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지금도 유효한 축복비전 (창 15:1-7)

  • 잡초 잡초
  • 285
  • 0

첨부 1


- 설교 : 이한규 목사
     
< 창세기 15장의 의미 >

창세기 15장은 창세기에서 아마 가장 중요한 장 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유명한 ‘횃불 언약’이 있는 장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부름 받는 장면이 나오는 창세기 12장은 중요한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2장은 많이 묵상하고 목사님들도 그 본문을 가지고 많이 설교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15장은 어떻게 보면 창세기 12장보다 더 중요한 장입니다.

창세기 12장은 ‘약혼의 장’이라고 별명을 붙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면 그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축복의 청혼을 하셨습니다. 그 청혼을 받고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으로 갑니다.

그에 비해 창세기 15장은 ‘결혼의 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준비한 제물 사이로 타는 횃불의 역사로 지나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정식으로 영적인 결혼에 골인했음을 상징화시키는 장면입니다. 약혼보다 결혼이 더 중요한 것처럼 창세기 12장도 중요하지만 창세기 15장은 더 중요한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창세기 15장이 주는 몇 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1. 구체적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과 같으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약속하시면서 뭇별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 장면은 비전의 중요성을 잘 말해줍니다.

축복을 원하면 그 전에 영적 그림과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집을 지으려면 미리 설계를 해야 하는 것처럼 축복의 집을 짓기 위해서도 미리 영적인 설계를 해야 합니다. 인테리어를 할 때에도 미리 구체적인 설계를 잘 해 놓으면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더 아름답게 꾸밀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비전이 뚜렷하면 훨씬 더 작품 인생이 나올 수 있습니다.

비전이 없으면 작은 축복은 받을 수 있지만 큰 축복은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비전을 가지고, 그 비전을 계속 꿈꾸고, 계속 생각하고, 계속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회도 주시고, 아이디어도 주시고, 사람도 주시고, 재정도 주실 것입니다.

1991년 말, 저는 31세에 뉴욕에 있는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CMA)이 설립한 신학교(Alliance 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면서 ‘CMA 선교사 양성 신학교’를 세우는 비전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은 다 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당시의 감독님도 황당하게 생각했습니다. 큰 교회 담임목사도 하기 힘든 일을 젊은 목사가 하겠다고 하니 정말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저는 그쪽으로 마음이 끌렸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은 부흥사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흥사의 모습은 매력적입니다. 솔직히 저도 부흥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저는 부흥사 체질이 아닙니다. 사람은 은사대로 살아야 합니다. 수많은 은사 중에 자기가 잘하는 은사를 살려야 성공과 축복과 행복의 확률은 높아집니다.

그런데 저 자신을 딱 보니까 부흥사는 못 되어도 목사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신학교 강사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자꾸 신학교에 대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외적인 조건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사람도 없었고, 재정도 없었고, 후원자도 없었고, 박사 학위도 없었습니다.

박사 학위도 없는 사람이 신학교의 비전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황당합니까? 그러나 19세기에 최고의 복음전도자들이었던 무디 목사님도 박사 학위가 없었고, CMA의 창시자인 심슨 목사님도 무수한 저서를 남겼지만 박사 학위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박사 학위가 없어도 박사 학위를 가진 좋은 강사를 모시면 얼마든지 좋은 신학교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비전을 가지고 지금까지 14년을 버티며 준비하고, 생각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비전이 서서히 싹을 내고 있습니다. 감독 목사님도 처음에는 저의 비전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동안 2분의 감독님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현재 감독님은 “한번 해보자!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실행위원회에서 한국에 세울 작은 신학교의 교육을 인정해서 목사 안수가 가능하도록 하는 안건이 통과될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꿈같은 비전도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언젠가 이루어질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좋은 장소를 물색해서 서서히 준비하면 됩니다. 작은 건물이라도 있으면 좋지만 처음은 작게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습니다. 그저 교통이 편리한 강남 지역의 지하철 부근에 있는 사무실 하나와 강의실 2개 정도의 공간이 있으면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신학교냐?”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지금 유명한 교단 신학교들도 30년 전, 50년 전에는 다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마련하기 힘들면 임시로 우리 교회 교육관을 사용하면 됩니다. 그렇게 시작하다 보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사람도 주시고, 재정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 흐르는 은혜의 순환원리에 정통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이제는 선교사를 보내는 일에 관심을 기울어야 합니다. 그렇게 은혜는 순환되어야 합니다. 또한 성도는 목회자의 말씀을 먹고 삽니다. 반대로 목회자는 성도의 사랑을 먹고 삽니다. 그렇게 서로 은혜를 순환시켜야 합니다.

