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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엡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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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가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엡 4:30)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돌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결코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로 진리를 알고 깨닫고 믿게 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해져 가도록 변화시키시고, 은혜롭고 살아가며 능력 있게 하나님의 일을 행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부활 승천하시면서 유언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라는 것과 성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

  예수님의 마지막 남기신 말씀에 보면 성령세례를 받아야 권능을 받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증인이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은 주님의 마지막 당부이자 명령입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절대적인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신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믿음을 조성시키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깨달으며 믿도록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임하셔서 내주하십니다. 성경은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시는 역사를 성령세례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기름 붇듯이 능력으로 임하시는 것이기에(행 10:38), 성령의 기름부음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믿음을 조성시키셔서 거듭나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임하셔서 내주하심으로 확증과 함께 능력을 주시고 은사와 함께 열매를 주십니다.
  성경은 성도의 몸이 하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심을 말함으로 성령의 임하심과 함께 내주를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령이 함께하시지 않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 8:9)고 했습니다.
  성령의 내주는 성령세례(임하심, 성령의 기름부음, 인침)와 함께 계속 이어집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우리 안에 조성시키신 회개 그리고 칭의(稱義)와 양자(養子)됨으로 이루어진 구원의 상태를 우리 안에서 계속 유효하게 유지하도록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는 성도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더욱 거룩해지도록 역사 하십니다.(살후 2:13)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 성령의 내주는 앞으로 완성될 그리스도인으로의 축복의 근거가 됩니다.(고후 1:22/ 5:5/ 1:14)

  결국 성령의 내주는 인간과 하나님의 단 한순간의 단절도 없는 영원한 교제를 의미합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하나님과 동거 동락하는 벅차고도 놀라운 축복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성령의 내주 하시는 성도의 삶은 장차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천국의 영화로운 삶까지 승화되어 갈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의 삶과 변화된 삶과 승리의 삶을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이미 각 성도의 심령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하시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성도를 재 각성시키시거나 그 개인을 통하여 큰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더욱 크고 강하게 주장하시며 감동시키심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오늘 성서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뜻은 슬프게 하지 말라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께서 근심하시도록 하거나 슬프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성령을 근심하시도록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의 내주하심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보내지셨으며 우리 안에 내주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여 계시지 아니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께서 우리 모두에게 내주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로 진리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격려하시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권세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데도 그 성령을 의식하지 않거나, 잊어버린 듯이 여기며, 무시하고 살아가면 성령께서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그 성령께 의지하고 의논하고 그 분의 지혜를 얻으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자의대로 행동할 때 성령은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 해 계심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 성령을 사랑하며 함께 할 때에 성령은 기뻐하십니다. 바울은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살전 5:19)고 했습니다. 성령은 소멸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무시할 때에 성령과 멀어지고 우리 안에서 성령의 역량이 줄어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막의 낙타는 등에 혹 모양의 육봉(肉峰)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봉이 하나인 단봉낙타와 두 개인 쌍봉낙타가 있는데 어느 것이나 며칠씩 물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육봉 속에 저장되어 있는 기름을 분해 시켜 필요한 수분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양분을 다시 보충하지 못하면 육봉은 점점 작아져 결국은 없어지고 만답니다.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처럼 사막과 같은 이 세상에서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성령의 기름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의 길을 걷자면 성령의 내주하심 없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심을 잊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시지 마십시다. 내 안에 계시는 그분 성령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성령과 함께 하며 그 성령을 사랑하고 그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과 함께 하지 않고 성령을 잊거나 무시하고 살 때에 성령은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성령은 우리를 움직이는 감동하심을 만듭니다. 그 감동은 우리를 뜨겁고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는 감동입니다. 이 감동하심을 잊어버릴 때에 냉랭한 형식적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하심을 외면하고 살 때에 성령은 근심하시고 슬퍼하십니다. 

  바울은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 고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 곧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읽으면서 성령의 감동하심을 외면하고 읽기에 재미없고 지루한 책이 되어 생명과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에 따라 읽을 때에 그 성경이 우리를 바로 교육하고 온전하도록 인도하며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선한 일로 이끄는 생명과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의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신 여러분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 안에서 예배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께서는 우리를 감동시키시어 거룩한 삶을 창조하도록 하십니다. 갑자기 성경을 읽고 싶다든지, 기도하고 묵상하고 싶을 때가 있고, 헌금하고 싶은 때가 있는가 하면, 도와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이 우리를 감동시키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감동시키고 계시는데 우리가 성령의 감동하심을 외면한다면 성령은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감동하심으로 사랑하십니다. 또한 감동하심으로 은혜롭게 하시고 능력 있게 하십니다. 이 감동을 외면할 때에 성령은 근심하고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육체의 일들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면서 그 말씀 전후에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모습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표현들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방탕에 방임하는 것’, ‘유혹의 욕심을 따르는 것’, ‘거짓을 말하는 것’, ‘더러운 말을 하는 것’,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 불쌍히 여기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은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들입니다.

  바울은 “그 (성령)안에서 너희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인 치심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도록 붙들리고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 치심을 받은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는 사람으로 산다면 성령께서는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너희는 성령을 쫓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역하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선을 하지 못하게 함이니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지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사랑하는 여러분,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면 성령이 우리 안에서 슬퍼하시고 근심하십니다. 성령을 따라가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최종적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의 최종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속의 날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은 근심하게 하지 말라.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구속의 날까지 우리를 소유하고 구별시키시어 우리를 그 구원에 이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장엄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임박한 주님의 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의로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날입니다. 자기의 원수를 멸하시고 더 나아가서 온 세상의 악의 그림자와 흔적마저 다 제하시는 날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나라를 반포하시는 날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그 안에서 영화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영원한 최종적 소망을 깨닫지 못하거나 잃어버리고 살 때에 성령은 근심하십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잃고 사는 사람들에 대하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것(영원한 영생의 소망)이 없는 사람은 소경이라. 멀리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하게 하심을 잊었느니라”고 하면서 “이 같이 하면(구원의 최종적 목적을 가지고 주님의 성품을 가지고 깨끗이 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1)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성령은 근심케 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성령을 근심케 하면 성령의 임재와 함께 드러나는 여러 가지 은혜로운 표징들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면,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느낌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확신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평안도 없어질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친히 내 영으로 더불어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신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면 우리를 인 치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자녀의 확신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만일 성령을 의식하지 않고 잊고 살며 육체의 소욕대로 살면서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은혜롭게 하시는 그 분의 감동하심을 철회한다면, 그는 점점 육체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육체의 소욕에 지배되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마귀는 그러한 것들을 이용하여 그러한 사람을 공격하고 모독할 것입니다. 마귀는 더욱 비열하고 추한 생각들과 소원을 그러한 사람의 마음속에 집어넣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욱더욱 마귀의 지배아래 사는 육욕의 노예가 되어갈 것입니다. 

  Charles H. Spurgeon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 조직체는 동력이 끊어진 방앗간과 같다. 철저하게 정통적이며, 또 성경적인 표준을 따르고 있는 교회라 할지라도 위로부터 주어지는 능력을 받지 못한다면 비를 뿌리지 못하는 구름처럼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 치심은 어느 누구도 지울 수 없는 확신입니다. 성령의 내주  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분은 우리 안에서 근심하시기까지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외면하고 살면 우리를 징계해서라도 돌이키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심으로 성령과 함께 살아가는 확신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걸어갈 때에 피곤하고 지치고 신음하며 울먹이며 터벅거리며 걸어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면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 확신과 능력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을 기쁘시게 하며 그분 안에서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아멘.
(김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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