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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제] 나를 치료하신다 (막 5: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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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설교말씀제목은 ‘나를 부르신다’이었지요. 그리고 지난 주간에 꼭 우리가 시작할 엑소더스 운동 한가지를 말씀드렸지요.  ‘관심의 표현 한가지’를 꼭 하자는 것이었지요. 이방의 땅 그늘진 백성이었던 사람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신 주님의 관심의 표현이 제자들의 일생을 바꾼 것을 기억합니다.  ‘관심의 표현’을 하는 엑소더스 운동은 지난 한주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관심의 표현 엑소더스 운동을 할 일이 많지요.  이번에 곳곳에서 많은 이재민들이 수재로 인한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수재를 당한 이웃에게 우리가 관심의 표현을 하는 엑소더스 운동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수재헌금 봉투를 받으셨지만 자유롭게 오늘도 이번 주간도 다음 주일에 수재헌금을 하시면서 관심의 표현운동에 동참하시면 됩니다.  전에 태풍 매미가 남쪽 지방을 휩쓸었을 때 거제도의 교회가 태풍에 날아갔지요.  우리 교회에서 그 교회를 돕는 일을 했는데 그 후 그 지역의 노회와 거제도의 교회가 늘 왕십리교회를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관심의 표현이 늘 우리가 무정, 무관심에서 엑소더스 하고 엑소더스 시키는 운동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제목은 ‘나를 치료하신다’입니다.

치유의 고백이  필요하다

엑소더스 운동의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치유의 고백’입니다.  나를 치유하신다, 나를 고치셨다, 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저는 이 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특별히 병약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제 나이로는 꽤 기운도 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팔씨름을 하면 반에서 두번째 세번째는 갔습니다. 다른 반 아이들이 저하고 팔씨름을 하자고 오면 함께 팔씨름을 하곤 했습니다.  수평 철봉 역기 아령 이런 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중학교 때부터 식사를 제 때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밤에 늦게 집에 와서 식사를 한다든지, 하면서 끼니를 건너는 일이 많았습니다. 자연히 위장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3학년 때 위궤양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신경성 위장병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산악반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는데 그래서 저는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위장이 점점 나빠지다가 결국 대학교3학년 때 저는 위가 터지고 복막염이 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생명은 건졌지만 그러나 늘 위장이 좋지 않았습니다.  매운 것 짠 것 튀긴 음식 이런 것을 먹으면 속이 좋지 않았습니다. 노루모산 암포젤 같은 것을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군대에 가서 월남전 참전하려고 하던 직전에 다시 위장병이 심해지면서 군대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진단 결과는 신경성 위장병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신앙의 열심을 냈지만 그러나 마음에 평안을 그렇게 갖지를 못했습니다. 늘 걱정이 있었습니다.  수심이 있었습니다. 늘 돈 문제를 인해 걱정이 많았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이 돈을 해결하나, 이런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늘 쪼달렸습니다.  그러면서 신경을 쓰는 일이 많아지는 가운데 세월을 보냈습니다.  결국 저는 위장병 때문에 고생을 하는 일이 끊어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마음에 믿음이 들어왔습니다.  평안을 구하자, 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평안한 마음을 기도했습니다.  주님께 맡기는 신앙을 간구했습니다. 제 몸에 안수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신학교 때 허리를 다쳐서 디스크가 왔습니다. 늘 허리가 좋지 않아서 불편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매년 한두 차례씩 꼭 크게 앓았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이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장8절), 이 말씀이 믿어졌습니다. 그렇다 내 손도 주님의 지체가 아니냐, 그렇다면 내가 내 몸에 손을 얹어보자 내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몸에 안수를 했습니다. 치유와 평안을 기도했습니다. 체질이 바뀌기를 기도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효과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제 몸에 안수기도를 하고 나서
도 여전히 아팠습니다.  여전히 속이 좋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허리가 아팠습니다.  그런데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이에 제가 물론 식사를 조심했지만 그렇게 큰 불편없이 어떤 식사든 잘 했습니다.  허리도 어느 때부터 아픈 통증을 못 느끼게 되었습니다. 허리가 좋아진 것은 근래 몇 년 째입니다.  신기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고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치유하신다,고 말입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조심스럽습니다. 자만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제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제 허리에 가끔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주여 건강한 체질로 체질을 바꾸어 주옵소서.  저는 기도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치유를 주심을 믿고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치료하신다, 는 치유의 고백은 우리의 삶에 반드시 있어야 할 큰 신앙의 고백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 병이 있을 때 아직 체질이 약할 때 아직 문제가 있을 때 주님의 온전하신 치유를 믿는 고백을 하는 일입니다.  주님의 치유의 능력이 내게 닿는 일을 기도하며 행하는 일입니다. 지난 번 말씀드린대로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하늘에 완전한 우리의 몸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리의 집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옷을 입혀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건강한 몸, 새 몸을 옷 입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께 기도하면서 주여, 주님이 우리에게 그 옷을 입혀 주옵소서, 우리의 체질을 바꾸시는 일을 해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나를 치료하십니다, 라는 믿음의 고백으로 치유의 고백을 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4: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우리는 혹 병이 이 땅에서는 낫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병이 더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병의 장애를 통해서 육신의 치유든지 아니면 그 이상의 영혼의 치유 인생의 치유를 목적하시면서 우리를 고쳐나가십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그 언젠가에는 온전한 부활의 치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병과 장애를 짊어지신 예수님

