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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결혼] 결혼의 신비 (엡 5: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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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건강한 가정은 건강한 사회의 기반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가정의 기초는 건강한 결혼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몇 주 동안 건강한 가정의 기초가 되는 건강한 결혼관계에 대해서 다루려고 합니다.

성경은 결혼관계를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은 큽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엡 5:31-32)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는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서로 사랑하며 죽음이 그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사는 것이 존경스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복된 결혼 관계를 가꾸어 갈 수 있는지 앞으로 몇 주 동안 살피려고 합니다.

혹시 혼자 사시는 분들께서는 한 달 동안 다른 교회를 다녀야겠다고 마음을 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씀이 꼭 필요한 분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시며 여러분은 그들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다시 결혼할 수도 있습니다. 재혼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관계를 맺는 기술을 익히는 것은 결혼관계말고도 적용할 인간관계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결혼의 비밀을 풀어가는 몇 가지 열쇠를 서론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스스로 자신을 평가해 보실 수 있습니다. 신체적인 건강도 한 해에 한 번 정도는 체크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정상태도 연례적인 점검이 필요하듯이 결혼생활도 검진해 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결혼을 향한 하나님의 이상은 조화와 일치와 친밀함입니다. 그것은 다만 이상이고 우리 대부분은 거기에서 멀리 서 있는지 모릅니다. 이상에서 멀어져서 결혼은 고통이 되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금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도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의도한 바가 아닙니다.

열쇠 1: 의사소통

행복한 결혼을 열어가는 첫 번째 열쇠는 의사소통입니다. 말이 통하면 결혼이 아름답습니다. 모든 관계에 의사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믿을만한 의사소통은 일을 진척시키느니라(잠 13:17, LB)

관계를 발전시키려고 하면 서로 대화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결혼생활에서 생기는 문제의 85%는 의사소통문제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고 저도 알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말이 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시간만 나면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와 마주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쉽지 않습니다. 한 주간 수 십 시간을 텔레비전 앞에서 보내고 부부가 서로 대화하는 시간은 104분도 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꿈 꿀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복된 결혼생활을 영위하려면 의사소통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좋은 의사소통방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데이트하는 커플을 보십시오. 얼마나 열심히 서로 이야기하는지 놀랍습니다. 헤어지면 휴대폰으로 문자를 날리고 집에 오면 컴퓨터로 메일을 주고받습니다.

문자를 얼마나 열심히 보내는지 입놀림보다 손놀림이 더 빠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대화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해도 거의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분위기가 그렇다보니 사이좋게 이야기하며 식사를 하는 중년 남녀를 보면 사람들을 의심스런 눈초리를 던집니다.

의미 있는 대화 어떻게 시작하는 지를 가르쳐주는 아이디어들을 적어가지고 시도해도 잘 되질 않습니다. 게다가 대개 부부들은 대화하는 스타일도 다르고 필요도 다릅니다. 분위기가 좋아야 대화가 쉬운 사람도 있고 사실이 분명해야 대화하기 쉬운 사람도 있습니다.

수치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해야 머리 속에 잘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수치를 들이대면 골치 아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대화를 하는 사람도 있고 열 걸음 스무 걸음씩 대화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통 남자들은 하루 만 오천 내지 이만 단어를 사용하지만 여자는 그 두 배인 삼만 단어를 구사한다고 합니다. 하긴 여자들이 배나 많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남편들이 하도 말을 잘 안 들어서 들을 때까지 반복하다 보니 생긴 후천적 습관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지도를 보지 않는 여자, 말을 듣지 않은 남자”는 지구상 어디나 흔히 볼 수 있는 종족입니다. 아예 매일 시간을 잡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매일이 어려우면 일주일에 몇 시간이라도 별도로 대화를 위해 채쳐둘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의 임무보고를 할 시간을 마련할 때에 제대로 된 관계형성이 가능합니다.

