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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복없는 승리 (롬 12: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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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용호 목사

  여러분이 잘 아는 한국에서 가장 큰 중국집인 하림각이 있습니다. 사장이 남상해씨인데 이 사람의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다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여동생이 굶어죽을 정도로 극한 가난에 찌달린 이 집에서 이 아이가 나서 자라는데 그런 그 상황을 보고 남상해가 무작정 열 살때 서울로 올라온 것입니다. 열 살 짜리가 서울로 올라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온갖 궂은 일을 다 하면서 어느 중국집에 보이로 들어간 것입니다. 거기서도 갖은 학대를 다 받아가며 겨우 생존하면서 그 중국집에서 자장면 뽑는 기술을 배워서 오늘의 하림각을 일구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볼 때는 여러 곳에 다니면서 자장면을 다 먹어 보았는데 하림각 자장면 만큼 맛있는 자장면은 없는 걸로 압니다. 자타가 공인합니다. 그만큼 하림각은 그 자장면이 이름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장면 가지고 성공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성공한 삶의 비법을 보면 첫째 일찍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늦잠 자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남상해씨는 그야말로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생활습관입니다. 두번째는 아무리 피곤해도 친절하게 대한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최고의 맛을 낼 때까지 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없이 실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림각 자장면이 예사로 생긴 자장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없는 실험을 통해서 최고의 맛을 낸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경영철학은 모든 사람이 다 잘 살게 되는 사업을 한다, 즉 종업원들도 배려한다는 것입니다. 종업원들도 모두 나 때문에 잘 살도록 배려하는 이런 철학을 가지고 한국제일의 중국집을 건설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했습니다. 이 사람의 성공은 가난에 대한 승리의 표상입니다. 이 사람의 원수는 가난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성공함으로서 가난에 대한 승자가 되었습니다. 이 한 사람의 역사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역사는 모두가 전투개념입니다. 생존을 위해서 싸우는 전쟁이 있고 평등을 위해서 싸우는 전쟁, 번영을 위해서 싸우는 전쟁,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전쟁, 문화전쟁, 경제전쟁, 정치경쟁 온갖 형태의 모든 현상들이 모두 싸우는 것입니다.

  이기는 보람

  그런데 싸움은 이겨야 됩니다. 게임을 해도 이겨야 재미가 있습니다. 진 사람들이 흔히 변명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참여하는데 의의가 있다'라고 합니다. 그건 진 사람 변명이고 게임도 이겨야 재미가 있습니다. 싸움은 이겨야 됩니다. 그런데 이기더라도 보복없이 이겨야 됩니다. 이기고 나서 보복당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보복을 당하는 승리는 대단히 위험하고 불행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복없는 승리를 해야 됩니다.

  역사는 진행이 됩니다. 이 역사는 아무도 중단시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역사의 주장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멈추지 않는 역사를 사람이 멈추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역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실이 있습니다. 꿈 이야기는 역사가 안됩니다. 꿈은 사실이 아닙니다. 두번째는 사실에 대한 해설이 있습니다. 세번째는 교훈이 있습니다. 역사의 교훈이라 하는 말이 그 말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사실이 있고 해설이 있고 교훈이 있습니다. 6 25동란에 대한 사실이 있고 해설이 있고 교훈이 있습니다.

  찰스 에이데어드 라는 역사가는 역사의 교훈을 우리 앞에 들려줍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맷돌은 도는지 안 도는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선과 악을 구별해 내신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역사의 밤이 캄캄해질수록 광명한 밤의 빛이 드러난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 역사가 끝날 것 같은데 또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끝날 것 같은데 또 빛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노아홍수로 세상이 망할 것 같은데 또 하나님은 노아를 통하여 역사의 빛을 삼아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의 교훈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생존전쟁은 죽고사는 문제입니다.

  지난 명절에 어느 일가가 국만봉이라는 산에 올랐는데 거기에 가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죽기도 하고 살아난 사람도 있지만 살아난 사람보고 얼마나 추웠느냐, 가족생각 나더냐, 배가 얼마나 고팠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다 부질없는 이야기입니다. 추위하고 싸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무엇하고 싸웠습니까? 죽느냐 사느냐 하는 사람보고 배 얼마나 고팠느냐, 얼마나 추었느냐 그건 질문이 안됩니다. 생존이 걸린 문제는 잘 입고 잘 먹고가 문제가 안됩니다. 우선 살고 봐야 됩니다. 이렇게 오늘 우리 인생에는 심각한 싸움이 있습니다.