우리 주님은 이런 인생의 장애, 병의 짐을 짊어지시고 이 땅에 오신 구주가 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마8:17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저는 지난 주간에 한가지 놀라운 일을 깨달았습니다.  지난 목요일에 포천에서 장애인을 위한 집회가 있었습니다. 우리 교우들이 찬양을 하며 봉사하는 일도 있고 또 우리 교회가 지원하는 단체들이기도 하고 또 제가 설교를 부탁받기도 해서 가 보았습니다.  장애인들이 모인 곳에서 설교를 하려고 강단에 올라가있으면서 찬양하는 장애인들을 보았습니다.  분명히 장애인들이고 그냥 외모를 보아도 몸에 또는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어보이는데 찬양하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깊은 감동을 주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일어나 찬양도 하고 춤추기도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기뻐하는 그 영혼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처음에 그 강당에 앉아 있는 분들을 전체적으로 보았습니다. 숲을 보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얼굴을 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보이고 눈이 보이고 눈빛이 보였습니다.  그러자 전에 백두산에서 밤을 지낼 때 하늘의 별들이 가득할 때 구름이 덮이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하늘에 별
이 온통 가득한데 구름이 덮이니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구름이 지나가면서 마치 합창하듯이 별들이 쏟아질 듯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천국의 연못을 보며 별의 바다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구름이 덮이다가 다시 지나가곤 하는 가운데 나타나던 그 별들의 합창.  저는 그 별들이 구름이 덮이더라도 여전히 존재하고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오히려 구름이 덮히는 일이 그 별들을 더욱 더 빛나게 느끼게 하고 감동있게 찬양하게 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들의 장애도 때가 되면 지나갈 것이요 그들이 주님이 주신 형상으로 회복되어 나타날 때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셨을 때 장애인이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 어디나 계시고 천지를 지으시는 능력을 가지신 , 그 분이 사람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 자체가 장애를 가시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과 비교
할 때 그분은 물론 온전한 건강한 모습을 가지신 분이지만 그러나 주님의 모습을 또 한가지 비유한 것은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다 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그런 면에서 장애가 있는 인생을 사시면서 배고프셔야 했고 다니시는 거리에 제한도 있으셨고 피곤도 하시고 그리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장애의 시간을 보내시면서 우리들의 장애, 우리들의 문제를 맡으셨구나, 라는 깨달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분이 장애인이 되셨구나 우리를 위해서!  저는 여기에 생각이 이를 때 주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 주님이 나를 위해 장애를 가지시고 나의 장애를 푸시는 일을 하셨구나, 때로는 내가 장애를 가지고도 감사해야겠구나 주님같이 다른 사람의 어떤 장애를 푸는 일에 나의 불편함 고난 역경 때로는 육체의 연약함이 쓰이는구나, 그러다가 내가 치유되는 일이 또 많은 사람의 치유가 될 수 있겠구나, 주님께서는 장애를 주셔도 병을 주셔도 치유하시는 일이 결국 목적이시다,
라는 깊은 깨달음이 왔습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마8:17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성경은 예수님의 사역을 세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4장23-2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첫째 가르치시는 일, 둘째 전파하시는 일, 셋째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일 세가지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병고치시는 일이 큰 소문을 내었습니다. 
마4: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마4: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주님의 병고치심은 많은 사람을 예수님께 오게 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이 나중에 떠나는 사람들이 되었지만 그러나 다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회개하면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치유는 그들에게 큰 은혜의 감동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로 예수님께로 모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연약한 체질과 병을 짊어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시는 분이십니다.  출애굽기15장22-26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왔을 때 그들에게 마라의 쓴 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물을 보고 마라, 즉 쓴물,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냥 쓴 것이 아니라 독하다는 뜻인데 바로 마시면 죽는 사망의 물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자가를 상징하는 나무를 그 물에 던지게 하셨고 그 물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출15:26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혈루증에서 엑소더스한 여인이야기