정직하게 대화를 나누고 여러분이 아는 최선의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십시오. 때로는 수수께끼처럼 말하기도 하고 정말 하려고 하는 말을 감추어 놓고 주변을 맴도는 대화를 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뭘 꼭 말을 해야 압니까? 지금쯤은 말 안 해도 알아야 하지요” 그러나 말해도 쉽지 않은데 말하지 않고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주 이기적인 주장입니다. 그러다보면 “우리 남편은 자기 두뇌가 내 머리 안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나봐.”라는 말도 나옵니다.

부부 여러분, 서로 대화를 나누십시오. 아내가 여러분의 마음을 읽어줄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고 남편 여러분은 끝까지 벙어리로 남아있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제발 말 좀 하며 살아갑시다.

열쇠 2: 배려

복된 결혼으로 가는 두 번째 열쇠는 서로를 향한 배려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배려해야 합니다. 배려한다는 것은 여러분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대신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여러분의 배우자가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예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배우자를 존경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돌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서로 서로를 배려하는 것을 배워서 공동체의 삶을 개발하십시오.”(고전 1:10하, 메시지) 왜 서로를 배려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까? 저와 여러분에게는 남을 배려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이기적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필요를 먼저, 나의 상처를 먼저, 나의 욕구를 먼저 생각합니다. 배우자보다도 먼저 나를 챙기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결혼의 목적 중 하나는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주님이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셨기 때문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하게 사는데 있지 않습니다. 물론 행복은 결혼의 유익 가운데 하나입니다만 그것이 결혼의 목적은 아닙니다. 결혼의 목적은 우리가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나면 더 이상 자신만 생각하는 삶을 청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서로를 향한 배려를 배우는 학교입니다. 비이기적이 되는 것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결혼관계를 통해서 잘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 여러분, 우리는 모두 이 면에서 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성경은 명합니다. “남편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도 아내가 여성으로써 자기보다 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사람으로 알고 존중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을 것입니다.”(벧전 3:7)

사랑하는 울산교회 남편 여러분, 여러분이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할 것입니다. 가정에서 식구들에게 군림하고 제 욕심만 차리고 식구들을 괴롭히면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해 주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비이기적이 되는 것은 우리의 삶의 기본 목적의 하나입니다. 삶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것을 배우는 초등학교 과정이 바로 결혼입니다. 복된 결혼 생활을 하기를 원하시면 배우자를 먼저 배려하는 것을 배우십시오.

하긴 우리의 문제는 이것을 모르는 데 있질 않습니다. 오히려 함께 오래 살면 살수록 덜 배려하는 경향에 있습니다. 처음 만나 데이트를 할 때는 뭐든지 “내가 해 줄게”라고 친절을 다하다가 결혼한 뒤에는 “네가 해”라고 말하는 데 있습니다.

결혼이 식어가는 다섯 단계를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결혼 첫 해는 콧물만 흘러도 종합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입원을 시키고 한 주간 푹 쉬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병원음식을 싫어한다고 맛있는 죽을 시켜다 배달합니다.

결혼 둘째해가 되면 “기침소리가 좀 귀에 거슬리네, 의사선생님을 집에 오시도록 부탁해 놓았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셋째해가 되면 현저히 달라집니다. “아니, 또 감기야, 왜 여태 약방에 가서 약을 사먹지 않았어. 가서 약 사먹어, 내가 아이들 보고 있을게”

네 번째 해에 접어들면 “사람이 좀 조심을 해야지 또 감기에 걸렸어, 빨리 아이들 밥 먹이고 목욕시키고 그릇을 씻고 잠자리에 들도록 해”라고 말합니다. 제 오년이 접어들면 “제발, 기침소리를 그렇게 크게 하다니, 텔레비전도 볼 수가 없네, 이 프로 끝날 때까지 좀 다른 방에 가서 있으면 안 될까? 당신 기침소리가 꼭 개 짖는 소리 같아.”

울산교회에 속한 남편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해가 더해 갈수록 아내에게 친절합니까? 더 동정하며 배려합니까? 자신 있는 대답이 안 되는 분은 다음 세 방법을 꼭 배우시길 바랍니다.

1. 도와주십시오.

배려한다는 것은 배우자의 필요를 먼저 보고 도와달라고 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 것입니다. 먼저 “도와줄까?”라고 말하며 주도적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언제나 겸손함과 온유함을 지니십시오.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면서 오래 참으십시오.”(엡 4:2) 서로 도우므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배려입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도움의 손을 내밀고 배우자가 요구하기 전에 도와주는 것입니다.

