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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를 우러러 보면... (시 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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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재신 목사
 
  본문에 보면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러러 본다는 것은 존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높여서 본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우러러 보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통해 우러름 받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을 우러러 보는 자에게 축복하십니다.
  오늘은 주님을 우러러 보면 ....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의 감각 기관을 오관(귀, 눈, 입, 코, 피부)이라고 모두가 다 중요한 기관들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보배로운 부분을 말한다면 아마도 눈을 말해야 할 것 입니다.
  왜냐면 인간은 보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라디오를 통해서 그냥 듣는 것보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고 하는 말도 있듯이 말입니다.
  세상 만사가 다 보는 것으로 통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음식의 맛을 본다고 하고 어떤 물건을 만지면서 만져 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냄새를 맡아 본다고 하고 돈을 계산해 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 본다" "시장 본다" 모든 것들이 보는 것과 통하는 셈인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를 옛날에는 과거 본다고 말을 했고 오늘날은 시험 본다고 말합니다.
  고대 철학자의 교훈 가운데 "너의 눈을 밝혀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이 어두우면 어두운 인생이고 눈이 고장 나면 고장 난 사람인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너의 눈이 어두우면 몸 전체가 어두 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6:22-23절에서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도 눈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령한 눈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신령한 눈을 가지면 하나님을 우러러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우러러 본다는 것은 높으신 하나님을 향한 기대와 간절함으로 사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면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시 62:5절에서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눈은 세상을 바라보고, 인간을 바라보고 도움을 얻으려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은 하나님을 바라며 기도합니다.
 
  주님을 우러러 바라보는 사람에게 어떤 은혜가 있습니까?

  1. 주님을 우러러 보면 구원을 있습니다. 
  주님을 우러러 보면 구원을 받습니다. 왜냐면 구원은 여호와께로서이기 때문입니다. 시 3:8절의 말씀을 보면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렘 3:23절 하반절에서도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의를 바라봅니다.
  자기 의에 도취되어 자신의 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감히 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다고 용감하게 주장합니다. 나는 깨끗하고 선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내게는 그리스도가 필요없다 라고 외침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신이 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속이는 자들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이들은 자신의 양심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양심대로 살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를 속이는 자들입니다. 그 양심이란 것이 성령으로 거듭난 양심이 아니면 자기의 이익과 자신의 입장만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이들은 다른 사람의 죄를 바라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저 사람이 예수 믿고 천국 간다면 나는 문제없어 저 사람 보다는 내가 백번 낫지 않은가 말이야!" 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위로합니다.
  여러분 결단코 이런 식으로는 구원 없습니다. 문제는 여러분 개개인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것이지 여러분과 다른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의 신념이나 지도자를 바라봅니다. 아무 종교나 한 가지 믿으면 나름대로 구원이 있을 것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 그 어떤 훌륭한 종교도 사상도 인간의 죄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직 인간의 죄를 해결하실 분은 인간의 죄 값을 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독생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선하고 깨긋한 삶을 산다 해도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양심대로 산다해도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심지어 다른 종교를 믿어도 그들이 정말로 인간의 근본적인 구원을 얻으려 하면 그들에게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러러 바라보아야 할 구주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우리가 받을 벌을 대신 받은 분이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어떤 부흥 목사님이 열심히 설교를 하고 있는 데 그 동네의 불량배가 술을 잔뜩 먹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어이 강사 목사 "내가 바로 예수야! 나를 믿으라구" 장내는 순식간에 술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몇몇 청년들이 술 취한 그 사람을 끌어내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강사 목사님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당신이 정말 예수입니까? 그렇다면 한번 이리와 보시오? 와서 당신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봅시다. 당신의 손바닥을 한번 만져 봅시다. 우리의 구주 예수는 십자가에게 달리신 못자욱이 손바닥에 있는 분이요.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흔적이 옆구리에 창자국으로 있는 분이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요?  창자국, 못자국이 없는 예수는 가짜요"
  그러는 동안에 청년이 꼼작 못하였습니다. 결국 그 시간에 청년이 회개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굳게 믿고 깨닫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우러러 봅시다. 그러면 구원을 받습니다.