주님은 우리를 치료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여인은 12년 동안을 혈루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5: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고자 했으나 돈은 다 허비되고 낫지도 않고 병은 더 중해졌습니다.

5:26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세상에서 우리는 문제를 겪을 때 전문가를 통해서 도움을 받아도 안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괴로움이 더하고 시간과 물질은 허비됩니다.  그리고 문제는 더 중해집니다.
몸의 병만이 아니고 정신적 병이 더 깊어집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예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치유의 소문
먼저 예수의 치유하시는 소문이 이 여인의 인생을 바꾸는 첫 단추였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치유하시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로마서10장17절 말씀같이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듣게 해야 합니다. 주님의 소문을 퍼뜨려야 합니다.  전해야 합니다. 로마서10장14절 말씀에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하셨습니다. 전파하는 일, 소문을 내는 일. 이 것이 중요합니다.  그 여인에게 예수님의 소문은 중요했습니다. 그 여인의 인생을 바꾸는 소문이 되었습니다.  저도 대학교 때 친구가 와서 우리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 그러니 와 봐라, 하는 그 부흥회 소문 때문에 제가 교회를 다시 나갔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치유의 소문이 나는 교회되기를 바랍니다.  이 여인은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로 다가왔습니다. 온 몸이 힘이 없는 가운데 결사적으로 예수님께 다가온 것입니다. 

5: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치유의 믿음과 표현
이 여인에게는 예수님의 치유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그리고 믿음의 행동, 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5: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이런 믿음과 행동은 동전의 양면 같이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의 중요성을 압니다. 그래서 출애굽운동 엑소더스 운동을 구체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지난 주에는 ‘관심의 표현’을 하기로 했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고 하신 주님이 이방의 땅, 그늘진 백성에게 나타나시고 부르신 것 같이 우리는 병든 자를 찾고 그 곁에 서는 일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우리는 주님 곁에 다가오고 주님을 믿는 믿음과 그 고백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대부분 환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온 경우에 일어났습니다.  우리 교회도 주의 종으로부터 안수기도를 받으려는 간절한 모습들을 봅니다. 주님은 그런 간절함과 믿음의 표현을 통해서 기적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이 여인은 그렇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댈 때 그 여인이 댄 옷은 옷자락이고 그 옷자락은 청색끈이 매여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그 능력을 나타내는 청색끈이었습니다. 

기억의 청색실 같은 예수님의 십자가은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옷을 입을 때 그 겉옷 코트 소매 끝에는 옷술이 달려있었습니다.  보통 히브리어로 치치트, 라고 불리우는 옷술인데 겉옷 소매 네 모퉁이에 달았습니다. 겉옷 소매가 둘이니까 그 둘의 양쪽 끝에 달았으니 네개의 옷술을 단 것입니다.  옷술의 색깔은 보통 단청색, 혹은 보라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옷술이 흩으러지지 않도록 청색실로 끈을 해서 묶어놓았습니다.  이 청색끈으로 묶인 옷술을 이 혈루증 앓던 여인이 만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입고 계신 겉옷가의 청색실, 그 곳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왜 이런 믿음을 가졌을까요?  왜 겉옷가를 만지면 된다는 믿음이 들었을까요? 그 여인 만이 아니고 예수님의 옷 가의 청색실에 손을 댄 다른 사람들도 그곳에 손을 댔을 때 병이 떠나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병자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의 겉옷 가에라도 손을 댈 수 있기를 간구했고 그렇게 손을 댄 사람은 다 나음을 입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마14:34 저희가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마14:35 그 곳 사람들이 예수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마14:36 다만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왜 그 청색실이 이런 능력을 나타내는데 쓰였을까요?  바로 그 청색실은 기억의 청색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억의 청색실.  즉 그 청색실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만이 아니고 그 이전에 살고 있었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 무엇인가를 기억하게 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나 여러 병에 걸렸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겉옷가의 청색실을 만지려고 한 이유는 그 청색실이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억하는 하나님은 출애굽의 큰 구원을 이루신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찬송가 200장 1절을 불러봅니다.