때로는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다주는 것이나 쓰레기를 버려주는 일도 포함됩니다. 아내가 차를 탈 때 문을 열어주고 두 다리를 다 차안에 올릴 때까지 문을 닫지 않는 것입니다. 배려하는 것은 달리 말해 상식적인 예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2.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배우자의 두려움과 염려에도 마음을 같이하는 것을 배우십시오.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이웃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면서, 유익을 주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롬 15:1)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근거가 있는 것이고 배우자가 염려하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라난 배경이 다르기에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이 틀립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잘 때 문들을 닫는 문제만 해도 생각이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여보, 문단속했어요?”라고 할 때 못들은 척할 뿐 아니라 걱정도 팔자라고 퇴박을 주지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서로 다른 사람들을 부부로 만나게 하신 것은 사람들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을 배우도록 의도하셨습니다.

3. 잘못을 용서하십시오.

여러분은 불완전합니다. 그리고 불완전한 배필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두 불완전한 사람이 만나서 완전한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죄인이 죄인과 만나서 완벽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수없는 용서를, 수없는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관용을 베풀어 언제나 남을 용서하고 원한을 품지 마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을 기억하고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십시오.”(골 3:13) 용서는 결혼을 세워가는 기본적인 벽돌입니다. 그것이 바로 배려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열쇠 3: 타협

결혼 생활을 하루라도 해 본 사람이라도 하면 갈등 없는 결혼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안마다 의견일치를 볼 수는 없습니다.

배우자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또 다른 세트의 시각을 통해서 세상을 보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자라난 배경이 다르고 하나님이 우리를 빚으신 본성이 다르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릅니다. 그러기에 부부는 수천, 수만의 사안에 서로 타협해야 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크고 작은 일들마다 때로는 의견대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중간지대를 찾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타협을 배우지 못하고 싸우기만 하면 파멸하고 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한 가정이 불화하여 갈라지면 그 가정은 망하고 만다.”(막 3:25)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하려면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서로 협상을 할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것을 우리가 자란 가정에서 배우지 못하고 둘러싼 이웃들로부터도 배울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것을 어렵게 배웁니다.

사실 이런 모든 갈등과 충돌의 배후에는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하고,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을 적대시한다.”(잠 18:1)

예, 그렇습니다.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하면 서로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사랑을 가르쳐주는 고린도 전서 13장으로 가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고전13:5) 사랑은 권리를 양보하며 배우자의 필요를 채워주고 그 주장을 수용하려고 합니다.

이제 여름휴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휴가가 오면 아내는 남편과 오붓하게 지낼 꿈을 꿉니다. 남편을 누구와 더불어 휴가를 가질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아내는 남편과 조용한 예배시간을 꿈꿉니다. 남편은 모든 것을 접어두고 휴가 기간만이라도 그냥 쉬고 싶어 합니다.

아내는 아침 일찍 떠오른 해를 바라보고 싶어 합니다. 남편은 휴가이니만큼 푹 늦잠을 자고 싶어 합니다. 아내는 아침 일찍 일어난 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만 남편의 코고는 소리만 들어야 합니다. 그런 부부가 함께 살기 위해서는 타협점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문제, 어디로 휴가를 가는가 하는 문제, 얼마나 시가식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문제, 어떻게 집을 꾸밀 것인지 문제 접촉점을 찾아야 할 것은 많습니다. 밤 시간이 좋은 남편과 새벽시간이 좋은 아내가 서로를 함께 할 수 있는 최상의 시간은 새벽 3시라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새벽 3시, 남편에겐 충분히 깊은 밤 시간이요 아내에겐 충분히 이른 새벽시간입니다.

