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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하와 성회 (스 8: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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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관지 목사

오늘 설교의 제목은 ‘아하와 성회’입니다.
‘아하와(Ahava)’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낯익은 이름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하와이라고 하기 쉽습니다.
오늘 아하와, 이 이름을 처음 대하는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이름을 알고 있었던 성도가 있습니까?  한 번 손들어 보라고 할까요?
우리는 성경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이렇게 구석구석에 모르는 것들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이하와 성회,’ 제가 만든 말인데요, 더 낯선 이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미스바에 모여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미스바 성회라는 말이 생겼고 이 말은 지금도 자주 쓰입니다.
특히 나라를 위한 기도 모임, ‘미스바 구국성회’  이런 이름을 많이 붙입니다. 

여호수아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았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 수령들, 재판장들, 관리들을 불러 모으고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수 24: 14)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이 집회는 ‘세겜 성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하와 성회’라고 하면 ‘그런 것도 있었나?’ 아주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렇지요?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약 2,462년 전에 아하와 강가에서 모인 집회에 대해서, 에스라서 8장, 나가서는 에스라서 전체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 집회는 왜 모였는지, 모여서 무엇을 했는지, 그 결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피는 가운데, 성도들 한 분, 한 분에게, 또 대 성전 시대를 시작했고, 오늘밤부터 부흥성회를 갖는 우리에게 은혜와 교훈이 있기를 원합니다.

아하와 성회는 왜 모였습니까? 어떤 집회였습니까?

아하와는 바벨론의 지명입니다. 
이 이름은 성경에서 에스라에만, 그것도 8장에만 세 번 나옵니다.
다른 곳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아하와’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하와 지방을 흐르는 강을 아하와 강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마 작은 강이었을 것입니다. 이 앞에 있는 동막천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유브라데 강의 지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는 운하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바벨론 북쪽 80리 좀 못 미치는 곳에 핫 운하가 있었는데 이 운하가 아하와였을 것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끌려가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였습니다.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Cyrus)가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왕이 되었습니다.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하였습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 고국에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도록 후원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철저하게 파괴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하게 약탈당했습니다.
고레스는 느부갓네살이 약탈해 와서 창고에 보관해 두었던 예루살렘 성전의 금, 은그릇들을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건축에 착수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지도자인 스룹바벨, 대제사장 예수아가 앞장서서 이 일을 이끌었습니다.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어, 16년 동안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이 때 성전 재 착공을 독려한 예언자가 학개와 스가랴입니다.
에스라서 5장 1절에 이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516년,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 제6년에 드디어 성전 공사가 끝났습니다.
이 성전을 보통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전은 구약의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신약의 헤롯 성전 셋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에스라서의 전반부인  1장에서 6장까지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에스라서의 후반부가 시작되는 7장은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 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가 하는 자가 있으니라“ 라는 말로 시작 됩니다. 
“이 일 후에” 넉 자로 된 짧은 말이지만 여기에는 짧지 않은 세월이 숨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페르시아가 바사라고 나오는데 성전을 준공할 때 페르시아의 왕은 다리오였습니다.
그 다음 왕은 아하수에르 왕입니다.
아하수에르 왕은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바로 그 왕입니다.
그 다음 왕이 7장에 나오는  아닥사스다(Artaxexes)입니다.
이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를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뿐만 아니라 느헤미야의 활동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느헤미야 1장과 2장을 보면 그 일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이 준공된 다리오 왕 6년에서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일들이 시작되는 아닥사스다 왕 7년(스7: 7)까지 57년입니다.
이 57년 동안 이스라엘은 그렇게 활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초기 귀환운동과 성전건축을 이끌었던 스룹바벨과 대제사장인 예수아는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예언자인 학개와 스가랴도 세상을 떠났거나 나이가 많아 활동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도력의 공백상태가 되었습니다.
정치적인 지도력도 공백이었고 영적인 지도력도 공백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생활은 침체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에스라와 거의 같은 시대의 일을 적은 느헤미야서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은 지어졌는데 성전에서 조석으로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쳤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성전은 건물도 중요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전이 성전으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성전의 건물을 요즘 말로 하면 하드웨어입니다.
소프트웨어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그 하드웨어는 제 값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좋은 컴퓨터를 샀으면 잘 활용해야지요.
컴퓨터는 ‘나 이런 컴퓨터 가지고 있다.’자랑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보 14면 ‘목양광장’을 보세요. 아래쪽에 이번에 부흥강사로 오시는 최세웅 감독님이 쓰신 「전도폭발의 뇌관이 되라」라는 책에 있는 말들을 몇 개 옮겨놓았습니다.
첫 번째가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죽은 송장들만 모인 교회다.’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송장 소리 듣지 않으려면 열심히 전도하십시오.
그 다음은 “에밀 부르너라는 신학자는 불은 타고 있는 동안만 불이지, 꺼지면 불이 아니라고 했는데 교회는 전도하고 있는 동안만 교회이지, 전도를 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니다. 자전거가 계속 굴러가야 넘어지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원리이다.” 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비틀거리며 넘어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전도하십시오.
매우 강력하고 도전적인 말들입니다.
이번 부흥성회에도 이런 말들이 계속해서 선포될 것입니다.

