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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 예수 영접이야기 (행 1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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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설교말씀제목은 ‘역전의 은혜’이었지요. 그리고 지난 주간에 꼭 우리가 시작할 엑소더스 운동 네번째를 말씀드렸지요.  ‘화평’으로의 역전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제목은 ‘주예수영접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며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습니다만 한 번쯤은 심각하게 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가, 를 생각할 필요가 있겠지요.  왜 예수님을 믿는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믿어야 할까.  이런 질문입니다.  이미 여러분들 가운데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주 확실한 분도 있고 글쎄 왜 믿어야 하지? 믿는다는 게 무어지? 라는 깊은 생각에 빠지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구원, 그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구원이 있다

성경은 구원을 말씀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문제가 가장 핵심인 책이 성경입니다.  성경에서 구원을 말하는 대표적인 단어는 신약에서는 헬라어로 ‘소테리아’라고 하고 구약의 히브리어로는 ‘예수와’ 인데 여기서 ‘예수’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그 어원이 구원입니다.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뜻이지요. 구원이란 말은 그 의미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은혜, 또는 그 긍휼하심에 의해, 사단의 세력과 죄로 인한 멸망에서 구해내는 일,’을 말씀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거스린 죄, 그 죄의 결과로서의 멸망(죽음)에서 구원하는 것이지요

약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이 구원은 지상에서 죄의 사유를 받고 장래에는 최후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의 영광중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들어가 완성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마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견디며 구원받는 대상은 첫째 우리의 영혼입니다. 영혼이 죄사함을 받고 평안함을 얻는 것이며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주 예수님을 끝까지 믿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몸입니다.  우리의 몸이 부활의 몸이 되어서 영원히 죽지 않는 변화를 받게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행17:18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셋째 우리의 생활입니다. 세상에 매여 사는 생활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근심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삶이 구원입니다.

빌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딤후2: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요한삼서1장2절의 기도가 나오는 것이지요.

요삼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그러므로 진정한 구원은 영혼과 몸과 생활에 온전한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이를 보고 총체적 구원이라, 그렇게 부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 총체적인 구원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영혼, 영혼의 문제입니다. 영혼의 구원. 여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면서 몸과 생활을 변화시키시는 구원. 구원의 은혜에는 한가지 중요한, 놀라운 표현이 따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권세있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권세. 이것이 나타나는 구원이 성경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구원입니다. 요한복음1장12절에 이렇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권세’란 헬라어로 엑수시아, 라고 합니다. 이는 능력, 특권, 자유, 권위, 판결력, 권한, 등을 말합니다. 아주 복합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란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분이 바뀌고 나면서 나타나는 모든 권위, 힘, 자유, 판결력을 가진 권세를 말합니다. 이 권세가 있는 구원을 주시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일과 그 아들된 권세를 누리는 일, 이 따르는 것이지요.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간 이 관점에서 바울사도와 제자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경험한 일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그의 동역자들과 함께 로아의 한 중요도시, 유럽의 관문도시인 빌립보지방에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점치는 귀신들린 여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갑자기 여자가 점을 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 여인을 통해서 점을 치고 장사를 해서 돈을 벌던 사람들이 여럿이 있었는데 그들이 몹시 화가 났습니다. 결국 전통문화 파괴죄로 고소를 당하여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 때 바울이 겪은 어려움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먼저 바울사도와 실라가 매를 많이 맞고 그리고 같이 깊은 옥에 갇혔습니다.  깊은 옥은 그냥은 절대로 도망칠 수 없는 중죄인을 가두는 감옥입니다.  여러분, 영화 벤허를 보신 분들은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를 가둔 곳이 깊은 감옥임을 아실 것입니다.  그곳은 빛도 없고 소망도 없는 곳입니다.  절망과 죽음이 기다리는 곳입니다. 

제가 그저께 금요일 오후에 뮤지컬 ‘요덕 스토리’를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의 권사님의 조카가 요덕스토리 뮤지컬의 작곡가십니다.  그 분의 초대로 올림픽홀에서 공연하는 이 뮤지컬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저는 사실 요덕스토리, 뮤지컬을 참 보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는 뮤지컬을 아주 좋아하지만 사실 볼 기회는 그렇게 잘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제가 본 가장 감동깊은 뮤지컬은 레 미제라블이었고 늘 그 감동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소외자를 찾아서…라는 제 마음의 기도제목도 사실 레 미제라블의 뮤지컬이 준 큰 감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노래들을 생각하면 늘 감동이 오고 또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에 요덕 스토리를 보고 어제 오늘 계속 그런 비슷한 감동을 느끼면서 자꾸 눈물이 납니다.  요덕 스토리를 제작한 정성산 감독의 인사말이 있는 팜플렛을 보니까 ‘한국의 ‘레미제라블’을 향해’, 라는 타이틀이 되어 있더군요.  아, 그렇게 되어야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듯이 요덕 스토리는 북한의 함경남도 요덕에 있는 정치범수용소(또는 제15호 관리소)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이야기입니다.