부부는 그렇게 비이기적이 되고 성숙해 지는 것을 배워갑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인내와 끈기와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 서로가 한마음이 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하시듯 여러분 또한 서로를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롬 15:5)

열쇠 4: 접촉

행복한 결혼에 이르는 열쇠는 의사소통, 배려, 타협, 그리고 접촉입니다. 여기는 신체적인 접촉을, 신체적인 어루만짐과 애정표현을 말합니다. 애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반드시 서로 접촉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피와 살을 가진 사람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피부를 주셨습니다. 몸을 가지고 피부를 가진 것은 접촉을 위해서 입니다. 우리 모두는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신체적인 접촉을 필요로 합니다. 쓰다듬고 안아주고 악수하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신체적인 애정표현을 필요로 합니다. “반갑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할 때 악수도 하십시오. 서로 포옹하기도 하십시오. 잘못하면 교회 말고는 이런 사랑의 접촉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쓰다듬어 주는 것이 부족한 아이들은 죽어간다는 것을 나치는 실험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제공해도 사랑의 접촉을 금지하면 아이들이 죽어나갑니다. 어찌 아이들뿐이겠습니까?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대학에서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만약 아내 여러분이 여러분의 남편을 최소한 하루 세 번 포옹해 주면 남편이 삼년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결과입니다. 내가 그 말을 하자 아내가 “하루 세 번이 아니라 30번씩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그러면 안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자기보다 삼십년 더 오래 살게 되면 아무래도 재혼을 할 것 같아서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포옹은 남편만 오래 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내도 오래 살게 합니다. 포옹은 혼자 할 수 없기에 두 사람 다 정신 건강과 신체적인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하루에 한 번도 포옹하지 않고 사는 부부는 틀림없이 슈퍼맨, 슈퍼우먼입니다. 접촉 없이도 살 수 있는 슈퍼맨인 것을 자랑하지 마시고 빨강 망토를 벗고 사람으로 변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의 접촉을 하면서 살아가십시오.

아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사람은 정말 바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서로 자주 알현하시면 법정에 자주 갈 이유가 사라질 것입니다. 배우자의 사랑을 확보하고 나면 유지하는 데에 신경을 더 쓰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젊은 연인을 보셨습니까? 날씨 상관없이 어떻게 서로 걷고 포옹하고 키스하는지를 보셨지요? 결혼한지가 언젠데 이 더운 날씨에 서로 가까이 할 욕구가 생기냐고 묻습니까?

예, 욕구가 생길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부부로서 마땅한 바를 실천하십시오. 포옹하기도 하고 입 맞추기도 하고 손잡고 걷기도 하십시오. 그러면 연인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손도 잡지 않고 살아간다면 부드러움은 멀어져 갑니다. 사탄이 여러분의 결혼을 짓밟게 됩니다. 도무지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물론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서로에 대한 미운 감정이 남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사랑스런 감정도 성적인 욕구도 느껴지지 않는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감정보다 배우자에게 마땅한 행동을 하셔야 합니다. 감정이란 행동에 뒤따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랑스런 행동을 하시면 로맨틱한 분위기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감정을 기다리기보다 바른 행동을 하십시오. 신체적인 접촉 없이 하루를 보내지 마십시오.

신체적인 접촉은 의사소통이나 배려나 타협처럼 행복한 결혼생활을 열어가는 신비한 열쇠입니다. 물론 결혼에는 성관계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아내도 마찬가지로 남편에게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고전 7:3)

하나님은 여러분의 결혼 생활을 따분한 것으로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무감동하고 시들하고 즐거움이 사라진 결혼을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이란 여러분의 결혼생활의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마치 결혼당사자를 하나로 만드는 접착제와 같습니다.

결혼의 기본목적은 아이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를 영적으로 하나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 아무도 포함하지 않는 두 사람만의 관계를 만들고자 의도하셨습니다.

그래서 결혼 밖에서 갖는 성행위를 금하십니다. 성은 남편과 아내를 하나로 접착시키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지 성경은 말합니다. “성관계는 단지 몸과 몸을 섞는 것이 아닙니다. 성은 신체적인 행위인 것만큼 영적인 신비입니다. ‘둘이 한 몸이 된다.’고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고전 6:16)

결혼 생활은 사업상 함께 하는 것과 다릅니다. 그리고 편리하거나 경제적이어서 남녀가 한 집에 지내는 것은 아닙니다. 성숙한 성도에게는 너무 피곤해서 성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 계속되는 변명이어서는 안 됩니다.

