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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웃고 사는 자 (창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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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서정호 목사

어느 외국인이 동양 3국 중에서 한국의 남성을 쉽게 구별하는 두 가지를 말하면서 하나는 용변(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 갈 때와 나올 때의 모습을 보고 한국 남성인 것을 알 수 있는데 미리 손으로 준비하고 들어가고, 나올 때에도 옷을 다 마무리하지 않고 걸어 나오면서 하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한국 남성들은 마치 싸울 것처럼 굳어 있는 얼굴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요? 그칠 날 없이 계속되었던 수없는 전쟁이나 식민지 생활을 통한 억압과 상처,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진 역사를 통해 웃을 날이 별로 없었고, 또한 불교나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근엄한 얼굴을 가지고 살아온 영향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이 백세, 사라 구십 세에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 즉 "웃는 자"라 이름 붙였고, 사라가 그 일이 너무 신기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6절입니다.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웃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이 넘치는 웃음이 가지는 것! 그것도 우리의 믿음이 가져다주는 귀한 축복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동물을 구별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가운데 중요한 요소 하나가 바로 웃음입니다. 동물은 웃을 줄 모르지만 사람만 웃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웃는 웃음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실소라 말하고, 입으로 웃지 않고 눈만 웃는 웃음을 독소라고 하고, 멸시하는 마음으로 차디차게 웃는 웃음을 냉소라 부르고, 비웃는 웃음을 조소라고 하고, 빙그레 조금 웃는 것을 미소라고 합니다.

우리를 웃게 하고야 마는 은혜의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권을 부여해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웃는 특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여러 가지 상황이나 문제들 때문에 이 웃음을 잃어버리고 산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순간 웃음을 잃어버리고 굳은 표정이 되어 지나는 때가 많이 있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건강한 웃음을 선물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바로 웃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지난 설 명절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 형제들과 친지들과 만나서 얼마나 웃고 지내셨습니까? 아니면 웃음을 잃어버리고 화를 내면서 타투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어느 형제들은 이번 설 명절에 재산문제로 살인까지 저지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웃음이나 참된 웃음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삶에 진정한 웃음을 주시기를 원하셨지만 처음부터 아브라함과 사라는 건강한 웃음을 웃던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그들은 웃음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던 아들은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고향을 떠나갈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한 약속이 있었는데 "큰 민족을 이루고 지극히 창되게 하리라." 는 이 약속을 그들이 받고 떠나갔지만 아들이 태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래 기다리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웃음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아무런 열매도 없고 열심히 일을 하는데도 결실이 없을 때 우리 속에는 웃음이 생기지 않고 웃음을 잃어버리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냥 우리의 삶을 우울하게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고 반드시 우리를 웃게 하고야 마는 그런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이제 웃음이 없던 이 아브라함이 드디어 웃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그는 기쁨에 겨워 감격에 겨워 웃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삭을 그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는데 이삭은 웃음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자기 아들을 '이삭'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아브라함의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 당신이 우리의 웃음입니다. 주님이 바로 우리에게 웃음을 주셨습니다. 내 슬픔과 괴로움과 부끄러움을 웃음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 이런 귀한 고백으로 그 아들을 '이삭'이라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UCLA 한 의학박사가 우리 인체를 연구하는 중에 인간의 뇌 속에 웃음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가 왼쪽 대뇌 신경조직에 표면적이 약 4cm되는 웃음보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웃음엔진이 움직이면서 사람으로 하여금 웃게 하는데 이 뺨에 있는 근육을 움직이면서 아주 크게 웃도록 하는 사실을 발견하고 발표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고장 난 인간의 웃음보를 수술해 주십니다. 도무지 웃지 못하고 도무지 즐거워 할 줄 모르는 인간의 고통 속에 있는 모든 모습을 보시고 찾아오셔서 그 모든 웃음보들을 치료하시고 기쁨으로 웃을 수 있는 능력을 주님은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웃음 가득한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난 다음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기쁨이 있었고 질서가 있었고 조화가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속에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이 웃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기쁨은 사라지고 전쟁과 미움이 가득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웃음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오신 주님

