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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행하라 (약 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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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병이 듭니다. 현대의학이 못 고치는 병이 많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마음이 병들어 우울증에 빠집니다. 가정이 파탄 나고 사업이 망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 병입니다. 그러기에 신자들은 교회에 나옵니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역경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극복하려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예배 참석하고 기도에 마음을 모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중병을 해결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저 막연히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리라.” 때로는 그러한 곤경이 축복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구원은 영혼에 관한 것이고 육신은 고통을 당해도 할 수 없다고도 여깁니다. 이런 생각들은 해결에 도움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엄청난 힘을 사용 못하도록 마음 구석에 방치할 뿐입니다.

모든 치유는 이미 구원 속에 다 포함이 되어있습니다. 평안하고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도 역시 구원 받은 사람은 다 받았습니다. 앞으로 받는 게 아니라 이미 받았습니다. 경험하지 못하는 분은 단지 이것을 적용하는 법이 익숙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것을 본문은 행함이라고 합니다. 병 고치는 법이나 다른 문제 해결하는 법이나 근본은 같습니다.

냉장고에 음식이 있는 줄 믿으면 굶지 않습니다. 꺼내 먹지요. 옷장에 옷이 잘 세탁되어 있는 줄 믿으면 더러운 옷을 입지 않습니다. 자기 속에 건강과 기쁨과 풍요로움이 있는 줄 믿으면 거기 맞추어서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행동하라고 합니다. 구원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왔습니다. 필요한 것이 다 있습니다. 어떻게 사용하면 될까요?

1. 내 것 아닌 것을 구분하라

옛날 군대 갈 때는 내의를 집에서 가져갔습니다. 모든 게 부족하던 시절입니다. 어머니가 빨간 실로 내의 한 구석에 작은 십자가를 수놓았습니다. 이것이 다른 병사의 내의와 구별하는 방법입니다. 어느 날입니다. 고참 병사가 다 헤진 내의를 제 것이라고 내밀었습니다. 어머니가 주신 새것을 자기 것이라고 합니다.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 표시를 보여주며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 것은 모두 십자가 표시가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너무도 분명한 말에 고참도 아무 말 못하고 물러갔습니다.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들의 물건에는 십자가 표시가 붙어있습니다. 마귀의 것은 없어요. 더럽고 악합니다. 그것을 내 것이라고 억지로 입게 합니다. “그런가?”하고 받아들이겠습니까?

대부분의 신자들이 병을 자기 것으로 말합니다. “내 병.” “내 천식.” “내 관절염.” “내 당뇨.” 병뿐이 아닙니다. “내 성질.” “내 슬픔.” “나의 억울함.” “내 실패.” “내 가난.” 불신자들은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이 죄의 결과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모든 결핍과 저주는 사망의 다른 모습입니다.

신자는 달라요. 예수께서 다 가져가셨습니다. 얼마 전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란 영화 보셨지요. 하나님 아들이 당하는 수난의 일부를 묘사했습니다. 너무 무섭고 잔인하게 맞고 찔리고 죽습니다. 죽으며 하는 말이 “다 이루었다”입니다. 구원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죄로 인해 오는 사망, 사망의 다른 모습인 고통과 저주를 대신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신자가 할 행동은 무엇인가요? 의사가 과학적 증거를 보여주며 별 수 없다고 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세상에서 당하며 신음하니까 나도 그렇게 체념하나요? 그건 하나님 믿지 않는 보통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입니다. 신자의 행동은 분명합니다. 단연코 거부해야 합니다. “이것은 내 병이 아니다. 내 저주는 그쳤다.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병을 향해 외쳐야 합니다. “나는 너를 받을 수 없다. 너는 번지를 잘못 알았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 예수께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 내 죄의 대가를 다 지불했다. 병의 대가가 지불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네게 절대로 눌리고 굽힐 수 없다. 너는 내게 아무런 권리가 없다. 나는 자유이다.” 늘 이런 의식을 가지고 두려움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미 병이 나를 장악하고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집 안방에 악한 걸인들이 들어왔습니다. 자기 집이라고 우기면서 모든 더러운 옷가지와 가재도구를 널어놓습니다. 그냥 포기하고 나는 가족과 건너 방에 가서 사나요? 그럴 수 없어요. 그러면 그들이 나머지 공간도 다 차지합니다. 절대로 소유권을 포기할 수 없어요. 나갈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어느 날 내게 또는 가족에게 무서운 일이 벌어집니다. 대개는 그때부터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신자는 그럴 수 없어요. 불신자와 달리 저주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 예수께서 대가를 완전히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저주는 무엇이건 작은 것이라도 거부해야 합니다. “나는 저주에서 자유한 몸이다.”

2.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라

자신과 저주를 끝까지 구분하고 독립된 자세로 자유의 의식으로 서는 게 신자의 기본이고요 다음으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해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명령할 수 있습니다. 평생을 통해서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용하기 전에 먼저 믿어야 합니다. “예수 이름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예수의 이름은 하나님의 힘을 사용하게 한다.”

