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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족을 사랑합시다 (딤전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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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성찬 목사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

1851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시민이 알제리아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후 미국 정부는 군함을 보내어 그의 유해를 미국으로 데려왔습니다. 그의 유해가 미국의 뉴욕에 도착하는 그날 뉴욕시가 생긴 이래로 최대의 인파가 부두에 몰려들었습니다. 군악대의 연주소리와 예포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대통령, 국무위원, 수많은 사람들이 도열하는 가운데 그의 유해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이 사람은 위대한 정치가도 아니었습니다. 위대한 작가도 아니었습니다. 위대한 군인도 아니었고 위대한 과학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시민에 불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미국 전 국민들의 관심을 받게 된 배경 속에는 그가 작사했던 단 하나의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가 미국인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를 미국 민의 마음속에 깊이 심어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우는 집. 내 집뿐이리]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의 작사자인 존. H. 페인의 유해가 입항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족이 있고 가정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든든한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평안이 되는지 모릅니다. 가족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이 다른 가정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나 피해를 주어서도 안 되고, 사회에 악을 끼쳐서도 안 됩니다. 가족 사랑이 가족 우월주의가 되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돕는 배필인 가족을 주시고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아담이 배필의 필요성을 느끼기 이전에 이미 그것을 아시고, 그를 위해 배필을 지으실 계획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는 분이시며, 이미 그것을 위해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지으신 각종 들짐승과 새들을 아담에게로 보내어 이름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그에 대한 소유권을 나타내는 행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직접 피조물의 이름을 짓지 않으시고 아담에게 위임하신 것은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배필을 지어 주시기 전에, 짐승들의 이름을 짓게 하신 또 하나의 이유는 모든 짐승에게 암수가 있음을 보면서 자신의 배필 없음을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20).

이처럼 하나님은 먼저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깨닫게 하시고, 그 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소중히 여기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그의 배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21).

어거스틴은 왜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었는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하와를 아담의 머리뼈로 만들었다면 여자가 남자를 지배할 것입니다. 반대로 아담의 발가락뼈로 만드셨다면 여자가 남자에게 밟힘을 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신 것은 가슴으로 서로 품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인격체입니다. 남자가 힘이 있다고 해서 우월한 것도 아니고, 여자가 약하다고 해서 열등한 것도 아닙니다. 창조 질서 상 남자를 앞세운 것이지 인격적으로 여자를 차별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몸에서 희생을 지불케 하므로, 그 아내가 생기게 한 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그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쏟으심으로 교회가 성립될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이렇게 해서 얻은 아내를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는 이처럼 밀접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혼을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 19: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막 10: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그러므로 서로 감싸주며 사랑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눈썹이 나지 않은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랜 시간 혼자로 지내다가 결국 혼기를 놓치고 어느 연탄장수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눈썹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녀는 매일 남편보다 일찍 일어나 화장으로 눈썹을 그리고 자기가 눈썹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겼습니다. 남편은 잘 속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일을 돕는 직원이 몸이 아파서 나오지 못하게 되어 그녀가 대신 남편의 일을 돕기로 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연탄을 나르는 일은 평생 처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너무 지치고 힘들었고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남편이 잠시 쉬자고 말하면서 쉬는 동안 자신의 목에 감아두었던 수건으로 그녀의 땀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속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남편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의 눈썹만을 피해 조심조심 땀을 닦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 그녀는 자기 자신이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참된 사랑은 아픔을 감싸주는 것입니다. 약점과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랑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옛날 어느 가정에 남편이 오랜 병상으로 누워있게 되자 부인이 고생고생하며 살다가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워 쌀밥 한 그릇 해놓고 도망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물가에서 쌀을 씻는데 도마뱀 한 마리가 들락거리면서 떨어진 쌀알을 물어다가 도랑을 덮은 다리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다리를 놓을 때 도마뱀 수놈의 꼬리가 나무에 끼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암놈의 도마뱀이 수놈의 도마뱀을 먹여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인은 자기가 도마뱀 보다 못한 인간임을 자책하고 도망갈 것을 포기하고 그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하고 잘 간호했더니 남편의 병이 나아서 큰 벼슬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환경을 뛰어 넘어 사랑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며 이 땅의 모든 것을 돌보고 관리하라는 명령을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가족을 사랑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성취하는 것이며, 주님의 복을 누리는 지름길입니다.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부모에게 주신 선물이요 유업입니다. 유업이라는 것은 일종의 상속 재산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자기 것처럼 마음대로 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맡기신 분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양육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식을 통해서 부모를 즐겁게 하고 부모에게 기쁨을 주시기 원해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자식은 유업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청지기로서 자식을 양육해야 하지만 동시에 자식으로 인한 기쁨을 누릴 권리도 있는 것입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시127:3-5)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시128:3-6)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잠17:6)

자식이 면류관이요, 영화라는 것입니다. 이들을 사랑으로 양육하야 합니다.

벤자민 웨스트라는 화가가 있습니다. 그가 어릴 때 동생의 얼굴을 그려 주다가 방안의 새 벽지와 카펫을 다 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가 들어와 새 벽지와 카펫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벤자민 웨스트가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 죄송해요. 동생의 얼굴을 그려 주다가 보니 나도 모르게 이렇게 되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그의 어머니는 아이의 뺨에 키스를 하며 오히려 칭찬을 했습니다. "잘 그렸구나." "동생하고 잘 놀아줘서 고맙구나. 착하구나. 너는 대단한 화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훗날 벤자민 웨스트는 "그때, 어머니의 키스와 격려가 오늘 나를 화가로 만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녀는 부모님을 공경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절)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레19:2)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23:22)말씀합니다.

