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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번성함의 복을 받으려면 (창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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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익로 목사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번성케 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번성이란 후손들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 원어의 뜻으로“결실하다,”와“너무 많다”가 결합된 말로 수가 주체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여기에“심히”라는 말이 첨가되었으니 그 풍성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손이 이처럼 번성하리라는 것은 구약시대에 있어서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였습니다.

자손이 많되 거지처럼 가난하거나, 천대와 멸시를 받고 살아간다면 그러한 번성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자손이 많되 경찰서나 재판소에 끌려 다니며 부모님의 속을 썩인다면 그것을 번성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본문은 번성하되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번성하되 번영이 함께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뚝 선 인물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며 가문을 빛내므로 부모님의 마음에 기쁨과 보람을 안겨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번성과 번영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망이시며, 우리 모두의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축복의 약속과 그 비결을 말씀하신 것이 본문입니다.

1.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1절에“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려는 축복은 인간의 능력 밖의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 아내 사라의 나이가 89세가 된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러한 노 부부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의 축복은 믿음을 통해서만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통로는 오직 믿음뿐입니다. 믿음은 기적의 통로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의 능력을 인간의 능력의 범위 안에 국한 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앞을 가로막을 때 낙심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이러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곧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심을 보여주시고자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의 성난 파도를 말씀 한마디로 잔잔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각색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세상 죄를 담당하시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3일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 가셨습니다. 이분이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는 곳에 하나님의 기적에 의한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에 홍해를 가르고 건넜으며, 반석에서 샘물을 터트릴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므로 갑옷과 창검으로 무장한 블레셋 장사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 천하를 호령하던 로마 교황을 대항하여 종교 개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공부를 못해 학교에 입학한지 3개월 만에 퇴학을 당했습니다. 집으로 돌아 온 그날부터 어머니가 선생님이 되어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인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에디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지혜가 생겼습니다. 에디슨이 발명하여 특허를 받은 것이 1000가지가 넘습니다. 과학자들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에디슨을 꼽습니다. 이처럼 에디슨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라도 없어지지 아니한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말은 하고 나면 없어지는데 어떻게 없어지지 않는지, 어디에 기록이 되는 것인지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지혜를 얻어 발명한 것이 축음기입니다. 녹음기의 시초가 바로 에디슨에 의해 나왔고, 오늘날 컴퓨터도 에디슨의 연구 업적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여 살아가면 누구나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가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인 성경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하심 가운데 번영의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이 믿음은 회개하는 마음 밭에 뿌리를 깊게 내립니다. 이 믿음은 성경 말씀을 먹고 자라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기도를 통해 자라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순종과 봉사를 통해 자라납니다. 순종과 봉사는 영혼의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라난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번영의 축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행해야 합니다.

본문 1절에“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하셨습니다. 내 앞에서라는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행하라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전에서 듣고 배운 말씀을 예배당 밖에서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심을 믿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끝나면 교회 밖에서 행하는 생활의 예배가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살피고 계십니다. 역대하 16:9 말씀에“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은 그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행동을 살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의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살아있는 신앙인 위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번성하고 번영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언제나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지시할 곳으로 가라”하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백세에 얻은 금지옥엽(金枝玉葉)같은 기적의 아들을 모리아 산에 가서 제물로 바치라 하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제물로 바치려고 아들의 목에 칼을 겨누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급히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의 믿음을 내가 알았으니 그에게 손을 대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참된 믿음은 언제나 행동과 함께 갑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하여 성경에 말씀하시기를“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14-17)하셨습니다.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하신 것은 허물과 티가 전혀 없는 절대적인 완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완전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이 말씀의 완전이란, 완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자라나는 어린아이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서투른 말과 행동이지만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그 서투른 모습을 보고 누구도 핀잔을 주지 않습니다. 온 가족이 이를 보고 기뻐합니다. 이러한 어린 아이가 자라나 훗날 성인이 됩니다.