그런데 주님은 인간의 웃음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셨고 그는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며 죽음으로 인간들이 잃어버린 모든 웃음을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오늘도 내 삶의 현장에서 주님은 구체적으로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며 웃을 수 있는 귀한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삭을 안고 웃고 있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모습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그들처럼 우리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삭이 웃음이라는 뜻을 가졌듯이 그리스도도 바로 우리 모든 슬픔을 당한 자들의 웃음이요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의 기쁨이 되시고 우리의 웃음이 되시고 우리의 행복이 되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주님과 함께 모든 종류의 기쁨과 웃음을 회복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숙한 웃음을 웃을 수 있었던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들의 웃음을 자기가 웃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한 단계 더 올라갑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염시키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자기들만 웃지 않았고 함께 웃게 했습니다. 이젠 하나님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웃게 하는 그런 기쁨의 근원이 되는 것을 여기서 볼 수가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남긴 묵상 집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어느 구석진 길을 걷고 있는데 말할 수 없이 비참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합니다. 술에 찌들려 있었고 온통 괴로움으로 충만한 그 사람을 만났는데 테레사 수녀가 그에게 다가가서 반갑게 인사하며 손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이 남자가 고개를 들어 테레사 수녀를 보더니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참으로 오래 만에 따뜻한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환하게 웃어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진정한 웃음은 또 다른 사람을 웃게 합니다. 진정한 기쁨을 가진 성도는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속에는 극히 괴로움을 주는 사람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세상 속에 들어가서 기쁨을 주고 웃음을 줄 수 있는 웃음의 전달자들로 살아가기를 주님께서 원하고 계십니다. 수많은 고통의 사람들에게 들어가서 기쁨과 웃음을 선포하는 복된 웃음의 사신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인상을 쓰려고 하면 얼굴의 64개의 근육이 필요하지만 웃기 위해서는 단 13개의 근육만 움직이면 아주 얼굴이 자연스럽게 웃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삭이 태어난 아브라함의 집, 그 집은 예수님을 모신 그리스도인의 심령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인하여 웃음을 회복시켜 주신 주님은 이 세상 속으로 나아가서 세상에서도 기쁨과 웃음이 충만하게 되도록 우리를 보내고 계십니다. 오늘 예배가 마치면 세상 속으로 나아가셔서 기쁨을 잃어버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로 인한 기쁨을 전달시켜 주는 복된 성도의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느 단계에 와 계십니까? 웃음이 없는 단계이십니까? 웃고는 계시는데 비웃음이나 또한 조소하는 그런 종류의 부정적인 웃음을 웃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로 인하여 행복한 웃음을 웃으면서 사는 그런 귀한 믿음의 단계에 들어가셨습니까? 혹은 더 성숙하여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이런 아름다움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잘 웃도록 가르쳐 주시고 우리의 웃음이 성숙하도록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 주신 이 복된 웃음이 가득한 삶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먼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75세의 아브라함은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을 기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약속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줄을 놓아 버리고  중간에 이스마일이라고 하는 첩의 자식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웃음의 줄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약속의 씨, 이삭만 아브라함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약속이외에 잡는 다른 것들은 슬픔의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록된 모든 성경은 우리에게 웃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람이 아닌 약속을 붙잡아야 하고 환경이 아닌 약속을 붙잡아야 하고 돈이나 물질이나 명예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잡고 있는 동안 우리에게 심령의 기쁨과 웃음은 우릴 결단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아브라함이 가졌던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황을 바라보고 웃지 못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약속을 받고도 마음속으로 비웃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25년 뒤에야 아브라함과 사라를 웃게 하셨습니다. 참으로 웃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25년을 앞당겨서 웃을 수 있는 귀한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웃음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 안에서 이 웃음을 앞당기시길 바랍니다. 에머스는 믿음에 대하여 정의하기를 “종달새 알속에서 종달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다리는 것이 오지 않아도 이미 온 것을 믿고 미리 기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울고 있지만 주님이 미래에 주실 그 귀한 웃음을 기억하고 미리 웃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지금은 고통 속에 있지만 주님이 앞으로 주실 영광을 믿으면서 미리 웃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실 우리가 상황을 따라 웃으려고 하면 하루 종일 웃을 일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앞으로 웃게 하실 귀한 미래를 소망 가운데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뒤에 웃게 될 웃음을 오늘 앞당겨서 웃기 시작하는 것이 믿음의 성도들이 가질 자세입니다.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건, 어떤 굉장한 일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고 오늘 나의 삶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모든 일, 해프닝들 속에서 잘 바라보면 그 속에 참된 행복이 있다고 하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한 웃음은 꼭 좋은 환경이 와야 웃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눈으로 모든 사건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진행하시고 하나님께서 펼쳐나가시는 아름다운 역사를 바라보게 되므로 믿음으로 그 모든 사소한 일, 고통스럽고 힘든 일 가운데서도 행복한 웃음을 웃게 되는 것이 참 된 믿음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일을 당하십니까? 이 일도 결국은 나를 유익하게 해줄 것이라고 빙그레 웃으며 누가 나에 대하여 대적하고 욕을 해도 '저 사람 멀지 않아 나의 친구가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믿음으로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쓰라린 고통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을 수 있는 복된 믿음의 비밀, 웃음의 비밀을 가진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이유를 연구했는데 그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가 남자보다 잘 웃는다고 합니다. 잘 웃는 사람은 건강합니다. 스텐포드 대학에 윌리암 프라이 박사는 웃음은 스트레스를 없애고 우리 몸속에 있는 병을 없애는 화학적인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장수하는 사람들을 보면 적어도 하루에 100번에서 400번 이상을 웃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웃음은 하나님이 주신 최대의 축복이다.