(1)주의 피로 이룬 샘물 참 깊고 넓도다 구원하는 크신 능력 다 찬송할지라 (후렴)
찬송하세 주의 보혈 그 샘에 지금 나아가 죄에 깊이 빠진 이몸 그 피로 씻어 맑히네

구원하는 크신 능력! 우리는 이 큰 구원의 일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신 명령이 나옵니다.  대대로 옷 단 귀퉁이에 옷술을 만들고 청색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는 명령입니다.

15:3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5:38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 청색실로 묶인 옷술이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출애굽 때의 그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청색실이었습니다.
출15:26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예수님의 옷자락 끝에 있는 청색실을 바라보며 출애굽의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이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음을 믿으면서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 청색실에 손을 댄 것입니다. 그리고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그 몸에서 치유를 체험한 것입니다.

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이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여인의 믿음과 행동을 따라서 그리고 주님의 옷의 청색끈을 따라서 주님의 치유하시는 능력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5: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아무리 우리가 믿음이 있어도 행동을 해도 주님의 청색끈이 있어도 주님의 능력은 능력입니다.

주님께서 치유의 능력이 나온다

성령의 능력, 치유의 능력은 따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그 능력이 나왔기에 치유된 것입니다. 치유의 능력이 있으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능력을 성령의 역사와 그 증거, 그 표현의 선언인 말씀으로 나타내시는 것을 압니다. 교회를 통해서 그리고 주님의 일꾼들을 통해서 나타내십니다.  주님은 그 능력을 아시고 성령으로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많아도 주님은 그 능력을 느끼고 계셨습니다. 성령의 치유의 움직임을 아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이해 못하고 질문합니다. 사람들이 다 미는데 누가 특별히 따로 주님에게 손을 댄 것이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손을 댄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5: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5: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이 일. 즉 믿음으로 주님께 손을 내밀고 주님을 만난 여인입니다.  주님은 믿음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을 찾습니다. 주여 십자가와 그 부활의 능력으로 저를 치유하옵소서, 믿습니다, 라는 고백과 표현을 기다리십니다. 주님이 치료하십니다, 라는 평안의 믿음, 치유의 고백을 원하십니다.  주님은 십자가로 우리의 질병도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이제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면서 주님의 십자가, 못자욱 있는 그 흔적에 손을 대는 일을 하는 셈이 되면서 주님의 치유하시는 능력이 십자가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먼저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내 병을 짊어지셨다는 믿음의 고백, 치유의 고백을 이 여인은 했고 그리고 치유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 앞에 그의 체험을 고백하며 간증합니다.

5:33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주님은 정확하게 그 치유의 원인을 밝히십니다.  네 믿음이다, 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그분의 공로를 여인에게 돌렸습니다. 

5: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병에서 놓이는 일은 엑소더스입니다. 우리는 병에서의 엑소더스 운동을 해야 합니다. 
미국 훌러신학교의 교수이며 선교학자로 유명한 랄프 윈터 박사는 선교의 전방을 개척하자고 하면서 병을 물리치는 일을 선교의 또 하나의 전방개척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전방에서 육신 만이 아니고 영혼의 치유, 생활의 치유를 함께 생각하는 전방위 치유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말로 치유하고 약으로 치유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능력 성령으로 치유하는 일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치유를 가장 우선 순위에 두고 그리고 모든 치유의 방법을 동원하는 행동, 즉 여인이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와서 주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기를 원한 것 같이 주님이 쓰시는 모든 방법을 통해서 치유되는 은혜를 구하여야 합니다. 단, 중요한 것은 주님이 성령으로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유를 구해야 합니다. 믿고 구해야 합니다. 

먼저 모든 치유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버드의대 출신 의사인 앤드류 와일(Andrew Weil) 교수는 그의 책 ‘자발적 치유’(Spontanous Healing)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많은 환자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기도로 인해 굉장한 효과를 나타냅니다. 먼저 환자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환자가 기도의 대상이 된 것을 모르는 경우에도 기도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기도는 치유의 고백을 위해 중요한 도구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 왕과 그 가족이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는 병으로 징계를 받을 때 치유를 기도했고 그 응답을 받았습니다.
창20:17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자녀 생산도 치유입니다.
또한 상한 마음도 치유될 수 있습니다.
시147:3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영혼의 치유, 마음의 치유와 인생을 치유하시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경우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로 주님이 허락하시면 어떤 질병이든지 막힘이든지 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치유를 기도해야 합니다.

