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고난을 통한 교회성장 (출 1:1-14)

  • 잡초 잡초
  • 297
  • 0

첨부 1


- 설교 : 피영민 목사

출애굽기의 저자가 누구인가 하는데 대해서는 저자가 모세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이견도 없습니다. 창세기는 시작의 책인 반면에 출애굽기는 구원의 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핍박을 당하고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말미암아 출애굽을 하게 되고, 광야에 40여년을 방황하다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 영적인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애굽에서 구원을 받고, 더 나아가 그들은 야곱의 한 가정으로부터 시작해서 법률과 조직을 갖춘 하나의 국가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그린 것이 출애굽기입니다.

출애굽기에는 특별히 많은 모형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출애굽기의 모형을 잘 이해를 해야 신약성서에 나타난 중요한 교리들을 바르게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는 수 없이 많은 모형이 있지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로 애굽은 세상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노예로 삼고 하나님 백성을 타락시키기 원하는 그런 세상의 모형이 바로 애굽입니다. 바로왕은 무엇의 모형입니까? 사단의 모형입니다. 그는 이 세상 신의 모형으로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스스로 경배받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노예로 삼는 주체가 됩니다. 바로는 사단의 상징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교회의 모형입니다. 세상의 핍박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서 광야같은 영적인 여정을 통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체험하는 교회의 상징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모세는 누구의 상징입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선지자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내는 구원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네 가지 모형을 마음속에 생각을 하고 출애굽기의 내용을 이해해야 될 것입니다.

출애굽기 1장의 내용은 세 가지로 구별이 됩니다. 1-7절은 새로운 세대의 출현입니다.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다른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에서 애굽으로 처음 올라올 때에는 남자가 70명밖에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40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가 늘어나서 국가를 형성해도 족할 만큼 그런 숫자가 되었다 하는 이야기가 1-7절에 기록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8-14절까지는 애굽의 새로운 왕이 일어났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게 되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왕은 요셉을 알지 못합니다. 요셉이 애굽에 와서 애굽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애굽 사람들이 기근으로 죽을 때에 어떻게 은혜를 베풀었는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애굽의 새로운 바로왕은 힉수스족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북방에서 쳐들어 와서 애굽을 점령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이 애굽에 베푼 은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새로운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워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때 반란군과 연합을 해서 애굽에 반란을 하게 될 것을 염려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한 것입니다. 이것이 14절까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5절부터는 핍박만으로는 부족해서 애굽에서 태어나는 이스라엘 남자를 모두 죽이려고 하는 새로운 전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왕이 십브라와 부아라고 하는 산파에게 너희는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조산할 때에 여자자이거든 살려두고 남자아이면 다 죽이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런데 이 산파들은 생명을 받는 사람들이라 생명을 귀중히 여기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왕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여자들은 애굽과는 달라서 도착하기 전에 애들을 낳아서 죽일 기회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산파들이 하나님의 편을 확실하게 들어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쁘게 여기시고 산파들의 집을 축복하셨다고 했습니다. 바로왕이 이 산파들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죽일 수가 없겠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명령을 내립니다.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애굽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핵심적인 말씀은 출애굽기 1장 12절입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하고 핍박하고 진멸하고 죽이려고 하면 희한하게 더욱 더 번식하고 창성하고 늘어나고 부흥되는 역사가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학대든 고난이든 핍박이든, 그것이 도리어 번식하고 창성하는 도구가 됩니다.

