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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남을 가르치려면 (마 5: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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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금성 목사

지난 주일에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엄청나게 파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의 개념을 뒤집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에 따른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란 선민의식입니다. 자기들은 거룩한 백성이고 다른 민족은 죄를 짓기 때문에 개처럼 더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과는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율법은 거룩함을 지키고 보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특히 레위기에 나오는 정결법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철저히 깨끗하게 만들기 위한 책입니다. 레위기서는 어떤 것이 부정한 것이고 어떤 것이 정한 것인지 분류했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것은 먹지도 만지지도 말아야 합니다.

정결한 짐승이 있고 부정한 짐승이 있습니다. 주로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짐승은 정결합니다. 물고기도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이라야 정결합니다. 기어 다니는 짐승이나 곤충은 부정합니다. 오직 정결한 것만 먹을 수 있습니다.

죽은 것을 만지만 부정합니다. 여인이 아들을 낳으면 칠일 동안 부정합니다. 딸을 낳으면 두 배로 십사 일 동안 부정합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정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나눠집니다. 유대인들은 정결한 것만 취해야 했습니다.

부정한 것을 가까이 하면 부정이 옮겨집니다. 혹시 부정을 타면 우선 진 밖에서 지내야 합니다. 해가 지거나 물로 씻거나 불로 태워 정결케 한 후에야 다시 진 안으로 들어 올수 있었습니다. 제사도 죄로 인한 부정을 씻는 예식입니다.

부정을 타지 않으려면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약속의 땅 거룩한 곳에서 살면서 그 거룩을 지키고 보존토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울타리를 쳐놓고 유대인들을 그 안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밖으로 나오면 부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울타리가 약속의 땅 가나안 땅입니다. 나머지 땅들은 다 부정한 땅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부정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해서 거룩의 테두리 안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만 깨끗하고 거룩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울타리를 터뜨리고 세상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죄로 더럽게 물들어 있습니다. 부정과 불법으로 썩고 부패했습니다. 그런데 거룩한 백성이 더러운 세상으로 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부정이 옮겨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그렇지 않다고 하신 것입니다. 더러운 세상에 나가도 더러워지지 않는 비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것입니다.

흰옷을 입은 사람이 그을음이 가득한 곳에 가면 검댕이가 묻습니다. 흰옷은 이내 더러워지고 맙니다. 이것이 부정을 타는 이치입니다. 그런데 너희는 소금이다 빛이다 한 것은 흰 것이 검은 것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더럽게 썩었지만 소금을 치면 부패가 멈춥니다. 세상은 어둡지만 빛을 비추면 어두움이 사라집니다.

이제 소극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이제는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소금과 빛의 메시지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 백성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선언입니다.

이렇게 소금과 빛의 메시지는 구약성경의 개념을 깨뜨린 파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강렬한 메시지가 구약성경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을 부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렇게 오해를 할까봐 예수님은 본문 말씀을 다시 강조하고 계십니다.

17 절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소금과 빛의 메시지는 구약 성경을 넘어서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을 더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즉 복음의 시대가 되었다고 율법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잘못 이해하면 이제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것이니까 이제 필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복음은 율법이 업그레이드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율법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범하면서 사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단지 형식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같지는 않았습니다. 문자적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거룩을 흉내 내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오히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 보다 더 철저하게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20 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에 철저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위선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약의 율법 조항은 모두 613 가지입니다. 금지하는 계명이 365 개입니다. ‘하라’는 계명은 248 개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인간에게 해야 하는 계명은 무시했습니다. 즉 사람의 인권이나 삶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를 건져 주면 안식일에 쉬어야 하는 계명을 어기게 된다고 지나칩니다. 계명의 정신을 무시하고 그 문구 자체에 매달렸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보다 나아야 합니다. 더 낫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도덕 수준이 세상 누구보다도 높아야 합니다. 남들이 다 한다고 똑같이 따라서 하면 안 됩니다. 세상이 다 뒤집혀 돌아가도 우리는 똑바로 가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수원에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동영상 뉴스)
야외 체험학습을 나간 중학생 3백여 명이 편의점에서 물건을 마구 들고 나간 것입니다. 주인과 점원이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지난 4일 수원의 한 중학교 전교생 1,600 명이 문화의 전당으로 야외학습을 갔습니다. 단체관람을 마친 학생들은 편의점을 찾았습니다. 갑자기 많은 학생들이 몰리자 계산이 지연됐고, 일부 학생들이 물건을 가지고 그대로 나가 버렸습니다. 편의점이 아수라장이 된지 20 분이 지나서야 교사들이 달려왔습니다. 학교 측은 감시 카메라에 다 찍혔으니 자수하라고 권했습니다. 물건을 가져갔다고 시인한 학생만 325 명이나 되었습니다. 자수한 학생들은 벌금 만원씩 내고 벌점을 받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갑자기 폭도로 변했습니다. 남들이 다 공짜로 물건을 집어 오는데 나만 못하면 바보가 되나요? 그 학생들 가운데 교회를 다니는 학생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일점일획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도덕은 차원이 높습니다.