목회자는 좋은 성도를 길러내야 합니다. 반대로 성도는 좋은 목회자를 길러내야 합니다. 성도의 기도와 물질의 헌신으로 좋은 목회자가 배출되고, 그 좋은 목회자가 좋은 성도를 배출하는 은혜의 순환원리를 생각할 때, 여러분들이 신학교의 비전에 작은 헌신의 손길을 보탠다면 그것이 장래에 좋은 목회자를 배출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이제 신학교의 비전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십시오. 스스로 좋은 후원자가 되고, 좋은 후원자를 힘써 물색하고, 후원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으면 최소한 좋은 후원자를 달라고 매일 잠깐만이라도 기도해주십시오. 이제까지 목회자와 선교사를 통해 은혜를 받았으면 이제는 좋은 목회자와 좋은 선교사를 배출하는 일에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헌신을 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 일을 위해 최선의 역량을 결집해나가고 있는 요삼일육선교회(John316 Mission)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2. 약해진 비전의 불씨를 살려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시기 전에 비전부터 주십니까?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에 대한 기대를 하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내일이 소풍날이다!”라고 하면 너무 좋아서 잠을 잘 못잡니다. 늦게 잠을 자도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일어나자마자 날씨부터 확인합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설레고 기쁜 날이 소풍날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그런 내일에 대한 넘치는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고 비전이 없으면 그런 설렘과 기대가 없어집니다. 또한 일이 뜻대로 안 되고, 생각대로 안 되면 그런 비전이 약화됩니다. 그래도 찬란한 내일에 대한 비전을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희미해진 비전의 심지라도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심지에 불을 붙여주실 날이 올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비전의 심지에 다시 불을 붙여주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 아브라함은 큰 기대를 가지고 우상을 섬기던 고향 땅을 떠났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하게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받은 지 10년이 되도록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비전은 점차 약해졌습니다. 마음속에 의심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의 마음에 다시 비전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본문 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문제에서도 지켜주시고, 순종하는 믿음에 크게 보상해주실 것이니까 다시 한번 비전을 가지고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때 아브라함의 비전은 많이 약해졌습니다. 그는 기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서 말합니다. “하나님! 아직도 저에게 줄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렇게 계속 말씀으로 립 서비스(lip service)만 하시고, 실질적인 비전의 열매를 안 주시면 어떻게 합니까? 보세요. 저는 자식이 없습니다. 자식도 없이 어떻게 큰 민족을 이룹니까? 차라리 저는 저의 집에서 기른 다메섹 출신의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겠습니다.”

인내의 기간이 길어지니까 아브라함의 비전은 현저히 약화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의 비전을 다시 되돌려 주시려고,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뭇별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내일에 대한 비전을 가져야 진짜 복의 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설렘과 비전과 기대가 줄어듭니다. 이번에 어머님과 같이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기 위해서 여행을 같이 가자고 했는데 처음에는 같이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식에게 폐만 끼칠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자식은 어머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아주 기쁘게 생각하고 크게 환영하는데 어머님은 자식에게 별로 환영을 별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고, 몸과 마음이 약해지고, 일이 생각대로 잘 안 되면 내일에 대한 설렘과 기대와 비전이 점차 약화되고 마음이 위축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비전과 설렘과 기대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젊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생동감 있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 가능성도 커지고 크게 축복 받습니다.

