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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금으로 고루게 함과 같은 말 (골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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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골 4:6상)

  사람은 말을 통하여 사상이나 감정이나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합니다. 어떻게 보면 말은 자기표현이고 인격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은 바르고 가치 있게 사용함으로 나눔과 이해의 풍요를 간직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잘못 사용될 때도 있습니다. 잘못된 말은 오해와 함께 분열 아픔을 만들어내어 인간됨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인간성을 파괴하게 하기까지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되는 것을 봅니다.   
  말의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말의 표현방식은 말하는 사람을 설명하는 요인입니다. 그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주위에 축복을 전하거나 실현하기도 하고 저주와 불행을 만들기도 합니다.

  성공한 사람의 배경에는 반드시 성공을 만들어준 말이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의 배경에는 반드시 행복을 만들어준 말이 있습니다. 말은 보이지 않지만 무한한 창조력과 힘을 가진 에너지입니다. 마치 태양 에너지가 모든 생물을 살게 하듯이 말도 사람의 모든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생명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천지창조는 하나님의 말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능력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의 권세를 혼자만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인간을 만드시고 그 인간에게 말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 만들어 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들 가운데 말의 권세가 들어 있는데 인간에게 그 말의 권세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침에 예루살렘 성전을 올라가시다가 길가에 있던 무화과나무에 다가가서 열매를 얻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막 11:22-23)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음날 아침 다시 그곳을 지나가다가 무화과나무가 뿌리까지 말라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놀란 베드로는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보시옵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그 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 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2-23)   

  예수님은 이 말씀 속에서 누구든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 질 줄을 믿으면 산도 옮겨 바다에 들어가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말에 권세가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말 속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힘과 영향력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몸과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움직이고 변화시킵니다. 말에 따라 우리의 성격과 자아상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삶의 환경을 바꾸어 놓기도 하고 하나님과의 믿음의 관계를 바로 세워 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말의 표현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의 말의 표현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을 실현하기도 하고 그 축복을 깨드리기도 합니다. 말의 표현에 따라 주위에 위로와 기쁨과 용기를 주기도 하고 아픔과 실망과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서에는 말에 대한 강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 찌어다”(시 34:13)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골 3:17)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가운데서 말의 표현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개역;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여러분의 말은 소금으로 맛을 내어 언제나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마땅한지를 알아야 합니다.”(새번역)
  소금을 고루게 함과 같은 말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말입니다. 우리의 말은 소금과 같이 맛을 냄으로 은혜가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 소금으로 맛을 내는 말은 어떤 말입니까?   
 
  깨끗한 말입니다.

  구약성서에 보면 소금은 정결하게 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겔 16:4) 깨끗한 언어는 건강한 분위기와 가치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냅니다.
  깨끗한 말은 경건의 말임과 동시에 진실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양이 있습니다. 상스러운 말들은 우리의 삶을 상스럽게 만듭니다. 상스런 말을 즐겨하는 사람은 인격도 상스럽습니다. 그리고 주위환경을 상스럽게 만듭니다. 경건한 말은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온전하게 세웁니다.  거짓말은 진실을 왜곡시키고 불신감을 조성하여 우리의 삶을 거짓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약 3;14-15)

  거짓말에는 새까만 거짓말이 있고 새빨간 거짓말이 있고 하얀 거짓말이 있다고 합니다. 새까만 거짓말은 사람들을 속여 어떤 사실에 대해 포장하고 과장해서 진실을 왜곡시키는 거짓말을 말하고, 새빨간 거짓말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손해를 주는 말을 말하고, 하얀 거짓말은 오히려 유익을 주며 의와 선을 이루는 거짓말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은 결코 상스럽거나 거짓됨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경건하고 진실했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말과 진실을 말을 하는 곧 깨끗한 말을 하는 자의 편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말을 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깨끗한 말을 할 때에 사람을 얻고 하나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맛을 내는 말입니다.

