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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려운 예수님 (요 6:6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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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예수님
요 6:60-71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1. 대림 둘째 주간을 시작하면서

여러분. 지난 주간 주님의 재림을 얼마나 의식하며 사셨습니까? 이제 오늘부터 대림절 둘째 주간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 "생명의 밥"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 끝에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58절)고 하셨는데 참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잇던 당시 유대인들도 매우 어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작하는 본문에서 이렇게 토로하고 있습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60절)

사실 우리들도 어렵습니다. 지난 주간 우리 곁을 떠난 성도가 있습니다. 늘 겸손히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던 여성도 한 분이 소천 하셨습니다. 아직 50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가셨습니다. 너무나 아까웠지만 영정의 그 화사한 모습의 주인공을 관에 넣고 땅에 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예수님의 밥을 먹으면 영원히 산다고 했었는데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던 그 분이 왜 일찍 돌아가셔야 하나?'   

2. 어려운 예수님

1) 살리는 영과 무익한 육(60b)

본문에서 예수님도 유대인들이 당신의 말씀을 어려워하며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렇게 대답을 주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63절)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이 만일 육체의 영생이었다면, 그 누군가의 주장처럼 예수님은 당신의 사역에서 실패자일 것입니다. 아무도 예수님 후 육체의 영생을 누리고 있는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매우 분명히 영생의 의미를 밝혔습니다. "육은 무익한 것"이라고! 영생은 육이 아니라 영임을 확고히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영육 이분법"을 세우고자 한 뜻이 아닙니다. 소위 "영혼과 육체의 이분법"은 육체 혹은 물질의 무가치성, 죄악성을 표현하는 근본이 담겨진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를 지으시고 특히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하시며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자연 만물(물질)이나 우리 몸이나 모두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을 결코 무가치하거나 죄악 덩어리라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단지 만물과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우리 속에 죄악이 들어온 것일 뿐입니다.   

실례로 예수님은 병자들을 매우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을 고치시며 새롭게 해주셨습니다. 심지어 유대인의 관습법인 안식일에도 예수님은 쉬지 않으시고 병자를 치료해주셨습니다. 이런 행위는 예수님께서 육체를 매우 존귀히 여기셨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존귀하지만 육체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는 못합니다. 까닭은 육체의 욕망이 성령을 거스리고 음행과 우상과 호색하는 현저한 일들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4)

이는 육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에서 역사하는 그 정과 욕심 때문에 결국 육체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잇지 못하는 것입니다. 뿐 아니라 세상 만물들도 그렇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이 오시는 날 일어날 일을 말씀하시면서 이 문제를 밝히셨습니다.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 . .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전 3:10, 11-12)

주님의 재림으로 심판을 받을 때 하늘조차도 사라지고 체질(만물의 근본 요소, 여기서는 달과 별들 천체를 의미한다고 함)이 불에 녹아져 없어져버린다고 했습니다. 그 후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이런 세계관은 당시 유대인들에겐 도무지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실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보이지 않는 영의 문제보다는 보이는 육의 문제에 빠져 살고 잇습니다. 사람을 육체대로 판단하며 물질의 가치를 전부로 여기며 삽니다. 자연스럽게 주님의 나라 이해도 현실의 물질적인 척도로 상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나님의 나라는 어른들의 나라가 아니라 아이들의 나라라고, 하나님의 나라는 세리와 창기들이 먼저 들어가는 나라라고, 하나님의 나라는 부자들이 들어가기에 낙타가 바늘 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나라라고. 그래서 오히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것이며, 어린 아이들의 것이며, 비록 육체는 비천하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이들의 나라라고 하십니다.       

바로 이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작은 땅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 탄생하셨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2) 아버지가 오게 하셔야(65절)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감동이 없으면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그 무엇을 가르치시고 표적을 행하시니 많은 무리들이 관심을 갖고 제자가 되고자 따라 왔지만, 점차 그들의 가치관과 다른 말씀을 하시니 알아듣지를 못하고 다 물러가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64절) 불렀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이들을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신 사람들"(65절)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어려운 단어나 어려운 논리나 어려운 개념을 사용하여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보내주시지 않은 자들이기에, 그래서 그들에게 계시(감동)가 없어서, 그래서 그들이 믿음을 갖지 못해서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의 경우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모습입니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을 때는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마음이 닫혀 있을 땐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고 신뢰 관계가 이루어지면 무엇이든지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간혹 어려운 말을 해도 그래 알았어! 하고 수용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바라보면 다 이해가 됩니다. 믿음이 식어지면 우리는 작은 일에도 우왕좌왕하며 답답해합니다. '믿음의 성숙도'는 곧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한 '이해도'와 같습니다.

3) 제자들이 물러감

본문의 제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어렵다'고 하며 물러갔습니다. 그러고는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66절). 나중 가롯 유다도 결국 이들 중에 포함되고 말았습니다.

옛적 부흥사들의 예화에 평생을 교회 다녔던 어느 장로님께서 숨을 거두기 직전에 목사님이 "예수님의 은혜로 천국 갈 줄 믿으시지요?"하고 물었더니 "천국이란 게 정말 있나요?"하고 죽더라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우리 중에는 아무도 이런 분들이 없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자기를 속이고 교회 생활을 하면 결국 나중 주님을 떠나고 맙니다. 영의 일을 육의 눈으로 판단하고, 영의 일을 육의 귀로 듣고, 영의 일을 육의 잣대로 재고, 도무지 영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결국 주님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아무도 이런 분이 없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고 영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면 주님을 떠나면서 결국 주님을 팔아먹으려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바로 가롯 유다의 경우입니다.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적대시합니다. 훼방꾼이 됩니다. 엉뚱한 말들을 합니다. 교회 역사에서 이단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3. 그러나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도 물었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67절) 이에 베드로가 답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68절)

베드로와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알아들었습니다.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곧 "영생의 말씀"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시대에 혁명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선지자들의 말씀들이 대부분 그랬습니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자들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그 시대가 죄악에 빠지고 악에 기울어질 때 하나님을 대신하여 꾸중하고 바르게 잡아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대부분 시대의 변혁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랬기에 사람들이 어려워했고, 순종할 수 없어 예수님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나머지 열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영생의 말씀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말씀에 영생의 능력이 담겨져 있고, 그 말씀에 시대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담겨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어렵다고 다 떠날지라도 남아서 주여 말씀하옵소서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주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의 생각과 같지 않다고 성내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럴 때 자신의 죄를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세속화되어 가치관이 오염되었고, 거짓을 따라 살아왔구나 하는 깨달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르다', '어렵다', '이상하다'고 하며 말씀을 향한 귀 문을 닫게 되고 결국 영혼이 주님을 떠나게 됩니다.

대림절을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다시 귀담아 듣는 시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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