예수 이름은 그대로 예수 자신을 대표합니다. 예수 자신의 능력이 있습니다. 세례를 예수 이름으로 받고요, 죄사함도 그 이름으로 받습니다. 축복도 그렇지요. 기도도 그의 이름으로 하는 것만 응답됩니다. 예수 믿는다는 말 자체가 그 이름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불신자는 그 이름을 믿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 이름으로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별 의식 없이 예수 이름을 사용합니다. 만약 그 이름을 믿음으로 사용한다면 예수와 함께 일하게 됩니다. 열심히 금식하면서 해야 기도가 들어집니까? 아니요, 그의 이름 때문입니다. 그 이름을 의지해야 제대로 된 열심도, 금식할 힘도 나옵니다. 선행과 봉사도 그 이름으로 해야 제대로 됩니다. 하나님도 그 이름을 받으십니다.

그 이름은 그대로 예수 자체요, 능력입니다. 어떻게 귀신을 물리치고 병을 몰아냅니까? 삼각산에 올라가 백일기도해 능력 받나요? 하나님 음성을 듣고 불 받아야 하나요? 그렇게 한 사람에게 가야 해결되나요? 성경은 말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병 고침과 기도 응답과 문제해결이 내 경건함이나 내 훌륭함 때문에 옵니까?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과 약속에서 옵니다. 내 열심이나 헌신이 아니라 순수한 예수의 이름이 그렇게 합니다. 그렇다면 내 믿음을 거기에 세워야 합니다. 나는 부족하여도 주의 이름은 내 모든 죄와 악과 약함을 다 덮고도 남습니다. 오직 그 이름 때문에 나는 존귀합니다.

그렇다면 그대로 해야지요. 예수 이름으로 병을 향해 물러가라고 외치세요. 예수 이름으로 건강을 명령하세요. 다른 사람에게건 자신에게건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이름은 권능을 발합니다. 하다못해 플라스틱 카드 한 장도 엄청난 힘을 발하는 데 영적 육적 세계에서 그 이름의 왕의 신용카드요 왕 자체입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에게 말합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그 이름은 앉은뱅이를 걷게 합니다. 신자는 누구나 베드로가 가진 것을 가졌습니다. 예수 이름입니다. 모든 저주스러운 상황을 향해서 명령하세요. 예수 이름으로 떠나라고. 그리고 원하는 내용대로 되라 선언하세요. 가정과 사업을 축복하세요. 안 하면 손해요 그게 불신앙입니다.

3. 나은 사람으로 행동하라.

믿음의 행동이 무엇인가요? 첫째, 병이나 가난이나 원치 않는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받지 않습니다. 분리하고 거부합니다. 다음으로는 예수 이름으로 치유를 명령합니다. 축복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해결이 즉시 안 되는 수가 많습니다. 신자가 하나님 자녀와 왕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깨닫고 권리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대로입니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합니다. 믿음이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를 저주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즉시 말랐다 하고 마가복음에는 다음날 말랐다고 합니다. 둘 다 맞습니다. 실제로는 즉시 마르기 시작했으나 눈에 죽은 것으로 보인 것은 다음날이었습니다. 기도도 응답이 즉시 시작되나 한참 뒤에나 결과가 나옵니다.

제자들이 신기해서 예수께 말합니다. “선생님 저주하신 무화과가 말랐군요.” 그때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며 그대로 되리라.”(막11:23) 예수 이름으로 선언하고는 마음에 의심하지 않아야 병이 낫습니다.

그게 쉬운가요? 몸은 더 아픕니다. 문제는 더 나빠집니다. 그래도 악착스럽게 매달려 기도합니다. 그래도 더 심해집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의심이 일어납니다. 마음이 어두워지고 낙심 됩니다. 다윗도 그랬어요.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느냐 하나님을 바라라. 그의 도우심으로 나는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3:5,11)

그 이름을 믿고 그 권세를 사용하는 사람은 마음에 기쁨과 감사의 감정을 일으킵니다. 안 되면 억지로라도 다윗처럼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응답을 25년간 기다렸어요. 요셉은 10여년 노예생활, 감옥생활을 했어요. 다윗도 10여년씩 도망 다녔어요. 우리도 오래 절망 앞에 있을 수 있어요. 하나님을 의지해 그 힘으로 계속 감사와 기쁨을 유지하세요.

성경은 되풀이 명령합니다. “어떤 상황이건 감사하고 기뻐하라. 호흡 있는 동안 하나님을 찬송하라. 어떤 상황에서나 하나님은 널 도우신다. 믿고 두려움을 이겨라.” 믿음은 행동합니다. 의심을 마음에서 몰아냅니다. 감사와 넉넉함으로 기뻐하며 노래합니다. 처음에는 잘 안 되더라도 계속 하세요. 예수 이름으로 선언하고 행복한 감정을 유지하세요.

믿음으로 행하세요. 하나님이 건강의 힘을 부으십니다. 적용하세요. 잘 먹고 운동하세요. 건강을 기대하세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고침 받은 사람으로 행동하세요. 슬퍼하고 걱정하는 것은 병자요 실패자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약속이 사실이라면 마음이 약할 수 없어요. 믿음으로 행하세요.

QT를 위한 질문

1. 내 몸의 병이 내 것 아니라고 거부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1/4-6)
2. 중병이 깊이 들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1/7,8)
3. 예수 이름이 왜 중요한가요?(2/2-4)
4. 병과 역경을 어떻게 물리치나요?(2/5-7)
5. 병 낫기를 기도하고 명령해도 변화가 없을 때는 어찌하나요?(3/1-3)
6. 계속 마음에 두려움과 낙심으로 어두워질 때는 어떻게 할까요?(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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