요덕스토리는 강련화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그녀와 그녀의 평화로운 가정에 닥치는 파란만장한 삶과 죽음을 이야기입니다. 북한 최고의 공훈 무용수 강련화에게 어느 날 아버지가 남조선 국가정보원의 스파이라는 날벼락 같은 이야기가 들려오고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모두 요덕수용소에 수감됩니다.  지옥 같은 요덕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에게 자유를 향한 탈출은 꿈도 꿀 수 없는 일, 그러나 결국 그들은 다 죽어가면서도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같다고 하면서 자유를 향한 몸부림을 치며 죽어갑니다.  실화로 현재까지 존재되는 요덕의 정치범 수용소의 비극의 대서사시가 2시간 30분 동안 펼쳐지는데 그 중에 이런 노래, ‘기도’라는 제목의 노래가 나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거기 계시지요 아버지 이름 거룩히 여김 받으시며 아버지 나라 이곳에도 세워주옵소서 아버지 뜻이 이 곳도 이루소서.  일용할 양식은 바라지 않아요 저들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고 다만 우리를 즉결심판대에 세우지 마시고 이곳 수용소에서 구하소서.  아버지 남 조선에만 가지 마시고 공화국 이곳 요덕에도 와 주소서 아버지 제발 이 땅에 오소서 아버지 제발 이 땅에 오소서’

정말 눈물이 남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남 조선에만 가지 마시고 공화국 이곳 요덕에도 와 주소서 아버지 제발 이 땅에 오소서. 이 노래를 들으면서 울었고 지금까지 생각만 나면 눈물이 제 마음 속에 흐릅니다. 
요덕 스토리 뮤지컬에 ‘촛불 같은 생명’이란 노래가 있는데 그 시작은 이렇게 부릅니다.
‘거기 누가 있다면 이 비명소리 듣고 있는지 거기 누가 있다면 제발 우릴 구해주세요 오 하나님 보소서 이 억울하게 흘리는 피를 오 바람아 불지마 우린 촛불 같은 생명들……저 하늘도 더는 참지 않겠지 우리에게 날개가 있다면 멀리 날 수가 있을텐데’.

이 노래의 작곡가인 차경찬선생의 초청으로 가 본 요덕 스토리 뮤지컬이 지금도 제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구원의 그 절규, 를 생각하면서 기도 드립니다.  주여, 무언가를 하게 하소서, 라고 말입니다.  정말 무언가를 우리는 해야 할 것입니다.  요덕 감옥소의 그 억울한 생명들의 구원의 호소가 꼭 속히 응답되는 역사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지금 우리는 정말 세상의 권력, 하나님의 나라를 억압하는 세력을 진동시키고 그리고 변화시키고 회개시키고 구원할 그런 엄청난 권세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요덕 수용소 같은 곳에서 진정 자유의 역사 출애굽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저 옛날 애굽이 그런 곳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아이들이 태어나서 강에 던져저서 죽던 출애굽 전의 애굽, 그곳도 요덕 수용소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권세가 임하면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신 줄 믿습니다. 그 출애굽의 강한 파문이 지금도 곳곳에서 파도치는 줄 믿습니다.  그 파문이 저 옛날 로마제국에 파도쳤고 그 가운데서 구원받는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빌립보에 있는 한 깊은 감옥, 절망의 수용소 속에서 그런 희망이 솟아났습니다.  권세를 이기는 권세.  우리의 한반도에도 임하여 있습니다. 이제 기도해야 합니다. 그 권세가 힘있게 움직이기를 말입니다.  하나님의 권세,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는 때가 되면 반드시 세상 권세를
이깁니다. 

