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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계명대로 사랑합시다 (요일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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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성준 목사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요일 3:23)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꼭 기억해야 할 첫째 부분이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사랑하라'는 동사는 현재형으로 계속해서 사랑해야 할 것을 나타냅니다(Lenski). 우리는 그리스도의 계명들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든 계명을 지키면 우리는 그분 안에 거하고 있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교육하고 선교하며 봉사하며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하되 계명대로 사랑하는 달입니다.

  사랑이 첫째와 둘째 게명이며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입니다.

율법과 계명의 중요성을 따지기 좋아하는 바리새인은 '가장 큰 계명' 문제로써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익히 알고 있는 (신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신 말씀과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신 말씀을 통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말씀 하셨습니다.(마 22:37-40)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에는 하나님께 대한 수직적 관계와 인간에 대한 수평적 관계에 대한 정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을 요약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첫째가 바로 1-4 계명인데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사랑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른 신들은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3)고 시작하여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고 마무리 짓고 있는데 모두 하나님과 관계된 것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것을 요구하는 율법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만을 사랑하며 다른 우상을 사랑하지 말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복 주신 날까지 사랑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최우선으로 두도록 명하셨습니다. 십계명의 명령과, 인간의 삶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시작되고 끝맺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사랑은 모든 구원의 시작이며(출 20:2) 축복의 근원입니다(출 20:5, 6).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인생에 있어서 최상의 가치와 최우선의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으면 그는 헛된 자이며 삶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자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율법과 선지자의 대 강령'에는 원천적이고 불변한 특성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신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사랑, 즉 하나님의 구원 행동을 가져온 절대적 사랑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은 공간적인 제약도 시간적인 한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대강령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순종하는 모든 일을 가능케 하는 기초가 됩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바로 성립되지 않는 한 어떤 형태로 이루어진 신앙일지라도 그것은 참 된 것이 못됩니다.

인간의 수고로 이루어진 지식, 선행, 권세… 이 모든 것이 폐하여질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끝까지 불변하는 힘이 되어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그와 함께 영원히 거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고전 13: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합니다.

  십계명의 두 번째 부분인 5-10계명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이 그 요지입니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사랑의 계명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계명보다 뒤에 있다고 해서 낮은 것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구체적 증표로 드러나는 사랑이며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계명을 어기는 자는 십계명 전체를 어기는 자인 것입니다. 곧 십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똑같이 중요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 율법 학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그처럼 방대하고 복잡한 율법을 다 준수하고 했던 것도 모두 하나님께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범한 실수는 지나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율법의 잘못된 해석으로 인해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보다는 율법을, 관용보다는 형벌을, 용서보다는 비난을 퍼부음으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나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계명을 어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새 계명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듯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

(요일 4:20,2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할 때, 즉 계명대로 행할 때 더욱 떳떳하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사람사이에서도 진정 사랑하는 이에게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누가 사랑하는 이를 속인다거나, 그의 물건을 도적질한다거나, 어떤 형태로든 그를 해롭게 할 것을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성도가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파생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우리의 삶과 실질적으로 관련된 또 다른 한 인격과의 관계성 속에서 나타나야 할 태도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율법들 하나하나가 지향하는 바가 예수께로 나아오게 하려는 데 있듯이 첫째 되는 큰 계명과 둘째 되는 계명은 서로 상충되지 않습니다. 이 둘이 별개의 것으로 나뉘지 않는 한 우리는 한 가지 목적 때문에 이것들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앞에서 올바르지 못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도 올바르지 못하며,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사람 앞에서도 결코 올바를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가 실행해야 할 이웃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의 속성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할 때 거짓으로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그를 최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관계가 성립될 수 없듯이 우리는 형제를 대할 때 나와 동일한 소중한 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진실하게 대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미국 여인이 차이나타운에서 행운을 가져다주는 상품을 구하려고 한 가게에 들어섰습니다. 그러자 늙은 중국 여인이 그녀의 주문을 받고는 물건 창고로 안내했습니다. 한참 후 물건을 골라 카운터 앞에 선 여인이 물었습니다. '정말 이것이 가장 좋은 것이죠? 난 정말이지. 신통한 힘을 가진 상품이 필요해요. 남태평양에 있는 내 아들을 지켜 줄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만 해요.' 중국인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난 큰 행운을 가져오는 가장 좋은 것을 창고에 두지 않아요.' '그럼 어디 있나요. 얼마든지 내겠어요.' '그건 값이 없는 것이지요. 나의 행운은 하나님께로서 온답니다. 난 이미 세 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부탁드렸어요.'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진 자만이 진정 주님의 백성으로서 모든 것을 행 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계명대로 사랑하며 신자의 도리를 다하는 모두가 됩시다.

  사랑의 계명은 새 계명으로 제자 됨의 표입니다.

