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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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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 욥바교회 2017년 3월 25일 설교 이익환 목사


사복음서 강해 17 내가 갈 길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눅 13:31-33)

 
미국 시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시에서 처럼 어느 한 길을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일할 터전으로 하나의 직장을 선택한다. 평생의 반려자로 한 여자, 한 남자를 선택한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고 싶기에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쉽지 않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한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거치지 않고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리는 베레아 지역을 통과하시며 각 마을에서 사역하셨다. 예수님은 이 지역에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신다.  예수님이 하신 선택은 무엇이었고, 그 선택의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 중에 어떤 한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했다.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왜 그리 적습니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치유를 경험하였지만, 아마도 그 수에 비해 따르는 자가 적어서 한 질문인 것 같다. 이 질문에 예수님이 답하신다. 2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서도 하신 말씀이다.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좁은 문으로 가라는 말씀의 전제가 있다. 그것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넓은 문으로 들어가길 원한다는 것이다. 넓은 문이 뭘까? 크고 그 길이 넓어 아무 불편함이 없는 길이다. 세상의 좋은 것들이 보장되어 있는 길이다. 이 문을 통과하면 뭔가 잘 될 것 같은 길이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길이다. 성공이 목표가 된 세상, 인기가 중요한 세상에서 누구나가 이 문으로 들어가길 원한다. 그런데 문제는 멸망으로 인도하느 문은 크고 그 길이 넓다는 것이다. 리스크가 있다.


반면 좁은 문은 어떤 문일까? 말 그대로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은 길이다. 그러나 그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다. 여기서 생명의 원어는 ‘조에’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이 바로 ‘조에’다. 따라서 좁은 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걷게 되는 길을 말한다. 그 구원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나 길이 좁고 힘들어보여 인기가 없다. 찾는 사람이 적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두가지 전제가 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자기는 부인한다는 것은 내 본성대로 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서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말한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신의 은사와 부르심에 맡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말한다. 아무도 십자가를 먼저 지기 위해 경쟁하지 않는다. 십자가를 내 삶의 우선 순위로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가장 우선적으로 기피하고 싶은게 십자가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말씀하신다. 정말 좁은 길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세상은 ‘너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라’고 말한다. 그 길은 쉽고 편하다. 그러나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신다. 풍요와 번영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는 것은 인기가 없다. 성공을 위해 경쟁하는 세상에서 남을 위해 애통하고 마음이 온유한 사람은 나약해 보인다. 모두가 약싹빠르게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왠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리숙한 자로 여겨진다. 복수를 해도 억울함이 풀리지 않은 세상에서 오른 뺨을 친 자에게 왼 뺨을 돌려대고, 속옷을 갖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며, 억지로 오리를 가자는 사람에게 십리까지 동행해주는 것은 바보처럼 보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넓은 문이 널려있는 세상에서 좁은 문을 찾는 사람이 적은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의 복음을 들은 사람 중에도 실제 자신의 삶에서 좁은 문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예수님이 좁은 문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실 때 바리새인들이 등장한다. 31절,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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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헤롯은 헤롯 안티파스를 말한다. 그는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이었다. 이복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자신의 아내로 삼은 사람이었다. 이에 대해 세례요한이 책망하자 그의 목을 베어 죽인 인물이다. 헤롯은 세례요한을 따르던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자 긴장했다. 그래서 자신의 영내에서 떠나도록 바리새인들을 통해 예수님을 위협한 것이다. 이에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32절,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예수님은 헤롯왕을 ‘저 여우’라고 표현하신다. 이런 걸보고 요즘 ‘사이다’라고 한다. 속 시원한 발언이다.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겠다’는 것은 헤롯이 뭐라고 해도 나는 지금 여기서 메시아적인 사역을 멈출 수 없다는 말씀이다.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여기서 제 삼일은 하나님의 구원의 시간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사역은 죽음에서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완성되었다. 예수님은 헤롯이 죽이겠다는 위협에 결코 동요되지 않으셨다. 자신의 사명과 죽으실 시점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사명이 있는 한 죽지 않는다. 그래서 사명이 있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다.


33절,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죽음의 위협 앞에 내가 갈 길을 가야 한다고 선포하셨다. 예수님이 갈 길은 결국 십자가의 길이었다. 예수님 한 분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의 죄가 사해지고 생명을 얻게 되는 대속의 길이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의 길을 먼저 가신 것이다. 예수님이 선택하신 것은 좁은 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좁은 길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행 20:22-24,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는 예언하는 사람을 통해  예루살렘에 가면 체포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에게 갈 길이 있었기에 그는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정말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좁은 길을 선택하고 있는가? 신앙생활이 힘든 이유가 있다. 신앙생활의 핵심인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이 그저 편하게 신앙생활하려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의 문이 세상 모두에게 열렸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작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야 한다. 바울은 그래서 구원의 여정을 시작한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우리에게 시작된 구원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다. 힘쓰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본능에 따라 넓은 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왜 굳이 힘든 십자가의 길, 좁은 길을 택해야 하는가? 자기를 부인하는 것,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 그것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힘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할 때 하나님의 뜻이 내 삶에 들어 오게 된다. 거기에 자유함이 있다. 세상의 질서를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부부 사이에서도 자기 부인과 십자가가 없으면 그 관계는 죽게 된다. 자기 부인과 십자가는 힘든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있어야 관계가 산다.

자기 십자가를 질 때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선하신 간섭이 시작된다. 거기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심어지고 자라가는 것이다. 물론 자기를 부인하는데는 아픔이 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데는 고통이 따른다. 내 본성과 야망을 꺽어야 하는데 그것이 힘든 것이다. 그러나 내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때 생명과 부활의 길이 열린다. 그 십자가의 상처를 통해 내 안에 예수님의 형상이 새겨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하나님 나라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가 채소밭에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라 후에는 나무가 되어 새들이 그 가지에서 쉬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하셨다. 누룩은 보이지 않게 스며드는 것이지만 그것이 가루의 존재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좁은 길을 가는 것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작고 보잘 것 없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 좁은 길을 선택한 작은 발걸음들을 통해 후에는 세상의 사람들이 와서 쉴 수 있는 하나님 나라로 자라가는 것이다. 나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반죽이 들어간 누룩처럼 세상이 알아채지도, 주목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의 존재를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들을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풍성함을 맛볼 수 있는 따뜻한 공간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자기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것은 혼자만의 신앙으론 배우기 쉽지 않다. 관계속에서 신앙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를 부인하는 것도, 내가 남때문에 힘든 십자가를 감당해야 하는 기회도 생기는 것이다. 상처받고 힘든 것이 아프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를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상처는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를 내 맘에 새기게 되는 모판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기부인과 자기십자가를 선택하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세상의 위협 때문에 ‘내가 갈 길’이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묵묵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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