우리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성경 창세기의 말씀에 따르면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으로 갈라집니다. 뱀의 후손은 불신자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뱀의 후손들은 뱀처럼 교활한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여자의 후손을 핍박하고 잔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뱀의 후손이 승리하고 여자의 후손들이 패배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개입을 하시게 되면 전세가 역전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개입하시면 저주를 바꾸어 축복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모압왕 발락이 술사 발람을 고용해서 뇌물을 주고 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 하지만 발람이 입을 열어서 저주하려고 할 때 도리어 발람의 입이 축복의 입으로 변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한 사건이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뱀의 후손은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려고 해도 하나님은 도리어 그것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뱀의 후손은 하나님의 백성을 진멸하고 핍박하고 없애버리려고 해도 하나님은 도리어 그것을 번식하고 청성하고 부흥케 하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장이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는 명백한 진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고난과 어려움과 핍박이 도리어 축복과 부흥과 성장의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맞이하게 되는 2005년은 어찌 보면 밝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해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는 기근이 만연하고,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서 수만 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또 국내적으로도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우리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2005년에 어려움과 환란과 핍박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것을 바꾸어서 대 부흥의 역사를 이루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의 표어 가운데 실천사항 하나가 ‘대 부흥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어려운 시대에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부흥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핍박받으면 도리어 번창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세 가지로 입증이 됩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서 입증된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 의해서 입증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와서 처음에는 잘 살았습니다. 고센 땅에 정착을 해서 애굽의 온갖 좋은 음식도 먹게 되었고, 애굽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애굽의 문화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서는 애굽의 신까지도 경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번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반란군이 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지혜를 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거운 짐을 지울 생각으로 계획을 낸 것이 바로를 위해서 국고성을 짓자는 것이었습니다. 국고성이라고 하는 것은 양곡을 저장하는 성입니다. 바로왕은 비돔과 라암셋이라고 하는 두 군데 국고성을 짓기로 합니다. 한 군데에 아예 크게 짓지 않고 두 군데로 나눈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힘을 양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으로 어려운 일만 골라서 시킵니다. 흙이기기, 벽돌 만들기 등의 고역을 시키고 무서운 감독을 두어서 채찍으로 다스리며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영혼을 쇠잔케 하고 힘을 쇠약하게 해서 결국은 아무 힘이 없어서 반란을 일으킬 수 없는 그런 백성으로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바로왕의 계획을 어떻게 바꾸셨습니까? 도리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좋은 훈련의 기회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바로왕의 이 핍박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도리어 축복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는 고센 땅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애굽과도 정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애굽은 우리가 살 영원한 땅이 아니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언약하신 땅은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땅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기도하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출 3장 9절에 보니까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를 하는 한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땅에 떨어지는 기도는 응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올라가야 응답이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식이 가야 답이 올 것 아니겠습니까? 가다가 말면 무슨 답이 오겠느냐는 말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응답받기 원하시는 기도제목이 있으시다면 그것이 천국에 상달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을 받으며 부르짖은 것이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에 정을 떼고 가나안을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얻고자 했던 목적이었습니다. 바로왕은 핍박을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선한 목적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래도 더욱 번성하자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아이들을 모두 죽이려 했습니다. 바로왕은 태어난 남자아이는 모두 하수에 던져 버리라 했습니다. 개도 나면 하수에 던지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사람이 태어났는데 그것을 물에 던져 죽이라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조치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로 말미암아 누구를 일으켜 세워주십니까? 모세라고 하는 위대한 구원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갈대상자에 넣어서 모세를 물에 던졌습니다. 갈대상자가 떠내려갑니다. 그런데 바로의 공주가 그곳에서 우연히 목욕을 하다가 갈대상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의 공주는 모세가 히브리인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알면서도 집에 데려다가 기릅니다. 그래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모세는 애굽 최고의 궁중교육을 받게 되었고 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는 위대한 구원자 위대한 참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도리어 구원자를 일으켜 세우신 것입니다. 사단의 상징인 바로왕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멸망시키려 하지만 하나님은 이를 도리어 최고, 최선의 결과로 바꾸어 놓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싸울 때에 뱀의 후손이 이기는 듯하지만 하나님이 그 현장에 개입을 하시면 전세는 완전히 역전된다는 사실이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통해서도 입증이 된 것입니다.

2. 기독 교회사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두 번째로 우리는 이천년의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서도 이것이 진리라고 하는 것을 쉽게 입증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이 강림해서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부흥되니까 따라오는 것은 핍박과 순교였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주의 말씀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 당하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스데반이 순교한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을 당하고 사도들을 제외하고 온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온 이방나라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방과 사마리아로 복음을 증거하면서 도리어 위대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 사마리아성의 부흥도 스데반의 사건 이후에 사마리아로 갔던 빌립집사를 통해 일어난 것이고, 사도행전  11장에 나타난 안디옥 교회의 부흥도 스데반의 일로 인해서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일어난 이후에 각지로 흩어진 사람들이 헬라인에게 복음을 증거 하면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사단은 교회를 핍박해도 하나님은 부흥을 이루십니다. 그것이 사도행전에서 입증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상 일어난 수많은 핍박 사건들은 교회는 잔멸하고자 했습니다. 로마의 열황제가 교회를 잔멸하고자 핍박을 했습니다. 교회의 역사가로서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교회를 핍박한 열명의 황제는 모두 비참하게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도리어 핍박 가운데 더 왕성하게 부흥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너무나 편안하면 도리어 부패합니다. 그러나 핍박과 환란과 어려움이 오면 오히려 부흥하고 영적인 유익을 얻습니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하는 고백을 하면서 하나님의 교회는 더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핍박을 받으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음부의 권세를 흔듭니다.