(요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계명을 새 계명이라고 하십니다. 새 계명은 옛 계명에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써 써 보지 않은 계명 혹은 알려 지지 않은 계명이라는 뜻을 갖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계명은 낮선 계명이 아닙니다. 그런데 새 계명이라 하심은 예수님이 율법의 폐기자로 오심이 아니라, 완성자로 오시어서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이전의 율법을 보다 완성되고 승화된 개념에서 새로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계명이라는 말은 이러한 개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옛 계명은 인간이 자기 사랑에 사랑의 기준을 둔 것으로 지극히 조건적이고 제한적인 사랑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원수들을 사랑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 등은 완전히 낮선 개념이었습니다(마5:43) 실로 옛 계명은 아브라함이 자손인 선택 받은 백성으로서 다른 민족과 구별 되어 서로 사랑하라는 제한 적인 범주의 사랑인 반면 새 계명은 민족적인 한계를 뛰어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에 근거한 신적인 사랑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같은 새 계명으로서의 이웃 사랑은 자신의 적극적인 희생을 전제로 하는 적극적이고도 진실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랑의 본질을 알게 하셨으며 이를 몸소 실천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시고 서로 사랑하면 사람이 제자인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하십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능력과 권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참 제자의 기본 조건은 자신을 부인함으로 가능함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일찍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든, 다른 인간을 사랑하든, 우선적으로 따르는 것은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는 온전한 사랑을 줄 수도, 이룰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가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닮는다는 의미는 또한 자녀가 부모의 외모와 성품을 닮아가듯, 우리의 모습 속에 우리의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 예수의 형상을 닮아 육신대로 사는 삶이 아닌 그리스도의 남은 과업을 이루며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고후 5:14-17).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말과 행실에서, 그리고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참 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사랑하며 사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자의 나중은 '모든 사랑으로부터 예수의 제자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보장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대적자에게 멸시와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롬 8:18). 모든 사람에게 예수의 제자로 기억된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도 기억되어 그에게는 분명한 하나님의 보상이 따를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닮아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가 주어집니다.

(딤후 2:11,12)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어떤 신혼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신혼부부가 조용한 기회를 얻자 남편이 아내에게 이야기하기를 '나는 지금까지 어머니가 사랑으로 지어 주던 밥을 먹고 자라났는데 이제는 당신이 사랑으로 친히 지어 주는 밥을 먹게 되었소.'하니 아내가 말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아버지가 고운 옷감을 사다 지어 준 옷을 입고 컸는데 이제부터는 사랑하는 당신이 사다 주는 옷감으로 옷을 지어 입고 살게 되었으니 참 행복해요'하였다 합니다. 시랑은 서로 받고자만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자 하는 봉사와 희생의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적인 신랑이 되시어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시셨으니 그리스도의 영적인 신부인 우리 또한 사랑을 실천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13:8) 고하면서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제한 없이 모든 이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예수께서 명령하신 가장 큰 계명인 사랑은 모든 율법의 총체로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강조한 바와 같이 '남을 사랑하는 자야말로 율법을 다 이루는 자'(롬 13:8)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랑을 죄인들에게 친히 확증해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갈보리 십자가 위에 달리신 어린양 예수 안에서 이미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사랑의 완성자시며, 온 율법의 성취자이십니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그의 사랑의 실체가 우리 자신들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재 확증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의 사랑은 편협적이고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면 자신들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랑이라는 율법의 알맹이는 버리고 의식이라는 껍데기만 가졌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과오를 지적하며 하나님께 대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하심으로 '남을 사랑하는 것'으로 율법의 정신을 집약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하신 예수의 말씀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바치는 성도의 사랑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인간에게로 향할 때 하나님께서도 이를 만족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요일 4:20).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여 이웃을 지극히 사랑하는 자는 이미 그 마음 안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계명이 요구하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전히 이루는 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고 인간을 사랑치 않은 유대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적은 소자에게 베푼 것이 곧 자신에게 베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5:40).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는 이미 계명을 버린 자 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그의 사랑하시는 인간들에 대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실천하여야 합니다.

알프스 지방에서는 어리석은 새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새는 너무나 놀기를 좋아해서 따뜻한 해 볕이 비치는 낮 시간 내내 노래하며 노느라고 집 지을 생각을 안 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해가 넘어가고 알프스의 산의 찬바람이 몰아 칠 때에야  비로서 그 새는 땅이 꺼지도록 후회하는 슬픈 노래를 부른답니다. 밤이 깊어가고 견딜 수 없는 추위로 몸이 얼어붙을 지경이 되면 그 새는 굳은 결심을 한답니다. "날이 밝으면 집 지으리."그래서 그새의 이름은 날이 밝으면 집을 지으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날이 새고 따뜻한 햇살에 밤새 꽁꽁 얼었던 몸이 풀리기 시작 하면 그 새는 지난밤의 후회와 결심을 다 잊어버리고 놀다가 결국 집을 지을 기회를 놓치고는 또다시 추운 밤을 맞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날마다 읽고 듣지만 막상 말씀을 지키는 일은 뒤로 미루는 성도 들이 많습니다. 시편 기자가 "주의계명을 지키기에는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 하였나이다"(시119:60)함을 다시 한번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루하루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미루다 보면 영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삶에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신뢰하고 지키려는 굳은 결심과 실천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인터넷정보클럽-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하고)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계 1:3)하십니다.

  계명대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첫째와 둘째가 되는 계명으로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요, 새 계명으로 주님의 제자 됨의 표며, 율법의 완성입니다. 계명대로 사랑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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