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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기는 자는 위대한 자 (마 20:20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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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김상복목사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0-28>

예수님께서 그 당시 갈릴리 시골의 어부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가장 으뜸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위대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대한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은 세상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세상적으로 가장 성공한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집 한 채만 있어도 부자였는데 세베대는 두 채나 있었습니다. 하나는 갈릴리 북쪽 시골 가버나움에, 다른 하나는 대도시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겨우 배 한 척으로 고기잡이를 했지만, 세베대는 어업회사 사장으로 상당한 재력가여서 예수님의 사역을 경제적으로 제일 많이 뒷받침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남들보다 앞서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그 시대 최고의 인물은 세례요한이었는데, 야고보와 요한은 이미 그분의 제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시의 아방가르드, 즉 앞서가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성공하려 하고, 이름나는 일이라면 둘째가지 않으려 했습니다.

세베대 집안은 또한 제사장 집안이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베드로와 요한이 가야바의 궁전으로 같이 갔는데, 앞서 걸어가던 젊은 요한은 제사장 집안이라 궁전 문을 그냥 통과했고 베드로는 보초들에게 걸려 들어오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요한이 되돌아가 같이 온 고향 사람이라고 말하자 들여보내 주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야고보와 요한은 대단한 집안의 자제들입니다. 권력과 명예를 향한 야망을 품고 이 세상에서 위대한 인물이 될 요소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세례요한이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을 가리키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나는 저 분의 신발 끈을 매어줄 자격도 못된다. 저 분은 흥할 것이고 나는 저 분을 섬기며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야심에 찬 야고보와 요한은 바로 세례요한과 작별하고 예수님을 따라간 것입니다. “선생님, 어디 사십니까?” 하자 예수님은 “와 보라!”(Come and see!)는 한 마디만 하시고는 걸어가십니다. 참 멋있지 않습니까? 당시 요한은 17-8세 정도의 젊은이였습니다. 한창 이상(理想)에 마음 끓고 장차 이스라엘의 최고인물이 되고픈 꿈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19-20세 정도 되었으니 그 둘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 제일 어렸지만 예수님이 자기들의 야망을 이뤄줄 분임을 알아본 것입니다. 이들은 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어머니와 함께 예수님을 찾아와 넙죽 절을 했습니다. “그 때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20절). 안 하던 짓을 하면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시고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선생님,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펼쳐지면 제 큰 아들은 예수님의 오른쪽에, 작은 아들은 왼쪽에 앉혀주십시오. 그러면 우리 가문이 빛나고 권세와 명예를 누릴 것이며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위대한 인물들이 될 것입니다.” 이들은 정치적인 야망이 있었습니다. 제일 어린 것들이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양쪽자리를 다 차지하겠다고 선수를 친 것입니다. 그 어머니의 치맛바람도 대단해서 그동안 예수님께 엄청난 투자를 했는데, 바로 이 두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안돼” 하시면 바로 “굿바이” 하고 떠날 기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22절)고 도전하셨습니다. 그러자 두 아들은 “그 두 자리만 확보된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서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잔이든 마실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잔이 무슨 잔입니까? 사실은 ‘죽음의 잔’입니다. 십자가의 잔이요 희생의 잔입니다. 참된 성공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는 것은 도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마라톤대회에서 1등을 하려면 땀을 흘리고 사력을 다해야 합니다. 지난 올림픽에서 우리 태권도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모습이 참 통쾌했습니다. 그리스 선수를 한 방에 쓰러뜨리기까지 얼마나 많이 맞으며 훈련을 했겠습니까! 채이고 넘어지는 희생을 통해 거기까지 이른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그 잔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시겠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 속의 꿈과 목표와 열정을 보시고 그들이 그 잔을 마실 수 있으리라 여기셨습니다. 실제로 형제는 그 잔을 마셨습니다. 야고보는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요한도 밧모섬에 귀양을 가서 끝까지 하나님을 위한 순교의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이렇게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23절). 하나님의 나라가 펼쳐질 때 예수님의 오른쪽 왼쪽에 누가 앉을지는 하나님께서 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실 어떤 자리를 차지하느냐에 관심이 많습니다. 