교회는 핍박을 통해서 세상과, 타락한 교회와도 분리되고 종교개혁을 일으킵니다. 종교개혁은 핍박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1517년에 95개 조항을 비텐베르크 성당에 걸고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를 살펴보면 그도 많은 핍박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521년에 교황과 로마황제가 소위 보름스 칙령이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을 쉽게 이야기하면 마르틴 루터의 목은 누구라도 쳐도 좋다는 것입니다. 루터를 죽이는 자는 살인자가 되지 아니하고 도리어 로마제국에서 상을 받는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이런 핍박 중에 참 진리를 찾고 대한 종교개혁을 이루었습니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이룩한 존 칼빈도 그냥 개혁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1536년에 젊은 나이로 그 위대한 기독교 강요라고 하는 책을 써서 그것으로 제네바의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젊은 사람이 개혁을 하려니 개혁이 됩니까? 온갖 반대파가 일어나서 칼빈은 쫓겨납니다. 그리고 그 후에 독일에서 3년간 목회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네바의 개혁을 이끌기 위한 적임자로 칼빈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3년 만에 다시 한번 칼빈을 불러오게 되었고 그래서 위대한 제네바의 종교개혁은 지속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는 핍박이 오면 도리어 개혁되고 도리어 발전되고 도리어 순수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핍박을 통해서 알곡과 가라지가 분리가 됩니다. 가라지는 핍박을 통해서 교회를 떠나게 되고 알곡은 더욱더 교회에 붙어 있게 되어서 그 결과 교회는 더욱 순수해지고 부흥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괴뢰군들이 쳐들어 와서 강남중앙침례교회에 기관총을 들이대고 “이중에 예수 믿는 사람들 죽이겠소,” 하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때 알곡과 가라지가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핍박이 오면 가라지들은 다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가라지들은 핍박이 오면 배교하고 믿음을 떠납니다. 그러나 알곡들은 핍박이 올수록 더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순수해지고 경건성을 더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핍박이 오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회개하며 “하나님 무엇 때문에 핍박이 왔습니까? 우리에게 죄가 있지 않습니까?” 하고 기도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살려하기 때문에 경건성의 향상이 오는 것입니다.

