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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흩어짐의 은혜 (행 8: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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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정말 먼 길을 다녀왔습니다. 김주일 형제의 어머님께서 소천 하셔서 문상차 청송까지 다녀오게 되었는데 새벽 6시 30분에 떠난 길이 돌아오니 저녁 6시였습니다. 주일을 준비하기에 바쁜 나머지 바삐 서둘렀지만 워낙 멀기도 하였거니와 돌아오는 길은 도중에 밀기기 시작하는지라 시간이 예상 외로 많이 걸렸습니다. 성도님들도 아시거니와 제가 또 속도를 많이 내지를 않습니까? 한편으로는 시원스럽게 달리기도 하였지만 원주를 돌아서면서부터는 차량들이 많아져서 그나마 속도를 내기도 어려웠습니다. 거기다가 문막 휴게소에서 운전자를 잠시 바꾸려고 하였는데 시동이 걸리지를 않습니다. 겨우 겨우 어떻게 시동을 걸었지만 시동만 걸려 있을 뿐 모든 장치가 먹통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창문을 여닫을 수도 없고 에어컨도 기능을 멈추었고 심지어는 속도계조차 멈추어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차는 계속 밀리는데 길은 더딘데다가 비까지 오기를 시작하는데 윈도우 브러시조차 말을 듣지 않으니 참으로 난감하였습니다. 그래도 겨우 겨우 발안 가까이까지 왔는데 그나마 시동조차도 꺼지는 게 아닙니까? 가까스로 제대로 듣지 않는 핸들을 움직이고 브레이크를 잡아 차를 멈추었는데 겉으로는 태연하였지만 속으로는 식은땀이 절로 나는 것이었습니다. 차량 운행 도중 제너레이터가 고장이 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시동이 걸려 있을 때는 다른 기능은 멈추어도 핸들의 파워기능이나 브레이크가 작동하지만 시동이 꺼지게 되면 핸들의 파워기능도 브레이크도 작동하지 않는 까닭에 정말 큰 일 날뻔하였지만 다행히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어서 무사히 차를 멈추고 뒷수습을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마치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그 모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얼마나 잘 나갔는지 모릅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해 백성들 가운데 큰 능력과 역사들이 일어났고 성도들 간에는 아름다운 섬김이 있었으며 백성들의 칭찬이 자자했고 교회 성도들의 수는 날로 늘어만 갔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순교로부터 몰아닥친 피보라가 온 교회를 풍비박산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들 외에 모든 성도들은 다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실상 예루살렘교회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역사가 이렇듯 물거품처럼 흩어질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아름다운 교회가 이토록 처참한 모습으로 흩어질 수 있단 말입니까?

모든 것이 여기서 그치고 말았다면 기독교는 정말 허무한 종말로 막을 내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이로 인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돌아다니면서 말씀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이제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예루살렘 교회에 펼쳐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에 빠져들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렇게 나가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그 자리에서 이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사도들이 잡혀 들어간 적은 있었어도 금방 도로 풀려나오곤 했는데 그래서 스데반이 붙잡혔을 때만 해도 다른 사도들처럼 그도 그렇게 풀려날 줄로만 알았는데 그만 돌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온 교회에 환난이 몰아닥치는데 그게 그냥 견딜 수 있는 그런 환난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 온 교회가 다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당장 지금의 모습만 가지고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다 헛수고인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한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것을 그들은 깨달았던 것입니다. 분명 주님 말씀은 성령이 임하고 난 다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저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만 머물지 말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지금까지 예루살렘교회에 일어나는 부흥의 불길에 도취한 나머지 예루살렘 밖으로 나가는 것을 잊고 있었다고 하는 것을 예루살렘에서 피해 도망 나와서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분연히 다시 일어납니다. 더 이상 후회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들 마음속에 계신 성령께서 그들이 숨죽이고 있도록 그냥 내버려두지를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흩어진 자리에서 두루 돌아다니면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일곱 안수 집사 중 한 사람인 빌립입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기를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무리들은 빌립이 행하는 표징을 듣고 보면서 그가 하는 말에 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귀신들린 많은 사람에게서 악한 귀신들이 큰 소리를 지르면서 나갔고 많은 중풍병 환자와 지체장애인이 고침을 받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그 성에는 큰 기쁨이 넘쳤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평안하게 잘 있었다면 어찌 사마리아 성에 이런 복음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었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전하는 자가 없고서야 어찌 들을 수가 있겠으며 듣지 않고서야 어찌 믿을 수가 있겠느냐고 권고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 닥치는 환난과 핍박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우리가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닥쳐오는 어려움들이 우리를 잠시는 움츠러들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결코 몸과 마음을 움츠리고 있을 수만 없는 것은 오히려 그 어려움들이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던 것을 보게 만들고 깨닫게 만들어주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한 것입니다. 오히려 어려움이 있기에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두려워서 전하지 못했던 예수를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오히려 전할 수 있게 되더란 말입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죽기를 각오한 사람에게는 더 이상 두려움이란 없습니다. 무엇보다 죽음마저 뛰어넘은 사람을 성령께서 그냥 버려두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죽음을 뛰어넘는 새 생명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빌립이 그랬습니다. 비록 죽음을 피해 사마리아지방으로 도망 나왔지만 이제 그가 잃을 것이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곳 타향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 그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더니 놀랍게도 빌립을 통해 많은 표징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빌립이 전하는 말에 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귀신들린 많은 사람에게서 악한 귀신들이 큰 소리를 지르면서 나갑니다. 많은 중풍병 환자와 지체장애인이 고침을 받습니다. 그래 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고 받아들이면서 그 성에 큰 기쁨이 넘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어려움이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습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어진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오히려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선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렵기 때문에 너무도 힘들기 때문에 오히려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주님을 의지하게 되니 주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더란 말입니다. 그리니 놀라운 은혜와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보십시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하수가 역류하면서 아래층 반지하 교육관이 물에 잠겼습니다. 그랬을 때 우리가 그냥 주저앉아만 있었습니까? 할 수 있는 힘을 다해 성도들이 모여와서 물을 퍼냈습니다. 물이 들어오는 구멍들을 막았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닥과 벽이 다 젖었습니다. 가구들도 못쓰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냥 주저앉았던가요? 아니죠. 그랬기에 그동안 흉한 모습을 보면서도 손을 대지 못했던 도색작업을 새롭게 하고 아래층을 보기 좋게 새롭게 꾸밀 수 있게 되지를 않았습니까? 거기에 덤으로 도시가스 공사까지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핍박은 은혜인 것이요 예루살렘교회의 흩어짐은 오히려 새로운 은혜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들 가운데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럴수록 더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잠시는 힘이 다 빠지겠죠? 그렇게 견딜 수가 없을 정도로 풍파가 심하겠죠. 하지만 잠시 후에는 더 좋은 일이 생기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며, 낙심한 자에게 위로를 주시고 부족한 자에게 넘치도록 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깨닫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아니 가장 크게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우리 생명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도록 만들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 성의 대표적인 변화된 사람의 모습은 어떤지 살펴보겠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술을 부려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스스로 큰 인물인 체 하는 사림이었습니다. 그래서 낮은 사람으로부터 높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사람이야말로 이른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의 소유자이다" 하고 말하면서, 그를 따랐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따른 것은, 오랫동안 그가 마술로 그들을 놀라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니, 남자나 여자나 다 그의 말을 믿고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 가운데 시몬이 끼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몬은 지금까지 마술로 사람들을 놀래게 만들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스스로도 큰 인물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는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몬도 믿음을 가지게 되어 세례를 받은 뒤에 항상 빌립을 따라다녔는데 그는 빌립이 표징과 큰 기적을 잇달아 행하는 것을 보면서 놀라게 됩니다.

