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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면 (시 4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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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광일 목사 (벧엘감리교회)

스코틀랜드의 남극탐험대 대장이었던 베어드는 탐험대원들을 이끌고 남극에 도착했습니다. 캠프를 치고 혼자서 무전기를 들고 남극의 꼭지점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별안간 휘몰아치는 한파가 그를 덮쳤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낮아진 기압 때문에 손에 쥐고 있던 무전기의 건전지가 폭파되어 연락이 두절되고 방향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손발을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추위로 인해 그의 몸은 서서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빙판 위에 주저앉았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에게 드리우는 것 같았습니다. 심장마저 얼어붙어 버린다고 느끼는 절망의 순간에 갑자기 단어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라는 “임마누엘”이었습니다. “그렇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 순간부터 어디에서 힘이 솟았는지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 질렀습니다."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걸어온 방향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으며 결국 그는 캠프로 돌아와 살아났습니다.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상상할 수 없는 환희와 흥분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우리는 살면서 때로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해가 생기고, 살아가는 것이 재미없고, 좋은 일에 대한 의욕이 없고, 평소에 잘 지내던 사람이 돌멩이를 던지고, 아무도 힘든 마음을 몰라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저앉고 싶을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귀에 조용히 말씀해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위기에 처해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 본문 말씀을 통해 새 힘을 얻고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라는 찬송가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의 고백이요 우리가 불러야 할 찬양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첫째로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알게됩니다

목욕탕에서 한 노인이 물통의 물을 떠서 몸을 닦고 있었습니다. 이십대쯤 되어 보이는 젊은이가 노인이 사용하던 물통을 가져갔습니다. 어이가 없는 노인은 ‘젊은이, 그것은 내가 사용하던 것이야’ 하자 젊은이는 ‘아무나 쓰면 되는 것이지 무슨 소리요’ 하며 건방진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때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십대쯤 보이는 점잖은 사람이 거만한 젊은이에 게 ‘내가 보기에는 젊은이가 잘못한 것 같소. 저 노인이 쓰던 것을 가져간 것은 경우가 틀린 것 같소’ 라고 타이르자 ‘당신이 왜 남의 일에 참견이야’ 하며 갑자기 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노인은 송구스러웠습니다. 자기 때문에 점잖은 분이 욕을 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몹시 불안해졌습니다. 자기에게 못되게 구는 젊은이가 대단한 권력을 가졌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목욕을 다 마친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하고는 더 이상 싸우지 않고 목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목욕을 마친 다음 서로 옷을 입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납게 굴던 젊은이는 중위계급을 단 장교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점잖은 사람은 대령계급을 단 헌병대 장교였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안하고 밖으로 나가 짚차에 있던 부하에게 “이 젊은 장교가 너무 지나치게 구는 것 같으니 부대에 데려가 교육 좀 시키게’ 하며 차에 오르는 것입니다. 물론 젊은 장교는 기가 질린 채 창백해진 얼굴로 지프차에 함께 올라탔습니다.

우리에게 강한 배경이 있다는 사실은 흐뭇한 일입니다. 온 우주를 지으시고 관할하시고 없는 것에서 모든 것을 있게 하시며, 죽은 자를 능히 살리실 수 있는 전능한 하나님을 백으로 삼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1절에 “하나님은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고 고백하면서 현재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상황들을 넉넉히 감당해 나갑니다. 이러한 시인의 자세는 세상의 권세나 죽음 앞에서도 언제나 당당하게 살아야 하는 성도의 삶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난 질고가 많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평안히 한 평생을 살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뜻하지 않게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도움이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결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환난 중에 우리가 만날 큰 도움이 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자포자기하거나 자신의 힘만을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하나님을 배경 삼아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행적을 보게 됩니다

조지뮬러는 일생동안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으며 살았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영국을 떠나 캐나다의 퀘백으로 집회를 가려고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서양을 횡단하던 배가 짙은 안개 때문에 더 이상 항해를 하지 못하고 멈추어 섰습니다. 선장은 말하기를 “수십년의 경험으로 본다면 이처럼 짙은 안개는 수 주일이 지나야 걷힙니다. 그때까지 모두가 기다려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뮬러는,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습니다. 나는 내일 퀘벡에 가서 설교를 하여야 합니다. 약속을 지키려면 지금 항해를 해야 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설교하도록 정해주셨기 때문에 틀림없이 제 시간에 도착할 것입니다” 선장은 뮬러를 정신병자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뮬러는 배 밑으로 내려가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선장에게 제안을 하였습니다. 선장은 불평하면서 그를 따라갔습니다. 뮬러는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아시는 것과 같이 저는 내일 퀘벡으로 가서 설교를 해야 하는데 안개 때문에 더 이상 항해할 수가 없다고 하니 지금 당장 안개가 걷히게 하여 주옵소서.” 선장이 자기도 기도하겠다고 하니 뮬러는 기도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인즉 “당신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부족하니 기도를 안 들어 주십니다. 또 내가 기도한 이후 벌써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안개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갑판위로 올라왔을 때는 벌써 안개가 깨끗이 걷혀져 있어서 다시 항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깊이 사귀며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계속해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행적을 뚜렷이 보게 하십니다.

8절에 ‘행적을 볼지어다’ 의 행적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의 눈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며 살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기적으로 시작해서 기적으로 마치는 종교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기적을 빼고 나면 아무 가치가 없는 죽은 종교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창세기에 기록된 천지창조의 역사를 이룩하셨으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기적도 행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놀라운 기적들은 과거에 일어났던 것만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화되어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곧 사라져 없어질 연약한 인간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나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과 늘 깊이 사귀며, 그 하나님과 동행하심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행적을 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됩니다

‘나의 참된 친구 되신 구주 예수’ 라는 찬송가를 작곡한 촬스 와이글 박사가 파사테나에 있는 유명한 장미꽃 공원을 이른 아침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을 들렀다가 성서연구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로 와서 회의장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의 앞자리에 있던 분이 뒤를 돌아보며, “와이글 박사님, 저는 박사님이 지금 어디를 다녀 오신지 압니다. 장미꽃 공원을 다녀오셨지요. 그 향기가 박사님의 옷에서 풍기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몸에서 지금 어떤 향기가 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내가 어떤 향기를 날리고 있는지 우리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에게 물어야 합니다. 아내, 남편, 자녀, 부모님, 시부모님이나 자부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때 상대방이 “나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나 아마 당신과 같은 분이리라 생각해요. 나는 하나님은 못 보았지만 필경 당신과 같은 마음을 가지신 분일 것이오. 나는 당신을 보면 예수님이나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 영광돌리며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참 믿음의 진가는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고 사느냐” 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에 누구와 가장 친하게 지내며 어떤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함께 오래 지내다보면 저절로 곁에 있는 사람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
면 우리의 마음이나 행동에서 하나님의 향기가 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이 되려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하고 그 뜻에 맞는 생활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너희는 가만히 있어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라고 말합니다. 즉 조용히 시간을 내어 주님과만 교통하는 생활을 할 것을 말합니다. 마귀들이 믿는 신자들을 타락시킬 때 제일 좋은 무기는 ‘분주하게 하는 것’ 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너무 분주하다 보면, 주님과의 단 둘이서 만나는 귀한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당신의 생애를 변화시킬 수 있다’라는 책을 쓴 윌리엄 파커박사는 우리가 매일 조용히 정신을 가다듬고 하나님과 하루에 30분만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성품과 생활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기적을 반드시 보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장소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와 사귀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도움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에게 기적을 나타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하심으로 우리 생애에 놀라운 축복을 더해주심을 확실히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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