권세를 이기는 권세

로마제국의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봅니다. 바울사도 일행을 가둔 사람들은 로마의 관리들이요 군인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권력과 권세가 있었습니다.  로마의 사람된 권세입니다. 그래서 이런 표현들이 다 그런 권세를 나타냅니다.  ‘관원들’(19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하여’(22절), 라는 말씀은 권세를 표현합니다. 옥을 지키는 간수는 그 권세 아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상관이 명령하기를 ‘든든히 지키라’(23절), 하는 이 말은 그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권세가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한 일은 순종이었고 또 그 순종 속에는 그에게 부여된 권세를 실행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24절).  이것이 간수가 한 일이며 이런 일을 하도록 하는 권세가 그의 위에 있었습니다. 간수에게 권세는 그 이상 더 강한 것이 없었지요.  간수는 로마의 황제에 의해서 주어진 권세를 사용하는 상관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그가 처벌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복종 아니면 죽음이었지요.  사느냐 죽느냐, 가 세상권세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던 간수였지요. 

그런데 그런 간수에게 큰 충격적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상상치도 못했던 어떤 새로운 권세가 나타나는 사건입니다.  아주 강력한 로마의 권세, 그 군대의 힘 아래 갇힌 바울사도는 그러나 매맞아 아픈 몸을 이끌고 일어나 밤중쯤 되었을 때 실라와 함께 기도를 시작합니다.  간수가 들었을 때 그들은 로마의 황제나 로마제국의 신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 분을 주라고 부르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소리를 모두가 듣습니다.  아마 간수도 더 이상 말릴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요. 아니면 간수에게는 그 찬미소리가 자장가같이 들렸겠지요.  감옥 속, 깊은 감옥에 갇힌 다른 죄수들, 절망의 사람들도 그 찬송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며 예수의 이름으로 부르는 찬송을 듣는 것이지요.

16: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밤중입니다. 깊은 감옥의 밤중입니다. 밤중쯤이라고 한 것은 깊은 감옥이니 밤이나 낮이나 구별이 안 되는 곳이니 밤중으로 생각될 그 시간을 말합니다. 깊은 절망의 시간인데 그러나 기도하며 찬미하는 사도들.  하나님의 역전의 역사는 기도로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역전의 큰 역사는 바울과 실라가 기도를 드린 대상인 그 분, 찬미하며 높여드린 그 분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습니다.  기도는 역전의 드라마를 만드는 일등공신입니다. 제가 국제대학생 선교회 총재이신 김준곤 목사님으로부터 지난 주간에 부탁을 받았습니다. CCC의 국제기도운동의 대표인 Ben Jennings 목사님을 한 번 설교로 모시면 고맙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분은 CCC의 세계기도선교, 연수상담실장을 하시면서 기도선교를 23년 하신 분이십니다. 세계기도협의회를 창설하신 분이고 28년간 목회를 하시면서 세 교회를 담임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4부예배와 찬양예배때 설교를 부탁드렸습니다.  기도운동에 좋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만사를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그 기도로 말미암아 바울과 실라가 갇힌 깊은 감옥을 흔들며 로마의 권세가 만든 감옥, 다스리는 그 영역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났습니다. 

16: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큰 지진,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면서 모든 사람의 사슬이 풀리는 그 해방과 구원의 힘. 그 힘이 나타나면서 순식간에 모든 상황은 역전되었습니다.  그렇게 가두어 두는 힘, 묶는 권세를 순식간에 무력화 시키는 그 힘과 권세가 위로부터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도와 찬송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 놀라운 권세, 하나님의 권세가 자녀들에게 나타난 것이지요.  이 일은 잠을 자다가 깨어난 간수에게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간수는 사정을 잘 몰랐습니다.  우선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 나는 이제 군법에 의해 처형당하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보다 책임감 있는 군인으로서 내 스스로 자결하자, 라고 생각한 간수가 죽으려고 검을 빼들었습니다. 

16: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그렇지만 간수를 부르는 큰 소리가 들립니다. 바울의 소리입니다. 

