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공동체(1)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엡 2:19-22)

  • 잡초 잡초
  • 644
  • 0

첨부 1


1. 배운 것도 변변찮은데다 내세울 만한 집안도 없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얼굴도 그리 잘 생기지 못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든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잔치를 벌일 때, 그 자신이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혹시 무엇인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냐고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의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멸시당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이 누구든지 차별하지 않고 귀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2천년 역사 최고의 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 21세기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여럿 있습니다. 그 중 세 가지를 들라 하면, 영성. 감성. 네트워크 입니다. 21세기는 네트워크 시대입니다. 네트워크는 <그물망>이란 뜻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갈수록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파편화되어가는 21세기이기에 사람들은 20세기 때보다 더욱 고독을 느끼고 외로워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자기를 이해해주고, 알아주고, 자기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상담해주고, 자기와 함께 있어 줄 사람을 더욱 더 찾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게 컴퓨터 인터넷입니다. 인터넷 채팅을 통하여 친구를 사귀고, 대화하고, 속에 있는 생각을 나누고, 스트레스를 풀곤 하는 게 요즘 젊은 세대들입니다. 인터넷 채팅도 한계가 있으니까, 오프라인으로 만나기도 합니다. 하여튼 사람들은 누군가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2-3년 전에 등장한 단어가 NQ (Network Quotient: 공존지수) 입니다. 21세기는 NQ가 뛰어난 사람이 성공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김무곤씨가 쓴 <NQ로 살아라>는 책을 여러분 꼭 한 번 읽어보시고 자녀들에게도 읽히시면 좋을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불어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더불어 사는 방법에 서툽니다. 그러다보니,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더불어 살다가 서로 상처만 남깁니다. 그러니, 애시당초 더불어 살기를 포기해버립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들의 가정 안에서도 더불어 사는 공동체성이 파괴되어 가고, 자녀들을 다 결혼시키고 은퇴 후에는 두 어르신만 수십년간 외롭게 살아가게 됩니다. 이래야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NQ의 원조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처럼 더불어 살기를 배운다면, 시대에 족적을 남기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고향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고향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 지역과 유대 지역, 나아가 예루살렘까지 그의 네트워크를 넓혔습니다. 여러분 주변의 성공한 사람들을 보세요. 대부분 예수님처럼 고향을 떠난 사람들일 것입니다.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합니다. 고향을 떠나 네트워크가 넓어지니까, 다양한 정보를 얻게 되고, 그러니 성공하게 됩니다. 요즘같은 정보사회에서는 누가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느냐가 성공과 직결됩니다. 정보를 많이 갖기 위해서는 자기란 껍질을 깨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자기와 다른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배우는 등 관계망을 넓혀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성공하기 좋은 환경을 타고난 것입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참 좋은 공동체입니다. 교회 안에서 미술가도 만나고, 음악가도 만납니다. 장애인도 만나고, 교사도, 공무원도 만납니다. 의사, 간호사, 건축가, 교수, 사업가, 회사원 등 각양각색의 직업인을 만납니다. 전직 조폭도 만나고, 김삿갓같은 방랑기질의 사람도 만납니다. 이런 다양한 성격과 환경을 경험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리의 인격의 그릇이 커집니다. 수용성이 넓어집니다. 이런 사람들이 성공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3. 오늘부터 저는 십여 주에 걸쳐서 <공동체>란 주제로 시리즈 설교를 합니다. 오늘은 그 서론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란 주제로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 19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습니다. 권속이란, 요즘 말로 가족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에 우리의 신분이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잘 생긴 사람이나 못 생긴 사람이나,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한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옆에 앉아 계시는 면면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여러분과 너무나 다르지 않습니까? 사회적 배경, 가정배경, 지역적 배경이 다릅니다. 아마 누군지 이름도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름은 알아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형편을 모르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장년 성도 400여명, 어린아이 70여명, 중고등부 50여명, 유치부 40여명 등 거의 600여명 정도 되는 교세입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서로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게 정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가족이란 느낌이 별로 들지 않을른지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소그룹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10명 내외로 함께 소그룹을 구성하여 주중에 집에서 함께 모여 찬양하며,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며, 말씀을 함께 나누는 소그룹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모델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인 예루살렘교회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그 이후 역사상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이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2:46,47을 함께 읽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가 본받아야 할 초대교회에서는 두 가지 모임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성전에서 모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집에서 모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빌 벡컴 목사님은 “제2의 종교개혁” 이란 책에서,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교회” 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두 날개는 예배당에서 모이는 대집회와 가정집에서 모이는 소그룹 모임입니다. 