성전은 활용되어야지 성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보기 좋은 건물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문화재가 됩니다. 유럽에는 그렇게 된 교회당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전은 일종의 그릇입니다. 그릇 가운데는 보고 즐기기 위한 그릇도 있습니다.
성전은 그런 그릇이 아니고 좋은 음식이 많이 담겨야 하는 실용적인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이 침체상태에 빠져 있는 이런 상태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운 인물이 에스라입니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 대 손이었습니다.(스7: 5)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습니다.(스7: 6).

이 에스라는 백성들을 이끌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준비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한꺼번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고레스 왕 때, 기원전 538년의 귀환은 일차 귀환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이 이 귀환을 인솔했지요.
그로부터 80년 뒤인 기원전 457년, 아닥사스다 왕 때 에스라가 인솔한 귀환,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귀환은 이차 귀환이었습니다.
이차 귀환으로부터 13년 뒤에는 느헤미야에 의한 삼차 귀환이 이루어집니다.

에스라는 귀환을 앞두고 아하와 강가에 모여 사흘 동안 준비집회를 했습니다.
이 준비집회를 아하와 성회라고 이름 지은 것입니다.
아하와 성회는 귀국 준비성회였고 성전에 활기를 주려는, 성전을 살리기 위한 성회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까지 고레스 왕, 다리오 왕, 아닥사스다 왕, 유대인들의 귀환을 도와주고, 성전재건을 도와준 왕들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이 왕들이 이런 일들을 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이들은 이방나라의 왕들이었습니다. 
점성술이라든가 말둑 신을 비롯한 우상들을 섬기던 왕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왜 이런 일들을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기 때문입니다.
에스라서 1장 1절을 보세요.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래서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향에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라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다리오 왕이 성전 재착공을 허락하고 성전공사와 제사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도록 한 것도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이차 귀환을 허락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에스라서 7장 27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에게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하실 뜻을 두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함께 돌아오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상관하지 않고 세상의 통치자들, 왕들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그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역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성경들은 그 사실을 기초로 하고 기록되었니다.
에스라서도 마찬가지, 느헤미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살피면서 그 하나님께서 일본 고이즈미 총리의 마음을 주장하시어서 그가 억지 주장을 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특히 신사참배를 더 이상 계속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께서 중국 후진타오 주석의 마음을 주장하시어서 그가 중국의 인권과 민주화에 대해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후진타오 주석이 집권했을 때 그가 실용주의 노선의 인물이라 중국의 교회에 대해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태도를 가질 것으로, 신앙의 자유를 확대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반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께서 무엇보다도 북한의 김정일의 마음을 주장하시어서 우선 백성들을 먹이고 살리는 일부터 힘쓰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 이와 같이 하여 아하와 성회가 열렸습니다.

아하와 성회에서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먼저 성전에서 일할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사람들을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으고 점검을 하였습니다.
그 명단이 8장 1절에서 14절까지에 있습니다. 조직을 재정비한 것입니다.
큰 일을 앞두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레위 자손이 없습니다.
레위 자손은 성전에서 일하도록 되어 있는 지파입니다.
민수기 3장 5절에서 9절까지에 그 점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위 지파는 나아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성막에서 시무할지니 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맡기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론에게 온전히 맡겨진 자들이니라

성전의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는 일은 레위인들이 해야 하는데 그들이 없습니다.