16:28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우리가 다 여기 있다,는 말. 이 말은 하나님께서 주신 해방과 자유를 얻었으나 하나님의 일을 위해 도망하지 않고 다른 죄수들을 다 그대로 있게 하고 더 큰 자유, 즉 예수님 안에서 얻는 구원에 더 큰 관심이 있다는 선언입니다. 그 때문에 이 감옥을 탈출하는 일까지 포기하고 이 곳에 다 있다는 말이지요.  그 만큼 예수 안에서 얻는 그 구원이 중요하다, 는 선언을 하려는 말입니다.  이 상황에서 간수에게 진정한 두려움이 왔습니다.  아니, 지진을 일으키시고 모든 쇠사슬을 다 푸시는 분이 바로 저들이 아까 기도하고 찬미하던 그 하나님, 그 예수 아니신가. 그렇다면  그 분들을 찬미하던 저들을 가둔 이 일이 심판을 받을 일이 아닌가.  옥문을 여는 지진을 일으키신 분이 나를 저 깊은 땅 속 지옥으로 던져 넣으시면 나는 꼼짝없이 죽는 것 아닌가. 심판 받을 죄를 지었구나.  이 상황에서 간수는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16: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16: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순식간에 상황은 역전되었습니다. 이제 떠는 것은 간수입니다.  로마의 세력이 떱니다.  그리고 바울사도 일행을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이 구원은 이제 그에게 있어서는 모든 멸망, 파멸, 심판에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죄에서 용서를 받는 것, 영혼이 안심하는 것, 몸이 부서지지 않는 것. 이 모든 구원입니다.  이제 간수는 바울과 실라에게 있는 어떤 권세를 느끼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그들의 권세를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찬송하던 그들.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예수님을 구주라고 부르던 그들의 기도
와 찬송을 기억하면서 이제 간수는 진정한 구원을 간구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얻습니까.

조건이 있다

구원의 조건은 기도와 찬미가 있지만 그 근본에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하시지만 그러나 조건을 제시하십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여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이 중심인 구원. 죄사함을 받아 심판을 면하는 구원. 그리고 아울러 몸과 생활이 다 무너지지 않고 살아나며 안전하게 되는 구원, 이 모든 구원과 그 때 그 때의 어려움과 두려움과 위태함에서 벗어나는 모든 구원의 조건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또 구원 얻을 믿음을 사람 족속에서 일으키도록 우리는 이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간수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지금 세상에 속해 있어서 세상의 권세를 앞서는 것으로 살아왔다면 우리는 이제 그 권세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의 권세 앞에 무릎꿇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가 있는 성도들과 구원의 문제를 의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때 바울사도를 통해서 이렇게 성령이 말씀하십니다.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 예수. 이제 예수님은 세상의 어떤 권세자, 구원자와 비교되지 않는 주님이시다, 는 것입니다. 주예수. 그 분을 이제 믿으라. 그 분이 옥터도 흔드시고 그 분이 용서도 하시고 살리시는 분이시다, 라는 사실. 구주심을 믿으라. 그리하면 너 만이 아니고 네 집안이 구원을 받는다. 즉 구원의 확산이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를 관계로 엮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관계를 통한 전도가 가장 좋은 전도입니다. 전도의 길이 열린 것이지요.  우리는 이제 관계전도를 해야 합니다. 그 중에 우리의 가족을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앞에 있는 이름들과 아울러 우리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면서 주여, 제 옆에 그들이 있게 하옵소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절대 낙심치 말고 기도하십시요. 주 예수님을 진정 구주로 영접하기를 기도하십시요.  우리가 간수였다가 이제 구원 받은 우리는 바울과 실라이기도 합니다. 기도하며 전도하는 하나님의 자녀, 권세있는 자녀들 입니다. 큰 구원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 기도할 때 그들의 기도는 주예수를 누구든지 저 로마 사람들도 간수도 다 영접하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가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제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간수와 그 집안에게 다 전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말입니다.

16: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주 예수를 영접하는 일은 그 밤에 하이라이트입니다.  하나님께서 환경을 흔드시고 그 환경을 흔드시면서 세상의 사슬을 푸시는 것은 바로 영혼이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그 권세를 알게 하시고 그리고 구주로 영접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흔들립니까. 갑자기 요동칩니까.  두려워 마십시요.  우리에게 오는 진동이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환난이 우리를 세상의 권세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히려 자유케 합니다.  이로써 그 밤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간수와 가족은 이제 그들을 붙잡았던 세상 권세와 사상과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바울사도 일행을 도우며 그 분들을 통해서 그 밤에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16:33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16:34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창조주로서 출애굽의 구주로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으로서 장차 오실 재림의 주님을 믿은 것입니다.  믿었으므로 오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는 주 예수 영접이야기는 빌립보의 한 가수와 그 가족의 일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빌립보지방에 세워지는 큰 사건이 되었습니다. 역전의 은혜였지요. 환경을 흔드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조건, 믿음, 그리고 기도와 찬양, 전도, 이런 순종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많은 약속을 발견합니다.  구원과 축복, 성공과 승리, 응답과 기적. 이런 모든 약속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약속에 반드시 따라다니는 것이 위에서 본 것 같이 조건 입니다. 조건이 따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조건을 순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하셨지요. 그리하면, 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하셨지요.  믿는 자들에게는, 이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요한복음3장3,5절에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셨지요.  거듭나야, 라는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는 말씀도(요3:8) 역시 성령으로 나는 것이 조건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임의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는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성령을 받아 권능을 받으면, 그리하면 땅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 는 말씀 속에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이라는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을 ‘주 예수’로 영접하는 일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깊이 믿어드리는 일입니다. 

