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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의와 타협하지 말라 (단 3:1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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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불의와 타협하지 말라
본문 : 다니엘서 3:13, 16-18

성경에서의 타협에 대한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으로써 금지 사항을 강조하고 있지요. 불신자와 타협이나<고후 6:14-18> 악인과의 타협<시1:1> 영적인 어둠과의 타협 <엡5:11>등 나쁜 대상과의 타협을 성경은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협을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인내하지 않고 다툼으로만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 또한 알아야합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타락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타협한다고 타락을 할까요 라고 질문을 한다면 ? 답은 그렇습니다. 불의와 타협하는 것 자체가 타락입니다. 불의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타락에 대한 정의를 내려본다면 악을 행하다 못된 구렁에 빠지는 것이라고 사전에 정의되고 있지요. 타락은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범하여 불신의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천국행 열차를 타고 천국을 향하여 올라가던 사람이 떨어지는 것이 타락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 타락의 시작은 불의와 타협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목회자나 성도들에게 신앙을 지키는 일에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시기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38년의 시기였습니다. 교회가 문을 닫지 않고 교단이 폐쇠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타협을 가장 잘하는 사람들을 뽑으라 하면 저는 정치인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한 표를 얻기 위해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모습,......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우상과 타협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좋아 하 실까요? 절대 아닙니다. 이러한 일은 자신을 파괴시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일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저라면 세상의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겠습니다.

우리는 전주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소화시켜 몸에 전위시키는 사람들 즉 온전히 흡수하는 사람들은 사탄에 유혹에 타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기 위한 두 번째 시간으로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는 심리치료와 같은 것으로 단지 기도하는 자에게만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기도를 단지 하나님과의 교제로만 생각을 하기도 하지요. 기도의 중요성을 기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활에 끼치는 영적 영향력에서 찾는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기도는 일반적 세상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음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 모든 것에 영향력을 끼칩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친히 통제하고 유지하는 이 세상에서 어떤 환경이라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기도는 기도하는 자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기도는 어떤 생활에 매우 긴박히 필요한 것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들은 이러한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시118:5-6), 영혼의 강건(138:3), 인도와 만족(사58:9-11), 지혜와 총명(단9:20-27), 해로움에서 피함(욜2:32), 상(마:6:6), 성령(눅(11:13), 충만한 기쁨(요16:23,24), 평강(빌4:6,7) 염려로부터의 자유(벧전 5:7)등이 있습니다.

기도 중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기도가 있습니다. 증보기도에도 다음과 같은 능력이 있습니다. 더 큰 지혜와 능력(엡1:15,19), 속사람의 능력의 강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됨(엡3:16-19),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병, 찬성하고 의의 열매로 가득 채움(빌1:9-11), 하나님의 뜻과 신령한 지혜를 앎,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 열매 맺음, 견딤, 오래 참음, 기쁨(골1:9-12),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함(딤전 2:1-2), 피차간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살전3:10-13),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함, 모든 선을 기뻐하고 믿음의 역사를 이룸(살후1:11-12), 위로와 모든 선한 일과 말을 굳게 함(살후2:16,17),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살후3:5), 믿음의 교제와 선한 모든 지식의 증진(몬6절), 모든 선한 일에 온전케 됨과 그 앞에 즐거운 것을 행하는 자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함(히 13:20,21)

