지팡이가 무겁다고 지팡이를 버리면 어떻게 되나?" "돛단배가 돛이 귀찮다고 돛을 바다에 버리면 어떻게 되나?" 지저분하다고 항문을 도려낼 수는 없습니다. 다툼이 두려워 인간관계를 피하지는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다르게 되어있습니다.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 같으면 무슨 재미로 사람 만납니까? 즉, 난 타인과 다르기 때문에, 타인과의 갈등은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대인관계를 시작할 때는 우선 다른 것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갈등상황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싸움도 쓰십니다. 우리는 너무 생각 없이 이분법적으로 구분해서 이건 좋고, 저건 나쁘고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자를 만들기 위해서 핍박이라는 도구를 쓰십니다. 사도행전 1:8을 보시면 "너희가 내 증인이 되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는데 일종의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잘 실행이 안 되자, 하나님이 이것을 뒤집어서라도 이루시는 것을 봅니다. 이 본문을 뒤집으면 8:1인데, 이때는 예루살렘에 핍박이 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핍박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복음이 전파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뒤집어서라도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에게 쓰지 못할 도구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은 결과적으로 선한 역사를 가져왔으며 선교 사역의 확대라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반대는 은총이고 차이는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성경에 갈등을 겪고 대립되는 듯 보이는 인물이 많이 나오는데 사실은 이들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함께 한 통속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대립이지만, 깊이 보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이루기 위한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갈등을 통해 변화하라

사도 바울의 출중함은 갈등을 통해 그가 균형 잡힌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인데,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 즉 일에 대한 욕심만으로 가득 차 있지 않고 사람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일 때문에 거절했던 마가를 이제는 데리고 오라고 전합니다. 일 중심의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서 예전의 생각에 매달리지 않고, 스스로를 변화시켰습니다. 자기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용인해 줄 만큼 관용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바울은 갈등이라는 걸림돌을 성숙의 디딤돌로 삼았습니다. 갈등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성장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갈등을 겪지 않으면 성장이 안 일어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상대적인 세상입니다. 자연히 타인은 나와 다를 수밖에 없고, 그와 같이 하자면 다름을 통해 갈등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나 밖에 모르는데 어디서 성장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나와 비슷한 사람은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배척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나와 비슷한 사람은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

우리는 갈등을 통해 변화해야 하지만 밖에 있는 사람과 겨루기보다는 내 안에서 '갈등을 겪게 하는 나'와 겨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따금씩 갈등이 일고 다투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다툴 때에 그것을 통해 자신을 더 알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다른 이와 다투는 것보다는 자기 스스로와 다투어야 할 것입니다. 상황에 빠져 사람을 원망하고 일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도록 이끄는 내 안의 내가 있습니다. 이런 나와 싸워야지, 이웃과 싸우는 것에만 집착해서는 곤란합니다. 삶의 어떤 과정을 지날지라도 뒤 돌아보면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성숙해졌음을 알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 안에는 성숙을 위한 씨앗이 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씨앗이 잘 자라도록 물을 주고 가꾸는 것입니다.

갈등은 행복으로 가는 필수 관문입니다. 뛰어난 사람들의 생애는 갈등의 연속입니다. 갈등이 없으면 깊이도 없습니다. 갈등을 행복을 위한 씨앗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앞길에 놓인 장애물이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디딤돌이 되기도 합니다. 이 둘의 차이는 그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관계 속에 갈등이 자리 잡게 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궁극적으로 갈등까지 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래서 갈등이 여러분의 삶 속에 성숙을 가져오는 디딤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들은 서로가 협력해야 합니다. 바울은 심는 역할을 했고 아볼로는 물을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각자가 받은바 은사로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협력해서 이루어 가야 합니다. 현대 교회는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의식 하에서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를 이루며 협력하는 팀 목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대의 이 다양한 상황 속에서 교회가 더 이상 존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인삼각 경기에서처럼 서로 힘을 협력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갈등이 심화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힘을 모아 이 갈등을 이겨내고 이 갈등을 성숙을 위한 디딤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서정호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