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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길을 예비하라! (눅 1:68~79, 말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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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강석공 목사 (2004년12월05일 설교)
 
  오늘은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이 대림절 절기는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으로는 연말에 있습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무엇을 합니까? 개인적으로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합니다. 직장이나 단체 같은 곳에서도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에 대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까? 또 망년회다 뭐다 해서 정신 없이 바쁘게 다니다 보면 몸과 마음이 아울러 상하기 쉬운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연말연시를 지내다 보면 별 생각 없이 새해를 맞을 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여간 요즘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쁩니다. 경기는 안 좋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바쁜 것 같습니다. 너무 바뻐서 편지는커녕 이메일 주고 받는 것도 이제는 귀찮아 합니다. 그저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 주고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렇게 바쁜 중에 어떻게 이 대림절을 지킬까요? 이 대림절 절기에 사람들은 과연 어떤 마음 자세로 주님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오늘 봉독한 누가복음의 말씀은 “사가랴의 찬가”라고 불리우는 매우 특별한 말씀입니다. 그 옛날 사무엘을 낳은 후 했던 한나의 기도라든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들은 후 했던 마리아의 찬가는 모두 다 어머니들의 기도입니다. 그에 반해 이 사가랴의 찬가는 특이하게 성령 충만한 아버지가 예언한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기자는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여성의 위치를 아주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의 탄생 이야기와 관련해서 그는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났던 여선지자 안나와 같은 여성들의 역할을 두드러지게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거기 그치지 않고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의 위대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찬가와 함께 경건한 인물 시므온의 찬가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어떻게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사가랴가 그의 아들의 탄생에 즈음해서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루 아침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평소 그의 신앙 생활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6절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평소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을 살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바쁜 생활에 쫓기는 우리가 사가랴처럼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이 행하기 위해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연말이 되면 무엇을 먼저 생각합니까? 망년회보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그 사건과 의미를 먼저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 대림절 절기를 경건하게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참된 의미의 성탄은 결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게 성탄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때문에 이 사가랴의 찬가는 오늘도 바쁘다고 핑계하는 많은 사람들, 특히 적당히 신앙 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는 메시지입니다.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며 그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한 해를 정리하는 자세야말로 이 대림절 절기에 반드시 지켜야 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기본 자세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이 사가랴의 찬가가 개인의 감사가 아닌 민족의 구원에 대한 감사로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서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신 것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 그의 아들 세례 요한의 탄생과 그 아들이 장차 할 일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신 것과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과의 관계를 잘 말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개인적인 신앙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 결코 둘이 아니라 하나였던 것입니다. 사실은 먼저 민족이 있고 그 안에 개인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민족이나 나라와 관계 없는 개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올 한 해를 보내면서 주위를 둘러볼 때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소위 강대국들이 약소 국가 소수 민족들을 무참히 짓밟는 만행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습니까? 우리 나라도 또한 핵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현안과 관련해서 약소국의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외교 전략 중에 하나에 불과하겠지만 우리로서는 생사가 달린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지 않습니까? 당장 외국인들이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외국인들의 투자가 줄어들자 경기는 둔화되고 성장률은 낮아지고 실업율은 엄청나게 증가하지 않았습니까? 생계가 막막하여 자살하는 사람까지 속출하게 되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문제가 바로 개인의 문제로 파급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을 겪으면서 오늘 우리는 이 땅 위에 오신 주님을 과연 어떻게 고백해야 할까요? 우리도 또한 사가랴처럼 고백할 수 있을까요? “찬송하리로다, 주 우리 한민족의 하나님이여! 우리 민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그렇습니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천사가 뭐라고 말합니까? 누가복음 2장 10절의 말씀입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온 백성에게 미칠 구원의 기쁜 소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온 백성 안에는 강대국의 백성만 아니고 약소 국가 소수 민족까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에게 주님의 오심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때문에 특별히 우리 민족의 문제 속에 오신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 주님을 영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더 이상 우리 민족의 생존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들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암울했던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또 다시 그 주님을 기다립니다. 미래의 행복에 대한 그 어떤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또 다시 새해를 맞이합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까요? 주님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도하고 있습니까? 나라와 민족을 위한 간절한 기도,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통일, 정치의 안정과 경제의 성장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드려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울러 그 옛날 세례 요한의 사명이 오늘 우리의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사가랴의 찬가를 통해서 우리는 세례 요한의 사명이 무엇인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눅 1:76~77) 그의 사명은 주님의 백성에게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그의 아들의 사명을 분명히 인식했듯이 오늘 우리도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가 분명히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 옛날 세례 요한의 사명이 바로 오늘 우리의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즉 이 민족에게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사명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그 구원의 의미를 모르거나, 아예 그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을 정확하게 소개하고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옛날 세례 요한처럼 우리도 이 시대에 주님이 이루신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주님처럼 빛이 되고 평화의 길을 걷는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볼 때 주님이 오신 사건은 나의 결단을 요구하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나의 구체적이고 새로운 결단과 각오가 없이 맞이하는 대림절 절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탄절을 단지 향락과 쾌락의 방편으로 이용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까? 절망 가운데 빠져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주님이 오신 것이 선포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그 주님의 사랑을 그들로 하여금 마음껏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과연 누가 그 일을 감당할 것입니까? 바로 나요 또한 우리입니다.

  그러나 나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 1:78~79)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범죄한 인간의 계획과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 대림절 절기에 주님을 더욱 간절히 기다리며, 또한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더욱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민족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고 또한 이제 곧 다시 오실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을 예비하는 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들이 이 민족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발견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 대림절 절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더욱 귀중한 절기인 것입니다! 헛된 세상 풍조에 휩쓸려 귀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오직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이제 곧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충성스러운 제자들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마침내 주님 보좌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과 함께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아 쓰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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