우리는 주어지는 대로 살고, 시간을 때우면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살자니 고생이고, 죽자니 아깝고...하는 마음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내일에 대해 기대하고, 축복을 기대하고, 내 자녀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걸어야 합니다. 비전이 없으면 이팔청춘이라도 팔십 노인이고, 비전이 있으면 팔십 노인이라도 이팔청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청춘입니다. 왜냐하면 죽는 순간까지 천국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코 무기력 증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으키실 역사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의 베풀어주실 내 인생의 잔치와 넘치는 보상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고 비전의 그림을 그려 가야 합니다.

저는 글을 쓰는 것은 잘하는 편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은 못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번 휴식 기간에 무엇보다 많이 했던 것이 바로 머리 속에서 미래에 대해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1기 6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2기 사역이 시작되는데 어떻게 하면 2기 사역에서 더욱 교회를 부흥시키고, 더욱 선교를 잘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에 대해서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번 안식 기간에 3가지를 깊이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교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말고, 사역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말고, 설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말자!” 그래야지 진짜 쉼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도들에게 비전을 도전하고, 내일에 대해 좋은 꿈을 제시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도 아브라함과 같은 복의 근원이 되고, 성도들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길을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지금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성공을 위해 각종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면 주신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세상의 아이디어보다 더 큰 아이디어와 지혜를 주셔서 성도들에게 거룩한 비전을 도전하고 좋은 그림을 제공할 수 있게 하소서!”

지금은 정보화시대입니다. 남이 하는 것을 따라가면 이미 늦습니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지혜가 필요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생활에는 우직함이 필요합니다. 묵묵함과 신실함과 비둘기 같은 순결함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 복음화의 사명을 주면서 뱀 같은 지혜로운 모습도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마 10:16). 태초에 뱀의 지혜가 잘못 사용되어 사단의 도구가 되었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뱀 같이 지혜로운 모습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번 안식 기간에 한 가지만 집중적으로 구했습니다. “하나님! 비전을 주시고, 그림을 주세요. 그리고 남이 하지 않는 나만의 것을 주세요. 저희들은 힘이 없습니다. 재정도 없습니다. 사람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작은 힘으로 세계를 제패한 몽골 기병처럼 작은 힘을 가진 저희에게도 영적으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영적 전략을 주세요.”

언뜻 보면 황당한 기도 같습니다. 지금 유능한 목사님 중에는 30대에 큰 교회 담임목사가 되신 분도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빌 하이벨 목사님, 릭 워렌 목사님도 모두 30대에 ‘그분들만이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 하나(은사)’를 가지고 세계적인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40대 중반이 된 제가, 이미 세상적으로는 은퇴를 생각해야 하는 제가 그런 기도를 하고 있으니 저 자신도 황당하게 느껴지고 자꾸만 믿음 없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마음속에 또 다른 음성을 주시면서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큰 비전을 가지고 하란을 떠날 때가 75세였다(창 12:4)”는 말씀으로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또한 “비록 현재 큰 교회 담임목사로 있지는 않지만 이미 인터넷 사역을 통해서 최고의 말씀 목회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음성으로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그 믿음이 의심을 이겼습니다. 그래서 이번 안식 기간에 계속 하나님께 마음속으로 구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주신 비전을 잘 이룰 수 있도록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할 수 있고,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갈 수 있는 영적인 아이디어를 주세요. 아니면 저에게 그런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을 보내주세요.”