사38:16주여 사람의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 있사오니 원컨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

구제가 치유입니다

또한 진정한 금식, 참된 금식의 한 방법으로 구제하는 일이 금식과 같으며 구제를 통해서 우리는 큰 치유를 상급으로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어제 군목 목사님이 오셔서 함께 식사를 하려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어떤 분이 우리 교회에 50년 전에 다니셨는데 무언가 전달할 일이 있으시다고 담임목사님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실에 가 보았습니다 우리 교단 동현교회의 임경자권사님이신데 50년 전에 우리 교회를 다니실 때에는 10대 소녀였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활이 어려운데 우리 교회가 이곳에 고등공민학교를 하면서 자기 공부를 시켜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늘 기억하면서 이제 50년 세월이 지났는데 조금이라도 그 때 일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고 하시면서 헌금을 갖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저와 같이 아버지가 안계시면서 공부하는 학생에게 전해 줄 수 있으면 좋
겠습니다, 라고 하더군요.  그 때 고등공민학교를 다니게 한 그 고마움을 50년이 지나도록 잊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 교회가 정말 인재양성을 위한 학교의 전통을 살려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구제는 새로운 인생들을 치유하면서 더 큰 치유의 파문을 일으킬 줄 믿습니다.  구제는 치유의 은혜를 끌어당긴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58: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58:8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이 치유의 폭은 넓습니다. 주님은 가족과 이웃 그리고 그 주위를 고치실 수 있습니다.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렘33:6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명령에 순종하면서 십의 일조를 내고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때 즉 불순종과 교만에서 엑소더스를 할 때 주님의 치유하는 광선이 우리를 고치십니다.

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주님의 이름을 믿고 높이며 그 분께 치유하심이 있다는 고백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치유의 광선을 발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생활 속에서 주님을 순종하며 생활 속에서 주님의 치유를 고백하며 생활 속에서 주님의 고치심을 전파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셨고 우리와 같은 장애를 경험하셨고 그리고 우리를 짊어지시고 우리의 삶 속에서 치유의 엑소더스를 일으키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저의 삶을 치료하여주옵소서. 단지 육신의 병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먼저 더 중요한 것을 치유하시기 위해서 즉 우리의 영혼의 잘못된 것을 고치시기 위해 생활에 문제가 일어나고 몸에는 병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선순위가 바로잡히는 일이 먼저 되면 우리는 놀랍게도 병의 치유가 온 몸과 생활에 다 나타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정말 이 기도의 응답이 옵니다.

요한삼서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먼저 영혼의 치유가 되어야합니다. 그 치유는 주님이 나를 고치신다는 믿음의 치유로 시작됩니다.  삐뚤어지고 부정적이고 안된다고 생각하고 안하실거야 라고 생각하는 부정적 믿음을 치유하는 일이 그 첫째입니다.  영혼의 치유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향해서 먼저 외쳐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향한 엑소더스 운동을 해야합니다. 

주께서 나를 치료하신다! 이 고백부터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른다.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나는 먼저 나의 몸에 손을 얹는다, 주께서 손을 얹어 주시리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제 우리는 관심의 표현의 엑소더스 운동을 통해서 이웃에 구제할 때 주님의 치유의 광선이 우리를 비취심을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먼저 우리 영혼을 향해서 외치시면서 우리 몸에 안수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나를 치료하신다, 라고 고백하면서요. 그렇습니다. 주님은 이 시간에 치유를 원하십니다. 나를 고치십니다. 치유의 엑소더스.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이제 주님의 치유를 가장 우선시하는 믿음의 엑소더스를 해야 합니다. 주님, 치유하소서.  예수님의 보혈의 피는 우리를 씻고 영혼을 고치십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연약함과 질병을 담당하신 큰 은혜를 체험합니다. 주여, 십자가로 나를 치료하소서, 나를 치료하십니다.  이 치유의 고백으로 영육의 병, 인생의 병, 가정의 병, 병든 인생의 그늘에서 온전히 탈출하는 엑소더스하는 은혜를 받고 엑소더스의 파문을 일으키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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