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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히 1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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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면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믿음으로 살면 살고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고생을 하고 손해를 보고 그리고 죽습니다.

출애굽 하여 이스라엘의 군대가 바란 광야에 왔을 때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자는 제안을 누가 했고, 각 지파의 두령을 한 사람씩 뽑아 12명의 정탐대를 파견하였습니다. 가보니 그곳은 너무나 아름다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으니 우리가 들어가면 그것은 우리들의 것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기뻐서 보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열 명은 “가보니 그 땅의 사람들은 장대하고 그 앞에 우리는 메뚜기와 같으며, 도저히 우리는 그들과 싸워서 이길 승산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었습니다.” 두 사람은 믿음으로 보았고, 열 사람은 불신앙으로 보았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였던 열 사람은 그 축복의 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죽은 것은 전적으로 그들이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믿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지 못하였던 사람들은 자기만 불행해 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불행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믿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 간 줄 믿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자가 아니라 믿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에서 믿음이란 단어가 최초로 나오는 곳은 바로 창15:6절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렇게 아브라함에 대해서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창세기가 직접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생각하면서 믿음을 배웁니다. 때문에 우리는 아브라함을 가리켜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을 했습니다.

히11:8절을 함께 봉독하시겠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본래 아브라함이 어디에 살던 사람입니까? 갈대아 우르였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최대의 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메소포타미아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로서는 아브라함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살았던 셈입니다.

그러나 갈대아 우르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서 우상 장사를 하며 살았던 이교도였습니다.(수24:2,3) 하나님은 거기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이미 75세였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변화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떠났다가도 다시금 고향으로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 나이에 그의 고향을 떠나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하나님, 제가 이 나이에 가기는 어디를 갑니까?” 그랬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절대적으로 순종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을 때에 순종하여...”}

아브라함은 이것저것을 재거나, 따져보거나, 계산하면서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아브라함은 그 즉시 무조건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를 못했지만 이삿짐을 다 챙겨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나섰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 8절은 “믿음으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것이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보여준 첫 번째의 믿음이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아니했더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받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그의 후손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창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도 믿음의 조상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자기의 본토를 떠났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와 그의 후손을 위한 기업으로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자신의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났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열국의 아버지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떠나야 할 우리의 갈대아 우르는 어디입니까? 우리가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우리의 가나안은 어디입니까?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죄악의 땅, 애굽을 떠나라고 하실 때에 무조건 떠났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앞에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홍해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을 때, 하나님은 홍해를 친히 가르셨습니다. 그들이 주릴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들이 목말라 할 때, 하나님은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 축복의 손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역사를 우리는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부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아니하십니다. 반드시 우리의 믿음에 아름다운 보상을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이 우리 모두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히11:9절을 함께 봉독하도록 하시겠습니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지만  떠나라 하시니 순종하여 떠났습니다. 순종하여 가다보니 거기가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살았지만 사실 거기서도 하나님은 발붙일 땅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행7:5) 그가 소유했던 유일한 땅은 무엇이었습니까? 그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사라를 매장하기 위해서 헷 족속에게 샀던 막벨라 밭이 전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었지만 마치 이방인처럼, 외국인처럼 그곳에서 우거했습니다. 타향살이를 했습니다. 더군다나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정착해서 살지도 못했습니다. 장막에 거하면서 이리저리 옮겨 다녔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들이삭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손자 야곱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낙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도대체 왜 이곳으로 왔단 말인가? 울려고 내가 왔단 말인가? 웃으려고 내가 왔단 말인가?” 아브라함은 실망하여 다시 옛날 고향으로 되돌아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에 늘 머물러 살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9절에서도 역시 설명하기를 “믿음으로”그렇게 하였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인내하면서 기다렸던 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장막을 치고 여기저기 옮겨 다녔지만 언제나 그 약속의 땅을 벗어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잠시 기근 때문에 애굽에 내려갔던 적은 있었지만 잠시 동안이었습니다. 그는 곧 다시 가나안땅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곳은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신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 질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결코 그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일생토록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인내하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 이루어졌습니까? 아브라함이 죽고 400년 만에 이루어 졌습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그의 후손이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가나안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비록 자기 생전에는 이루어 지지 않았어도 그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끝까지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보여준 두 번째의 아름다운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너무 조급하지 않습니까? 축복도 당장 받아야 되고, 기도의 응답도 당장 받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매사가 빨리빨리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라함처럼 먼 안목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히11:1절의 말씀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그렇습니다. 믿음은 미래지향적입니다. 머나먼 안목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도록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만지지 못하는 것을 만지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눈앞의 것에 연연하지 않고 멀리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아름답게 지어져 봉헌될 하나님의 교회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시는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꿈을 꾸면 우리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우리 모두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끝으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았습니다.

히11:10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시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은 어디를 바라보고 살았습니까? 하나님이 친히 경영하시고, 하나님의 손으로 지은 성, 새 예루살렘 성, 천성, 곧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행인처럼, 나그네처럼 살았지만 낙심하지 아니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는 이 지상에서 유토피아를 찾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입니다. 땅엣 것에 집착하지 않고 위엣 것을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보여준 세 번째 믿음이었습니다.

창세기 13장에 나오는 조카 롯과의 헤어질 때도 그랬습니다. 조카 롯은 이 땅에 비옥한 여호와의 동산과 같은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 요단 뜰을 택하였습니다. 그 땅이 얼마나 타락을 했든지 아니든지 상관을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내 영혼이 죽든지 살든지 그런 것은 관심도 없었습니다. 다만 육신의 부요와 안일만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땅이 좋든 나쁘든 상관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섬기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우에서 하나님을 섬기든지, 좌에서 하나님을 섬기든지 간에 나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식입니다. 좋은 환경이 축복이아니라 내주 하나님을 모시고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면서 그곳을 목적지로 삼고 살았기에 그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여유 있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롯에게 양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 땅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나그네는 떠나는 것입니다.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 땅에 너무 집착하거나 미련을 두지 마십시다. 미국의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가 남겼던 유명한 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부자로 죽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다. 돈을 벌기만 하고 남겨놓고 죽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는 자기의 말대로 그가 벌어 놓았던 많은 돈을 깨끗하게 청산하고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미국의 석유왕 존 록펠러, 자동차왕 헨리 포드,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를 존경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이 사업에서 크게 성공했기 때문입니까? 그들이 돈을 많이 번 대재벌이었기 때문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 모두가 훌륭한 자선 사업가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맡기신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바르고 값있게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이 우리 모두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아브라함처럼 우직스럽게 나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비록 더디어 보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놓치지 마십시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정하신 방법으로 반드시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나 우리에게는 최선의 길이 됩니다. 부디 이 땅에서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며 살았던 아브라함의 귀한 믿음이 우리 모두의 믿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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