핍박이 오면 신앙의 위인도 나옵니다. 영국 사람들은 자기 교회의 역사에 순교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모아서 기록을 해서 ‘팍스의 순교사’라고 하는 책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영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다음으로 그 책을 많이 읽습니다. ‘아 우리 조상들이 예수 믿다가 이렇게 어려움을 당했구나, 이렇게 인내했구나, 이렇게 자기를 부인했구나, 이렇게 헌신하고 희생했구나.’ 하는 것을 읽고서 후손들이 신앙을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핍박과 환란과 고난은 사단으로부터 나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을 거치면 도리어 정금 같은 보석으로 변화된다고 하는 것이 2000년 역사의 교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는 환란이 오든 고난이 오든 핍박이 오든 어려움이 오든 조금도 두려워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는 그런 것을 통해서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요동해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2005년도에 국내외로 어려운 일이 일어나도 여러분은 요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런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성도 개인의 삶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세 번째로 이 진리는 성도 개인의 삶을 통해서도 입증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어려움이 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디모데 후서 3장 12절에도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내가 예수 믿으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이 많은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어려움이 많은 것인가?”고 묻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욕망이 약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여러 가지 핍박과 어려움 오는 것입니다.우리 한국교회는 일제시대에 신사참배 안한다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핍박의 원인도 많습니다. 제사 지내지 않는다고 가족들이 핍박을 합니다. 복음 전한다고 핍박합니다. 왜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당신들은 예수 믿으라고 하느냐고 핍박을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를 할 때에 “당신도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영생을 얻고 죄사함을 받습니다.”라고 그랬더니 그 사람이 성질을 내면서 “나는 불교신자이지만 당신에게 불교 믿으라고 안하는데 왜 당신은 나에게 예수 믿으라고 하는가!” 하고 성질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복음 전한다고 성질을 내고, 주의 일에 열심을 낸다고 핍박하고, 아내가 기도 열심히 한다고 핍박하고, 왜 새벽마나 교회 가서 기도하느냐고 핍박합니다. 또 핍박하는 주체도 많지 않습니까? 황제가 핍박을 하고 불신자가 핍박을 하고 심지어는 가족이 핍박을 합니다. 같이 예수 믿는 성도끼리도 코드가 안 맞는다고 핍박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누가 어떤 환란과 핍박을 우리에게 준다고 할지라도 환란과 핍박이 우리를 넘어뜨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환란당하고 핍박당하는 성도를 향한 주님의 말씀 가운데는 부정적인 말씀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 5장 10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팔복 가운데 마지막 여덟 번째 복이 아닙니까? 복 중에 최고의 복은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복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다가 어려움이 있으십니까? 예수 믿고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인해서 어려움이 초래되셨습니까? 그것은 최고로 기뻐할 팔복중의 가장 최상의 복을 받고 있는 것인 줄로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로 12절은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22-23절에도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아무 환란과 핍박과 고통이 없는 사람은 기뻐할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삶에 핍박과 환란과 세상의 박대가 오면 말씀 그래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프리카고 사냥 휴가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실컷 사냥을 하고 잘 놀다가 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옵니다. 배의 특등 칸에 다 타고 좋은 음식도 먹고 좋은 침대에서 자면서 보내고 뉴욕항에 도착을 했습니다. 도착을 하니 붉은 카펫이 깔려있고 군악대는 연주를 합니다. 뉴욕 시민이 다 나와서 국기를 흔들고 뉴욕 시장이 환영연설을 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대통령이 지나간 후에 아프리카에서 40년을 사역하다가 온 선교사가 한 명이 헌 가방을 들고 내려갑니다. 누구하나 맞아주는 사람도 없고 누구하나 팡파르를 불어주는 사람도 없고, 국기 하나 흔들어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 선교사는 ‘40년 선교를 했는데 나는 어째서 이렇게 박대를 받는가? 나도 차라리 대통령이 한번 되어봤으면’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날 밤에 모텔에 들었습니다. 얼마나 눈물이 납니까? “하나님 나는 인생을 잘못산 것이 아닙니까? 내가 이렇게 아프리카에서 고생하고 40년을 선교해도 아무도 반기지 않는데 저 루즈벨트 대통령은 저렇게 환영을 받으니 내 인생은 잘못 산 것 같습니다.” 하며 울고 있는데 주의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얘야 너는 아직 고향에 온 것이 아니니라.” 하는 주의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주님의 그 음성에 그 선교사는 위로를 받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오는 핍박이 클수록 천국의 상이 큰 것입니다. 고난이 없이는 영광도 없습니다. 우리는 2005년에 여호와의 대사를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대 부흥을 이루기를 원하고 대 도약의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고 대 화합의 역사를 이루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난이 없이, 어려움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주를 위해서 함께 고난에 참여하고 함께 어려운 일을 헤쳐 나가고자 하는 결단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부활의 영광, 승천의 영광,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다스리시는 영광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십자가의 고난을 거친 뒤에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핍박과 환란과 고난을 거치면서 부흥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내적인, 외적인 환란과 핍박과 어려움이 와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부흥을 주시고 축복을 주시고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사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결론

인생 살다가 환란이 와도 아무 의지할 신이 없는 사람은 참으로 불쌍합니다. 지옥에 떨어져도 건져줄 구세주가 없는 사람은 가련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참으로 가련한 사람은 도와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예수 믿지 아니하고, 아직도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아직도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마음에 영접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시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예수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환란이 변하여 축복이 됩니다.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됩니다. 베옷을 입을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그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으로 띠 띄워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돕는 자가 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2005년은 하나님이 일마다 때마다 여러분의 돕는 자가 되시고, 여러분의 모든 어려움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한해가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교회도 핍박과 고난가운데에서도 “여호와의 대사를 경험하는 교회”가 되어 대부흥이이루어지고 대도약이 이루어지며 대화합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