웃음을 잃어버린 것은 최대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비인간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선천적으로 성격상 웃음이 많지 않은 분들이 있지만 그래도 내면적인 웃음은 있어야 합니다. 외면적인 웃음이든, 내면적인 웃음이든 웃음이 넘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간혹 진지한 삶을 살아야 할 필요는 있지만 진지함이 슬픔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지함 중에서도 꼭 웃음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웃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우리의 믿음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웃음은 코메디 프로를 보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진짜 행복함이 표출되어 나오는 웃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지만 아브라함은 웃음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제일 먼저 웃었다는 기록이 나오는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창 17:17). 백세에 아들을 준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너무 기막히고 말만이라도 행복해서 그가 엎드려 웃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면 나타나는 삶의 증거 중의 하나가 바로 행복한 웃음이 넘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의 웃음을 빼앗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거의 마귀의 역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는 우리의 믿음생활은 웃음이 넘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웃음을 주는 교회, 웃음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진정 교회에는 웃음이 넘치는 성도들로 가득해야 합니다. 웃음을 잃은 교회는 정말 불행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웃음을 잃어버렸다는 생각과 느낌이 든다면 빨리 웃음을 되찾도록 함께 노력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원리가 "회의하는 마음"은 되도록 적게 하고, "기도하는 마음"은 되도록 많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합니까? 교회는 웃으면서 모이고 웃으면서 헤어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울면서 모일지라도 헤어질 때는 웃으면서 헤어져야 합니다. 교회에서 웃음을 찾고,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가장 구체적으로 축복을 예비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가장 훌륭한 교인은 잘 웃는 교인입니다. 가장 훌륭한 가장은 잘 웃는 가장입니다. 그 웃음에 격려가 들어있고, 그 웃음이 평화와 위로를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웃지 않습니다. 마치 웃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웃지 않습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웃음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인간에게 가면을 씌어주어 가식적인 웃음을 웃게 하여 얼굴을 기쁘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괴로움으로 빠집니다.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마음속에는 울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고통하고 괴로워하는 그 사람의 마지막에 어떤 일이 생깁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가까이 다가오셔서 손으로 인간의 모든 가식적인 가면을 벗기시고 다시금 기쁨이 충만한 얼굴이 되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웃음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를 웃게 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울부짖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웃지 못하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우리 죄를 지고 가셨으니 주님 안에서 웃으시길 바랍니다. 기다리는 것이 아직 오지 않았습니까? 주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믿고 믿음으로 주님이 정한 때를 기다리며 웃으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무거운 짐 혼자 지고 괴로워하지 마시고 주님이 대신 짐을 지어 주시는 것을 믿고 그 분에게 맡기면서 웃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해결되지 않는 모든 문제들을 바라보고 괴로워하지 마시고 주님이 풀어주실 것을 믿고 주님 앞에 맡기며 소망 중에 웃으시며 웃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고 슬픔과 고통 중에도 답답한 중에도 믿음으로 웃고 사는 기쁨의 주인공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환경이 나를 웃게 할 때 까지 기다린다면 웃을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의 축복의 말씀, 약속의 말씀이 선포 되거든 바로 '아멘'하면서 말씀해 주시는 은혜를 내 것으로 삼고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순종했던 가나의 혼인 잔치 집 하인들은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쁨을 맛보고 웃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말씀이든지 웃을 준비를 하고 들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되십시오. 다른 사람을 감동시켜 눈물을 흘리게 하는 사람이 되시고,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자, 승리의 웃음을 가진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용혜원 목사의 시를 소개합니다.

그대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할 때
그대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할 때 행복하다.
그대의 얼굴은 다양한 화면, 모든 감정이 다 표현 된다.
그대의 얼굴에서 가장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는 것은 웃음이다.
웃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표정,
그대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할 때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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