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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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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550: 제 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가로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그 중에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융을 가지고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거늘 그 남은 사람들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6시로부터 9시까지 어두움이 계속된 것은 우리 시간으로 낮 12시부터 3시까지입니다.

 

대낮인데 캄캄해진 것은 확실히 징조입니다.

 

인간세상은 진리라야 밝은 것인데 진리가 사라지면 세상은 어두운 것이요,

세상이 의인을 죽였으니 하나님의 진노의 상징이요,

인간세상에 의인이 사라졌으니 슬픔의 상징입니다.

 

혹이 사람들 중에는 지금 대낮인데 왜 이리 갑자기 어두워지느냐하며 촛불을 켜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밭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도 갑자기 어두워지니까 일을 하다 말고 집으로 얼른 들어온 자들도 있을 것이고, 갑자기 어두워지니 두려워서 공포에 떠는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주위의 사람들은 그것을 크게 못 느낍니다. ? 예수를 죽이는 재미가 들렸으니까!

 

하늘이 캄캄해졌습니다. 예수를 죽이면 누가 캄캄한 세상에 살게 되느냐? 사방이 캄캄하면 누구만 답답하냐? 자기에게 온 예수 진리를 죽이면 자기만 답답한 사람이 되고, 자기 가정적으로 찾아온 진리 예수를 죽이면 가정적으로 답답한 가정이 되고, 국가적으로 찾아온 진리 예수 죽이면 국가적으로 답답한 국가가 됩니다.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원망하는 소리로 들리느냐?

 

큰 소리란 고상하고 매우 중요한 뜻이 함축되어 있는 예수님의 심경이 담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께서 왜 버림을 당했는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옳은 일만 했는데 원통해서 원망조로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 기독자들이 해석을 해서 그 예수님의 심경을 풀도록 묻는 물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버림을 당했는지? 그것은

죄인 나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이다.(53:1-6)

모든 택자의 원죄 자범죄를 없이 하려고 죽은 것이다.

천국에 죄인은 못 들어간다.

죄를 지었으면 형벌을 받는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택자들의 죄책을 대신 짊어지려면 무죄인으로 태어나야 하고, 하나님의 지공법에 따라 의행을 해야 되고, 마땅히 죽는 것이다.

육체보다 영이 더 중요하고,

모든 인간은 심판을 받는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말씀을 예수 믿는 자기와 관계를 지우지 않고 말은, 신앙고백은 날 위해서 죽었다고는 하는데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말에서는 나와 전혀 관계가 없이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 말을 했다느니하며 비굴한 예수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구속에서 택자들을 위한 극치의 사랑과,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은 용납이 없음과, 우리의 궁극적인 그 신령천국의 세계가 어느 정도로 의의 세계요 거룩한 세계인지 깊이 생각하면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그 말씀의 뜻이 짐작이 가고, 그래서 죄를 없이하시는 그 면에서 사망과 죽음을 정복하고 들어가는 그 면에서 얼마나 통쾌하게 잘 하신 일인지 찬송의 소리로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짖는 그 심경을 모르면 예수님을 죄지은 일반사람들보다 더 비굴하게 만듭니다. 강도들도 죽는 마당에 원망하는 소리도 없이 죽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십자가 밑에 섰던 사람이 예수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하는 말이 엘리야를 부른다, 그 소리 듣고 엘리야가 구원해주러 오나 보자!’ 자기들 생각에는 구원해 달라는 소리로 들렸던 모양입니다.

 

이제 우리가 잠깐 예수님의 부활을 염두에 두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그 죽음이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같은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그 죽음이 강도들의 삶과 죽음과 같은가?

하나의 일반인들의 삶과 죽음과 같은가?

다릅니다.

 

다르다면 예수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정신과 사상을 왜 일반사람들의 개념과 목적으로 해석을 하느냐? 성경 구구절절이 선악과 따먹고 나온 일반적인 개념으로 생각할 것이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나라복음을 전하셨고 천국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성경 구구절절이 우리의 영원 궁극적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세상 육적인 생각과 목적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가르치는가?

 

거짓 종들이 가르치는 개념이 무엇이며, 이단들이 가르치는 개념이 무엇이며, 사단 마귀의 종들이 어떤 개념과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나 있느냐?

 

성경을 가지고 거짓적인 자기를 못 보는 자들,

남만 가르치려고 달려드는 자들,

육적 세상적 권세적 물질적 배경을 등에 업고 그게 자기 신앙인양 권세를 부리는 자들,

종교적 외식운동을 하는 자들,

 

모두 다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다르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신앙이 다른 질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3년 동안 성전도 못 짓는 주제에, 십자가에 매달리는 주제에, 제자들은 볼품도 없고! 겉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 속의 그 정신 사상은 하늘의 보좌가 움직이는 그 정신 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고 너나 구원하라고 예수님을 희롱하던 그 사람들 지금까지 살았지? 세계 제 1을 자랑하던 그 성전이 지금까지도 있지? 예수님에게 환난 핍박을 주고 하던 자들 모두 다 죽었고, 그들의 후손들도 예루살렘과 성전이 불탈 때 같이 타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상에서 택자의 모든 죄를 파괴해 버리고 3일 만에 일으킨 그 참 성전은 죽지 않고 썩지 않고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출생의 목적이 뚜렷했고, 삶의 목적이 뚜렷했고, 죽음의 목적이 뚜렷했고, 오신 목적이 뚜렷합니다. 모든 사건 환경을 접촉하는 것마다 사망권 안에 있었던 것을 생명권 영생권 안으로 옮기신 삶입니다. 죄와 사망과 세상과 유혹과 미혹을 다 이기셨는데 무엇이 원통하고 한스러워서 하나님께 원망을 하겠는가?