  2. 주를 우러러 보는 영혼에게 평안이 찾아옵니다.
  이 세상은 불에 달군 가마솥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인생의 일생은 온갖 고난과 괴로움의 가마솥입니다. 그러한 이 땅에서는 결코 평안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 4:8절에서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안전하고 평안하게 거하게 하시는 분 그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공기가 순환하는 대기권에는 대류권과 성층권이있습니다. 대류권은 약 12,000M 이하의 공중을 의미하고 그 이상의 높이(12KM에서 50KM) 를 성층권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공기가 순환하지 않기 때문에 폭풍우나 비구름이 없습니다. 지상의 먼지나 불순물이 올라올수도 없습니다. 아주 깨긋하고 조용한 곳입니다. 언제나 태양이 밝게 빛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비행기의 항로는 대부분 성층권을 이용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연에 성층권이 있듯이 심령에도 성층권이 존재합니다. 거기에는 이 세상의 먼지, 즉 시기, 질투, 죄악 등이 침입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사람의 지식으로는 추측할 수 없는 주님의 평안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평안을 바라봅시다.
  주님을 우러러 보는 자에게 마음의 성층권이 이루어집니다.

  독약과 양약의 차이는 "양"에 있다고 합니다. 제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지나치게 쓰거나 먹으면 독이 되고, 독약이라도 적당량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약이 된다는 것이 의사들의 주장입니다.
영양제가 몸에 좋다고 과다 복용하면 독이 되고, 보신제가 제아무리 좋아도 적당량을 지나치면 해가 됩니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수면제는 도움을 주지만 한꺼번에 많은 양을 복용하면 생명을 잃게 됩니다.

  전쟁 무기로 사용하는 생화학 무기 가운데 보툴리누스균이 있다고 합니다. 보툴리누스균은 신경과 근육을 마비시키고 결국 사람을 죽게 만드는 생화확 무기로 쓰여지는 균입니다.
그런데 보툴리누스균으로 개발한 것이 얼굴의 주름살을 없애기 위해 만든 보톡스라고 합니다. 사람의 근육을 마비시키고 죽게 만드는 툴리누스균으로 사람을 예쁘게 만드는 치료약을 개발한 것입니다.

  불안, 근심, 걱정, 염려, 실패, 절망 이런 것들은 없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보툴리누스균이 미치광이나 전쟁주의자들 손에 들어가면 대량살생 무기가 되지만 의사 손에 들어가면 약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불안, 근심, 걱정, 염려, 절망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손에 잡히면 안심, 평안, 기쁨, 희망이라는 양약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배 한척이 바다 한 가운데서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안심하라고 방송이 흘러나왔지만 승객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엇습니다. 그런데 어느 어린 소녀 하나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얘 너는 무섭지 않니?" 소녀가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저는 전혀 무섭지 않아요. 우리 아빠가 이 배를 운전하고 하시고 계시거든요." 
  여러분 인생이 여러분을 속이고 괴롭히며 여러분을 환난 속으로 끌어갑니까?
  그 속에서 낙심하고 절망합니까?
  그렇다면 렘 29:11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음성이 여러분의 귀에 들리기를 바랍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모든 지혜와 능력을 지니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의 운전석에서 여러분의 인생을 이끌어가도 계심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 분만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을 결코 망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의 환난의 바람을 맞아 요동하나 하나님은 노련한 솜씨로 여러분 인생의 키를 조종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실수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시 42: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낙심하며 절망하여 불안할 때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께서 놀라운 평안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3. 주를 우러러 보는 영혼에게 위로가 찾아옵니다.
  고후 1:3절에서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 이시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를 위로하십니까?
  고난당하는 자를 위로하십니다.
사 49: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고난당하는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위로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대부분 우리 자신들의 잘못이나 실수 죄로 인해 당할 때가 많습니다. 당연히 당하는 고난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위로 해 주시기 원하십니다.

  억울한 일을 만난자를 위로하십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억울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물질로 손해 보아 억울할 때도 있고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아 억울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는 자의 억울함을 신원하시는 분입십니다.
  억울하게 죽임당한 아벨의 피의 호소를 들으셨습니다.
  예례미아 선지자는 애가서 3:59절에서 "나의 억울을 감찰하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신원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시 86:17 절에서 "은총의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저희가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심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님이 돕고 위로 하시므로 미워하는 자가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이 쓴 시한 편을 소개합니다.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그런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마음 어두움이 깊어 홀로 외로울 때 환히 바라보면 빛이 되고 위로가 되는 그분 바로 예수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위로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눈을 열러 주를 우러러 봅시다. 
  1. 주를 우러러 바라보는 자가 구원받습니다.
  2. 주를 우러러 바라보는 자에게 평안이 임합니다.
  3. 주를 우러러 바라보는 자를 하나님이 위로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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