믿음으로 열라

이제 우리가 오늘 중요한 것은 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일이 조건이 되어서 구원을 받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영접입니다.  믿음. 이 믿음은 이제 가장 위대한 구원의 조건입니다. 믿는다는 것. 이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믿음은 그 본질이 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믿음은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문 밖에 계시는데 그리고 문을 두드리시는데 내가 보일 믿음은 주님을 향해 마음을 여는 일입니다. 찬송가336장3,4절을 보십시요.

3 홍포를 입은 구주는 가시 면류관 쓰시고
  저 십자가 높이 달리사 그 아픔을 참았네
4 미련한 우리 인생은 주의 공로를 모르고
  그 쓸쓸한 사막 가운데 늘 헤매고 다녔네
(후렴)
  오 사랑의 예수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동거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 아멘

내 맘을 곧 엽니다. 그렇습니다. 큰 구원, 큰 응답, 큰 축복.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여는데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정말 예수님이 여러분 삶에 가득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구주로 영접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정말 그 분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두가지를 하십시다. 첫째 예수님께 마음을 확 여십시다.  주여 오시옵소서. 둘째 예수님이 부으시는 성령님께 마음을 엽시다. 성령님 환영합시다. 오시옵소서. 주여, 성령을 내게 부으시옵소서.  우리는 이 시간 주 예수를 영접하는 마음으로 성령을 환영하여야 합니다. 제가 대학교 때 성령을 받는 때의 체험이 그러했습니다. 두 팔을 벌리고 마음을 열고 정말 성령을 받으라고 하실 때 아멘, 아멘, 하며 마음을 크게 여는 자세를 보여드렸습니다. 그 때 성령이 부어진 줄 믿습니다. 그리고 저의 인생은 예수님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나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 분이 시키시는 일이 나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을 엽시다. 세상 욕심을 비웁시다. 주님을 내 마음의 가장 중심에 모십시다.  그 분이 나의 마음의 왕좌에 앉으시게 합시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이제 바뀌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종들, 복음의 일꾼들의 아픈 부분을 싸매고 치료하는 일이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환영하고 모두가 다 세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정말 이제 우리 속에 예수님이 가득하시게 하고 성령님이 가득하시게 하여야 합니다. 자, 마음을 다 여시기를 바랍니다. 그 동안 우리 속에 있던 세상 것 좀 비웁시다. 대신 예수님을 가득히 모십시다.  여러분, 깊은 산에 들어가면 좋은 공기를 가득히 마시기 원하시지요. 그래서 크게 심호흡을 하십니다.  이제 성령의 심호흡을 하십시요. 주여, 나를 비웁니다 주여 들어오시옵소서, 주여, 환영합니다. 주여, 오소서. 할렐루야. 이것이 이제 우리의 이야기, 즉 주 예수 영접이야기가 되게 합시다.  그리고 저 요덕수용소의 이야기가 이제 요덕의 출애굽 이야기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그들의 기도 소리를 우리가 함께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남 조선에만 가지 마시고 공화국 이곳 요덕에도 와 주소서 아버지 제발 이 땅에 오소서 아버지 제발 이 땅에 오소서’오소서, 라는 그 뮤지컬에서 영어로 번역된 대사가 나오더군요. 

Come to us.  우리에게 오소서.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맨 마지막 장, 22장20절에서입니다.

계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surely I come,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Come Lord Jesus.

오, 주여 오시옵소서, 이곳에도 그리고 저 북한에도 저 잃은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가족에 그리고 우리들의 이 영혼 이 마음속에, 오, 주여 여기도 오시옵소서 주여, 환영합니다, 주여, 마음을 엽니다. 주여, 오소서, 모든 곳에 오소서, 구하소서. 구원하소서. 오 주여 오소서, 영접합니다. 오소서.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예수 영접 이야기를 가집시다. 나의 집안의 주 예수 영접이 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태신자들의 주 예수 영접이야기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 영접이야기. 그 안에서 우리의 기도 이야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전도 이야기, 주님을 위해 고난을 이긴 이야기, 찬송이야기, 이 이야기 속에서 진정 우리의 영혼과 몸과 생활이 세상을 탈출하고 천국의 권세, 능력의 세계로 옮겨지게 하신 주 예수 영접이야기로 가득한 인생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치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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