 

우리는 저질적으로 돼지처럼 살지 말고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정신 사상으로 살아보자! 예수님처럼 사람이 되어보자! 우리 인간에겐 도덕성이 있고 자유성이 있고 심판성이 있는 인격을 가진 인간입니다. 진리이치가 아닌 세상적인 비 진리적 육적 물질성적 사상의 가르침으로 사람을 불 속으로 끌고 들어가지 말자!

 

당시의 그들은 십자가 밑에서 십자가를 올려다보며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는데도 그 소리의 깊이를 몰랐습니다. 종교지도자들도 몰랐는데 어떻게 영이 죽어 있는 이방인들이 알겠느냐? 예수님의 소원 목적과 인격을 모르면 모르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경주를 하듯이 뛰어나가서 신 포도주를 솜뭉치 같은 것에 적셔 가지고 갈대에 꿰어 마시게 했습니다. 이것 역시 마취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먹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정신을 흩뜨려 놓고자 하는데는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에 관한 입만 열려고 하면 마취제를 먹이려고 달려듭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주변에 각종 지위와 직업을 가진 자들이, 그리고 세상을 향한 각종 정신 사상을 가진 자들이 생명역사 천국역사 진리역사 구원역사를 끝까지 죽이려고 얼마나 목을 조여 오는지! 행동을 묶어 놓고 말도 못하게 하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승리를 거두신 것입니다.

 

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영과 혼이 다 떠나셨습니다. 완전히 육신과 분리되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죽음입니다. 몸 신체만 남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가지고 살아 계시는 동안 영이 주격이 되고, 육은 소유격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효력이 있는 삶을 사신 것입니다. 이 삶의 사상은 일반개념적 도덕성이 아닌 것입니다. 택자에게 영원히 효력성을 지니는 삶을 사신 것입니다. 우리 또한 그렇게 살면 영원히 영광 중에 빛날 수 있는 존영자가 되는 것입니다.

 

275154: 이에 성소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성소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갈라져 버렸습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은 하나님의 설계에 의해 하나님과 만나자는 약속의 장소로 만들어졌는데 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못 들어가는 장소입니다. 지성소 안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대제사장이 인간소리, 세상소리, 인간 잡된 생각을 가지면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그러니 막혀진 휘장을 걷어버리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는 벌벌 떨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중보의 사역으로 다 헐어버렸습니다.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지공법 앞에 대 만족을 이루어 드린 삶이었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날마다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그 어떤 인간도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서서 중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 누구 앞에서 고백을 하는 중간역할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각자 하나님 앞에 직접 대면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과 10년마다 만날까, 1년마다 만날까, 날마다 만날까?

 

인간이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게 세상 어느 성인이 길을 터놓았느냐?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 어느 성인이라도 자기들의 죄로 다 죽은 것입니다.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에서 잠자던 성도들이 일어나서

 

예수님 부활 후에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자기들의 몸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아가페로 된 거룩한 삶과 그 죽음은 땅이 다 감동을 받고 그 딱딱하고 굳은 바위도 다 감동이 되어 터진 것입니다. 부활을 기다리며 무덤에서 잠을 자던 성도들도 이게 웬일인가하고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난 것입니다.

 

첫째, 우리는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두 번째는 부활 후에 살아나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서 보여주었다는 것은 마지막 때의 부활과 새 예루살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덤들이 열리고 성도의 몸이 일어난 것은 예수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을 정복을 했다는 증거이고, 죽은 자들을 부활을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증거입니다. 창세 이후로 모든 인간의 수수께끼는 여기서 다 풀리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정답을 주신 이는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시요, 두 번째는 그 때 살아난 증인들이요, 세 번째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육신 자체는 물질성이기 때문에 피가 다 쏟아져 죽었으나 그러나 그 삶의 정신 사상만큼은 모든 죄와 사망성을 다 정복을 하신 것입니다. 이 무형적 정복성은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언행심사가 죽은 것이 없고, 죽을 것이 없고, 죄될 삶이 없고 전부는 영생권 안으로 이전을 시키는 영원한 생명의 삶으로 우리에게 효력을 입히신 삶이었습니다. 세상은 육신의 죽음만 알지 하나님의 지공법 앞에 만족을 이루어드린 이 삶은 모르는 것입니다. 타락된 거짓된 인간들은 죄인이라고 정죄를 했으나 하늘과 땅이, 죽은 송장들이 일어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을 합니다. 예수님은 죽는 마당에까지 사람을 살리신 일을 한 분이십니다.

 

십자가 밑에서 지켜보고 있던 백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면서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했습니다. 이들이 당시의 종교지도자들보다 낫습니다. 그 되어진 일들을 보아서라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을 했으니 말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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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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