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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라에서 엘림까지 (출 15: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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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문수 목사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넘어야 할 고비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고난의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감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시작합니다. “예수 믿으면 만사 형통하리라!” 그러나 이런 기대와 달리 수시로 닥쳐오는 고난 때문에 회의를 느끼고 중도 탈락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혹은 낙심한 나머지 신앙이 자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고난의 문제를 잘 넘기면 신앙이 더욱 견고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길바닥에 돌이 튀어나와 있는데, 그 돌에 어떤 사람은 걸려 넘어지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그 돌을 밟고 후딱 지나갑니다. 말하자면 같은 돌이라도 사람에 따라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나 고난이 있지만 과연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인생살이에는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 신앙 생활만 잘하면 하나님께서 고난을 면제시켜 주실 줄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적인 오해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아무리 뒤져봐도 하나님만 믿으면 고난이 없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오히려 믿는 성도들에게 고난이 많다고 말씀하는 구절들은 자주 발견됩니다. 시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딤후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행14:22 (바울의 말) “ ...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은 왜 믿는 성도들에게 고난을 허용하시는 겁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께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편안하게 해 주실 수 있는데 말입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장 중요한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아무리 성도들이 살아도 이 세상은 어디까지만 죄악이 관영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가기 전까지 세상에 있는 한 내 탓이든 남의 탓이든 고난이 상존합니다. 둘째는, 신앙의 진실성을 시험(test)하기 위함입니다. 금과 돌이 섞여 있을 때는 용광로를 통과시켜 봐야 압니다. 상록수는 겨울에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름에는 다 푸른 색깔입니다. 고난이 오면 진짜 가짜가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세째는, 신앙을 더욱 견고히 연단해서 천국까지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어둔 밤길을 갈 때 아이는 아버지의 등에 딱 달라붙습니다. 고난을 겪으면서 참 신앙인은 더욱 더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다시 한번 상기할 것은 이 세상 사는 동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지라도 고난을 면제받을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고난을 극복하는 지혜입니다. 그 지혜를 오늘 본문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고난에 걸려 넘어지는 자가 아니라 고난을 디디고 일어서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지 한 달도 채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들은 출애굽 후 첫 번째 고난인 홍해를 당당히 건넜습니다. 그 후 수르 광야로 들어가 3일 동안 길을 갔지만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고통 가운데 한참 가다 보니까 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물은 너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의 이름을 ‘마라’(히브리어로 ‘쓰다’는 뜻)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24절. 원망합니다. 이게 그들의 문제입니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갑니다. 3일 동안 광야 길을 가는데 물이 없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장정들도 괴로웠겠지만 노약자나 아이들도 아마 목마르다고 아우성쳤을 겁니다. 그러다가 겨우 물을 발견했다고 좋아했더니 마실 수 없는 쓴 물입니다. 아마 약이 오를 데로 올랐을 겁니다. 그러니 원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갈 사항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이런 모습은 본능적, 육신적인 반응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연한 것이라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달라야 됩니다. 아니, 다를 수 있습니다. 동일한 조건, 상황 가운데 불신앙의 사람과 신앙의 사람의 태도는 천양지차입니다. 불신앙의 사람은 본능적, 육신적 반응을 보이지만 신앙의 사람은 신앙적, 영적 반응을 보입니다. 고난의 상황 가운데 백성들은 원망합니다. 반면 모세는 어떻습니까?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목이 마르지 않습니까? 모세는 약이 오르지 않습니까? 밸도 없나요? 그도 사람이니까 똑같이 느낍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모습으로 반응했습니다. 즉 신앙적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습니다. 25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 그 결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쓴 물이 단 물이 되었고, 이어서 엘림이란 이름의 오아시스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고난을 만났을 때 믿음으로 대처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원칙을 소개해 드립니다.

[1] 고난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비결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고난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백해무익합니다. 자기 마음만 상하고 원망이 터져 나옵니다. 그러면 이미 고난에 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고난에 번번이 패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슨 고난이든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것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고난이 극복되기 시작합니다.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벧전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사실 광야는 늘 그런 곳입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뿐 양식이 없고, 물이 없고, 낮에는 뜨거운 태양, 밤에는 차가운 바람이 괴롭힙니다. 때때로 맹수가 나타나고, 강도가 출현하기도 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광야를 통과할 때 당황하지
않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고난 가운데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굳건합니다.

예> 뿌리 깊은 나무 vs. 뿌리 얕은 풀
예> 고난 중의 욥 - 욥1:21~22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예> 단3: 다니엘의 세 친구 - 금신상 앞에서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느부갓네살 왕에게 문초 받고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 ... “ ...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
* 결국 이런 사람이 승리하게 됩니다.

[2] 고난이 닥치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고난의 가치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부여됩니다. 고난이 있을 때 두려워하고 원망하고 도망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러면 손해만 봅니다. 엉뚱하게 세상에 가서 기웃거리며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절대 해결이 안됩니다. 오히려 일이 꼬일 수 있습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정공법은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물을 구하지만 얻지 못합니다. 그들이 얻은 것은 고작 쓴 물이었습니다. 23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들이 며칠 전 홍해 바다가 가로막았을 때 모세가 기도하면서 지팡이를 치켜올렸을 때 바다가 갈라지는 것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보고 감격스럽게 찬송했습니다. 출15:1~21 내용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신앙과 그 감격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25절 보면 다행히 모세가 부르짖습니다. 간절한 간구! 그때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납니다. 한 나무를 지시해 주십니다. 그것을 쓴 물에 던지자 마실 수 있는 단 물이 됩니다. 그 나무 자체에 무슨 특별한 효능이 있었던 것이라기 보다는 그 나무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고 보면 됩니다.

어떤 학자는 이 나무는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입니다. 인간의 모든 저주와 고통을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십자가 상에서 주님이 우리의 모든 죄악과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셨음을 믿고 주님께 나아가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3] 고난 뒤에 예비하신 하나님의 위로를 기대해야 됩니다.

마라에서 쓴 물이 단 물로 변화되는 기적을 체험한 후 이스라엘은 계속 진행합니다. 얼마 후 엘림이란 곳에 당도합니다. 마라에서 약11km 떨어진 곳입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죠. 도보로 몇 시간 거리입니다. 낙타를 타면 두 시간 거리밖에 안됩니다. 얼마나 가까운 거리입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 무엇이 예비되어 있었습니까? 27절. 오아시스가 있는데, 물샘 열 둘은 12지파를 위한 것, 종려 70주는 이스라엘의 대표인 70장로의 장막을 위한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위해 이렇게 좋은 휴식처를 준비해 두셨다는 사실입니다.
예> 시23:2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로 인도
예> 우리 영혼의 오아시스 - 요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사12:2~3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 운동 선수가 고된 시합을 하고 나서 마시는 생수 같은 기쁨!

고후1:3~5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4] 궁극적으로 영원한 천국을 소망해야 됩니다.

엘림에서 휴식을 위한 이스라엘은 또다시 출발해서 계속 광야 길을 가야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약속의땅 가나안에 들어가야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위로는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우리는 광야 같은 인생을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궁극적으로 완전한 천국을 소망해야 됩니다.
예> 고속도로 휴게소 - 잠시 쉴 뿐입니다. 목적지를 향해 계속 달려야 됩니다.

예> 바울의 소망 - 딤후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히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22:1~2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그 날 완전한 위로와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 인생 길에는 늘 고난이 상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고 고난이 올 때마다 먼저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리고 그 후에 하나님의 풍성한 위로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살 동안에는 완전한 위로와 평안이 없기에 천국에 들어갈 그 날을 소망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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