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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을 주려고 하라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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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려고 하라 (요한복음 13장 34-35절)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라 >

 요한복음 14-16장의 다락방 강화는 예수님이 죽기 전에 하신 유언의 말씀이다. 그 유언의 말씀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하신 말씀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초대교회의 제자들의 가장 강력한 표시는 ‘사랑’이었다. 참된 사랑이 있으면 자칭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나를 예수님의 제자라 불러준다. 내가 아무리 신기한 영성을 보여도 남들이 나를 예수님의 제자라고 불러주지 않으면 큰 문제다. 교회는 서로 사랑하며 그 사랑이 차고 넘쳐서 이웃에게로 흘러가는 사랑이 충만한 교회라야 한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라. 남이 어려울 때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어려울 때 이해받지 못한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먼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위대한 일을 하는 셈이고 위대한 인격자가 되는 요체다. 아프리카에 선교헌금 보내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위대한 일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사랑하는 것도 위대한 일이고 며느리가 시어머니 사랑하는 것도 위대한 일이다. 동서 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도 위대한 일이다. 같이 직장이 있는데 친구가 혼자 진급했을 때 감사하기가 쉽지 않다. 모르는 사람이 진급하면 괜찮아도 가까운 사람이 진급하면 더 참기 힘들다. 그래서 이웃 사랑은 더 힘든 것이고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위대한 일이다. 그 위대한 일에 도전해보라. 서로 사랑하는 모습과 관계 속에서 엄청난 파워가 생겨난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서로 깊이 사랑해서 아무 때든지 서로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교회가 교회 될 수 있는 조건은 표적도 아니고 형식도 아니고 사람의 숫자도 아니고 화려한 모습도 아니고 오직 사랑에 달려 있다. 참 사랑이란 너를 위해 지금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불만이고 저것 좀 해주고 그것은 틀렸다.”라는 말이 많고 요구가 많은 것은 사랑이 아니다. 참 사랑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 내 생명까지 온전히 바쳐서 오늘 끝나도 한이 없다는 자세가 있어야 사랑이 가능하다.  

< 사랑을 주려고 하라 >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사랑을 더 많이 받으려고 하라는 말이 아니라 더 많이 주려고 하라는 말이다. 기독교를 왜 사랑의 종교라고 하는가? 평범한 본능적인 사랑이 아니라 자기희생란 차원 높은 사랑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자기희생의 사랑을 아가페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아가페 사랑은 자기를 조각조각 찢어 남에게 주고 자기는 없어져 버리는 이타적인 사랑이다. 서로 사랑을 받으려고 하면 불행해지지만 서로 사랑을 주려고 하면 행복해진다. 불행과 행복이 의외로 내 손안에 있다.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어려운 형편으로 결혼하지 못하고 12년 동안 함께 사는 남편이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간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수술시기도 지나서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퇴원 수속을 밟았다. 얼마 동안 집에서 요양하다가 1달여 만에 다시 응급실로 들어갔는데 그 후 3주쯤 지난 후에 병원에서 그녀가 일하는 식당으로 “생명이 며칠 안 남았으니까 퇴원하라.”는 연락이 왔다. 그녀는 병원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눈물을 훔치고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곧 남편이 죽는데 마지막 선물은 없을까?”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지.” 남편이 가끔 말했다. “빨리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데.” 그녀는 결혼식이 남편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면 이 세상에서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데 남편을 가장 기쁘게 해 줄 그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남편에게 얘기하고 결혼식을 준비했다. 남편의 직장 동료 택시 운전기사들이 자기 일처럼 준비해줬다. 직장 동료 부인들이 음식을 장만했고 운수회사 사장이 주례를 맡아 이틀 만에 결혼식을 치렀다.

 결혼식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형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던 그녀가 신랑의 휑한 얼굴을 보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자 진통제를 맞고 서 있던 신랑도 눈물을 흘렸다. 하객들도 그 장면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흐느꼈다. 그렇게 결혼식을 마치고 38시간 만에 남편은 숨을 거뒀다. 그 후 외롭고 힘들 때마다 앨범을 꺼내 결혼식 날 남편의 모습을 보면 신비한 힘과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왜 행복이 없는가? 그 이유는 참 사랑과 희생이 없었기 때문이고 자신이 받으려고만 하고 주려고 하지 않는 것 때문일 것이다. 불행이 있다면 그 불행의 원인은 내 책임도 상당히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가장 큰 문제는 자신에게 사랑이 없는 문제임을 자각하는 겸허한 마음을 가지라. 기도할 때도 가장 우선적으로 구해야 할 기도제목은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구하는 것이다. 늘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서로 사랑함으로 내 손안에 있는 행복을 얻어 누리고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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