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너희는 나의 친구라 (요 15:13-15)

  • 잡초 잡초
  • 4285
  • 0

첨부 1


영국의 어느 출판사에서‘친구(Friend)’란 낱말에 대해서 가장 좋은 정의를 내린 사람에게 상금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수천 명이 응모를 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채택되었습니다.

친구란 기쁨은 곱해 주고, 고통은 나눠주는 사람이다.”
“친구란 우리의 침묵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친구란 언제나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고, 절대로 멈추지 않는 시계이다.”

이러한 것들을 제치고 1등으로 당선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친구란 온 세상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도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다.”
이러한 친구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상에 친구라고 부를 사람은 많지만 참다운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즐거울 때나 행복할 때는 물론 괴롭고 불행할 때마저도 항상 곁에서 보살피는 희생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보통 최소한 한 두 명의 좋은 친구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좋은 친구를 가진 사람들은 본인 스스로 좋은 친구로서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기쁨과 슬픔, 걱정이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원하고 있습니다.

친구 가운데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음식이나 약과 같은 친구입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처럼 항상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습니다. 이런 친구는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 약처럼 도움을 주게 됩니다. 둘째는, 질병과 같은 친구입니다. 이런 친구는 사람들의 정신을 오염시킵니다. 그러므로 좋은 친구는 인생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러나 질병과 같은 친구는 사람을 죄악의 수렁에 빠뜨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편 1:1에“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하셨습니다. 사람을 잘 가려서 사귀어야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우리는 본문을 통해 놀라운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주의 창조자이신 주 예수님께서 주님을 섬기는 제자들을 가리켜 친구라 하신 것입니다.“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한복음 15:14-15). 이 말씀은 당시의 제자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一. 예수님은 어떤 친구입니까?

1.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이십니다.

조금 전 드린 말씀 가운데 좋은 친구를 가진 사람들은 대게 좋은 친구로서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가리켜 친구라고 하실만한 조건이 우리들에게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죄악에 오염된 죄인들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아십니까? 성경에 기록하시기를“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로마서 3:8-10) 하셨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나는 너희들의 친구라”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황송한 말씀이며,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친구 될 자격이 전혀 없는 죄인인 우리들을 향해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친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끝없이 겸손하신 모습과 사랑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친구가 되심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값없이 얻는 영광된 축복입니다.

2. 예수님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본문 13절의 말씀에“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은 다음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친구라 말씀하신 제자들과 주님을 따르는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친구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미국 남북 전쟁이 있을 때의 일입니다. 북군에서 전쟁에 나갈 군인을 징발할 때에 전쟁에 나갈 사람들을 제비로 뽑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가족도 많고, 부모도 계시고, 전쟁에 나가면 그 가족들을 전혀 돌아볼 사람이 없는 한 청년이 제비에 뽑혔습니다. 이 안타까운 처지를 지켜보고 있던 그 사람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부모도 안 계시고 아직 결혼도 하지 아니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그 친구를 대신해서 전쟁터에 나가겠다고 책임자에게 말했습니다. 그 책임자는 감격해하며 그 젊은이로 하여금 대신 전쟁터에 나가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위해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고향에서 자기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이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기 대신 전쟁터에 나간 친구에 대한 고마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신문을 보면서 제일 먼저 전쟁에 대한 소식부터 보았습니다. 특별히 어떤 곳에 격전이 있었다고 하면 거기 혹 자기 친구가 들지 않았는가? 해서 먼저 그것부터 살펴보곤 했습니다. 또 이따금 죽은 사람의 명단이 나오게 되면 혹시 자기 친구가 전사하지 않았나? 제일 먼저 그것만 살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어느 날 큰 격전이 있었는데 그만 그 친구가 그 격전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신문에 난 전사자의 명단에서 친구의 이름을 확인한 이 사람은 한없이 슬퍼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대신 죽은 친구의 시신을 가져다가 자기 가족 묘지에 안장했습니다. 묘비 앞에는 그의 이름과 함께 그 아래에“그는 나를 위하여 죽으시다!”라고 썼습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우리에도“그는 나를 위하여 죽으시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 공로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곧 십자가의 은혜입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3. 예수님은 친구에게 삶의 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향해 친구라 하신 것은 당시 역사적인 배경이 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대 동양의 왕들은 특별히 선발된 측근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왕의 특별한 친구들로서 오늘날 대통령 자문위원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단순한 정치 고문과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왕의 가까운 친구들로서 왕을 보필하였으며 항상 왕과 만나기 쉬운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왕의 침실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왕은 그들의 충고를 어떤 장군들이나 정치인이나 다른 나라의 통치자들의 충고보다도 훨씬 더 귀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들의 관계는 왕과 신하 또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능가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관계는 어떤 형식이나 절차를 초월한 사랑과 신뢰로 결속된 깊은 우정의 관계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그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과 관심을 이러한 친구에 비유하여“너희들은 나의 친구라”하셨습니다.