열쇠 5: 헌신

결혼 관계를 단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이 아니라 헌신입니다. 건강한 남녀 두 사람이 이상적인 환경 속에 있다면 서로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키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혼의 본질은 아닙니다. 결혼과 동거의 핵심적인 차이는 서로를 향한 헌신입니다.

하나님은 결혼한 부부들이 서로를 향한 헌신을 기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꾸짖습니다. “나는 이혼하는 것을 미워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아내를 학대하는 것도 나는 미워한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명심하여 아내를 배신하지 말아라.”(말 2:16)

물론 우리는 이혼이 드물지 않는 현실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혼이란 고통스런 경험을 겪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우리는 찬양합니다. 그러나 결코 이혼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으로 만나 결혼하고 결혼서약이 신실하게 지켜지기를 바라십니다. 살면서 그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신실하게 끝까지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죽음이 둘을 나눌 때까지 신실하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이혼을 하나의 선택으로 생각하면 결코 굳건한 결혼을 만들어 갈 수 없습니다. 이혼은 결코 문제만 생기면 도피하는 도피성이 아닙니다. 이혼을 떠올리기 시작하면 결혼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혼을 하셨으면 이혼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혼이란 열쇠를 감추어두고 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품속에서 끄집어내어 멀리 던져버리십시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원하시면 깊숙이 바다 깊이 던져 버리십시오. 결코 선택사항으로 남겨두지 마십시오.

결혼이란 “죽음이 두 사람을 나누기까지”, 한평생 지킬 인격적 약속이고 헌신입니다. 헌신한다는 것은 우선 보면 불편하기도 합니다. 성가시기도 합니다. 잠깐 동안은 불만족스럽고 불행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멀리 보면 서로를 향한 헌신만이 행복을 가꾸는 첩경입니다. 헌신으로 물을 주고 가꾸면 푸르게 자랍니다. 복된 결혼을 원하십니까? 지금 여러분의 헌신으로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언제나 헌신의 자리에 머무시기 바랍니다.

우린 31년 넘게 살아왔습니다. 돌이켜 보면 위기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한 번도 이혼은 선언하고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감사합니다. 31년이 지나서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헌신이 있었기에 점점 더 풍성해지고 값진 보상을 받을만한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가운데 3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해 오신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의 신실함에 박수하고 싶습니다. 누군들 어떻게 문제가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습니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까지 신실하게 결혼서약을 지킨 것은 칭송받을 만한 일입니다.

열쇠 6: 그리스도

결혼을 굳건하게 세우는 데 필요한 세 가지 기둥이 있습니다. 둘만으로는 설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배우자, 그리고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두 발 의자는 설 수 없습니다. 두 발 기둥은 설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두 사람만의 결혼생활은 항상 불안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행복한 결혼생활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열쇠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사랑으로 결속되어 마음에 격려를 받음으로써 풍부하고도 완전한 이해력을 갖게 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골 2:2,3)

살다보면 지진도 만납니다. 지진이 일어날 때 굳건한 기반을 갖지 못하면 무너집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과 저의 결혼생활에도 굳건한 기반이 필요합니다. 우리 생에는 건강이란 지진이 덮치기도 합니다. 재정적인 지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감정적인 지진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 모든 문제와 스트레스가 덮쳐도 생의 기반이 든든하면 쓰러지지 않습니다. 무엇이 우리 삶에 기반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굳건한 반석 되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고 찬양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과 결혼생활을 그 분위에 세워야 확실합니다.

결혼생활을 보장 받는 최선의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건강한 결혼생활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경건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이 성숙한 남편과 아내는 행복한 결혼을 보장받습니다.

자신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삶을 주께 헌신하십시오. 소그룹에 꼭 속하십시오.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복된 결혼생활을 열어가는 나머지 다섯 가지 열쇠를 항상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의사소통, 배려, 타협, 접촉, 헌신입니다.

복된 결혼 생활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는 것도 어렵지만 결혼은 더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복된 결혼 생활을 이룬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귀한 축복의 자리에 들어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정근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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