이 두 날개가 건강해야 힘있게 날아오르는 건강한 교회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는 두 날개가 다 건강합니까? 주일날 온 성도가 함께 모이는 날개는 건강한데, 주중에 구역으로, 소그룹으로 모이는 날개는 아직 많이 약합니다. 소그룹 날개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건물이 낡아서 새로운 성전을 짓고자 부지를 매입하였습니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겠지만, 교회란 건물이 아닙니다. 건물은 교회당 혹은 예배당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가 청산교회입니다. 우리교회가 새 성전을 짓기 전에, 먼저 성도들의 모임인 우리교회가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새로워지는 것은 다름 아닌, 잃어버린 교회의 본질을 되찾는 것입니다. 두 날개가 건강한 교회 말입니다. 전체 성도가 모이는 주일예배 뿐 아니라, 구역이나 소그룹에 소속하여 주중에 집에서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삶을 나누고, 서로 격려와 칭찬을 해주며, 서로 짐을 져주는 가정교회로도 활발히 모이는 교회, 두 날개가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직 구역모임을 잘 모르는 새가족은 여러분이 속한 구역장이나 권찰들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남성들은 남자 소그룹에 소속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안에 여러분의 심각한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져주고 함께 울어주고 웃어줄 사람이 몇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실수와 허물을 이야기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위하여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교회 안에 있습니까?
그런 분이 안 계신다면, 여성분들은 구역모임에 참여하시고, 남성분들은 남성 소그룹에 자발적으로 소속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가족은 서로의 허물을 잘 알고, 그대로 용납해줍니다. 따지지 않습니다. 잘 이해해 줍니다. 가족은 서로의 짐을 져줍니다.
가족은 서로의 필요를 공급해줍니다.
가족은 서로를 위해 희생할 줄 압니다.
이게 성도들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은 이러해야 합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역모임이나 소그룹에 소속하지 못하는 분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선순위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반증해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마6:33)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이상적인 모델은 믿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함께 사는 이것이 가장 우선적입니다. 직장과 사업, 학업 등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은 2차적입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 우선권을 둔다면, 아무리 바빠도 구역모임에, 소그룹 모임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자기의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은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우리는 서로에게 솔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강점이 있고 약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인 소그룹에서 우리는 나의 강점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나의 약점은 다른 사람들의 강점으로 보완될 수 있습니다. 이래서, “너 없이는 내가 없고, 나 없이는 너도 없다”는 공동체 의식이 발전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듯이, 껍질을 깨고 나오는 해산의 고통이 있어야 이전보다 더 풍요롭고 윤택한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가면을 벗는 해산의 수고를 하는 성도는 구역이나 소그룹 안에서 참 자아를 발견하고,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셋째는, 혼자 사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주일날 혼자 조용히 나와서 예배하고 집에 돌아가는 게 너무 편하고 여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안 그래도 한 주간동안 사람에 치여 살았는데, 주일에 교회 나와서 또 사람을 만나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은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그런 생각은 사탄의 전략이라는 사실입니다.
사탄은 역사의 시초부터 공동체를 파괴해왔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게 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파괴시켜버렸습니다. 아담과 하와 사이에도 서로 이간질시켜 부부공동체를 깨뜨렸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죽임으로 형제관계도 깨뜨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삼위일체로 계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든지,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이 함께 일하셨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습니다.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혼자 신앙생활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습니다. 둘이 함께 있으니 자식이 태어납니다. 둘 이상이 함께 할 때, 열매를 맺습니다.
혼자 사는데 익숙해있지만,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둘 이상이 함께 할 때, 그 안에 새로운 삶의 열매가 맺힙니다.

5. 본문 20-23절은 교회 공동체를 건물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져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건물의 모퉁이 돌이 되신다고 합니다. 그 분 안에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함께 지어져갑니다. “서로 연결하여” “함께 지어져간다” 는 말씀은 공동체의 중요한 개념입니다.

  한 배에 여러 사람이 타고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드릴로 자기 밑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습니다. 동승한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지금 뭐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그는 “당신이 알 바 아닙니다. 나는 내 자리 밑에 구멍을 뚫는 거니까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배에 물이 차 들어와 우리 모두 가라앉게 된다고요.”

우리는 청산교회에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청산교회 여러 성도들과 함께 성장해갑니다. “당신은 알 바 아니요” 라며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면, 함께 침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이 아프면, 우리 모두 함께 아프고, 여러분이 행복하면 우리 모두 행복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가족인 것입니다. (오 재현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