복음 진리를 깨닫게 되면 이웃을 섬기게 됩니다. 손해보고 양보하고 희생할 줄 알게 됩니다. 심지어 친구를 위해 제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게 됩니다. 십자가의 은혜 체험이 이런 사랑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구원의 도리를 깨닫고 성령을 받으면 율법을 지키는 것은 오히려 쉬워집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율법은 굴레가 되고 맙니다. 간섭받는 것 같고 귀찮아집니다.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집니다.

은혜를 모르면 교회 다니는 것이 부담됩니다. 놀러갈 수 있는 시간을 뺏기는 것 같아집니다. 헌금하는 것이 아까워집니다. 교회 다니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아집니다. 사실 그런 것들을 지키면 다 좋은 것들입니다. 몸도 건강해지고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세상을 바꿔나가야 할 사람이 먼저 죄를 짓고 같이 오염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세상을 회복불능의 상태로 만들고 맙니다.

올해 들어 장관 세 명이 도중하차했습니다. 과거에 위장 전입을 하면서 부동산 투기를 한 것이 들통 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홍석현 주미대사가 또 도마에 올랐습니다. 그 역시 위장전입을 통해서 농지가 포함된 부동산을 취득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도 유학 중에 변호사가 알아서 한 것이라고 발뺌했습니다. 홍 대사도 역시 부친이 그의 이름을 빌려서 구입했다고 변명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20 년 이상 땅을 소유했기 때문에 단기 차익을 노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청와대에서도 그런 것을 문제 삼으면 지금 5-60 대 이상은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들이 문제의 부동산을 구입했을 때 그런 것은 관행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을 위반하긴 했지만 과거에는 누구나 당연하게 했던 관행이니까 문제 삼지 말아야 할까요?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구입하게 한 법은 조선시대부터 있어 왔습니다. 그것이 고려 말부터 시작되어 조선시대 실학자들이 완성한 경자유전의 법칙입니다. 토지란 생산적인 목적에 이용하는 사람이 소유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 법은 500 년 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편법과 불법으로 농부 아닌 사람이 농지를 구입해 왔습니다. 그것이 재산을 불리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홍석현 대사는 일이 불거지자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위장전입이 문제가 되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국민에게 거북한 소리가 되겠지만 ….”

사회의 지도자들이 이렇게 불법에 무디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지도자들의 도덕은 백성들보다 훨씬 철저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사회 지도자들 보다 더 철저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양심의 보루입니다. 우리가 계명과 도덕과 철저하지 않으면 누가 이 사회를 깨끗하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세상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들과 비슷한 것은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계명도 버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9 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바리새인들은 작은 것을 위해 큰 것을 버린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23:23에서 바리새인들의 이런 어리석음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바리새인들은 의와 인과 신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형식에 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큰 것 못지않게 작은 것까지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이 원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사명이 있습니다.

나 혼자 양심대로 살고, 말씀대로 산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다 그렇게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는 사람이 되면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됩니다. 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무시하도록 가르쳐도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됩니다.

누구든지 이를 행하고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행할 뿐 아니라 가르치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행하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실 그렇게 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를 뜯어 고쳐서라도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언제까지 미완성으로 살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잘하고, 가족에게 잘하고, 이웃에게 잘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은 많이 부족할 것입니다.

우선 나의 잘못된 습관들을 고쳐야 할 것입니다. 게으르고 어긋난 성품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지금은 젊으니까 부족한 것은 괜찮을까요? 나중에 나이가 들면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안심해도 될까요?

우리 모두 나도 행하면서 남을 가르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사모하십시다. 우리가 이 사회의 도덕의 표준이 되어 봅시다. 다시 한 번 세상의 소금이 되어, 세상의 빛이 되기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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