  자연을 해치면 보복한다

  금년에 별세한 사람 중에 민물고기 박사 최기철 박사가 있습니다. 이 분은 평생을 민물고기 연구에 바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연구해서 발표한 민물고기 지표는 상당히 권위있는 자료입니다. 이 분이 삼십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민물고기를 연구했는데 이 사람이 방문한 장소가 칠백오만 곳이라고 합니다. 칠백오만번 답사를 하면서 민물고기를 연구한 것입니다. 밤을 지새면서 민물고기에 완전히 미친 일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이 분이 수질등급에 의한 민물고기 지표를 만들었는데 이게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버들치나 열목어나 산천어가 살 수 있는 물을 가리켜서 1급수라 합니다. 이런 1급수 물은 바로 마셔도 되는 물입니다. 그 다음에 피라미 정도가 사는 물을 2급수라 하는데 먹기는 조금 곤란하고 멱을 감고 하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 물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붕어나 잉어가 사는 물을 3급수라 하는데 그것은 농사짓는 물이라고 합니다. 멱을 감기에도 조금 불결하고 농사짓는 물 정도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4급수물이 있는데 이것은 수채물, 하수구물인데 이것은 물고기도 못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기철 박사님은 이런 연구를 하면서 우리한테 들려주는 강력한 메시지가 하나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시켜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인간이 승리하려면 자연을 승리하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연을 승리케 해야 인간이 이기지 자연을 패배시키면 자연은 우리에게 보복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이 무지는 결국 보복을 당한다는 교훈을 우리 앞에 들려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노무현 대통령께서 "나는 1급수 산천어가 사는 맑은물에서 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 나도 흙탕물을 뒹굴면서 살아왔지만 지금은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 어느 국회의원은 당적을 바꾸면서 "나는 한 마리 연어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도무지 이치에 맞지가 않는 말입니다.
  환경학자 최기철 박사가 남긴 교훈은 우리가 새겨야 됩니다. 자연을 패배시키면 인간은 마지막에 가서 자연에게 보복을 당한다, 그 실례가 우리에게 너무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물의 공해, 음식의 공해 등 온갖 공해 때문에 갖가지 형언할 수 없는 질병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지는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것인가, 그 삶의 철학의 측면에서 볼 때 오늘 성경에 있는 이 이야기를 가지고 교육의 지표를 삼아보아야 되겠다 싶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라

  21절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이 말씀에 근거하여 사는 아이로 키워야 되는 것이 교육의 지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아무리 성경을 가르쳐주고 그들을 위해 아무리 수고를 해도 악에게 지는 인생이 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길 줄 모르는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상당히 과학적이면서도 하나님 말씀의 그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뒤에 있는 말을 강조하기 쉽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자."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체계를 보면 앞의 말이 더 중요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왜 앞의 말이 중요하냐 하면 악에게 지지 말아야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악에게 져 버리면 선으로 악을 이길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선을 활용할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악에게 지지 말아야 됩니다.

  성도들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그것만 자꾸 강조하면 안됩니다. 악에게 진 사람보고 자꾸 선을 행하라 하면 됩니까? 안됩니다. 악에게 지지 않는 이것부터 우리가 먼저 갖추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활 속에서 보면 먼저 악에게 져 버립니다. 악에게 져 놓고는 발버둥칩니다. 아이들끼리 싸워서 울면서 들어오는 아이보고 달랠 때 무엇이라고 합니까? "뚝, 울면 진거야." 그말하면 뚝 그칩니다.

