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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른 신앙 건축(미 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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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서영원 목사

건물을 건축할 때는 건축하기 전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설계입니다. 설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좋은 건물, 안전한 건물을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건축할 때 설계한 대로 건물을 지어야 하며, 자재도 제대로 사용해야 만이 좋고 아름다운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설계한 대로 건물을 짓지 않거나, 자재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아름다운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튼튼하고 안전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설계를 잘 해서 설계한 대로 짓는다고 한다면 튼튼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또한 건물을 잘 짓고 그것을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해서는 관리를 잘 해야만 합니다. 잘 관리를 못한다고 한다면 아무리 튼튼하게 잘 지어졌다 하더라도 그 건물을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신앙의 건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 정말 좋고 아름다운 설계를 하시고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창세기를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창 1장 27절 28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특별한 관계로 여기셨습니다. 또한 사람을 만드신 후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삶을 관리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건축물의 기초를 하나님께서 잘 만들어 주시고 그 위에 아름다운 신앙의 건축물을 만들어 가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신앙의 건축물을 세우기는커녕 오히려 망가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9절에서 이런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평가하기를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악한 지도자들은 공평과 의를 행하며 정직하게 살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울 수 없기 때문에 백성들의 재산을 부당하게 강탈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공의를 멀리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정직을 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도 그런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공의롭게 살면 손해 보는 것 갖기 때문에 의를 행하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또한 정직하게 살면 바보취급 받을 까봐 정직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성도라고 한다면 마땅히 공의로워야 하며 정직해야 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이 되었다고 한다면 신앙의 건축물을 아름답게 짓기 위해서는 신앙의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설계해 놓으시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가감 없이 버려야 합니다. 거짓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백성들에게 원치 않는 것입니다.

미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무리를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이 이야기는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다는 구실로 백성들의 재물을 강탈하고 뇌물을 받았습니다. 이 같은 백성들의 무죄한 피를 흘리며 압박과 강포로 세워지는 예루살렘 성전은 곧 죄악으로 세워지는 성전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불의로 세워진 예루살렘 성전을 황폐케 하시며 파괴하실 것입니다. 예레미야 22장 13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불공평으로 그 다락방을 지으며 그 이웃을 고용하고 그 고가를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아무리 아름다운 건물이라 하더라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세워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 세우는 성전이라 할지라도 불의한 방법으로 세워진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헐어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멎진 곳에서 아름답고 멎지게 예배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드려지는 예배가 아니면 하나님은 받으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을 헐어 버리신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예배는 어디에서 어떻게 드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즉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예배할 때 그 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신앙생활 할 때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이르는 말씀대로 지켜 행하며 살 때 신앙의 건축물을 잘 지어 올 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가 신앙의 건축물을 지을 때, 잘 지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지침서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 후서 3장 16절-17절을 통해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이유는 신앙의 건축물을 말씀이라는 설계도대로 건축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있다고 한다고 하면서 말씀을 버린다고 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버리고 신앙의 건축물을 지은다고 한다면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근거로 우리의 신앙을 세워간다고 한다면 반석위에 집을 지어가는 성도가 되어질 것입니다.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반석위에 집을 짓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베드로가 믿음의 고백할 때 말씀해 주시는 말씀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바른 신앙의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말씀에 근거한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바른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말씀 안에 있다고 한다면 세상의 것과 대치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말씀에 서야 합니다. 결코 말씀을 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포기하면 지금 당장은 이익을 가져다줄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이 나를 망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선택하면 지금당장은 어려움을 당할지 모르지만 후에 영광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건축을 할 때 설계도대로 짓는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설계도대로 짓게 되어지면 나중에 하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설계도를 무시하고 진다고 한다면 그 건물은 지금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얼마가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인생에 대해 설계해 놓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안전이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어렵다고 포기한다고 한다면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힘들지 모르지만 그대로 살게 된다고 한다면 영광을 얻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체급운동은 하는 선수들은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 많은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체급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체중 조절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체중 조절에 성공을 하면 경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어 영광을 받는 경우를 봅니다. 반면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 체중 조절을 실패한 선수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 말씀대로 한다고 하는 것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의 대가가 지불되고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는 것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설계도대로 우리가 믿음을 지켜갈 때 그 속에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려 할 때 우리의 주변의 많은 유혹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유혹들 앞에 우리는 넘어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약간의 유익을 위해 영원한 것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눈앞의 것을 잡으려다가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적어도 성도라고 한다면 멀리 볼 수 있는 영적인 영안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 말씀 안에서 바른 신앙의 건축물을 지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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