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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가정의 화목 (잠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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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I. 본문해설

오늘 우리가 읽은 잠언 17장은 1-3절에서 또 다시 가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마른 떡 한 조각은 이 가정이 매우 가난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가난하여도 화목한 것이 풍족한 음식이 광에 가득한 것보다도 훨씬 더 낫다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오늘날 가정의 행복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관점은 많이 바뀌었다. 오늘은 물질주의 시대라서 물질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특히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사는 것이라서 스스로 자기가 필요한 자원을 조달하지 못하면 고통스런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물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차 강조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정의 행복마저도 물질적 풍요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이재 먹 가정을 이루려는 젊은이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물질에만 국한되는 것이다. 물론 자기들의 생활을 영위하고 자녀들을 잘 교육하고 이후의 노후생활까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생활에 도달한 나머지 물질이 가정의 행복에 있어 물질이 거의 모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가정은 그것만으로 행복할 수 없다.

II. 가정의 행복

A. 관계의 행복: 화목

오늘 성경에서 지혜자는 가정의 행복이 물질 이외의 것, 즉 ‘관계의 행복’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가정에 물질이 풍족하여도 의식주는 단지 가족이 누릴 자원들에 불과하다. 사람이 정말 제대로 된 삶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육신이 잘 보양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차대한 것은 그 사람을 움직이는 정신과 혼이 제대로 되어 있을 때,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똑같은 이치가 가정에도 적용된다. 가정에서 부모가 부모의 도리를, 자녀가 자녀의 도리를, 아내가 아내의 도리를 깨달을 때, 참다운 가정을 이루게 된다. 물질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았을 때, 이 물질이 사라지고 나면, 도대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어릴 때, 자녀가 필요한 모든 것을 해줄 부요가 있었기 때문에, 남부러울 것 없이 다 해주워서 정작 배워야할 도리를 못 배웠다고 치자. 이 아이가 장성하여 세상에 나가서 살 때, 인내, 절제 등등을 모른다면 직장의 동료들과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뒤늦게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또한 한 번도 꺾여본 적 없는 사람은 결혼을 하여도 배우자와 불화하게 된다. 그러므로 가정의 행복은 물질의 다소(多少)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성경이 말하는 가정의 행복은 아내는 남편과 맺는 관계, 남편은 아내와 맺은 관계, 부모는 자녀와 맺은 관계, 자녀는 부모와 맺은 관계의 귀함을 깨달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피차간의 이 ‘기댐의 관계’로 인한 즐거움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의 행복이다. 우리는 종종 가족의 구성원들을 생각할 때, ‘우리 아빠는 저 모양일까?’, ‘우리 엄마는 왜 저 모양일 까?’, ‘우리 얘들은 왜 저 모양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가족의 결점에 심하게 집착하게 되면, 가족관계에 대한 행복이 생기지 않는다. 사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생겨나고, 미움은 추함을 발견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아내가 이런 남자랑 사는 것 자체가 불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남의 남자와 비교한들 어쩔까? 내 아이를 남의 아이들과 비교한들 내 자식이 남의 자식이 될까? 가족이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지는 않지만, 절대적으로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 귀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할 때에야 비로소 그들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된다.

B. 화목의 원천: 신앙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화목의 원천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관계의 행복은 가족 서로서로 함께 노력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 모든 가족이 동시다발적으로 노력해야하는데, 실상 그러기가 쉽지 않다. 함께 희생하고 사랑하는 것은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는 자율근육 같은 것이 아니어서 다 내 마음 같지가 않다. 그래서 화목하게 하는 원천인 신앙이 필요하다. 신앙 때문에 가족들에게 모진 핍박을 당할 때, 하나님께 나아가 진실하게 기도해보라. 하나님께서 “내가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기도를 들었노라.”하고 위로해주신다. 그 사람은 더 이상 가족을 미워하지 않게 되는 데, 이것은 주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가족의 영혼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기 때문이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그 고백과 동일한 고백을 하였다. 그런데 가족들이 함께 동시에 이런 마음을 품는가? 은혜 받은 자가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기를 꺾고 먼저 희생해야한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그 반목의 고리를 끊고 먼저 손을 내밀까?’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신앙의 원천으로부터 가족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면서, 시작은 내가 했지만, 나의 희생을 밀알 삼아 성령님께서 역사하사 서로를 즐거워하는 가족관계를 이루어주신다. 한 사람이 먼저 자신의 완고함을 꺾고 주님의 사랑에 마음이 물같이 녹아지면, 화목한 가정의 물고를 트게 된다. 우리는 그런 화목의 원천을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말미암은 힘, 곧 신앙으로부터 찾아야 한다. “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하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정신을 가지고 가족을 사랑하기 시작하라. 사랑보다 사람을 고치는 위대한 능력은 없다. 여러분 자신이 변화의 불쏘시개가 될 원천으로 여기고 먼저 가족을 사랑하라. 가족 그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들이 이 세상에서 소유의 많고 적음 지위의 높고 낮음으로 더 가족 되거나 덜 가족 되는 것이 아님을 깊이 명심하라.

III. 가족을 세워 줌

여러분이 가족의 화목을 위한 재물이 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사명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오사, 하나님과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시어 우리와 하나님과의 불화를 종식시켰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누군가가 죽어 희생하지 않으면, 다른 가족들을 세워줄 수 없다. 가정이 올바로 못서는 것은 고통이 오기 때문이 아니라, 먼저 희생해서 그들을 세워줄 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받은 사람, 주님을 조금 더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을 생각하면 참을 수 없지만, 화목제물로 되사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갈가리 찢기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희생해야한다. 여러분들이 먼저 희생해서 가족들을 수발드는 종이 되세요.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의 편이다. 여러분이 희생의 밀알이 되면 주님께서 친히 밀알의 눈이 되어 여러분과 더불어 일하여 주실 것이다. 가족을 세우는 사명!! 바로 이것이 천사도 할 수 없는 오직 당신에게 주어진 아름답고 복된 사명이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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