이처럼 부족한 점이 많은 우리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고자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하나님은 우리들의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날이 갈수록 무럭무럭 자라나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번성과 번영의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구약 성경 가운데 가장 큰 번영의 축복을 받은 사람을 찾는다면 다윗 왕을 들 수 있습니다. 그가 받아 누린 축복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삶을 살고자 다윗은 다짐하기를“여호와여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영토록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오리니”(시편 86:11-12)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섬기되“일심으로”“전심으로”“영토록”섬기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다윗을 보신 하나님은 흡족해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사도행전 13:22)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은 넘치는 복을 받아 영광이 가득한 삶을 살았습니다.

고아 출신으로 거부가 된 미국의 킴슨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믿는 열심 있는 신앙이 성공의 지름길임을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친구들이 부자가 되는 비결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잘 믿고 주일을 꼭 지킬 것.
둘째, 술을 마시지 말 것.
셋째, 소득의 십분의 일을 꼭 하나님께 바칠 것.
넷째, 무슨 일이든지 쉬지 말고 부지런히 할 것.

하나님을 섬기되 전심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의 삶에 진보가 있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4:15의 말씀에“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하셨습니다.

3. 소망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4절~5절에“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하셨습니다. 자식 한 사람 없는 99세 된 노인을 가리켜“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뒤늦게 이름을 바꾸라 하셨습니다.“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 하리라”하셨습니다. 아브람은“고귀한, 영광스러운 아버지”란 뜻이며, 아브라함이란,“많은 무리의 아비”란 뜻입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꿈을 심어주시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99세에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이러한 아브라함을 보았을 때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저 불쌍한 노인 후손을 기다리다 못해 이제 정신 이상이 생겼구먼.”하면서 동정하는 눈으로 바라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꿈은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 이루어 졌습니다. 그 후 1년 뒤 이삭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후손들이 지금의 유태인들입니다. 영적인 후손들로 본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이 지구촌의 20억이 넘는 기독교 신자들이 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이것은 모두 꿈의 열매입니다.

소망이란 건물을 짓기 전 그 건물을 위한 설계도를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꿈의 결과입니다. 절대빈곤 속에서 허덕이던 우리민족이 현대 문명의 꽃이라 불리는 자동차 물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요함이 저절로 우연히 왔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고 꿈을 외치며, 땀을 흘린 결과가 아닙니까? 꿈이 있어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 결과가 오늘의 부강한 나라를 이룩했습니다.

“꿈꾸는 힘이 없는 사람은 사는 힘이 없는 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벌레의 눈을 가진 민족은 망하고 새의 눈을 가진 민족은 흥한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낮은 것, 천한 것, 눈앞의 것만 바라보는 벌레의 눈이 아니라, 먼 것, 높은 것을 바라보는 새의 눈 즉 소망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번영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핵심은 소망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지키시는 아버지가 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목자가 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하셨으며,“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 그레함 목사의 회고담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서독 총리 콘라드 아데나워와 아침 커피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의례적인 인사를 마친 후 대뜸“목사님,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지요?”라고 내게 물었다.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는“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지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실이라고 하면서 이 믿음이 있다면 세상의 어떤 절망 중에서도 소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은퇴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를 수집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가장 큰 난제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므로 그 난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하셨으며,“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구주이심을 믿는다면 언제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한시도 없으면 안 될 기독교 3대 요소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13의 말씀에“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은 언제나, 어떠한 경우라도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에 대해서나, 자녀들에 대해서나, 교회의 앞날에 대해서나, 국가의 장래에 대해서나 어제나 소망을 가녀야 합니다. 그 소망에 믿음이 더해지고, 순종이 더해지고, 기도가 더해진다면 그 소망은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들이 번성하며 번영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 잘 되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심정이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 속에 내려오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이 믿음은 성경 말씀을 들음을 통해 옵니다(로마서 10:17). 그러므로 말씀 듣는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예배경시는 곧 하나님을 경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살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역대하 16:9) 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낙심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불신앙입니다. 낙심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절대 소망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소망하는 것을 이름을 바꾸어 부른 아브라함처럼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이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성품을 닮기 위한 최선의 노력과, 절대 소망의 삶을 살아가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번성과 번영의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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