부모님이 혹시 잘못하더라도 절대로 무시하거나 경멸해서는 안 됩니다.

노아가 술 취해서 하체를 드러내 놓고 잠을 자는 광경을 보고 함은 흉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창9:23)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 부모 공경이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님을 기쁘게 할 것에 대해 명하고 계십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5). 부모님들에게 가장 큰 기쁨은 자식이 자랑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든지 가셔서 자식 자랑을 하면서 어깨도 펴시고 당당해지십니다. 그러므로 부모님과 좋은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기쁨을 함께 나누고, 좋은 옷이나 음식을 함께 나누고, 편리한 물건들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부모님들도 좋을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좋아하십니다. 단지 표현을 안 하실 뿐이지요. 부모님과 좋을 것을 나누시며 사랑을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가족을 하나님의 마음과 방법으로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형편과 사정 때문에 가족을 돌보지 못한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는 순간까지도 어머니를 돌아보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6-27)

충북 제천 출신으로 판사가 된 분이 있는데 그는 허리가 굽은 장애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술과 도박에 빠져 있었습니다. 손가락까지 잘라봤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다시 노름을 했습니다. 손가락이 다 잘려나가 손으로 화투를 잡을 수 없게 되었을 땐 대리자를 세워 노름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가산을 탕진하고, 온 가족은 어머니의 삯바느질 품을 팔아 겨우 연명하였습니다. 아버지는 한밤중에 집에 들어와서 노름 밑천을 내놓으라고 어머니를 닦달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홧김에 마루에 있던 어린 그를 마당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이 일로 그는 곱사등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함께 놀아줄 친구들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만 열심히 하였고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었습니다. 판사가 된 그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아버지를 언제나 잘 모셨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판사를 존경하였습니다. 효도하는 모습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효성에도 까닭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복음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었는데도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참다운 부모공경의 차원입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어떤 처지나 어떤 상황에서도 공경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참다운 신앙인입니다.

형제간에 우애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

사랑의 특성은 하나 되게 하는 것(To be One)입니다. 사랑의 산술은 1+1=1입니다. 1+1+1..+1=1 즉 아무리 더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 전도하러 갔습니다. 한 가정에 가니 3형제가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까닭을 묻자 큰 형이 설명하기를 "아버지가 말 17필을 유산으로 주시면서 장남은 1/2, 차남은 1/3, 삼남은 1/9을 가지라고 유언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따르자니 장남인 저는 8과 1/2필이요, 차남은 5와 2/3필이요, 삼남은 1과 8/9필이 되어 말을 산 채로 나누어야겠는데 아무도 양보하질 않아서 서로 양보하라고 싸우는 중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는 "그렇습니까? 그러면 내가 타고 온 말을 여기에 보태드릴테니 산 채로 나누도록 하십시오."하고 자기가 타고 온 말을 제공하였습니다. 18필이 되니 나누기가 쉬웠습니다. 그리하여 장남은 9필, 차남은 6필, 삼남은 2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말을 합하니 교묘하게도 17필이 되었고, 선교사가 제공한 1필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17필로 싸우면서 나누려던 때보다 장남은 1/2필, 차남은 1/3필, 삼남은 1/9필을 더 가졌는데도 1필이 그대로 남았으니 도무지 이상했습니다. 이 때 선교사는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드린 한 필은 사랑의 한 필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있는 곳에는 모든 것이 원만하게 잘 해결될 뿐만 아니라 더욱 풍부해집니다." 

그런데 최고의 가족 사랑과 돌봄은 불신 가족을 예수 가족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부모, 형제자매가 있다면 내가 신앙의 본을 보이고, 기도하고, 전도해서 예수 가정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가족을 돌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고 말했습니다.

가정은 이 땅에서의 천국이며,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최초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가족 간에 기도와 말씀으로 세워주고 사랑과 물질로 돌보아 줄 때,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심은 장차 올 천국을 위함이요, 가정을 세우심은 천국을 미리 맛보고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기독교 타임즈 종합뉴스 기사에, 연인 10명중 4명이 종교갈등을 겪었다는 자료가 나왔습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 남녀 4백28명(남성 1백31명, 여성 2백 97명)에게 '연인간의 종교 갈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해 지난 17일 밝힌 경과에 따르면 40,9%가 교제 과정에서 종교 갈등을 경험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갈등을 경험한 남녀 응답자 중 56.6%는 '그로 인해 헤어졌고', 20.0%는 작은 다툼이 있었으며, 5.7%는 헤어질 위기까지 갔다고 답한데 반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응답자는 16.0%에 불과 했습니다. 이 같은 갈등은 남성(42.7%)이 여성(40.1%)보다 많이 경험했고, 종교별로는 기독교인(59.8%), 불교(44.8%), 무교인(28.1%), 천주교인(25.8%)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갈등 종교는 기독교-불교(46.9%) 간이 주를 이루었고, 기독교-천주교(10.3%), 천주교-불교(2.9%)순이었다고 합니다. 이 통계에서도 보듯이 기독교는 타 종교와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가정의 행복은 종교 일치에서 이루어집니다.

가족을 사랑 하시되 부부지간 부모 자식지간 형제간에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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