교회에서도 어떤 직분을 맡느냐에 관심이 많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에 관심을 갖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점으로 볼 때 권력과 돈과 영향력과 인기에 연연하는 사람은 치사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보면, 주인이 3명의 종에게 각각 1달란트, 3달란트, 5달란트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1달란트 받은 종은 불평하면서 그것을 땅에 묻어버렸다가 나중에 주인이 오자 그것을 그대로 들고 가서 원망을 합니다. 그는 하나를 받았느냐 둘을 받았느냐는 것에 너무 집착하다보니 자기가 받은 것마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둘을 받아 둘을 남기고 다섯을 받아 다섯을 남긴 종에게는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앞으로 더 큰 일을 맡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일을 할 때도 무슨 일이 맡겨졌느냐에 너무 연연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일을 잘 하는 것을 보시고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25절)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전통적 지도자상은 위대한 사람, 큰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았습니다. 로마 황제들이 얼마나 많이 암살을 당했습니까! 그렇게 권력을 잡은 후에는 “내가 통치자다. 너희들은 절대 복종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다 죽인다” 위협하며 권력과 돈과 조직의 힘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며 다른 사람들을 자기 발밑에 굴복시켰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보신 세상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다보니 교회에 와서도 세상의 방법으로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조심하셔야 됩니다. 세상에 익숙하니까 세상의 방법으로 하고 싶겠지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의 방법이 있습니다. 구시대의 방법, 세상의 방법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26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영적인 세계에서는 세상의 방법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상당히 강한 어조입니다. 헬라어 성경 원문은 영어표현으로 “No, not so among you!"로, 부정어를 두 번이나 써서 세상의 지도력과 하나님 나라의 지도력이 다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리더십은 자기 마음대로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정치와 경제와 사회가 어지럽습니다. 모두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새로운 리더십을 제시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27절). 이 말씀은 권력과 지식과 명예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각자에게 다양한 영향력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국민의 마음을 잘 읽고 살펴서 국민의 필요에 따라 힘을 쓰는 사람입니다. ‘당신들이 뭐라고 하던 나는 상관하지 않으니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오라’고 하는 것은 전통적, 세상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새 시대의 새 지도자는 사람을 섬깁니다. 이제는 섬기는 정치, 섬기는 경제, 섬기는 사회운동, 섬기는 학교, 섬기는 병원,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며칠 전 어느 분이 병원에 다녀오셔서 저에게 화풀이를 하더군요. 의사가 진찰을 한 후 “괜찮아요” 한 마디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더랍니다. 자기 병이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데 의사는 너무 바빠서 설명할 시간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즉 섬기는 정신이 없었다는 말이지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세우고 받들고 잘 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섬김의 장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리더십을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큰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는 말은 모두 꼴찌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진정한 으뜸이 되라는 말입니다. 지도자는 ‘자리’가 아니라 ‘자질’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뜻을 잘 분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열정적으로 섬기면 주위사람들이 자기의 가치를 느끼고 행복하고 아름다워지고 훌륭해집니다. 나만 가치 있는 존재이니 너희는 내 발 밑에 엎드리라는 것은 세상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손님은 왕’이라는 상인의 정신과 일치합니다. 어떤 양복점 주인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는 손님이 들어오면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것으로 봅니다. 예수님께 옷을 지어드리는 것처럼 최선을 다하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합니다.”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미국의 어느 백화점에 "Satisfaction guaranteed, or money back"이란 문구가 붙어있습니다. 이 말은 “만족을 보장합니다. 만족하시지 않으면 돈을 돌려드립니다” 라는 뜻입니다. 이런 철저한 섬김이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섬기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위대하신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8절). 하나님께서 주신 권력, 돈, 능력, 영향력을 총동원해서 자기가 속한 집단의 모든 사람을 세워주는 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새로운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본을 따라 새 시대의 새 리더십을 우리가 속한 모든 곳에서 발휘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세움을 입어 더 좋은 가정,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사회가 되도록 모든 능력을 발휘하기를 원합니다.

