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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 안전지대 (계 1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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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멀리 보라 라고 인식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멀리 보면서 살기로 마음에 다짐을 하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이 서있는 장소였습니다. 그 사람은 낭떠러지 끝에 서있었던 것입니다.

'멀리 본다.' 는 말은 중요한 말이고 좋은 소리이나 더불어 꼭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지금 내가 서있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멀리 볼 수 있게도 만들어주고 또 지금 내가 서있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확인시켜주기도 합니다. '비전'이라는 것은 멀리 봄과 동시에 지금 내가 서있는 자리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말씀을 읽다보면 우리하고는 굉장히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고 멀리 보이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지금 내가 선 자리를 확인시켜주는 말씀인 것을 인식하고 말씀을 접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 앞장인 13장을 보면 적그리스도가 등장합니다. 바다에서 나오는 한 짐승으로 용이 등장하는데 마치 세계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악한 동맹이란 동맹은 다 적어놓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리고 모든 악한 동맹의 우두머리로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표를 이마와 손목에 받아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13장에서 악한 동맹은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아주 멀리 있는 일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낭떠러지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험악한 영적 전쟁이 있는 저와 여러분이 숨쉬고 살아있는 바로 오늘이 그 말씀의 현장이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오늘 어디에 서있나를 확인해야만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험악한 영적 전쟁이 있는 세상에 내가 설 수 있는 안전한 지대는 어디인가를 알아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며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해보기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의 수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계시록 13장을 보면 우리는 두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짐승이나 용이라고 하는 이상한 것들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적그리스도입니다. 666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거기에만 머물러 있으면 우리는 두렵고 이 세상이 이제 소망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14장으로 넘어오니 두려운 성도의 마음에 소망으로 등장하는 분이 계십니다.
1절에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어린 양이 등장합니다. 적그리스도의 특징은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똑같이 행세를 하려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에 레마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성경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섬김을 강조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피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적어 이마와 손목에 차고 다녔습니다. 미간과 손목에 차고 다니며 이 말씀을 자기의 삶의 행동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이마, 즉 자기의 생각과 손목, 즉 삶의 행동에 이 말씀을 다 적용했습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가 그 자리에 짐승의 표를 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에 자기가 차지하려고 한 것입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환상을 보고 적은 글이 계시록인데 이 환상이 요한이 살던 시대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황제가 이미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잡아 죽이고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다 멸절하려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로마는 황제를 섬기는 수준이 아니라 신으로 섬기고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황제에 굴복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 황제는 엄청난 파워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황제의 도장이 없이는 물건을 사고 팔 수 없게 만들고 황제의 허락없이는 그리스도인들이 공직을 가질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러한 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잡아 죽이거나 거의 살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죽음을 택하면서 이마와 손목에 하나님의 말씀, 내가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 라고 그 자리에 로마 황제를 절대로 올려놓지 않겠다고 하며 굴복하지 않은 사람이 십사만 사천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본 환상은 또한 우리 믿음의 조상이 살았던 세상과도 그렇게 많이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일제 시대에 일본이 조선을 잡아먹기 위해 민족 말살 정책을 들고 나섰습니다. 먼저 정신을 없애면 된다는 생각에 조선 사람의 이름을 바꾸고 조선 사람을 마치 일본 사람처럼 행세하게 한 것인데 그것을 따라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천황에게 절하는 법을 만들고 조선 사람들까지도 한 명도 빠짐없이 신사에 가서 절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위하여 그 자리에 천황을 올려놓지 않고 대신 당당하게 목숨을 버렸습니다. 그 수가 십사만 사천입니다.

십사만 사천에 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가 숫자 개념에 치우칠 수 있는데 십사만 사천이라는 숫자는 상징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일흔번씩 일곱번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십사만 사천이라는 수는 예수 믿어 구원 얻은 셀 수 없는 허다한 많은 숫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미 그 숫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도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이 땅은 21세기로 과학이 굉장히 많이 발달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과학이 발달하는데 초자연적인 현상이 더불어 같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높여드려야 되는데 우리의 영적인 자리에 너무나 많은 육신적인 요소들이 살아있습니다. 권력, 명예, 물질, 자녀 등 사람마다 다 다르게 하나님의 자리에 우리의 것이 이미 엄청나게 많이 올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외칠 수 있는 십사만 사천에 포함이 되어야 합니다.

어디가 안전 지대입니까?
어린 양과 함께 선 수다한 무리, 십사만 사천에 포함되는 것이 안전한 지대입니다.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면서 여러분의 이마,즉 생각과 손목에, 즉 행동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올려놓고 사는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그렇게 살 때에 내가 손해보는 것같고 세상이 어렵게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곳, 그곳이 바로 안전한 지대입니다. 오늘도 그 안전 지대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누리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 설 자리를 바로 정해야 합니다.

손목과 미간을 확인했으면 이제 우리가 선 자리를 확인해야 합니다.
4절과 5절 말씀에 십사만 사천의 사람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지금은 사단과 결전의 시간입니다. 13장에 용과 짐승이 등장하고 14장에는 어린 양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결전의 시간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결전의 시간이 막 다가왔는데 예수님의 모습이 어린 양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때로 능력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을 이기고 강압적으로 누르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깨끗하고 거룩한 것이 능력입니다. 결전의 시간에 그리스도께서 어린 양의 모습으로 오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보혈의 피로 우리의 죄를 다 씻겨 주는 어린 양의 모습, 그 정결이 바로 성도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선 자리가 굉장히 특이합니다. 12장 17절을 보면 [용이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라고 나오고, 오늘은 어린 양과 십사만 사천의 성도가 시온 산 위에 섰다 라고 나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래 위에 세운 집과 반석 위에 세운 집을 연상시키는 구절입니다.

어디가 안전한 지대인 것 같습니까? 바닷가 모래 위와 시온 산 위.
우리의 선 자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 양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지키는 시온 산 위에 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믿음의 반석 위에 우리가 서있어야 됩니다. 시온 산 위에 우리가 서있어야 됩니다.  어린 양 예수의 옆 자리, 시온 산 위가 안전한 지대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천사가 등장하여 복음을 전하는데 그 복음이 심판의 내용입니다. 이 땅에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이 땅이 무너진다고 천사들이 외치는데 사람들은 이 땅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로마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죽일 때에 로마 사람들은 자기는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이고 저 사람들 불쌍하다. ' 그런데 천사가 선포하는 말은 오히려 이 땅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더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고가면 일등석과 일반석이 있습니다. 일등석은 일반석에 비해 훨씬 편합니다. 만약에 비행기가 추락한다면 어디가 더 편할까요? 똑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비행기가 추락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일등석에 있어서 편하다 라고만 생각합니다.  이 땅에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다만 모습이 일등석이고 일반석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안전한 것이 있습니다. 12절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그곳이 바로 안전한 곳입니다. 영혼의 죽음을 아는 사람이 안전한 사람이고 성경은 주 안에서 죽은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죽기까지 그리스도의 신앙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과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들이고 안전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안전 지대에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이마, 즉 생각과 여러분의 손목, 즉 행동은 오늘도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생각하고 주님만을 위하고 있습니까?
오늘도 믿음의 반석 위에, 시온 산 위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서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의 삶은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과 행동, 생각, 여러분의 선 자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으로, 그 믿음 위에, 시온 산 위에 , 반석 위에 서서 어린 양과 함께 동행하심으로 오늘 하루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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