  소금은 맛을 냅니다. 소금을 알맞게 뿌리듯이 맛을 내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맛을 내는 말 때문에 즐겁고 행복합니다. 맛을 내는 말을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화목의 사람이고 평화의 사람이며 기쁨의 사람입니다.
  맛없는 말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밥 맛 없는 놈’이라고 합니다. 맛없는 말을 하는 곳에는 행복의 그림자도 찾기 힘듭니다. 
  맛있는 말은 인정하고 격려하고 칭찬해주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이고 겸손한 말입니다. 이런 말은 사람들에 대하여 그 사람들을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로 가치를 주면서 표현하는 말입니다.
  요즈음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가지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못생겼어’, ‘우습게 생겼어’, ‘별 볼일 없어’ 라면서 함부로 평가 합니다. 하나님의 값진 대상으로 태어난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맛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여리고 성의 세리장인 삭개오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삭개오는 로마정부를 위해 세금을 거두고 부정의 상징인 세리로서 동족들로부터 따돌림 받았습니다. 키가 작아 놀림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 삭개오를 지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와 함께 먹고 자겠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인정과 격려와 듣고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정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기쁨 속에 자신의 재산을 팔아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삭개오를 칭찬하시며 이런 결심을 한 삭개오를 향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후에 삭개오는 분명히 아브라함의 후손처럼 살았을 것입니다.   

  인정하고 격려하고 칭찬해주는 말은 맛있는 말입니다. 맛있는 말은 변화와 함께 즐거움과 기쁨을 만들어 내고 행복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또한 겸손한 말은 맛있는 말입니다. ‘미안 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게 됐군요’ 이런 말들은 맛있는 말입니다. ‘야, 임마,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이냐’, ‘그래도 내가 왕년에 한 가닥 했던 사람이야. 건방지게 어디서 까불어’ 이런 말들은 정말 맛없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백부장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백부장은 자기 종이 병들어 죽게 되자, 가까이 지내던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보내어 종을 구해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에 백부장은 그의 벗들을 보내어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주님, 더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내 집에 모셔 들일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께로 나아올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셔서, 내 종을 낫게 해주십시오. 나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어서,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고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고 하면 옵니다. 또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합니다."(새번역/ 눅 7:6-8)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말을 들으시고 놀라워하시면서 "나는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는, 아직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심부름 왔던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서 보니, 종은 나아 있었습니다.(막 7:6-10)
  백부장의 겸손한 말은 주위에 맛을 내고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맛있는 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정하고 격려하고 칭찬해주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과 겸손한 말로 맛있는 삶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치유의 말입니다.

  소금을 고루게 함과 같은 말은 부패를 막는 말입니다. 아픔의 말은 사람의 마음과 환경을 상하게 하여 부패하게 합니다. 마음이 상하고 썩지 않도록 하는 말은 용서하고 위로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말들은 상처로 썩어져 가는 마음과 환경을 새롭게 치유하는 말입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실체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음은 실재합니다. 이 마음은 주로 느끼는 일을 합니다. 슬픔이나 기쁨, 괴로움과 즐거움, 답답함과 상쾌함,  좋고 나쁨을 느끼게 합니다.
  마음은 말과 유기적 관계에 있습니다. 내게 기분 나쁜 말을 하면 마음이 미움으로 가득 차고 기쁨과 사랑의 말을 하면 마음이 흐뭇해지고 즐거워집니다. 그러므로 용서와 위로와 사랑과 감사의 말은 우리를 새롭게 회복시키고 치유합니다.

  인간의 삶을 상하고 썩어가게 하는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입니까? 용서하지 않는 것이고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 가운데 보면 마음 깊은 곳에 ‘무시 받고 거절되었다는 감정’이 있습니다. 이 감정은 깊이 숨어 있으면서 마음을 상하고 썩게 합니다. 그럼으로 인격에 흠이 생기고 인간관계에 질병이 생깁니다. 이런 무시 받고 거절되었다는 감정은 용서의 말과 사랑의 말을 할 수 있는데서 치유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는 용서와 사랑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기에 이 십자가는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치유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 5:4)고 했습니다. 불평은 쓰레기와 같습니다. 쓰레기가 쌓인 곳은 온갖 더러운 파리 떼가 날아옵니다. 감사는 꽃과 같습니다. 꽃이 피는 곳에는 나비가 찾아와 춤을 춥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인생에 나비를 부르지 않고 파리 떼를 부르고 있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67세 되는 해에 그의 연구실이 화재로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200만 달러의 실험장비와 평생 연구한 귀중한 자료들이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에디슨은 잿더미로 변해버린 연구소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잘못된 것은 다 불타버렸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말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지배합니다. 환경과 운명도 지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말입니다. 흙탕물이라도 계속 맑은 물을 부어 넣으면 흙탕물은 사라지고 깨끗한 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 감사의 말을 부어 넣으면 감사의 삶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용서와 위로와 사랑의 말과 함께 감사의 말로 우리자신과 주위의 환경을 새롭게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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