에스라는 자기의 이번 귀환이 성전에 활력을 넣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 아닥사스다 왕을 통해 자기를 세우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사해 보니까 성전에서 일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24절 이하를 보면  에스라는 하나님의 성전에 바칠 예물을 풍부하게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물을 관리할 사람들이 없습니다.

우리가 봉헌을 하면 재무부원들이 주일 오후 내내 그것을 정리합니다. 헌금을 다 세고, 봉투를 정리하고, 봉헌한 분들 명단을 작성하고, 주간재정 수입과 지출통계를 내서 주계표를 만들고, 시재일람표를 만듭니다.
만일 재무부원들의 이런 수고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에스라는 성전에서 일할 사람들이 없는 귀환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른자가 빠진 달걀과 같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족장을 보내 성전을 위해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아하와 성회에서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 다음에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자, 우리가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잔치를 하자. 이제 이 페르시아를 떠날 텐데 이곳의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고 즐기자.’ 하지 않았습니다.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금식을 귀환의 서곡으로 삼았습니다.

여러분, 어떤 큰일을 앞두고 있습니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합니까? 자녀가 결혼을 합니까? 입대를 합니까?
경건한 시간을 가지며, 숙연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1월에 남선교회 대회 때 강사로 오신 한명수(韓明洙)목사님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납니다.
고향이 북한의 연백(延白)인데 1951년에 단독 월남을 했습니다. 강화도로 내려와서 군에 입대해서 여러 해 군인생활을 했습니다. 켈로 부대라는 특수 유격대 생활도 했습니다.
이제 제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제대하는 다른 사람들은 집에 가게 되었다고 좋아서 야단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제대를 해도 갈 곳이 없고 맞아줄 사람도 없습니다.
이 분이 쓴 글을 보면 이 때 홀로 우주의 미아가 되는 것처럼 서럽도록 외로웠다고 합니다.
이 분은 혼자 냇가에 나가 눈물을 흘리며 찬송가 421장을  불렀다고 합니다.

나는 갈 길 모르니 주여 인도합소서
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합소서
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합소서

아무 것도 모르니 나를 가르치소서
어찌해야 좋을지 나를 가르치소서
어찌해야 좋을지 나를 가르치소서

아기 같이 어리니 나를 도와줍소서
힘도 없이 약하니 나를 도와줍소서
힘도 없이 약하니 나를 도와줍소서

맘이 심히 슬프니 나를 위로합소서
의지 없이 다니니 나를 위로합소서
의지 없이 다니니 나를 위로합소서

이 찬송을 밤이 새도록, 목이 터지도록 불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이 분을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도와주시고, 위로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게 하셨습니다.
이 뒤에 수원 가는 도로로 가다보면 오른편에 조금 안쪽으로 창훈대교회라고 유럽식 분위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교회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교회가 이 분, 한명수 목사님이 1964년에 개척해서 40년 동안 시무한 교회입니다.
이 분은 성공적인 목회와 함께 교단을 위한 활동, 나가서 교회연합활동도 많이 하셨습니다.
십여 년 전에 위암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는데 그 때 제대를 앞두고 이 찬송을 부르던 일이 생각나서 목사실 문을 닫아걸고 이 찬송을 밤새도록 불렀다고 합니다.
이 분은 위 전체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도 십 여 년 간 건강하게 활동하다가 작년에 은퇴하셨습니다. 
우리 몸에는 암세포를 억제하는 의지세포가 있는데 이 의지세포가 왕성하게 활동해서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를 인도하소서’ 
‘하나님, 나를 가르치소서’ 
‘하나님, 나를 도와줍소서’ 
‘하나님 나를 위로합소서’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도와주시고, 위로하시고, 크게 사용하실 줄로 믿습니다.

아하와 성회에서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바칠 준비를 했습니다.

이들이 귀환하니까 페르시아의 왕과 관리들이 ‘이것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성전에 바치시오. 성전에서 사용하도록 하시오.’ 하면서 은과 금과 그릇들을 내 주었습니다.
함께 돌아가지 않고 남아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것도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세요.’ 하면서 역시 많은 예물을 내놓았습니다.
에스라는 제사장의 우두머리들 중 열두 명을 따로 세워 그 예물을 잘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성전에 바치도록 했습니다.
이 일은 오늘 본문 뒤에 이러지는 8장 24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하와 성회를 통해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성전에서 일 할 일꾼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성전에서 일할 사람 수백 명을 보내주셨습니다.