당시 왕들의 친구는 친구들이 왕에게 지혜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친구라 하신 예수님은 반대로 왕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친구 삼으시고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예수님을 가리켜“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이사야 9:6)하셨습니다. 모사(謀士)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 그 일을 효율적으로 성취하기 위해 의논할 때에 지혜를 제공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친구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매 순간 순간마다 놀라운 지혜를 주십니다. 이는 성경의 기록과 현대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 빛나는 각 분야의 두드러진 인물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치(워싱턴, 링컨, 처칠 등), 과학(에디슨, 뉴턴, 아인슈타인 등), 예술(음악, 미술, 문학 등), 군사(맥아더 등) 등 모든 부분을 총 망라하여 세계적인 인물들은 모두가 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친구로 삼고 주님이 주시는 삶의 지혜를 공급받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주시되 성경말씀을 통해 공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시편119:97-100)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보혜사”라고 번역된 헬라어는“파라클레토스”로서 옛날 그리스 법정의 변호인을 가리킵니다. 요즘 변호사처럼 돈 받고 일하는 전문직이 아니라 파라클레토스는 대부분 피고의 친구였습니다. 죄인을 변호하면 그 사람도 함께 죄인으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파라클레토스는 희생을 각오하고 친구의 무죄를 위하여 계속 곁에 앉아서 힘이 되어 주고 위로가 되고 격려해 주는 친구 중의 친구였습니다. 이분이 곧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시어 어느 시대, 누구에게든지 간구하는 자에게 친구를 붙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를 보호하고 도우시는 보혜사 파라클레토스가 성령님이십니다.

二. 예수님의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누구든지 친한 벗이 되려면 동질성이 있어야 합니다. 뜻이 전혀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 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라 하셨지만 이것은 우리들과 동등한 입장에서의 친구는 아닙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인간입니다. 주님은 창조자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들을 향해 친구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한없는 겸손의 표현이며, 주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신 넘치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죄인 된 우리들에게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옛말에“친구 따라 거름지고 장에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지, 논밭에 뿌리는 거름을 사고파는 곳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친구 사이란 때로 내 마음과 형편에 맞지 않지만 그래도 친구의 뜻을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친구의 뜻을 따라 거름을 짊어지고 시장까지 함께 간다면 하물며 우리 주 예수님의 뜻이겠습니까?
본문 14절에“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면 예수님의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이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예수님이 명하시는 것은“서로 사랑하라”하신 것입니다. 사랑함이 곧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조건입니다. 이것은 친구이신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을 친구라 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까지 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으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뜻이 다르고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본 도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올림픽 개최를 위해서 스타디움을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인부들이 지붕을 벗기던 중 꼬리 쪽에 못이 박힌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도마뱀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연유인가 싶어서 주인에게 알아봤더니, 그 집은 3년 전에 지었는데, 집을 지을 때 실수로 그렇게 된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도마뱀은 3년 동안이나 못에 박힌 채 죽지도 않고 살아 있었다는 말인가?”기적과도 같은 놀라운 사실에 모두들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리고 인부들은 공사를 중단하고 숨어서 도마뱀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도마뱀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못에 박혀 꼼짝 못하는 친구를 위해 먹이를 날마다 날라 주기를 3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계속하였던 것입니다.

파충류인 도마뱀도 이러한 우정의 사랑을 나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의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겠습니까?

2.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들을 친구라 하셨습니다. 죄인인 못난 친구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주님의 몸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물과 피를 다 흘리셨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사랑을 깨달았다면 우리들도 주님의 몸을 사랑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예수님의 몸이 무엇입니까? 교회입니다. 교회란 단순히 사람들이 중심이 된 모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중심한, 그리스도로부터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가리켜“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골로새서 1:24)이라 하셨습니다. 골로새서 1:17-18의 말씀에도 그리스도를 가리켜“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을 섬기는 우리들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린도전서 6:15)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주님을 섬기는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각 지체라 하셨습니다. 모든 지체는 몸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시편 122:5-9에“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예루살렘이란 성전인 교회를 가리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켜“형제라, 붕우라”라 하셨습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세상 끝 날까지 주님께서 하시던 거룩한 그 일을 계속 수행하는 곳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은 주님을 위한 봉사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필요를 채우는 것은 곧 주님의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예수님은 사랑하셔서 친구라 하셨습니다.

사람의 인격이나 삶에 있어나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세 곳이 있습니다. 부모님, 스승, 친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스승이십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우리들을 가리켜 친구라 하셨습니다. 이 귀하신 친구 예수님을 가까이 사귀며 따라가면 하나님의 나라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 친구 되시는 예수님께서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나와 함께 하시며 어려운 순간순간마다 나와 함께하시며 나를 도우십니다. 그리하여 승리하게 하십니다. 행복하게 하십니다.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두 친구가 뉴져지주 칼드웰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마침 교회당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한 친구는 예배에 참석하자고 주장하고 한 친구는 술집에 가서 이 휴일을 즐기자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각각 교회와 술집으로 헤어졌습니다. 교회를 택한 청년은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된 클리브랜드(Grover Cleveland)입니다. 그는 두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되었고(22대와 24대),“깨끗한 대통령”으로 국민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다른 한 청년도 머리가 좋아 변호사가 되었지만 뇌물과 범죄에 관련되어 형무소에 오래 살았습니다. 클리브랜드 대통령은 말하기를“하나님이 받아주실 때 딴 생각 말고 하나님 품에 안겨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들을 받아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않았다면 아무도 지금 이 자리에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6:44).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시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내 구주라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12:3).

우리들을 가리켜 친구라 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데 우리를 위해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내 구주로 믿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십니다. 행복하게 하십니다. 더 나아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십니다. 이 고귀한 하나님의 축복이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위에 가득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익로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