  여러분, 낙심하고 좌절하는 것은 악에게 진 것입니다. 낙심하고 좌절한 사람은 선을 행할 힘이 없습니다. 먼저 악에게 지지 말아야 됩니다. 낙심, 좌절, 실의, 탈선 다 진 것입니다. 시기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것은 다 악에게 진 것입니다. 시기하고 분노하는 사람이 선한 일 하는 것 보았습니까? 악에게 진 사람은 그 다음 일은 못합니다. 무관심, 무책임 이것도 악에게 진 것입니다. 무책임은 패배자입니다. 포기하는 것, 패배자입니다. 얼마나 우리는 낙심하고 실의하고 얼마나 미워하고 시기하고 얼마나 무책임하게 살고 얼마나 무관심 속에 살고 때때로 포기하고 그렇게 살면서 무슨 선한 일을 합니까? 무슨 선으로 악을 이긴단 말입니까? 악에게 지지 말라는 이 앞의 말씀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싸움이 있어도 낙심하면 안됩니다. 낙심하면 진 것입니다. 시기하면 진 것입니다. 원망하면 진 것입니다. 무책임은 진 것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라는 이 말은 해석을 붙이면 이런 말이 됩니다. 악으로 인하여 악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는 말입니다. 또 악으로 인하여 번민과 갈등에 빠지지 말라는 해석입니다. 악한 방법으로 보복을 하던지 그 악 때문에 내가 번민에 빠지고 갈등에 빠지는 것, 좌절하고 분노하고 시기하고 포기하고 전부 악으로 인하여 내가 번뇌에 빠지는 그것이 악에게 진 것입니다. 그러면 선으로 악을 이긴다는 이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19-20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에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신데 내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했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리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오늘 본문 그대로 하면 "원수를 악으로 갚지 말라"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하면 내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놓으리라" 참 재미있는 비유입니다. 숯불을 머리맡에 쌓아놓면 머리가 뜨끈뜨근 해집니다. 이게 무슨 비유냐 하면 추운 냉기가 있는 그런 상황에서 숯불을 원수머리에 낳아둠으로 몸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라는 비유입니다. 원수의 목을 녹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읽을 때 "목사님, 우리 현실하고 너무 안 맞습니다. 원수에게 어떻게 먹이며, 나도 추워 죽겠는데 원수머리맡에 숯불을 갖다 놓다니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가만히 보면 원수라는 이 개념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보편성을 가지고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원수가 어디 있습니까? 전부 집 안에 있고 가까이 다 있습니다. 부모자식간에 지금 원수가 되어 있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서운하게 생각하고 원수가 된 관계입니다. 왜 그런줄 압니까? 주었다 라고 생각하면 괜찮은데 빼앗겼다고 생각하면 원수가 됩니다. 원수를 악으로 갚지 말라고 했는데 원수는 내게 악으로 갚았는데 그것을 다시 악으로 보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국 선으로 악을 이긴다는 이것은 앞의 것 "악에게 지지 말고"라는 거기에서 선으로 악을 이길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아야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집니다. 그래서 앞의 말이 더 중요합니다. 악에게 지지 않고 나를 유지하고 있어야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고도 이기는 그 비법을 터득할 수 있고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회심한 기록을 보면 아주 극적입니다. 일제시대에 정치사상범으로 투옥이 되었습니다. 감옥의 독방에 갇혀 있는데 그 감옥 마루바닥에 무슨 쪽지가 하나 꽂혀 있어서 빼내서 읽어보니까 예전에 성경 쪽복음이라고 있었는데 그 쪽복음을 몇장 찢어서 꽂아놓은 것입니다. 산상보훈의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의 말씀이었는데 하도 심심하니까 펴서 읽어본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도대체 이것이 무슨 소리냐 하고 계속 읽어갑니다. 5장 38-40절에 가서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내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왼편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달라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십리를 가주라" 이상재 선생은 그것을 읽고는 '말도 안되는 소리, 한심한 소리, 무슨 이런 성경이 있느냐'며 다시 똘똘 말아서 꽂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할 일이 없으니까 또 끄집어내어 읽은 것입니다. 그것을 몇 일 반복하다가 그만 이 고집불통 이상재 선생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그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고 믿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길로 회심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기독교 정신으로 애국운동을 한 사람입니다.

  승자는 원수가 없다

  원수라는 것은 패자에게만 있습니다. 승자가 되면 원수가 없어집니다. 우리가 왜 원수가 많습니까? 왜 내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패배자이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승자가 되면 내 안에 원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승자로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원수가 없는 삶을 삽니다. 우리가 패배자의 길에 머물러 있으면 계속 우리에게는 나를 괴롭히는 원수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기는 쉽습니다. 악에게 지지 않을 때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은 저절로 됩니다. 악에게 져 버리면 선으로 악을 이기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악에게 지지 않고 자기를 유지하는 사람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 말과 같습니다. 선을 베풀어보지도 못하고 악에게 져 버리는 패자인생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요즘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사회적인 현상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과보호 교육으로 인한 마마보이 현상, 피터팬 시드롬, 이런 현상들이 오늘 우리 아이들 세대속에 팽배해 가고 있습니다. 악과 더불어 대결해 보는 어떤 그런 기본적인 자세도 모르는 것입니다. 참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인내를 못하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자라가는 그 공간부터 놀이문화가 너무 다릅니다. 요즘 밖에서 땅 따먹기 하는 애들이 있습니까? 고무줄놀이, 공놀이, 구슬치기 하는 애들이 있습니까? 이런 놀이는 직접 땅을 밟고 현장에 가서 친구하고 부딪혀서 하는 놀이입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방에 앉아서 온라인 게임을 통해서 기상천외한 온갖 놀이를 다 합니다. 공놀이, 구슬치기는 시시해서 놀이축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케이블TV의 게임채널에서 하는 최신게임을 보았습니다. 나는 잠깐 보려고 했는데 그 게임 끝날 때까지 못돌리겠더라고요. 얼마나 신나는지 모릅니다. 환상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앞에 펼쳐지는 장면들이 너무 신기하고 좋은 것입니다. 환타지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 게임 속에서 아이들이 지금 자랍니다. 현장에 없습니다. 친구가 없습니다. 혼자서 다 가능합니다. 혼자서 우주를 다 돌아다닙니다. 그런 환타지 속에서 아이들이 크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아이들 신앙교육 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을 보고 이렇게 따지고 말합니다. "얘야, 그건 가짜야, 그건 만든거야, 그건 허구야, 그건 오락게임이야" 그렇게 말하면 그 아이들은 우리가 하는 걸 보고 허구라고 합니다. 우리가 실제로 하는 것도 뜻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거기서 현실을 경험하고 우정을 키워갑니다. 현실에서는 친구를 사귀려면 아무리 짧아도 6개월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친구를 제대로 만들려면 6개월이 걸려야 됩니다.