아하와 성회를 통해서 어떤 일이 일었습니까?
에스라가 구하는 것을 응낙해 주셨습니다.
23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에스라가 특별히 간구한 것은 안전한 귀환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왕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22절이 그 기도인데 알기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평안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왕에게 군대를 동원해서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하고 싶지만 저희가 전에 왕에게 하나님은 자기를 잦는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군대를 동원해 달라고 하기가 부끄럽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구했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직선거리로는 840Km이었지만 도로를 따라가면 1,450Km입니다. 에스라서 7장 8절에는 에스라는 넉 달 걸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들을 노리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막대한 재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새어나갔거나 새어나가지 않더라도 그렇게 짐작하고 그것을 탈취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8장 26절 이하에 그들이 가지고 가는 재물, 성전에 바칠 것들의 목록이 있는데 은 육백오십 달란트, 은 그릇 백 달란트, 금 백 달란트, 금잔 스무 개, 아름답고 빛나 금 같이 보배로운 놋 그릇 두 개, 많은 사람들이 탐낼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스라 일행이 이 재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무사히 돌아가도록 해 주셨습니다.
8장 31절을 보세요.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아하와 성회를 통해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회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어와 보니 귀환한 백성들의 삶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제일 심각한 것은 잡혼 문제였습니다.
에스라는 백성들을 성전 앞 광장으로 모았습니다.
그리고 큰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개혁을 선포합니다.
재건은 되었으나 별로 쓰이지 않던 예루살렘 성전의 광장이 회개의 광장, 개력의 광장, 정화의 광장, 그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인 것을 확인하는 광장, 순수하고 경건한 삶을 살 것을 서원하는 광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서 때때로 아하와 성회와 같은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헌신과 봉헌을 다짐하는 시간도 갖게 되기 바랍니다.
금식에도 힘쓰기 바랍니다.
특히 젊을 때 금식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학년이 높아질수록 금식을 감당할 수 있는 의지도 약해지고 체력도 어려워집니다.
제가 올해 사순절 금식헌금을 좀 많이 했습니다.
그것은 실질적인 금식은 좀 부족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올해 여러분이 사순절에 하신 금식 헌금은 몽골 선교를 위해서 쓰여 집니다.

교회가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제가 타문화권 선교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선교기관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교에 대해 많은 말을 하고, 선교와 관련된 여러 일들에 관계하고 있었지만 원래는 그것보다 더 많은 애착을 가진 일이 있었습니다.
1990년에 충현교회에서 아시아선교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제가 마흔다섯 살, 아직 젊을 때인데 선교에 대한 자세를 분명하게 하고 싶어서 한 주일 내내 금식을 하면서 그 대회의 새벽기도회에서 저녁집회까지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그때 베이징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려 선교단체들이 베이징으로 떠날 준비를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하더라도 중국선교에 대해 말할 사람이 별로 없어서 금식을 하면서도 낮에는 그런 단체들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많이 다녔습니다.
이 일이 그 뒤 계속해서 지금까지 변함없이 선교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교가 직장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 때문에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금식기도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아하와 성회와 같은 시간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돕는 사람들을 보내주십니다.
여러분이 간구하는 것을 응낙해 주실 것입니다.
23절 끝에 나오는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라는 말을 저는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아하와 성회와 같은 시간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응답의 확신을 주셔서 가고자 하는 길을 용기를 가지고 떠날 수 있게 됩니다.
하고자 하는 일을 용기를 가지고 할 수 있게 됩니다.

아하와 성회와 같은 시간을 가질 때, 하나님은 우리가 가는 길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아하와 성회와 같은 시간을 가질 때, 우리는 회개하고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하와 성회와 같은 시간을 꼭 가지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성전 건축을 완료한 목양교회는 아하와 성회와 같은 시간을 꼭 가져야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아름답게 하기를 원하셔서 에스라를 일으키시고, 이방의 왕인 아닥사스다 왕까지 사용하신 하나님께서는 목양교회 대성전이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일에 여러분과 저를 사용하기 원합니다.
여러분, 레위인과 같이 성전에서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되십시오.

우리는 오늘 저녁부터 열리는 성회가 아하와 성회와 같은 귀한 모임이 되도록 함께 힘써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미처 잘 모르고 있었던 아하와 성회의 중요함을 잘 깨닫고 개인적으로도 이런 시간을 갖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고, 특별히 그와 같은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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