기도는 물질세계에서도 역시 효과가 있는가? 위의 간구의 응답 외에 나타나는 것이 곧 물질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성경의 간구는 자연과 사람의 신체에 관한 구체적인 인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지경을 넓히고 환난에서 벗어 나기위해 기도했으며(대상4:10), 다른 이들은 환난에서 구해달라고 간구했고(시34:15-22),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되지 말기를 위하여(잠30:7-9),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건져내시도록(욘2:7-10),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마6:11), 영과 혼과 몸이 흠 없이 보전되기를(살전5:23), 병자의 고침을 위하여(야5:14,5), 비 오지 않기를 위하여 그리고 다시 비가오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약5:17-18), 제자들이 기도했을 때 모인 공이 진동했으며, 지진이 일어나고, 감옥의 문이 열렸지요(행16:25,26), 참으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만다”(약5:16)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기도의 힘은 무궁무진합니다. 기도의 힘은 한계성이 없습니다. 또한 기도의 힘은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할 정도의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여호수아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해와 달을 멈추는 기도의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처럼 기도는 사탄의 유혹에 타협하지 않는 힘을 가지게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사탄의 유혹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게 합니다.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해놓고 예루살렘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처럼 사드락과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도 역시 다니엘처럼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불의와 정면 대결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가지게 합니다. 기도하는 자와 기도하지 않는 자들과의 차이첨이 있다면 담대함의 차이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기도는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심겨 줍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나를 붙잡고 있음을 확신하게 하지요. 그래서 불리한 싸움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것뿐인가요! 기사회생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길을 지도하시고 인도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세 명은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기에 불의한 일에 목숨을 일을 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난 절대 금 신상에 절하지 않을 테니 괜한 고생하지 마세요. 라고 느브갓네살 왕에게 말하잖아요. 자신의 눈앞에 풀무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데 왕에 따뜻한 배려와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게 다는 믿음 때문에 죽음의 길을 선택하는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앞뒤가 꽉 막힌 사람들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정말 미련할 정도로 융통성이 없다고 표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들은 이 세상 누구보다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꽉 막힌 것 보다 융통성 있게 살아가는 것이 편할 것 같게 보입니다. 금 신상에 절하는 것이 뭐 어렵겠습니까? 죽는 것 보다 쉬운 일이잖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이뤄놓았던 권세, 명예, 부귀영화를 한번에 일어버리는 것보다 소유하는 것이 더 났다고 생각하잖아요.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면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 귀회도 살아질지 모르잖아요! 그러니 융통성을 가지고 이번 고비만 넘겨보지 하고 타협을 했다면 이것은 차라리 풀무불속에 들어가 한줌의 재로 변해버리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남기게 됩니다.

회식에 자리나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술 한 잔쯤 어때 하면서 자꾸 권하여 한잔을 먹었다고 봅시다. 그리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게 되었다 합시다. 앞에서는 좋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뒤에서는 저것도 집사라고 하며 욕을 합니다. 또 교회 다닌 것들이나 다니지 않는 것들이나 모두 같은데 뭐 하러 예수를 믿겠어? 라고 하면서 전도의 길을 완전히 막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고 나태해지고 무늬만 하나님의 자녀인 사람들은 이 융통성의 유혹에 모두 타협을 해서 길을 일고 헤매는 탕자와 같은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일에 전혀 융통성이 없었던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참 성도였습니다. 부귀영화가 없어진들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일어놓은 것들을 빼앗긴들 어떻습니까? 목숨을 일은들 어때요! 언젠가 죽을 목숨이잖아요! 모든 것을 빼앗겨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을 빼앗기면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일고 하나님을 빼앗기지 않으면 다시 회복할 기회가 있지만 하나님을 빼앗기는 사람은 회복할 기회조차 일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하나님을 소유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살아가기 위해서 항상 기도했던 이들은 일어버렸던 모든 것을 되찾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왕으로부터 뜨거운 사랑과 신임을 받습니다. 지위가 회복됩니다. 명예도 회복됩니다. 부귀영화도 동일하게 회복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신임을 받게 되고 더 큰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전폭적으로 믿고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던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극대화시킵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함께 해주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하는 사람은 좌절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게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일에 타협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기도는 예수님이 주신 천국 열쇠를 가지고 열고 잠그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기도로 못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현실로 이루어내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은 사탄의 유혹의 타협하지 않는 데서 시작을 합니다. 저는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 불리워도 좋습니다. 이 세상에 단 하명의 친구가 없어도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습니다. 또한 나의 편이 한 사람도 없게 된다 할 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라면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식한 사람이라고 불리면 어떻습니까? 융통성이 없고 꽉 막힌 사람이라 낙인을 찍혀도 좋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만 있다면 무엇을 못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이루어놓은 것을 모두 일는다 할 지라도 하나님은 일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빼앗기지 말고 소유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쓰임을 받는 성도됩니다.

예수향기 예수 문화는 타협하지 않는 데서 시작을 합니다. 절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기도의 사람이 됩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려고 준비해 놓으신 모든 것을 차아 누리는 지혜로운 성도가 됩니다.

어떤 어려움에 당면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지도와 인도하심을 받아 그 누구도 맛보지 못하고 누려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아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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