  그런데 사이버 세계는 한두 시간 안에 꿈에도 잊지 못하는 친구로 만들어 버립니다. 채팅의 유혹이 그것입니다. 채팅을 해서 내 마음에 드는 말 한마디 들으면 채팅에서 만난 그 여자, 그 남자를 못잊어서 그걸 머릿속에서 빼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더 만나고 싶고, 두세 번 하다가 실제로 얼굴 한번 보았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채팅은 많은 경우 나이를 속이고 합니다. 그렇게 어른스러운 문장으로 표현을 했지만 나이를 알고보니 중학생입니다. 그 중학생을 앉혀놓고 40대 여자가 환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사례를 이야기하는 전문가의 말을 제가 인용하는 것입니다.

  장애물을 뛰어넘자

  그러면 오늘 교육현장에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제가 하는 이야기를 자꾸 들으면 '야, 교사하기 어렵다'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적어도 초등부 아이들 이상은 아바타 경험을 80% 다 하고 있고 온라인게임 안하는 아이들이 없고 그런 아이들이 지금 내 앞에 성경 배운다고 나와 있습니다.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절대진리가 있습니다. 천지는 변해도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변화 앞에서도 진리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아이들 앞에 전해주어야 되고 심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이버세계를 100년을 산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진리를 소유하고 그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내가 그 주님의 사랑과 구원의 기쁨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함으로서 그들을 만날 근거가 있는 것이지 그 예수를 제외해 버리고 나면 우리는 아이들하고 지금 상대가 안됩니다.

  오늘 우리는 '나는 승자'라고 자부를 하는데 내용을 보면 패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안됩니다. 악에게 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망하지 마시고 포기하지 마시고 미워하지 마시고 무관심하지 마시고 무책임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패배입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다음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극복해야만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만 보복이 없는 승리를 얻는 것입니다. 승리지상주의가 되면 안됩니다. 보복이 없는 승리를 해야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악에게 지지 말아야 되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프로야구의 잘 나가는 선수가 한 명 있습니다. 몇 년동안 선수생활을 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이진영이라는 선수입니다. SK에 소속되어 있는데 현재 타격 제1위입니다. 나는 그 선수를 잘 모릅니다. 그런데 야구해설가가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야구선수로서 성적이 안오르니까 스트레스가 말로 못하는 것입니다. 옆에서는 기라성 같이 뛰어가고 이승엽은 기침만 해도 신문에 기사가 되는데 나는 무엇이냐 이겁니다. 그는 좌절의 터널을 넘어서서 피나는 노력을 해서 현재까지 타격 1위입니다. 야구선수의 타격 1위는 최고의 명예입니다. 그 친구가 패배를 디디고 오늘의 아주 멋있는 야구청년으로 거듭났습니다. 수많은 선수가 절망을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수는 그것을 탈출하고 오늘 우뚝 섰다는 것입니다. 

  맺는 말

  우리가 선으로 악을 이기는 문제는 쉽습니다. 그것은 악에게 지지 않을 때 가능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앞의 과정에서 고장이 나 있다는 것을 잘 성찰하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이 앞에서 고장나 있습니다. 앞에서 패농이 되어 뒤에 추수가 안된다는 말입니다. 선으로 악이기는 것은 추수입니다. 앞의 농사가 패농이 되어 종자를 잘못 뿌렸습니다. 가뭄을 만났습니다. 홍수를 만났습니다. 우리 신앙의 농사에 있어서 상반기 농사를 잘 관리합시다. 그래야 하반기에 추수가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육도 무조건 무엇을 잘 하는, 일등 만드는, 승자 만드는 그런 승자지상주의 교육이 아닙니다. 악에게 지지 않는 이 기초를 다져주어야 됩니다. 과외공부는 이것을 생략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승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합격하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과외로 안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 말씀을 뒷부분만 강조하지 말고 앞부분하고 같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사역이 이런 인격을 키우는 사역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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