더욱 시몬이 놀란 것은 다른데 있습니다. 그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듣고서,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로 보내게 됩니다. 두 사람은 내려가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이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아직 성령이 내리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으니, 그들이 모두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을 보는 순간 “나도 저런 능력을 받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이 시몬에게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시몬은 사도들에게 돈을 내고서 말하기를 "내가 손을 얹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도록 내게도 그런 권능을 주십시오."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에게 말합니다. "그대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고 생각하였으니, 그대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그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우리의 일에 그대가 차지할 자리도 몫도 없소. 그러므로 그대는 이 악한 생각을 회개하고, 주님께 기도하시오. 그러면 행여나 그대는 그대 마음속의 나쁜 생각을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오. 내가 보니, 그대는 악의가 가득하며, 불의에 얽매여 있소." 그러자 화들짝 놀란 시몬이 "여러분들이 말한 것이 조금도 내게 미치지 않도록, 나를 위하여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비록 시몬이 잘못 알고 돈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사려고 하였지만 마술을 부리던 사람이 이렇듯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사람으로까지 변화될 수 있었다고 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은혜는 사모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으니 회개하고 은혜의 자리에 앉은 시몬이 뒤에 이런 능력의 소유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은혜와 능력에 대한 사모함이 우리들에게도 있어야 될 줄로 압니다. 하지만 거기에 어떤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에 사적인 욕심만 없다면 그것은 거룩한 욕심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욕심이 있는 자가 사모하게 되는 것이요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이 임하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세상에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가 제일인 줄로만 알고 우쭐대던 시몬이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사모하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세상에 정말 자기 잘난 줄만 아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만이 최고인 줄로 압니다. 욕심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든 것을 자기가 다 독차지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주님을 위하는 거룩한 욕심이라면 그것은 아주 귀한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자가 사모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바란다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간구하며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것을 우리들 모두가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빌립이 핍박을 피하여 사마리아로 내려가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더니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 전하는 말을 한 마음으로 듣고 그 나타나는 표징을 보며 깨달아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니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사도들을 보내어 저들을 위해 손을 얹어 기도하게 하심으로 성령이 저들 가운데 임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도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성령을 허락하시기를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뒤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이 사마리아 사람의 여러 마음에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니 또 얼마나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믿게 되었을지는 뻔 한 일입니다.

핍박을 피해 사마리아 지방으로 내려온 빌립 한 사람으로 인해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렇듯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을 뿐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도무지 하나님의 사람 될 것 같지 않았던 시몬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누구는 도무지 안 된다, 아무개는 도무지 하나님의 사람 될 가능성이 없다고 포기하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는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어려움이 있다고요? 그때가 오히려 더 큰 은혜와 복을 받게 될 때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사마리아 지방에 일어났던 부흥의 불길이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여러분이 소속되어 있는 모든 곳에 나타날 수 있게 되고 여러분 자신도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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