저는 지금도 그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목회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그런 기도를 하며 비전의 불씨를 살려야 합니다. 그렇게 나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주시고, 동역자와 후원자도 주시고, 비전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3. 믿음은 거룩한 비전을 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비전을 품게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이 다시 하나님을 믿고 비전을 품자 하나님은 그 모습을 의롭게 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완벽하게 사는 것을 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완벽하게 살아야 하나님께 의가 되겠습니까? 사람의 의로운 옷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누더기와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한 삶을 의로 보시지 않고,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마음속에 품는 것을 의로 보십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면서 가장 속상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가장 속상합니다. 그런 모습이 있어도 믿음을 포기하지 말고, “나는 하나님의 축복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거룩한 비전만은 잃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더욱 받아주시고, 더욱 의롭다 여기시고, 더욱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가끔 비전을 말하면 사역에 대한 비전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런 사역을 하겠다! 내가 이런 일을 이루겠다!”는 비전만 비전이 아닙니다. ‘사역에 대한 비전’도 생각해야 하지만 ‘사람에 대한 비전’도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비전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부족한 나 자신도 언젠가는 하나님 보시기에 흡족한 나 자신이 될 것이라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그 비전을 보시고 하나님은 정말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흡족한 도구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절대 지금의 모습에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계속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면 내가 바라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의 꿈은 외국에 가서 광고 마케팅을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정 형편상 나머지 가족은 다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나고 자신은 도저히 유학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비전을 가지고 벽에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인 “구하라 구할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르리라 열리 것이니라!”는 말씀을 붙여 놓고 새벽마다 교회 나가서 축복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결국 그 꿈대로 유학길이 열려서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학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서 생활이 더욱 어려워 졌습니다. 밀가루 한 부대를 사서 매일 하루 세끼를 수제비만 끓여 먹고 자그마치 4개월을 버텼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한국으로 귀국했지만 갈 곳이 없어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신문을 이불 삼아 자기도 했고 극장에서 점원 노릇도 했습니다.

그런 현실에 너무 낙심이 되었지만 그때 하나님께서 또 다른 말씀을 주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는 그 말씀을 굳게 붙들고 비전의 불씨를 살렸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연예계로 인도하시고 최고의 스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가 바로 최수종입니다. 우리도 말씀과 비전을 붙들고 살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가장 최고의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축복 비전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축복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그 축복의 약속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그 축복의 약속은 결코 깨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믿음이 없고 마음 문을 닫아서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한번 하신 약속을 번복해서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어떻게 하십니까? 언약을 체결하시겠다고 결심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제물을 준비하게 하십니다(9절). 그때 아브라함이 그 제물을 취하고 중간을 쪼개어 놓고 새는 쪼개지 아니하고 놓았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결혼식을 준비하는데 사단이 보낸 솔개가 자꾸만 그 결혼식을 방해하려고 하자 아브라함이 쫓아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해가 졌습니다. 바로 그때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습니다(17절). 그 모습에 대해서 본문 18절은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언약입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을 창대케 하겠다는 축복의 언약입니다. 이 언약이 우리에게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언약을 하나님은 꼭 지키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잃지 말고 꼭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했던 신실한 다짐과 약속을 끝까지 지키려고 해야 합니다. 7년을 수일 같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믿음을 지키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의 약속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어느 날, 한 처녀가 산책을 하다가 연못에 빠졌습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한 청년이 그 처녀를 구해주었습니다. 처녀는 청년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겼고, 청년은 처녀의 미모에 반해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을 맹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은 갑작스레 먼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반드시 돌아올 테니까 자기를 기다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처녀는 그 약속을 믿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약혼을 증명한 증인을 세우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 사람이 없었고 마침 족제비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처녀는 방금 지나간 족제비와 자신이 빠졌던 연못을 증인으로 하자고 굳게 언약하고 헤어졌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났습니다. 처녀는 끝까지 청년을 기다렸지만 청년은 다른 지방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의 아이가 풀밭에서 놀고 있는데 어디선가 족제비가 나타나 아이의 목을 물어 죽였습니다. 그 아픔을 극복하고 얼마 후 다시 둘째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둘째 아이가 한 살쯤 되던 때 아장 아장 풀밭에서 걷다가 연못가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연못에 자기 얼굴이 비치는 것이 신기해 자꾸만 들여다보다가 그만 연못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 일을 당하고 청년의 마음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수 년 전에 사랑했던 처녀와 맺은 언약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언약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바로 그런 언약관계입니다. 우리가 그 언약을 잊고 세상을 바라볼수록 고통은 심해질 것입니다. 반대로 힘들어도 언약을 지키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잃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최상의 축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인내하는 자가 약속을 받는다고 말합니다(히 10:36). 환난 중에 믿음을 포기하면 더 큰 환난과 고통이 있게 되지만 인내하면 반드시 약속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의 약속이 이 땅에서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미 천국의 축복이 약속되었고, 이 땅의 보상이 적으면 천국의 보상은 더욱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실망하거나 낙심하거나 지금도 유효한 축복 비전을 무효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고 넉넉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비전을 이루어가는 복된 심령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