몇 년 전, 제직수련회에서 ‘어떤 사람이 교회에 유익한가?’라는 소그룹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무슨 일을 하든지 조용히 주님 앞에서 하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 사람 앞에 보이려 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하라는 말씀입니다. 너무 사람의 눈을 의식하면 괴롭습니다. 누가 한 마디 칭찬하면 우쭐하고 한 마디 비판하면 그만 낙심해서 어쩔 줄 모릅니다. 여러분 인생의 가치를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두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눈을 바라보면 현기증만 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가치로 살아야 됩니다.

둘째로, 무슨 일에든 항상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때에도 그냥 서서 구경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언제나 누구에게든지 도움이 되는 사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셋째로, 개인의 의견을 너무 고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섬기는 사람입니다. 종은 주인 앞에서 자기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주인에게 내어놓고 “제 생각은 이렇지만 주인님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하고 한 발짝 물러납니다. 자기가 낸 의견대로 하지 않는다고 속상해하거나 투정을 부리지 않습니다.

넷째로, 일의 집행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평화롭게 해나가는 사람입니다. ‘함께’ ‘평화롭게’ 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일을 하면서 다투고 화를 내어서야 되겠습니까? 섬기지 않고 지배하려 할 때 다툼이 일어납니다. 혼자 하지 않고 협력해서 해야 합니다. 사실 교회 일이란 혼자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때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귀찮고 비효율적일 때도 있습니다. 일 잘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혼자서 해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있던 교회에서 어느 분이 얼마나 일을 잘 하던지, 자기 혼자서 그 부서의 6명 몫까지 다 하려고 하기에, 제가 혼자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협력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다섯째로, 일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자원해서 돕는 사람입니다. 교회의 멋 중 하나가 사회에서 대단한 인물이라도 교회에서는 비천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사회적으로 괜찮은 두 가정이 1부와 2부 예배 사이에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더군요. 아무도 모르게 하다가 저에게 들켰어요.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이 작은 일을 맡아서 성도들과 교회를 세워주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어도 그 사람이 선지자의 상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점은 세상의 관점과 너무 다릅니다. 그러므로 자원해서 섬겨야 합니다. 사실 교회에서 서로 이래라 저래라 하기 곤란합니다. 옆의 분들을 보십시오. 모두 사회에서 괜찮은 분들입니다. 성경에는 ‘자원해서’라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서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104개의 조직이 있습니다. 그 중 한 두 조직이 서로 임원자리를 양보하는 바람에 아직 자리가 비어있다고 합니다. 하루속히 자원해서 그 자리를 채우시기 바랍니다. “There is joy in serving Jesus”라는 찬송처럼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섬길 때 기쁨이 있습니다. 내가 섬김으로써 다른 사람이 잘 되고 행복해지고 위대해지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사람은 자기의 위대함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여섯째로, 솔선수범하는 사람입니다.

일곱째로, 영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내적으로 변화되고 성숙하여 속이 꽉 찬 사람들이 잘 섬길 수 있습니다. 속은 텅 빈 채 바쁘게 돌아다니기만 한다면 빈 깡통소리만 날 뿐 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은 내적 충실을 기해야 됩니다. 자기 속에 가득 채운 평화와 사랑과 인내와 헌신과 섬기는 마음이 밖으로 흘러나올 때 위대한 섬김이 가능합니다. 그들이 바로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덟째로,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떠들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입 다물고 기도하는 것이 떠드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하나님이 일 하시는 것이 사람이 나서는 것보다 훨씬 더 잘 됩니다. 교회가 아직 이 땅에 있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압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 조용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더 잘 해결해주십니다.

아홉째로, 일보다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한 생명이 우주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에서 그 무엇보다 사람이 하나님 다음으로 중요합니다. 사람을 서로 귀하게 여기면서 하나님과 가정과 이웃과 직장과 나라를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입술에 축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입을 열면 좋은 말이 나오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입술을 더럽혀서 여러분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마십시오. 좋지 않은 말을 하면 “저 사람은 저런 말밖에 하지 않는군. 매일 남의 이야기만 하는군” 하는 말을 듣습니다. 입을 열 때마다 축복이 쏟아지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축복이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좋게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좋지 않은 말이 나오려거든 일어나서 나가십시오. 그럴지언정 소중한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사회가 특히 이것으로 인해 괴로움과 갈등이 많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 여러분들이 잘 훈련해서 입술에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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